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민형 마주 서 있는 모습.
(시간 경과)
유진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는 민형이 차를 만들
어 주는 표정.
민형 오늘 좀 춥죠? (한손으로 차를 타면서 서류에 적힌 유진
의 이름을 보고 정유진 확인하고) 유진아...
유진 !! (퍼뜩 놀라서 얼굴 들어 보면)
민형 어감이 좋은데요? 약혼자가 이름 부르기 좋겠어요. 그때
같이 봤었죠?
유진씨 약혼자.
유진 .....(그대로 보고 있다)
민형 자요. (차 내밀면)
유진 찻잔 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민형 의아한 듯 갸웃 그러
고는 자리에 가서 앉는다.
민형 일 얘기부터 할까요? 어디 보자 (서류 뒤적인다)
유진 (의자에 앉으며 민형의 고개숙인 얼굴을 바라본다)
민형 (서류를 뒤적이며) 직원들이 그러던데 제 일하는 방식 때
문에 맘 상했다면서요? (농담하듯) 채린이 친구분인 줄
알았으면 좀 잘 보였을텐데.....
하면서 유진을 바라보는 민형. 유진 시선 아래로. 민형, 좀 이상하지
만 어쨋든-
민형 (다가오며) 전반적인 컨셉에 대한 얘기는 서로 확인된 것
같고.... 프리젠테이션 준비해왔죠? (시계보고) 회의 들
어가기 전에 최종 설계안 좀 볼까요?
유진, 떨리는 손으로 도면들과 서류첩을 내민다. 민형, 바로 옆에 서
서 서류들을 살펴본다.
서류들을 살피며 넘기는 민형의 얼굴을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
보는 유진. 민형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양 서류들과 도면들을 서
로 대조해가며 넘기고 있다.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
다. 유진은 여전히 민형의 얼굴을 보고 있다.
민형 (서류를 보며) 어때요? 멀쩡하게 생겼죠?
유진 .....?
민형 (여전히 서류를 보며) 눈은 두 개고, 코는 하나고, 입도
하나고..... (유진을 보고 웃으며) 원래 그렇게 사람 얼
굴 빤히 쳐다봐요?
유진, 얼굴이 벌개져서 황급히 시선을 내리깐다. 핸드백을 쥔 유진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민형, 유진의 손을 보다가 입을 꽉 다문 유진의
얼굴로 이동한다. 정말 이상하다.
민형 .... 괜찮아요? (혼잣말하듯) 내가 너무 무례했나....?
유진 (눈빛이 흔들리며 어쩔 줄을 모른다)
민형 .... (그제서야 조금 놀란다) 정유진씨.....?
투두둑 떨어지는 눈물. 민형! 놀란 표정으로 보는
민형 이봐요.. 저기.. (손 내미는데)
유진 (벌떡 일어나며) 죄, 죄송합니다.
유진 뛰어 나가는 표정. 민형 정유진씨! 일어나서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본다.
마르시안 앞 거리 (오후)
마르시안 건물을 뛰쳐나온 유진. 유진 입막고 믿어지지 않는 얼굴로.
그렇게.
폴라리스 사무실 (저녁)
시계 보고 있는 정아. 초조하다.
정아 얘가 왜 이렇게 늦는거야?
이때 문이 열리면서 승룡이 들어선다.
정아 어이, 승룡! 잘 하고 왔어....?
승룡 뭐.... 이번 주면 얼추 끝날 것 같아요.
정아 그래? 그럼 빨리 마무리하고 스키장에 다 같이 붙으면 되
겠네.
승룡 근데 유진인?
정아 유진이 마르시안에 들어간진 한참 됐는데 아직이다. 나
오늘 일찍 들어가서 우리 해피 한테 주인의 도리를 좀 해
줘야 할텐데.
승룡 해피한테 주인의 도리 그만하고 후배한테 선배의 도리로
소주 한잔 사주는건 어때요?
정아 진짜야 심각해. 해피 요즘에 짖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우
울증이란 말야.
(시계 다시 보며) 유진이 진짜 늦네?
승룡 마르시안 가서 그 이사 보고 그냥 쭈욱 눌러 앉은거 아닐
까? 생긴거 장난 아니던데?
정아 생긴거? 생긴거 어디서 봤어? 진짜 잘생겼냐?
승룡 어유 보기 흉합니다 흉해요.(잡지 내밀며) 그 사람 실력
헛소문이 아니던데요.....미국에서 학위 따고 프랑스에서
활동 좀 했구 미국에 있는 휘슬러 리조트도 설계 했고 토
니 가르니에 상 탄것도 다 사실이랍니다.
정아 (입 벌리고 본다) 야아, 중늙은인줄 알았는데 솜털이 뽀
송뽀송하구나.....
승룡(소리) 하여간.... 여자들은..... 누가 얼굴 보랬나....?
정아 나서부터 쭉 외국에서만 살았다네.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
래.
음 (끄덕 끄덕) 여기다 목소리만 좋으면 퍼펙트겠다.
승룡 목소리?
정아 난 남자 목소리에 약하거든.
민형 아직 안들어 왔나요? 정유진씨 저희 사무실에서 나간지
한참 됐는데..들어오는데로 전화 달라고 좀 해주세요.
김차장, 먹을 것을 사들고 들어온다. 민형, 전화를 끊는다.
김차장 (퉁명) 이민형 이사님, 식사 대령했습니다.
민형 고마워요, 선배.
김차장 부려먹을 때는 김차장이고 아쉬울 땐 선배야?
민형 (넉살좋게 웃으며) 왜 그러십니까아!
김차장 (부시럭 꺼내다가... 턱으로 전화 가리키며) 누구,
채린씨?
민형 아닙니다.
김차장 어째든 여잔 여자지?
민형 (피식 웃으며)
김차장 하긴 모든 여자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주는 게 바람둥이의
의무라더라.
민형 제가 무슨 바람둥이라고.... 전 늘 한 여자만 사랑했습니
다.
김차장 (아니꼽다는 듯) 그 한 여자가 맨날 바뀌어서 그렇지.
민형 (웃으며) 뭐가 불만인데요?
김차장 불만은 무슨..... 부러워서 그런다. 왜?
민형 (웃고 만다)
김차장 (째려보고) 장어덮밥, 불고기덮밥 둘 중에 하나 골라.
민형 장어덮밥, 주십쇼.
김차장 (비아냥) 왜? 정력에 좋을 것 같아서? 옛다, 힘쓸 일 많
은 너나 먹어라.
민형, 웃으며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민형, 먹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
에 잠긴 얼굴.
민형 정유진.
김차장 어 그래 오늘 폴라리스 정유진씨 왔다 갔지?
민형 폴라리스하고 프레젠테이션 날짜 다시 잡아 주세요.
김차장 ? 오늘 계약 안했어? 왜?
민형 글쎄요... 내가 너무 슬프게 생겼나 봐요.
김차장 뭐?
민형 선배 여자가..... 얼굴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이유는 뭡니까?
김차장 ???
거리 (저녁)
종점인 듯 사람들 다 내리는데 유진만 멍하니 앉아 있다.
기사 다시 타면서 이상한 듯 유진을 바라보는 표정.
차 출발하고.
유진 버스 안에서 흔들리며 그렇게 가는 모습.
준상과 민형의 유진아 하던 같은 어조 같은 표정의 모습이 떠오른다.
준상 유진아...
민형 유진아... (어감이 좋은데요..)
유진 확 돌아본다. 표정 일그러지는 유진. 유진 벌떡 일어난다.
유진 여기..내릴게요 내려요. 세워 주세요. (한다)
오채린 부띠끄 2층 채린의 공간 (밤)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단장된 내부공간.
