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오른쪽)와 그 부사령관 마크 클라크. 클라크는 리지웨이의 뒤를 이어 한국전선을 지휘했다./라이프
밴 플리트 회고록에 따르면 리지웨이는 미군 수뇌부의 뜻이 그렇지 않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군보다는 오히려 일본 병력을 보강하는 게 더 급한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리지웨이는 “귀관의 뜻에 존경심을 지니고는 있지만, 미국은 보다 중요한 임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분위기는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마크 클라크 대장이 부임하면서 달라졌다.
리지웨이 후임으로 도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마크 클라크 장군이 한국전선을 방문해 미군 장병들과 함께한 모습./라이프
포로협상은 1952년 종반이 되도록 해결을 보지 못했다. 이 무렵 유엔측 수석대표가 해리슨 소장으로 교체되었다. 죠이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는 말을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또한 리지웨이 후임으로 클라크가 새로운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길고 지루한 협상의 비탈,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은 신임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오른쪽)와 그 부사령관 마크 클라크. 클라크는 리지웨이의 뒤를 이어 한국전선을 지휘했다./라이프
밴 플리트 회고록에 따르면 리지웨이는 미군 수뇌부의 뜻이 그렇지 않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군보다는 오히려 일본 병력을 보강하는 게 더 급한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리지웨이는 “귀관의 뜻에 존경심을 지니고는 있지만, 미국은 보다 중요한 임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분위기는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마크 클라크 대장이 부임하면서 달라졌다.
리지웨이 후임으로 도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마크 클라크 장군이 한국전선을 방문해 미군 장병들과 함께한 모습./라이프
포로협상은 1952년 종반이 되도록 해결을 보지 못했다. 이 무렵 유엔측 수석대표가 해리슨 소장으로 교체되었다. 죠이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는 말을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또한 리지웨이 후임으로 클라크가 새로운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길고 지루한 협상의 비탈,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은 신임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