내공 있는 말솜씨
손 원
언어는 중요한 소통 수단이다. 소통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나의 말을 전하는 방식이다. 전하는 뜻은 같더라도 사람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 억양, 표정이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것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표현 방법과 분위기는 늘 다르다. 대화하다 보면 기분 좋은 사람이 있고 짜증스럽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기분을 좋게 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고, 상대를 기분 좋게 하고 싶어진다. 상대에게 기분 좋은 말을 들으려면 내가 먼저 기분 좋은 말을 건네야 한다. 항상 그러고 싶지만 쉽지 않다. 당장에 듣기 좋은 말을 하기가 어렵다. 몇 마디 하더라도 진실성이 없는 연기가 되기 십상이다. 유연하게 좋은 말을 하려면 오랜 내공을 쌓아야 가능하다.
스스로 말하는 내공이 부족함을 느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임에도 그렇다. 그간 나의 경박스러운 말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도 부모님께 큰 빚을 진 것 같다. 젊어서 마음에 차지 않거나 기분이 언짢을 때, 부모님께 분풀이를 했다. 부모님의 마음은 바다 같기에 나의 모든 투정을 받아 줄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커가면서 형제자매에게까지 살갑지 못했다. 형제자매의 마음은 호수같이 포용해 줄 걸로 여겼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내에게까지 살갑지 못하다. 아내를 배려하지 않고 모두 내 뜻대로 해 왔다. 그렇다고 부모 형제나 아내는 어떤 유감도 갖고 있지 않지만, 자책감이 든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나이 일흔을 앞두고 늘 평정심을 잃지 않는 말솜씨로 훈풍이 이는 노인 되고 싶다. 훈풍을 풍김과 동시에 지혜로운 노인으로 거듭나고 싶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정치가 안영이 제나라 왕, 경공을 모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사냥지기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부주의로 왕이 사냥한 사냥감을 잃어버렸다.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 사냥 지기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같이 사냥을 나갔던 주변의 신하들은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때 안영은 경공에게 직접 충고하지 않고 우회하는 전술인 "우직지계(迂直之計)"를 선택하였다. 곧장 가는 것보다 우회하는 것이 효과적이란 "손자병법"에 나오는 계책이다. 안영은 사냥지기를 끌고 나오라고 해서 그에게 큰 소리로 세 가지 죄목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너는 세 가지 죄를 범했다.
첫째, 너의 맡은 바 임무인 군주의 사냥감을 잃어버린 것.
둘째, 더 큰 잘못은 군주로 하여금 한낱 사냥감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했으니 부덕한 군주로 만든 것이다.
셋째, 우리 군주가 사냥감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한낱 사냥감 때문에 사람을 죽인 군주라고 비난받게 만드는 것이 너의 세 번째 죄다. 네가 이러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느냐?"
안영이 사냥지기를 추궁하는 말 중에는 우회하여 군주에게 전하려는 자신의 뜻이 숨겨져 있었다. 왕은 자신이 사냥지기를 죽이면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사냥감 때문에 분노가 지나쳐서 사람을 죽이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냥지기를 놓아주라고 지시하였다. 안영은 자신이 모시는 군주와 직접 충돌하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신하 된 도리를 다하고 자신의 주군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때에 따라서 곧장 가는 직설화법보다는 돌려서 말하는 우회 화법이 더욱 효과적일 때도 많다. 유난히 언변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목소리가 매력적이고 부드러운 탓도 있겠지만 직설적이 아니라 우회적인 표현으로 본인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지적인 자산이 풍부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화법을 가리켜 "담언미중"(談言微中)이라고 한다. "완곡한 말로 정곡을 찌름"이라는 의미다.
물을 유리컵에 담으면 마시는 물이 되고, 세숫대야에 담으면 씻는 물이 된다.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용도가 결정된다. 말에서는 "말솜씨"가 그릇의 역할을 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거나 신뢰가 느껴지는 사람은 말솜씨가 좋기 때문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반대로 성격이 나쁠 것 같다거나 짜증을 잘 낼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말솜씨가 안 좋기 때문이다. 말솜씨의 근간인 말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투가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말투와 말솜씨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것이 경쟁력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의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말은 나를 변화 시키고, 주변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도 한다. 좋은 말은 좋은 심성이 기본이다. 좋은 말을 들으면 말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심성이 파동으로도 전해 진다고 한다. 우리는 평생 보고, 듣고, 익히며 살고 있다. 그중 좋은 것만 취한다면 우리의 심성과 인격이 훌륭해진다. 그것이 좋은 말을 위한 내공이 아닐까 싶다. (2023. 6. 24.)
[말의 무게]
어떤 사람의 입은 마음에 있어
생각을 마음에 담지만
어떤 사람의 마음은 입에 있어
생각을 무심코 내 뱉습니다
사람의 혀는 야수와 같아.
한번 고삐가 풀리면
다시 잡아 묶어 두기가 어렵죠
내뱉은 말을 다시 담을 수는 없습니다
말이란 내뱉는 사람에겐 가볍게 느껴져도
듣는 사람에겐 큰 무게를 지닙니다.
마땅히 말해야 할 때는 말해야 하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전진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말을 해야 할 때는 겸손하고 부드럽게 하고
주장해야 할 때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고
분명하게 말해야 상대방에게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주의 깊게 듣고, 지혜롭게 질문하고,
조용히 대답을 합시다
섣부른 말은 어떤 이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만들기도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
확신이 없는 말들이
너무나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
잠시 말의 무게를 생각해봅니다
-지혜와 평정-
첫댓글
저도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니라서 말을 많이 아끼는 편입니다만
의견을 물을 때 의사표시는 저도 확실하게 하는 편입니다.
독설은 삼가하고 가급적 좋은 말을 많이 해주는 게 좋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