개장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채린이 점원과 함께 옷을 고르고 있다.
채린 디스플레이할 것들만 빼고 나머지는 따로 정리해둬. (옷
하나를 들고 보며 갸웃) 이걸 걸어... 말어?
마네킹에 걸기 전에 자신이 한번 걸쳐보는 채린. 거울을 보고 맵시를
훑어본다.
점원 (아부하듯) 아우, 근사하다.... 선생님은 차라리 모델을
하지 그러셨어요?
채린 (으쓱) 그런 얘긴 좀 들었지.
점원 어머? 근데 왜 안하셨어요? 하면 좋았을텐데.....
채린 (오만하게) 글쎄..... 옷을 입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만드는 건 그렇지 않잖아? (다른 점원을 간섭
하며) 아, 그건 2층에다 두면 돼.
시간경과.
유진은 의자에 앉아 있고 채린이 커피를 타고 있다. 초조하고 지친 기
색의 유진.
채린 상혁이는 잘 있어?
유진 .....응
채린 (웃으며) 벌써 결혼날짜 잡은 건 아니겠지? 웨딩드레스
만들려면 시간 꽤 걸리니까 날 잡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줘야해.
유진 ......그래.....(하고는) 채린아! 나 말야.
채린 알아. (커피 놓아준다) 너..... 민형씨 때문에 온거지?
유진 (놀라 본다)
채린 니가 나 찾아올 줄 알고 있었어. (자리에 앉는) 그래 찾
아오는게 당연하지.
유진 .........!
채린 사실.... 저번에 너희들한테 민형씨 인사시키고 나서 후
회 많이 했어. 괜히 옛날 기억 끄집어내는 거 아닌가 싶
어서.... (괜히 착한 척 하며 유진의 눈치를 흘낏 본다)
정말 많이 닮았지?
유진 (멍하게 보다가) ........그 사람..... 이민형씨.......
어떻게 만난 거니?
채린 (본다)
유진 ......어디서 만난 거야? 그 사람 정말 미국에서 자란 거
맞데? 준상이 아닌거 확실해? (간절하게) 채린아... 나한
테 얘기 좀 해줘. 나 알고 싶어. 아니, 난 알아야돼.
채린 (차갑게 말을 끊으며) 니가 왜? 무슨 권리로? ...... 니
가 예전에 준상일 좋아해서? (또박또박) 그래서 준상일
닮은 민형씨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해명이라도 해야된단
말이니....?
유진 (멍한 눈으로 채린을 바라본다) .......
채린 (다시 부드러운 어조) ...내 말이 너무 심했니? 혹시 서
운해도 이해해.
유진 .......
채린 그 사람, 준상이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야. 너도 알다시
피 준상이는 죽었잖아? .......그리고 민형씨도 준상이에
대한 거 전혀 몰라. 자길 좋아하는 이유가 죽은 사람을
닮아서라면 얼마나 비참하겠니? 안그래?
채린, 말을 끝내고 유진을 보면 유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
다.
채린 (놀란다) 유진아....? 너, 괜찮아?
유진,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눈물을 손으로 거칠게 쓸어내리며 웃는
다.
유진 응... 괜찮아... (한템포 쉬고) 그래. 니 말이 맞아...
준상이... 죽었지. 죽은 거 아는데..... 나도 아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유진, 황
급히 일어난다) 미안해... 채린아. 갈게.
유진, 계단을 탕탕 뛰어내려간다.
유진네 집 앞 (밤)
유진, 터덜터덜 걸어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주차된 차에서 상향
등이 눈부시게 켜진다.
깜빡거리며 유진을 비추는 헤드라이트. 유진, 실눈을 뜨고 보는데 상
혁이 차에서 내린다.
유진 상혁아..... (울 듯 말듯한 얼굴로 미소 짓는다)
상혁 유진아?
까페 (밤)
유진과 상혁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상혁은 우울해보이는 유진이
맘에 걸리는 표정.
유진 집에 들어가 있지 뭐하러 밖에서 기다렸어? 진숙이 있는
데....
상혁 (웃으며) 이래야 너랑 단 둘이 있을 수 있지. (유진의 머
리를 만져주며 걱정스럽게) 무슨 일 있었어? 너 표정이
안좋다.
유진 아무것도 아니야.
상혁 일 때문이니? .... 오늘 프레젠테이션 한다는 거 잘 안됐
어?
유진 ! (표정)
상혁 잘 안됐구나?
유진 .....
상혁 그 새로 왔다는 이사가 이번에 고쳐간 것도 마음에 안든
데?
유진 ......
상혁 거참 그 사람 정말 속썩이네....대체 어떤 사람인데 우리
유진일 이렇게 속상하게 하니?
유진 ...
상혁 정말 이상한 사람 아냐?
유진 응. 이상해. (혼잣말처럼) .......정말 이상해.
상혁 (유진을 본다. 자리 옮겨서 옆에 앉는)
유진 (가만히 앉아서)
상혁 괜찮아. 일 잘 안되면 어때. 내가 있는데 (자기 어깨에
유진을 기대게 한다) 내가 있잖아. 정유진의 영원한 아
군.
유진 상혁아.. 오늘 나... 그 이사 말야...
상혁 (모르고 다독이는) 그래 그 이사 정말 이상하다. 속상해
하지마. 너 속상하면 나도 속상해. 너 요즘 일 말고도
속상한 거 많은데 ....
유진 !
상혁 나.. 솔직히 그 날 채린이 하고... 그 사람 ... 준상이
닮은 그 사람 본 이후에...
유진 (표정)
상혁 많이 괴로웠어. 참 많이 괴롭더라. 사실은 니가 얼마나
힘들지 맘 아플지 걱정해야 하는데 나 정말 이기적이야.
나 걱정되는건 혹시나 니가 흔들릴까봐...흔들리면 어쩌
나. 그렇게 준상이랑 닮은 사람을 보고 너 맘 변하면 어
쩌나 그런거 였어. 나 나쁘지?
유진 아냐.. 아니야.. (글썽이는)
상혁 변하지.. 말아줘... 흔들리지 말아줘.... 내가 널 지킬수
있게 해줘...그래 줄꺼지?
유진 (끄덕 끄덕) 응..응.....
김차장, 소파에 앉는다. 민형은 책상을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문득 벽
에 걸어놓은 퍼즐에 눈길이 간다. 비어있던 한 조각이 채워져있다. 새
롭게 끼워진 퍼즐 조각을 빼내 만져본다.
민형 (혼잣말) 어? 신기하네? 누가 끼워놨지?
김차장 (퍼즐을 흘깃 보며) 야, 너 정말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여자들이 많냐?
민형 (영문을 몰라서) 네?
김차장 나는 니가 뭔 생각하면서 그거 맞추는지 몰랐거든? 근데
알겠어. 한 조각씩 맞출 때마다 옛날 여자 한 명씩 떠올
리는 거 맞지? 응? 안그래?
민형 (웃으며) 도대체 무슨 소리에요?
김차장 (소파에 느긋이 기대 앉으며) 그 폴라리스에 정유진씨 있
잖아. 내가 그런 거 맞추고 있는 인간들 보면 한심해 죽
겠다고 했더니 정유진씨가 그러더라? 한조각한조각 기억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민형을 보며)
맞어?
민형, 픽 웃는다. 자신의 손바닥 안에 든 마지막 퍼즐 조각을 곰곰히
쳐다보다가 원래 자리에 꾹 눌러끼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생각
하는 민형. 진짜 재밌는 여잔데? 하는데 문소리가 난다. 돌아보는 민
형.
비서 폴라리스에서 오셨는데요?
민형 (약간 긴장된 얼굴인데)
들어서는 정아. 민형 의아한 표정이고 김차장 ?
