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有, 존재]을 깬 법의 왕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샤 / 중생들의 욕망따라 가지가지 설법하네. 파유법왕 출현세간 수중생욕 종종설법 破有法王 出現世間 隨衆生欲 種種說法 <법화경. 제 4 약초유품. 4-1>
있음을 깼다는 것은 본래 존재는 없고 오직 (인)연에 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부처님께서 밝히셨다. |
원영 큰스님께서는 이번 시간[2.28, 수]에 공부한 내용 가운데..
부처님[법의 왕]께서 '있음[유]을 깼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기를 권하셨습니다.().
오늘 스님께서는 지난번에 공부한 제3 비유 품에 이어 제4 신해 품과 제5 약초유 품을 강설하셨습니다.
내용이 물론 중요하지만 형식을 먼저 말하면..
이번에는 유튜브와 함께 zoom을 활용하니.. 강설 중간에 온 라인으로 듣는 이들도 수 차례 윤독을 할 수 있어서 특히 좋았던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했으면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을 내 봅니다.()^^.
절에 오시어 수고하신 보살거사님께 또 감사드립니다.^^().
오늘 원영 큰스님의 <법화경> 강설을 들으면 느낀 것은..
아무리 <법화경>이라 하지만 너무 <법화경>만 칭송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ㅎㅎㅎ^
그런데..
<화엄경>을 좋아하는 화엄 행자는 팔만경 가운데 <화엄경>이 으뜸이라고 할 것이요,
<금강경>을 좋아하는 반야 행자는 <금강경>이 최고라 하는 것처럼,
<아함경>을 좋아하는 아함 행자는 <아함경>이 단연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법화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법화경>이 최고라 하지 않으면 그건 겸손이 지나쳐 자기비하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법화경>은 팔만 경 가운데 단연 최고요, 더 위가 없어 비할 바가 없는 최상승 법문입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만 <법화경> 강설을 들을 자격이 있지요.
물론 자격은 존재가 아니니..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니 보살승을 포함해 삼승을 비판하면서 모두 다 일승으로 모이리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비판당한 성문이나 연각 그리고 속 좁은(?^^) 대승이라 했지만.. 그것만 열심히 공부해도 성불할 수 있다고 문을 여는 것은
불교.. 곧 일불승을 강조하는 <법화경>이기에 가능한 게 아닌지요..
어느 절에 가면 형상이 다른 수많은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그 본체를 바라보면 오직 한 분 부처님만 있는 것처럼..
그래도 의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법화경>에서 소승이라 불린 상좌부가 <법화경>이 수집정리될 당시 커다란 부파만 해도 20여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근거로 4성제를 닦는 성문승과 12연기를 닦는 연각승이라 하여 2승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인지..
과연 20여 개 부파는 4성제와 12연기 두 문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인지..
결론은 당연히 두 개 문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근본 불법의 핵심은 4성제요 12연기 입니다. 여러 부파로 갈라진 것은 해석이 달라졌기 때문이지.. 4성제나 12연기 내용이 달라진게 아니지요. 20여 개 부파가 무엇을 가르치고 수행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해도..
12연기와 4성제 그리고 37조도품 가운데 주로 8정도와 4념처 수행을 했다고 알면 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법화경>에서도 모두가 일승으로 돌아간다고 하듯이.. 4성제와 12연기 뿌리를 찾아가면 역시 하나로 만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변화가 생기듯..
<법화경>이 나오던 때 상좌부는 석가세존의 가르침[근본 불교]을 잊고 자기가 속한 부파 주장만이 정통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으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상좌라 불리는 살아있는 아라한은 입으로만 아라한이었던 것 같습니다. 곧 비존재를 존재[있음, 유]로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와 같은 당시 상좌부에 대한 비판은 '소승'이라는 한마디 말로 집약되지요.
자기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소승이라 불린 상좌부의 4성제를 <법화경>에서는 생멸사제로 설명합니다.
네가지 진리인 사제(四諦) 생멸(生滅) · 무생(無生) · 무량(無量) · 무작(無作)사제 인데..
당시 상좌부에서는 첫 번째인 생멸사제만 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말은 중생은 생문인 고통 속에 살아가고 수행자는 멸문을 통해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 열반을 얻는 게 목표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석가세존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사제는 무생(無生) · 무량(無量) · 무작(無作)이 포함되어..
다시는 생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무아요, 공임을 깨쳐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문, 연각승이 석가세존이 가르친 대로 무아와 공을 수행의 목표로 하고 그 경지에 이른 분을 아라한이라 하며 존경하고 있었다면.. 그래도 <법화경>이 세상에 출현했을까요?.
출현했을 겁니다.
소승이라 불리는 상좌부는 출가자 중심 불교로 재가자는 성불과 연이 없는 중생으로 보았습니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재가자라 해도 4홍서원에 나오듯 공과 무아를 깨치는 성불을 목표라고 하지 않나요.
대승불교는 출가 불자는 물론 재가 불자 그리고 불자가 아닌 대중까지도 성불을 목표로 전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부처님과 불교를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불자가 아닌 대중까지도 성불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법화경, 방편품, 2-21>에서 게송으로 시설하십니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그 자성이 적멸이니 불자들이 도 닦으면 오는 세상 부처되네.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 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이렇듯 불자든 아니든 불성이.. 무아요 공으로 고요한 적멸.. 본래 있으므로
불자님들이 그것을 보고 먼저 익혀..
본래 있는 자성을 일으켜 세우도록
이웃에게 전하며 실천[회향]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제5 약초유 품을 보면 사람들은 평소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성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를 맞고 자라는 약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모든 초목 모습이 다 다르듯.. 한결같은 하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이는 노래를 갖고, 그림을 좋아하는 이는 그림을 갖고, 정치를 좋아하는 이는 정치를 갖고 성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좋은 능력을 망각하고 엉뚱한 곳에서 그 능력을 사용하니.. 바른 불자가 하듯이 이웃에 실천한다는 것은 별천지 얘기가 됩니다.
엉뚱하거나 악한 자들은.. 자기가 잘 모르면서도 오히려 남이 틀렸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법화경>을 두려워하여 멀리하려고 합니다.
법화행자의 길은 순한 길이 아닙니다.().
큰스님께서는 말미에 이렇게 강설하십니다.
쉬운 길이 아니어서, 하나의 길이 아니니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해서 소위 만병통치약 이란 게 있습니다.
<법화경>에도 있지요.^^
그것을 보여 줄 수는 있는데..
비쌉니다. ㅎㅎㅎ^^().
우리 모두..
절에 오신 님들과 온 라인으로 참여한 님들 모두.^ㅎㅎㅎ^
혹 다음 시간[2024.3.6, 수]에 그 만병통치약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