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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굿뉴스 |
광화문 시복식이 종교배타주의 강화로 가지 않으려면
나는 시복식이 광화문이 순교의 장소이며, 순교자는 언젠가는 틀림없이 높여질 것이고, 박해자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보다, 인류의 신앙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희생의 역사를, 모든 시민들이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더 크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다종교 상황인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극단적 종교 갈등을 완화해온 한국 천주교와 한국 불교의 정신적인 친밀감에 금이 가지 않고, 한국천주교에 비극적인 배타성 블록이 세력을 얻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사회의 종교적 배타주의 블록. 개신교의 성시화와 홀리클럽 등을 통한 국가권력의 선교적 활용론자들, 현 교육부장관이 주창했듯이 종교사학의 배타적 선교교육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 땅 밟기 등 증오행위자들.
기독교는 허무맹랑한 창조주나 믿는 열등한 교리를 갖고 있으며, 우리는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고등한 교리를 가졌다는 자만심과 타종교에 대한 경시와 무지에 기반한 불교의 심적 배타주의.
여기에 더해 세계 최대의 단일조직으로, 교황의 단일한 교리해석과 교시체계로 종교적 방패를 친 천주교의 조직적 배타성까지 더해진다면, 한국 다종교상황은 종교문화에 대한 위대한 세계적 모범을 세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한국천주교회는 광화문 광장과 세종로 길거리를 50만의 신자들로 채울 예정이다. 이번에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2002년 붉은악마, 2008년 촛불집회, 2008년 헌법수호 범불교도대회를 단번에 압도했다. 한국천주교회가 이제 이 강토에서 진정으로 더 넘어서야 할 곳은 어디일까?
구성원의 보편적 이해 속에 전통이 될 수 있어
1791년 12월 8일. 윤지충은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탄핵을 받아 참수되었는데, 그는 정약용의 외사촌이다. 그리고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도 이번에 성인품에 오른다. 그러나 나에겐 순교한 성인보다 유배지에서 민족의 필독서 <목민심서>를 남긴 정약용이 더 따르고 싶은 영웅이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탄압받지 않지만, 조금 있으면 모두가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떨어진 가족이 만나는 민족대이동이 이루어지는 추석이 온다.
한국천주교의 역사는 이런 민족의 전통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전통이란 인류의, 강토의, 민족구성원의 보편적 이해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한국천주교는 솔직히 사립학교에서의 특정 종교교육의 강요와 공무원의 종교적 차별에 대해 불교가 남은 안간힘을 다해 힘겨운 싸움을 할 때, 민족, 나라, 강토,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연대에 소홀했다. 성스러운 순교가 보편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천주교회의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불교, 나만의 것과 전통의 계승발전에 대한 사명감 찾을 기회로
끝으로 한국불교에 대해 생각한다. 한국불교는 이번 교황 방문과 광화문 시복식을 이제 우리만이 가진 우리 전통에 대해 재발견하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기실 한국불교는 최근까지 개신교와 싸우다가 알게 모르게 서로 닮아지기도 했고, 한국천주교를 본보기 삼아보려고도 했다. 세속에서의 행복과 세속에서의 치유가 궁극적일 수 없는 것임에도, 헛수고가 허다한 번거로운 세속을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멋있는 수행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을 너무 경시했다.
쟁론의 화합을 일면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불교의 가르침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분명한 외도의 논리에 대해 사회적으로 자신 있게 설파하지 못했다. 앞으로 과학기술과 사회적 관계망의 발전은 치열한 윤리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종교적 교리 논전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또 헌법에 명시된 ‘전통(민족)문화의 창달’을 담보할 최대의 전통조직이 불교다. 현금의 인류사에서 한국불교의 어깨는 너무나 무겁지만 한번 도전해볼만한 뿌듯한 사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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