김차장 어 다른 사람이네?
시간경과
정아가 계약서에 도장을 꾹 눌러 찍는다. 민형은 앞에 앉아 있다.
정아 (도장을 닦으며) 그럼 언제부터 일 시작하는 거죠?
민형 ... 폴라리스 일정은 어떻습니까?
정아 음...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일이 있긴 한데.... 곧 끝나니
까 상관없을 거에요. (찻잔을 집으며) 근데.....이사님은
미국에서 살았다면서 우리말을 잘 하시네요? 느끼한 억양
도 없고..... 교포라는 느낌이 전혀 안들어요.
민형 그래요? (잔을 들고 웃으며) 다 여자들 덕분이죠.
정아 (바라본다) 네?
민형 (웃으며) 여자들은 끊임없이 이것저것 물어봐줘야 사랑받
고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말만 늘더군요.
정아 (아니꼽다) 여자들 심리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아시는 것처
럼 들리네요?
민형 (느긋하게) 잘 몰라요. 지금도 이정아씨가 절 웃기는 남
자라고 생각하는지 폼잡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헤깔리고
있어요.
민형, 천천히 차를 마신다. 정아, '요것봐라....'하는 눈으로 민형을
보더니 차를 마신다.
정아 근데 (하고 민형에게 서류 밀며) 도장 안 찍으실건가요?
민형 ... 정유진씨는 왜 같이 안오셨어요?
김차장 그러게 정유진씨가 담당이잖아요.
정아 아아... 유진이요? (얼버무리듯)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요. (농담하듯) 그리고 원래 도장찍는 일처럼 어렵고 힘
든 일은 제 담당이에요.
민형 스키장 관계자한테 프레젠테이션이 남았는데 그건 정유진
씨가 하실건가요?
정아 아아~ 그것도 제가 하게 됐습니다. 정유진씨는 다른 프로
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스키장 일은 디자인까지
만 맡고 이번일은 전적으로 저하고 저희 사무실에 다른
직원이.
민형 (말 끊는) 계약서에 싸인하기 전에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
다.
7-1 폴라리스 (오후)
유진 열심히 일을 이것저것 지시하고 있는 모습. 정아가 들어
선다
유진 돌아보는.
유진 잘됐어?
정아 (짐짓 웃어 보이는)
유진 계약 했어?
정아 (계약서 흔들어 보이는)
식당 (오후)
고기를 먹는 정아와 유진.
정아 많이 먹어. 사람이 배가 부르면 화도 안난 다더라.
유진 무슨 소리야?
정아 저기 마르시안 스키장 일 말야.. 그게...
유진 계약 잘하고 왔다며?
정아 잘하긴 했지.. 근데 조건을 하나 달더라구.
유진 조건?
정아 디자인이고 힘든 일은 니가 다 했는데.... 도장찍고 악수
하는 건 내가 했으니.... 그 사람들이 날 뭘로 보겠냐?
유진 (웃으며) 계약은 언니가 나보다 꼼꼼하게 잘하잖아. (그
러다가) 언니 혹시 그 조건이란게...
정아 그래. 이민형 이사 가라사대 니가 진행하는거 아니면 계
약 못하겠다 던데?
유진 (표정)
정아 당연하지. 니가 폴라리스 대푠데 널 안믿으면 그쪽에서
누굴 믿겠니? 프레젠테이션도 니가 하는걸로 그렇게...
됐다... (밥 먹는 척)
유진 언니....그럼 어떡해...나 그일 ...못한다니까...언니 나
못해...
정아 몰라 몰라.. 난 잘생긴 놈이 앞에서 뭐라 뭐라 떠들면 정
신이 아득해진단 말야.
유진 (난감한 표정)
마르시안 외경 (저녁)
회의실 (저녁)
유진이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하고 있다. 프로젝터로 뭔가를 보
여주며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어조로 흐트러짐 없이 잘도 한다. 사람들
은 경청하고 민형은 흥미롭게 유진을 바라본다.
유진 지금까지 스키장 구지구에 대한 전반적인 리노베이션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물론 구지구와 신지구에 확연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럴땐 어느 한쪽으로 편향조정하기
보다는 각 지구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에 디자인 포인트
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의 미덕을 살리자는 게 저희 설
계안의 핵심입니다.
유진, 다 끝났다는 듯 숨을 몰아쉬고 사람들은 유진의 스피치가 맘에
들었던지 긍정적이다.
민형 수고했어요. 질문 없으면 이쯤에서 정리하죠.
사람들 웅성거리면서 일어나고 유진도 짐을 챙겨 나가려고 하는데
민형 정유진씨는 저랑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유진은 멈칫한다.
민형의 사무실 (밤)
서류를 넘겨보는 민형.
유진 (딱딱하게) 전체적인 계획안만 동의하신다면 세부적인 것
들은 최대한 조율할 수 있습니다.
민형 (고개를 들어 유진을 유심히 본다) 정유진씨, 항상 이런
식으로 일했나요?
유진 .......(마음에 안든건가?)
민형 (웃으며) 아아... 나빴다는 얘기가 아니라 밤새 잠안자고
외워온 사람같아서요. 원래 그런 스타일입니까?
유진 ......(딱딱하게)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
하세요.
민형 (가만히 보다가 웃는다) .....제가 정유진씨를 불편하게
합니까?
유진 (민형을 본다. 수긍도 부인도 아닌) ......
민형 일 할 때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편한 게 제일 중요하죠.
불편한 사람하고 어떻게.... 일할 수 있겠어요?
유진 일은 마음에 들어야 하지만 고객까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민형 (웃으며) 일과 사람은 별개라는 말인가요?
유진 마음 맞는 사람하고만 일했다면 오래 전에 이 일 그만뒀
을 거에요.
민형 그러니까.... 일은 마음에 드는데 나는 마음에 안든단 말
이군요?
유진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셨다면 미안합니다.
민형 난 사람도 맘에 들어야 하는데.
유진 그렇다면....이런제가 불편하시다면 계약 취소하셔도 할
말은 없어요.
민형 (표정) 근데 어쩌죠? 일하고 싶어요 난.
유진 (보는)
민형 난 유진씨 맘에 드니까.
유진 !
민형 (시계를 보더니) 저녁 먹었습니까? 같이 식사나 하죠.
유진 (가만히 쳐다보다가.... 단호하게) 아뇨. 생각없습니다.
민형, 웃고 만다.
민형 정유진씨.... 사람들이 왜 처음 만나면 밥먹고 술마시는
지 알아요?
유진 .....
민형 먹고 마시는 것처럼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게 없기 때문이
에요. (일어서며)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요. 나,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유진을 보며) 유진씨랑 같이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빼낼 거에요. 그럴려면 서로 편해지는게
좋다고 보는데... 이래도 거절할 겁니까?
유진 ... 죄송합니다.
유진, 황급히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민형, 유진이 정말
이상하다.
마르시안 건물 로비 (밤)
어깨를 꽉 웅크리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유진, 뭔가 후회스러운 표
정이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유진의 어깨를 친다. 유진, 놀라 돌아보
면 상혁이다.
유진 (당황하며) 여기 왠일이야?
상혁 아까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정아누나가 너 오늘 프레젠테
이션 한다고 하길래 응원차 왔지. 피곤해보이네?
유진 아니야. 괜찮아.
상혁 (유진의 눈치를 살피며) 일은 어떻게.... 잘 됐어? 계약
은 잘됐다던데.
유진 .....응
상혁 (끄덕 끄덕 어깨 동무하며) 가자 어디가서 맛있는거 먹
자.
김차장(소리) 정유진씨, 지금 가요?
유진 (돌아보고 인사하며) 아? 예.....
김차장 (손을 내밀며) 그동안 고생 많았지만 앞으로가 진짜 고생
입니다. 잘 좀 해봅시다.
유진 (손을 잡으며)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차장, 목례를 꾸벅하고 간다. 김차장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는 상혁.
상혁 저 사람이야?
유진 (상혁 보며) ......?
상혁 저 사람이.... 그 이상하다는 이사?
유진 (얼버무리듯 수긍) 어? 어...... 응.
상혁 (짐짓 오버) 내가 봐도 좀 성질있게 생겼는데? (유진보
며) 가서 한마디 해주고 올까? 너 좀 괴롭히지 말라고?
유진 (웃고 만다)
상혁 하라면 진짜 할수 있어. 한다?
상혁 따라 가려면 유진 말리고. 상혁과 유진 마주 웃는 표정.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그 모습 보는 민형의 표정.
상혁과 유진의 다정한 모습에 피식 웃는다. 약속이 있었군 하는 표정
으로. 상혁과 유진 가자 민형 걸어 나가는.
오채린 부띠끄 전경 (밤)
화려하게 네온을 밝힌 전경의 모습. 오픈 축하 화환들.
부띠끄 안 (밤)
옷을 둘러보는 여자들 사이 민형이 어슬렁거리며 옷을 뒤적거리고 있
다. 점원이 민형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말을 건다.
민형 (들으라는 듯 크게) 가슴은 절벽인데 다리는 짧고 허리는
(한아름 재어보이며) 이만한데.... (점원에게 속삭이듯)
성격이 포악해요. 그런 여자도 입을만한 옷이 있을까요?
채린(소리) (쌀쌀맞게) 미안하지만 저희 샵에 그런 분에게 맞는 옷은
없는 것 같네요.
점원 (눈 동글 ???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데)
채린, 민형에게 척척척 다가가더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고
목을 끌어안는다. 채린의 허리를 안은 민형,
민형 축하해.
채린 고마워. 기다렸어.
호텔 바 (밤)
민형과 채린이 앉아 있다. 채린은 귀엽게 애교부리듯 웃으며 뭐라고
종알거린다.
채린 정말 힘들어 죽겠어. 의상 디자인하는 시간보다 매장 관
리하는데 더 매달려 있다니까.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오픈 안하는 건데 말야.....
민형 (농담하듯) 그게 뭐가 힘들어? 여자들 옷 골라주고 입혀
주고.... 나같으면 신나겠던데?
채린 (흘겨보며) 그럼 나대신 민형씨가 하면 되겠네.
민형 나야 좋지.
채린, 토라진 척 술을 마시고 민형은 그런 채린을 귀엽다는 듯 본다.
민형 아참, 이번에 같이 일하게 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한 명
있는데..... 어떤 사람일거 같애?
채린 (비아냥거리듯) .... 여잔가보네? 절세미녀라도 돼?
민형 (채린의 반응이 의외로 재미있다) 어? 상당히 긴장하는데
?
채린 (당황) 내가 언제?
민형 (더 재밌다) 하긴 니가 긴장할만한 여자긴 하지........
(유진을 생각하듯) 실력있어. 거기다 묘한 매력도 있고..
... 어떤 여잔지 말해줄까?
채린 (물어보고 싶은걸 참고) 내가 왜 그런 얘길 들어야해? 관
심 없어.
민형 (놀리듯) 누군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알았어. 그럼
나도 얘기할 필요없겠군.....
민형, 다시 한모금 술을 마신다. 채린, 그런 민형을 못마땅하게 바라
본다.
채린 (말돌리듯) 내가 궁금한 건 민형씨가 언제쯤이면 정신을
차릴까 하는 것 뿐이야.
민형 무슨 말이야?
채린 그렇잖아. 도대체 한국 온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호텔에서
사는 거야?
민형 얼마나 편한데? 청소도 다 해주고, 빨래할 필요도 없고..
..
채린 (어처구니없다) 그건 집이 있어도 다 해결되는 문제야.
민형 .... 내가 살 집은 내가 지을거야.
채린 얼마나 대단한 집을 지을려구?
민형 (웃더니) 너, 세상에서 제일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이 뭘
것 같아?
채린 .....
민형 사랑하는 사람 마음에 짓는 집이야.
채린 (흐뭇- 미소를 감추며) 잘됐네.... 지금 당장 만들면 되
잖아.
민형 (씩 웃으며) 아직은 아냐.
채린 (새침해 진다)
민형 자.. 그건 그렇고 아직도 안궁금해? 나랑 일하는 사람 누
군지?
채린 필요 없어. (확 옷 들고 일어난다) 내일도 패션쇼 준비
때문에 일찍 나가봐 야해 갈게.
민형 야아~ 화났니? 오채린 화났어?
채린 화 안났어! (나서다가 돌아보며) 오늘 나 약올린 벌로 오
늘밤에 전화하지마. (바이바이 하고 가는 모습)
민형 (귀여운 듯 바라본다)
유진네 집 거실 (밤)
진숙, 수저를 놓다가 얼굴을 들어서 유진을 본다. 눈이 동그레진 진
숙.
진숙 정말이야? 우와! 축하해! 그럼 나도 스키장 갈 수 있는
거네!
유진 (카레를 접시에 덜며) 그래.... 와. 같이 놀아주지는 못
하겠지만. 그나 저나 너큰일이다 나 가면 너혼자 밥도
못챙겨 먹을거 아냐.
진숙 지금 그게 문제니?.. 유진아, 정말 잘됐다.... 스키장 가
기 전에 한턱 내는거 잊지마.
유진 (웃으며) 알았어.
진숙 스키장 간다니까 너무 좋다.... (혼자 꿈에 부풀어 걱정)
전에 산 스키복은 작아서 안맞는데 어떡하지...? 새로 살
까? (숟가락을 꾹 움켜쥐고 단호하게) 아니야. 백수가 돈
을 아껴야지. 다이어트! 하고 만다, 다이어트!
유진 그럼 이거 도루 가져가?
진수 어! (얼결에 움켜 잡는 그러다가 잠시후 비장하게) 오늘
까지만 먹고 내일부턴 정말 다이어트다.
유진, 픽 웃고... 진숙은 카레를 맛있게 먹는다.
유진도 진숙 카레 먹는 것 보는데 생각이 많다.
폴라리스 전경 (오전)
폴라리스/동물병원 (오전)
유진이 코트를 벗어 걸고 컴퓨터를 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유진 네, 폴라리습니다.
정아 나야, 정아. (초조한 목소리) 나, 오늘 김차장이랑 스키
장답사 가기로 했는데 못갈 것 같아. 니가 대신 가라.
유진 왜? 무슨 일 생겼어?
정아 설명은 나중에 하고..... 10시까지 마르시안 앞에서 만나
기로 했거든?
유진 (황당한 듯) 언니....
정아 (개의치 않고) 거기서 김차장 차 타고 가기로 했으니까
지금 빨리 출발해. 알았지?
유진 언니!
하는데 전화가 뚝 끊긴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
동물병원 (오전)
정아, 구석에서 전화를 끊고 돌아서면 용국이 정아의 강아지를 돌보고
있다. 무기력해보이는 강아지.
용국 (강아지를 만지며) 이 친구 이름이 뭐라고 했습니까?
정아 해피에요. 해피.
용국 (정아를 보고) 얘, 해피 아니에요. 언해피에요, 언해피.
불행하단 말입니다.
정아 (뭔 말인가 하는 얼굴) 네?
용국 지금 우울증에 걸렸어요. (정아를 보지도 않고) 보아하니
혼자 사시는 분 같고.... 집에도 잘 안들어가시죠?
정아 뭐, 뭐라구요?
용국 (거침없다) 역마살에 공방살까지 있는 걸 보니 밖으로 도
는 분이심에 틀림없고, (흘낏 본다) 당연히 남자도 아직
없겠고..... 자기 인생이 고독하다고 동물에게까지 고독
을 강요하는 건 인간의 파렴치한 이기심인즉슨,
정아 (못참겠다) 여보세요!!!
용국 (끄덕없다) 여보세요는 전화할 때 하는 말이고요, 인간에
게 행복 추구권이 있다면 애완견에게도 행복해야할 권리
가 있어요. 얘가 강아지가 아니라 애였다면 손님은 아동
방임죄로 신고되고도 남았어요.
정아 (못참는다) 아니,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용국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리 내요. 병원이 여기밖에 없는 줄 알아?
용국 (넉살좋게) 오호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벌써 제
팔목을 잡았습니까? (정아, 황급히 손을 놓는다) 알았습
니다. 성심을 다해서 치료해드리죠.
용국, 사람좋은 웃음을 씩 짓는다. 정아, 어이가 없는지 허허거린다.
거리 (오전)
시계를 보며 어딘가로 달려가는 유진.
마르시안 앞 (오전)
유진, 숨을 헐떡이며 시계를 본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상태. 유
진, 주위를 둘러보는데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 민형
이 웃는 얼굴로 차에서 내린다.
유진 (굳어서) 김차장님이.... 가신다고....
민형 (다가서며) 저도 정유진씨가 올 줄은 몰랐는데요? 가서
처리할 일도 있고 해서 제가 간다고 했어요. (차문을 열
어주며) 타요.
유진 (망설이는데)
민형 어서요.
고속도로를 달리는 민형의 차. 민형, 운전하다가 유진을 보면 유진은
창밖을 보며 멍하니 있다. 유진은 손가락에 낀 반지를 습관적으로 만
지작거리면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반지를 흘낏 보는 민형.
민형 예쁘네요.
유진 (무슨 소린지 몰라서 민형을 본다)
민형 (웃으며) 반지 말이에요. 약혼반진가보죠? 근데.... 많이
반짝거리는 게 유진씨 느낌이랑 좀 다르네요.
유진 .....
민형 (미러로 유진을 흘낏 보며) 사랑에 빠진 여자들 얼굴에서
는 독특한 광채같은게 나던데.... 유진씨는 너무 우울한
것 같아요? 연애를 너무 오래해서 그런 건가?
유진 (차갑게) 이사님은 관심사가 다양하시네요.
민형 (낮게 웃는다) .....기분 나빴나요?
유진 .....유쾌하진 않아요.
민형 (웃으며) 유진씨, A형이죠? 솔직하고, 자기 감정 잘 못숨
기고, 거짓말도 못하는데.....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가슴에 묻어두고 자기 자신한테만 하고... 안그래요?
유진 그만하시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다 아
는 것처럼 말하는 거..... 듣기 거북해요.
민형 (빙그레 웃는 얼굴) 내가 제대로 본 거구나. 잘못 짚었다
면 거북할 이유가 없을 텐데....
유진 (그만하라는 듯) 이사님!
민형 이민형이에요. 반드시 이사님이라고 불러야만 직성이 풀
린다... 뭐 그런게 아니라면 이름 불러줘요. 나도 유진씨
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채린 (차를 마시며) 차나 한잔 하려고 들렸어요. 핸드폰도 안
되서 회사에 있는 줄 알았거든요.
김차장 놓고 갔나보네. (웃으며) 더 이뻐진 것 같아요? 민형이가
잘 하나 보죠?
채린 (쿨하게 웃는다) 참, 스키장엔 왜 갔나요? 나한텐 그런
말 없었는데....
김차장 답사차 갔어요. (약올리듯) 우리 협력업체 사람 중에 대
단한 미모의 여성이 있는데.... 둘이 같이 갔어요.
채린 (좀 걸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아아.... 그래요?
김차장 (약올리듯) 좀 걱정되지 않아요? 단 둘이 스키장으로 간
건데....?
채린 (웃는다) 그런 거 걱정 할 단계는 지났어요. 잘 알면서..
... (잔을 내려놓더니) 오늘 중으로 돌아온다고 했죠?
김차장 글쎄.... 채린씨를 생각한다면 오늘 돌아와야겠죠?
채린 (눈을 흘기며) 못됐어요, 김차장님. 장난치는 건 민형씨
한 명으로 충분해요.
김차장 (웃으며) 걱정마세요. 오늘 밤에 출발한다고 아까 연락왔
어요. (이때 전화가 울린다) 잠깐만요..... (책상 쪽으
로 다가간다) 네, 김혁수입니다.
채린, 김차장이 전화하는 동안 얼굴이 굳어진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
다는 표정.
채린 (돌아보며) 그 스키장이 어딨다 그랬죠?
김차장 (표정 전화기 막고 보는)
스키장 입구 (오후)
민형의 차가 스키장 안으로 들어간다.
주차장 (오후)
민형과 유진이 차에서 내리면 저 앞에서 스키장 책임자들이 다가온다.
민형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책임자 (악수하며) 별 말씀을..... 이거 이사님이 직접 오실 줄
은 몰랐는데요.
민형 (웃고) 유진씨, 이리 와요. (소개한다) 리노베이션 담당
할 폴라리스 정유진씹니다.
유진 잘 부탁합니다. 정유진이에요.
책임자 (허허 웃으며) 아이구, 반갑습니다. 추운데 들어가서 차
라도 한 잔 하시죠?
민형 (유진의 의향을 묻듯 바라본다)
유진 전 먼저 시작할께요. (덜덜 떨며) 다 보려면 시간이 부족
할 것 같은데요?
민형 (책임자에게) 기존 설계도와 전기 배선도 다 갖고 오셨죠
?
책임자 네. (뒤를 보며) 최대리.....
유진, 멀찌감치 떨어져서 주위를 둘러본다. 유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사진기를 꺼낸다.
민형은 사람들과 도면을 보면서 스키장을 훑어보다가 유진을 본다.
유진은 손을 호호 불면서 카메라를 가지고 여기 저기 찍고 있다. 추워
하는 모습.
스키장 일각 (오후)
꽁꽁 언 유진. 그래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일한다.
잠시 동작을 멈추고 하얀 스키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에 옷
을 걸쳐준다.
유진, 놀라서 돌아보면 민형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민형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다.
민형 많이 춥죠?
유진 (건네려고) 괘,괜찮아요.
민형 (여며주며) 안괜찮아요. 입술이 파래졌어요.
유진 그래도,
민형 내가 자꾸 말시키는 거 싫죠? 그럼 나, 신경쓰이게 하지
마요.
유진, 말없이 천천히 옷을 걸친다. 민형, 웃어준다.
민형 잘 어울리네요. (돌아서며 장난기있게) 트렁크에 있던 거
라 냄새날지도 모르지만 참아요.
하더니 민형은 다시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유진, 옷을 만지다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여기저기 찍는 유진. 그러다가 문득 민형의 모습이 프레임에 잡힌다.
자신도 모르게 찰칵찰칵 계속 민형의 모습을 찍는 유진. 사람들과 웃
는 모습. 여기 저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 그러면서 담배를 꺼내
는 모습.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유진, 얼굴을 든다.
#인서트. 준상이가 학교 앞에서 담배 피는 모습이 겹친다.
다시 카메라를 들어서 민형의 모습을 잡는데 앵글 속 민형이 갑자기
얼굴을 돌려 유진을 바라본다. 유진, 황급히 카메라를 다른 쪽으로 돌
린다.
스키장 다른 장소/방송국 (오후)
유진이 카메라의 필름을 간다. 다 찍은 필름을 민형의 옷 주머니에 넣
고 다른 필름을 갈아끼운다. 다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유진 네, 정유진입니다.
상혁 (방송국 창가에 기대서서 전화하고 있다) 어디야?
유진 어? 어어... 여기 스키장. 조사할게 있어서.....
상혁 (의외하는 듯) 어? 간다는 말 없었잖아?
유진 ......그렇게 됐어.....
상혁 그래? 정아누나랑 같이 구나?
유진 (엉겹결에) 응? 어어... 그래.
상혁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용국이랑 술
이나 한 잔 해야겠다. (웃더니) 일 열심히 하고 올라와.
정아누나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유진 (괜히 미안하다) 그래.... 상혁아, 올라가면 전화할게.
그래.... 응.
민형 유진씨는 결혼하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요?
유진 ......그런 생각 안해 봤어요.
민형 이상한데요?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이런 집에서 살고 싶
다.... 현관은 어떻고 침실은 어떻고.... 이런 거 생각하
지 않나요?
유진 글쎄요.... 정말 사랑한다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민형 (유진을 본다) 그럼 뭐가 중요해요?
유진 (앞만 보며) 외형적인 집은 문제가 안된다고 봐요. 사랑
하는 사람에게는 서로의 마음이 제일 좋은 집이잖아요.
하더니 유진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민형, 걸음을 일순 멈추고 유
진의 뒷모습을 본다.자신이 한 말과 비슷한 유진의 말. 민형, 유진에
게 호감을 느낀다. 빙그시 웃고 따라간다.
몽타주 (오후)
-스키장 이곳저곳을 살피는 민형과 유진의 모습. 기계실, 낡은 객실,
금간 외벽 등...
-담당자에게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고....
-민형, 스키장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하면서 껄껄 웃기도 한다.
-민형, 유진에게 구조를 가리키며 진지하게 설명을 한다.
-유진, 민형과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돌리고
낡은 카페 (저녁)
민형과 유진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뒤죽박죽 먼지 투성이인 카페 실내
가 보인다.
민형 이거 너무 추운데......?
유진, 도면을 펼쳐서 실내를 확인하며 볼펜으로 뭔가를 체크하고 있고
민형은 페치카 안에 나무들을 집어넣는다.
유진 사진으로 볼 땐 몰랐는데 여긴 구조 변경까지 할 필요는
없겠어요. (체크하며) 골격은 살리고 마감재만 잘 처리하
면 괜찮겠는데요.
민형 이리 와서 앉아요. (라이터로 불을 지핀다) 금방 따뜻해
질 거에요.
유진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확인한다)
민형 너무 열심히 그러지 마요. 안그래도 충분히 감동받고 있
으니까....
유진 .....
민형 좀 앉아요. 안무너지니까.....
유진 (나무 위에 앉는다)
민형 유진씨.
유진 네?
민형 유진씬 너무 말을 아끼는 것 같아요. (담배불을 붙이며
농담조로) 나한테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은 여잔 처음이
라 좀 적응하기 힘드네요.
유진 할말 없어요.
민형 (웃으며) 아아... 농담이었는데 그렇게 자르니 좀 쑥쓰러
운데요?
유진 가만히 민형 언뜻 풀어진 유진의 운동화 끈이 눈에 들어
온다. 민형 유진 앞에 털썩 앉는. 유진 ? 민형 유진의 운동화
끈을 묶어 준다.
그전에 담에서 유진에게 신발을 신겨주던 준상의 모습이 겹쳐
지고. 유진 눈물이 글썽 거린다.
유진 (불쑥) 고등학교 어디서 나왔어요?
민형 ?
유진 어느 고등학교 나왔냐구요? 미국에서 다녔어요? 정말 미
국에서다녔어요?
민형 네. 미국에서 다녔어요.
유진 그럼 어렸을 때 한국에선 안살았어요? 춘천 알죠? 혹시
거기서 잠시 산 적 없나요? 고등학교때 잠시 한국에 살았
던적 정말 없어요?
민형 (낮게 웃으며) 하나씩 물어봐요. 유진씨 호기심이 무척
많네요?
유진 (바짝 다가서며 진지하게) ......안경 좀 벗어 보실래요?
네?
(안경 벗기려는)
민형 (좀 놀랬다) .....유진씨....?
유진 (글썽)
민형 ?
유진 미안합니다. ...
민형 무슨..일이예요? 유진씨 나 만날때마다 왜 이렇게 이상한
거죠?
원래 이상한 사람같진 않은데 ...
유진 (본다 알아줄거 같다) 내말... 믿어 줄수 있어요?
민형 ?
유진 사실은... 이민형씨...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린다.
민형 아아... 커피 갔다 준다고 했는데 왔나봐요.
유진 (표정)
민형 나가서 문여는데 채린이 와락 민형은 안는.
채린 잡았다~!
그러다가 유진을 돌아보는 채린. 채린의 얼굴이 변하고 유진
도 놀란다.
채린 유진아.....? 니가 왜......
(시간경과)
세 사람이 나무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채린 민형씨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 너라니.... 정말 뜻밖이다.
(감정을 감추며 민형에게)
민형 그때 토라져서 가지만 않았어도 얘기 하려고 그랬어.
채린 아아... 그렇구나. 어때, 유진이 일 잘해?
민형 (웃으며) 잘 하니까 같이 하는 거 아니겠어?
채린 (기분 상하지만) 별 일이네. 민형씨가 칭찬을 다하고...
유진아, 민형씨가 칭찬할 때는 조심해야해. 당근과 채
찍, 그거 아니겠어? (친한 척 유진의 팔짱을 끼며) 유
진아, 민형씨가 말 안들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손봐줄테
니까.
민형 (다정하게 채린의 머리를 퉁 튕기며) 너부터 손 좀 봐야
겠다!
유진, 어색하다.....
스키장 앞 (저녁)
유진과 함께 차를 향해 걸어가던 채린, 힐끗 유진을 본다.
채린 너.... 그거 민형씨 옷 아니니?
유진 (그제서야 옷을 본다) 정말.... 계속 입고 있었네....
유진, 서둘러 옷을 벗어 민형에게 건네준다.
건네주고 건네받는 두 사람을 차갑게 쳐다보는 채린.
채린 (민형을 향해 얼른 다정하게) 유진이는 내 차타고 가면
되니까 먼저 출발해. 가다가 휴게소에서 잠깐 볼까?
민형 (차에 타며) 좋을대로. 쉬고 싶을 때 전화해.
채린 (애교스럽게) 민형씨, 혼자 간다고 졸면 안돼.
민형 걱정마.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유진. 민형은 유진에게 목례
를 하고 먼저 출발한다. 채린, 유진을 향해 다가온다.
채린 타자. 춥다.....
채린의 차 안 (밤)
달리는 차안.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유진과 채린. 어색한 침묵.
채린 (입을 떼며) .....우리 민형씨, 친절하지?
유진 .......그런 것 같더라.
채린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감정표현이 자연스러워. 그냥
별 생각없이 친절하게 해주는 건데.... 가끔 여자들이 착
각해서 트러블이 생긴 적도 많아. (명랑한 척) 어쨌든 니
가 민형씨 옆에 있다니까 안심이다.
유진 .....
채린 내 대신 니가 민형씨 잘 지켜줘야해? 알았지?
유진, 가만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동물병원 (밤)
용국은 정리하고 있고 상혁은 다리 위에 정아의 강아지를 앉혀놓고 있
다.
용국 넌 유진이 없을 때만 이 몸을 찾아주는구나. 내 존재감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 이거지?
상혁 (웃으며) 또 왜 그래..... 내가 술 사면 되잖아....
용국 그건 당연한 거고.... (시계를 보며) 아니, 그나저나 이
여자가 정말..... 병원 문 닫아야하는데 왜 이렇게 안오
는거야? 이런 여자가 무슨 동물을 키운다고..... 내가 볼
땐 연애는 커녕 짝사랑도 못해본 여자임에 틀림없다. 사
랑을 받아봤어야 사랑을 줄줄도 알지.... 안그래?
상혁 온다고 했으니까 올테지.... 기다려봐.
하는데 이때 우당탕 문이 열리면서 정아가 헉헉거리며 들어온다. 상
혁, 놀란다.
정아 미,미안해요. 길이 너,너무 막혀서.....
상혁 (말을 막고) 누나!!!
정아 상혁아?
용국 (번갈아보며) 둘이 아는 사이야?
상혁 유진이는요?
정아 유진이? 스키장 답사 갔지.
상혁 누나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요?
정아 나랑? 아니야.
상혁, 표정이 굳는다.
일식집 앞 (밤)
유진, 채린, 민형이 서 있다.
민형 같이 저녁이나 먹어요. 추운 데서 고생했는데 배고프잖아
요 .
채린 (내색하지 않으며) 그래, 유진아. 같이 들어가자.
유진 아니야. 그냥 집에 갈래. (민형에게) 오늘 수고하셨습니
다.
유진,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간다. 민형, 유진을 보고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늦었다.
일식집 (밤)
채린과 민형이 초밥을 먹으며 얘기하고 있다. 민형에게 계속 먹기좋게
놔주는 채린.
민형 너도 좀 먹어.
채린 (웃으며) 아니. 민형씨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맛있어?
민형은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채린의 잔에 쨍 부딪친다. 한모금 마시
다가 갑자기 불쑥-
민형 .... 유진씨 고등학교땐 어땠어?
채린 (순간 싸늘한 눈빛) 왜?
민형 그냥.... 보면 볼수록 사람이 그늘이 있는 것 같아서.
채린 그늘? (하더니 푸하하 웃는다)
민형 (이상한 듯)
채린 아니야. 유진이 얼마나 터프한데? 학교다닐 때 내 치마도
잘 걷어올리고 무지 짓궂었었어.... (혼잣말처럼) 유진
이가 성격이 변했나....? (한참후 알겠다는 듯) 아아, 알
겠다.... 유진이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 여자애들 그
런 거 있지. 난 충분히 이해해. (하고 웃는다)
민형 .....무슨 말이야?
채린 괜찮은 남자 앞에만 가면 벙어리되고 얌전해지는 애들 있
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 민형씨가 잘나서 그런 거니
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
민형 나한테 관심 끌려고 그런다는 거야?
채린 (괜히) 그러면 또 어때? 그게 나뻐?
민형 (웃으며) 나쁠 거 없지. 고마운 일이지.
채린 뭐라구?
민형 (채린을 약올리려는 듯) 그렇잖아. 똑똑하고 괜찮은 여자
가 나한테 관심 가져주면 고마운 일이지. 일할 때 스릴
있겠는데....?
채린 (정색한 얼굴) 민형씨, 유진이 약혼한 애야.
민형 사랑찾아서 이혼도 하는데.... 그깐 약혼이 무슨 대수야?
안그래?
채린, 얼굴이 심각하다. 민형, 그런 채린이 귀엽고 재밌는지 힐끗 보
다가 픽 웃는다.
민형 (채린의 볼을 만지며) 바보야.... 장난도 못하니? 뭐가
그렇게 심각해?
채린, 삐진 듯 민형의 손을 탁 뿌리친다. 민형은 계속 재밌는지 웃는
다.채린, 민형의 얼굴을 보는데 뭔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술집 (밤)
정아와 상혁, 용국이 앉아있다.
정아 그나저나 이상하네. 유진이가 왜 나랑 갔다고 했을까?
용국 (귀 후비며) 여자들은 왜 그런 걸 궁금해하지? 바쁘고 정
신 없으면 그럴 수도 있는거지. 안그러냐 상혁아?
정아 아니, 좀 궁금해하면 안되요?
상혁 (마음에 걸리지만) 그... 새로왔다는 이사는 어때요? (떠
보듯) 유진이 말로는 많이 힘들게 했다는데.... 좀 이상
한 사람 같지 않았어요?
정아 아니. 첨엔 좀 까다롭게 굴었는데 만나보니까 시원하고
괜찮은 사람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청 잘 생겼어. 여
자들 꽤나 따르겠더라구.....그러구 보니 김차장이 안가
고 이민형 이사가 오늘 유진이랑 둘이 답사 갔다던데 상
혁아 그사람 총각이야 경계해라.
상혁 나도 봤는데... (김차장 떠올리고 어이없이 웃으며) 누
나, 그런 사람 좋아하는구나... 특이하네?
용국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쪽이 좋아하는 스
타일이겠지, 뭐. 취향 독특하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정아 (씨..... 무시하고) 근데 상혁아.... 유진이 요즘 좀 이
상하지 않니?
상혁 (뜨끔) ....왜요?
정아 (혀를 끌끌 차며) 너 정말 모르겠냐? 유진이 요즘 좀 우
울해.
상혁 .......
정아 니가 잘 모르는가 본데.... 여자들은 남자랑 달라. 약혼
이나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 갑자기 자기 존재가 다 닳아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진다고. (상혁을 보
며) 너희 마지막으로 같이 영화본 게 언제야?
상혁 (당황) ...예?
정아 최근에 둘이서 오붓하게 드라이브한 적 있어? 촛불켜놓고
분위기 잡으면서 눈 마주보고 이야기한 적 있어?
상혁 (그냥 멋적게 웃는다)
정아 (나무라듯) 넌 자상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무심해. 여
자들은 아닌 척 해도 다 그런 걸 좋아한다구. 유진이라
고 안그럴 것 같애? 걔가 겉으로는 천방지축 같아도 속
은 말랑말랑한 천상 여자라구.
용국 아니, 약혼이나 결혼하곤 상관 없는 분 같은데 어떻게 그
렇게 잘 알아요?
정아 (용국을 째려보며) 하, 이 양반 말꼬리마다 또박또박 토
시를 달고.... 그래요. 나 취향이 독특해서 시집도 못가
고 남의 연애사에 참견하는 낙으로 살아요. 됐어요?
용국 (넉살좋게 웃으며) 술은 마셨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죠.
시집 못가는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젭니다.
안그래요?
정아는 씩씩대고 용국은 껄껄 웃고... 상혁은 괜히 유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유진 집 앞 (밤)
유진이 문을 열고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술에 취해 벽에 기대 서
있던 상혁이 유진을 보고 얼른 다가온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살짝 비
틀거리는 상혁, 술에 취해 발음이 조금 엉긴다.
유진 (얼른 다가와 부축하며) 상혁아! 왠일로 이렇게 술을 마
셨어?
상혁 (웃으며) 괜찮아. 많이 안마셨어.
유진 밥은 먹고 마신 거야?
상혁 그러엄. 너는....? 잘 갔다왔어?
유진 응? 어.... 잘 갔다왔어.
상혁 난 정아 누나하고.
유진 어.... 서울와서 바로 헤어졌어. (시선 피하는)
상혁 (의아한) 유진아.. 나.. 좀 전에 우연히 정아 누나 만났
어.
유진 !
상혁 ...(들여다 보는) 왜 그래? 정유진 답지 않다.
유진 (당황하는) 난
상혁 마르시안 이사하고 둘이 갔었니? 혼자 갔다 그럼 내가 걱
정할까봐 그랬어? (웃는다)
유진 (어쩔줄 모르겠는)
상혁 내가 질투할까봐? (스스로 납득하고 웃고) 야 내가 이렇
게 신용이 떨어졌구나 정유진한테 거짓말까지 시키고.
유진 (표정)
상혁 ......유진아....!
유진 (보는)
상혁 (유진을 물끄러미 보고 웃으며) 우리..... 내일..... 데
이트할까?
유진 (상혁을 보면)
상혁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드라이브도 하고.....
유진 (표정)
상혁 (웃으며) 우리.... 내일 데이트 하는 거다? (새끼 손가락
을 내밀며) 자, 약속!
유진의 새끼 손가락을 억지로 걸고 열심히 흔드는 상혁.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고는 비틀비틀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부르지도 못하고 상혁
을 보는 유진,
극장 앞 (오후)
휴일의 극장가. 유진이 매표소 앞에 서서 상혁을 기다리고 있다.
면도를 말끔하게 한 상혁이 손을 흔들며 뛰어온다.
상혁 많이 기다렸어?
유진 (웃으며) 아니.
마주 보고 웃는 두 사람.
몽타주 (오후)
-극장표를 끊으려고 하는데 줄이 길다. 보면 전부 매진, 매진, 매진.
안되겠다는 얼굴로 난처하게 마주보는 두 사람.
-상혁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갔다. 음악도 듣고 과자도 먹고 상혁
이 나름대로 열심히 떠들며 우스개소리도 한다. 유진, 일부러 크게
웃어준다.
-국도변. 꼼짝 않고 서있는 자동차 행렬. 상혁, 답답한지 괜히 클랙션
을 눌러보지만.... 꼼짝않는 자동차물결. 유진, 안타까워하는 상혁을
가만히 바라본다. 뻥튀기에 구멍을 뚫고 가면을 만들어 쓴 채 장난을
하며 상혁을 위로하는 유진. 뭔가 계속 어긋나는 데이트.
재즈 바 (밤)
라이브 음악이 연주되는 커다란 홀. 테이블마다 촛불이 밝혀져 있다.
유진과 상혁이 마주 앉아있다.
상혁 (멋적게 웃으며) 평상시에 안하던 일을 하려니까 뜻대로
안되네....
유진 무슨 소리야. 재밌었는데..... (둘러보며) 여기 좋다. 언
제 와봤어?
상혁 (웃으며) 누가 가보라고 가르쳐주더라. 마음에 들어?
유진 (끄덕)
김차장(소리) 아! 여기 좋다니까 그러네! 얼른 들어와!
유진,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김차장이다. 얼른 목례를 하
는데
김차장 (반기며) 아니, 정유진씨 아니에요?
유진 안녕하세요?
김차장 이런데서 보니까 더 반갑네. 난 얘들이랑 야근하다가 목
좀 축이러 왔어요. (상혁에게 간단하게 목례하고) 그럼
잘 마셔요.
김차장, 사람들과 다른쪽 자리에 가서 앉는다.
상혁 그.... 마르시안 이사..... 맞지?
유진 (난처해하며) 어.....
상혁 (김차장 쪽을 흘낏 보며) 왜? 불편하니? 그럼 나갈까?
유진 (가만히 끄덕)
상혁 (웃으며) 그래... 계산하고 나갈게. 먼저 나가 있어.
유진, 짐을 들고 나가고 상혁은 김차장 자리를 지나서 카운터로 가는
데 사람들이 떠들면서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직원1(소리) (김차장을 향해) 김차장님, 노선을 분명히 하시라구요?
이사님하고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다고 너무 싸고 도는
거 아니에요?
직원2(소리) 그러게? 우리 다 이사님 때문에 이렇게 야근하는건데 김
차장님이 가서 일요일은 좀 쉬자고 얘기 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김차장(소리) 나는 차장이고 그놈은 이산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
어? 자, 자, 고생했으니까 얼른 마셔!
김차장이 이사 운운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는 상혁. 의아한 표정으로
김차장을 바라본다.
상혁의 차 (밤)
상혁, 아무말없이 표정이 굳어서 운전만 한다.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유진은 상혁의 안색을 살피지만 상혁은 앞만 바라보고
묵묵히 운전만 한다.
끼익, 어딘가에 차를 세우는 상혁.
상혁 ......너 요새 많이 힘들지?
유진 (상혁을 보면)
상혁 그래.... 나.... 니가 많이 힘든 건 알겠는데..... 왜 나
는 요즘 니가 자꾸 달라졌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유진 .... 상혁아...?
상혁 내가 예전에 알던 정유진과 다르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유진의 얼굴을 보며) 유진아.... 너..... 나한테 감추는
거 없니?
유진 (당황한다)
상혁 얘기해봐..... 너 나한테 정말 뭔가 숨기는 거.... 없어?
유진 (망설이다가..... 상혁의 얼굴을 보며) .....그런 거 없
어.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상혁 .......니가 혹시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다면 다 이유
가 있어서겠지...... 미안하다..... 내가 괜히 오늘 예민
한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가자!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상혁. 유진, 민형에 대해 말할 수 없는게 미안
하면서도 답답하다.
폴라리스 외경 (오전)
폴라리스 (오전)
유진,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정아가 들어온다.
정아 스키장은 잘 갔다왔어? 어떻든?
유진 지저분하지뭐...... 그래도 까페 쪽은 공간구조 크게 안
바꿔도 될 거 같아.
정아 그래? 그거 다행이네. (자리에 앉으려다 생각난 듯) 참,
나 그제 상혁이 봤다?
유진 (놀라 보며) 어디서요?
정아 우리 해피 때문에 동물 병원에 갔는데 마침 거기에 있더
라구. 그 병원하는애가 니들 친구라며?
유진 (표정이 굳는다) .....!
정아 근데 너 이민형씨에 대해서 도대체 뭐라고 말한 거야? 상
혁이는 우리가 무슨 대마왕한테 걸린 불쌍한 천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
유진의 얼굴색이 변한다. 순간 스쳐가는 어젯밤 상혁의 목소리. '너..
나한테 감추는 거 없니?'
정아(소리) 내가 보기에 대마왕은 이민형씨가 아니라 용국인가 뭔가
하는 걔다, 걔. 걔는 젊은 애가 왜 그러니? 얼굴은 허연
멀건하게 생겨서 역마살이 어쩌네 공방살이 어쩌네....
남자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유진의 얼굴 위로 정아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유진은 복잡한 표정.
방송국 스튜디오 (오후)
상혁이 방송을 준비하기 전에 생각에 잠겨 있다. 이때 직원이 문을 열
고 들어온다.
직원 김피디, 손님왔어.
상혁, 고개를 돌려보면 채린이 웃으며 서 있다.
복도 창가 (오후)
상혁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채린에게 건넨다.
상혁 여기까지 왠일이야?
채린 의상협찬 때문에 왔는데.... 니 생각나서 들렀어. 잘 지
냈니?
상혁 그럼. 가게 오픈했다며 잘돼?
채린 그럭저럭.
채린, 커피를 마시며 상혁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꺼낸다.
채린 (탐색하듯) 상혁아...... 유진이.... 요새 어때? .....
별 말 안해?
상혁 뭘?
채린 저기.... 민형씨에 대해서 말이야.
상혁 (표정 흐려진다) 아... 니가 데려왔던 사람?
채린 나는 괜히 마음에 걸려서.... 넌 괜찮아?
상혁 (아무렇지 않게) 그럼 괜찮지.
채린 (의아하게 본다.) 응?
상혁 니 애인인데 앞으로 언젠가 한 번은 또 보지 않겠어? 다
옛날 일인데.... 익숙해져야지.
채린 (모르는구나) ....!!
상혁 참 유진이 이번에 좋은 일 있어. 스키장 리노베이션 맡았
거든.
그때 상혁의 전화벨이 울린다.
유진과 민형이 일한다는 걸 상혁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감잡은 채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