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된 경. 입가에 담배를 피워문채 관객들을 바
라보는 경.
경에게 머물러 있는 조명과 관객의 멍한 시선.
경,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겸연쩍은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민
망하다.
그러나,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멈출 길이 없다.
조용히 담배를 바닥에 비벼끈다.
복수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체크무늬 손수건을 빼어 들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경은 이제 고개 숙이며 조용히 무대를 내려 온다.
연신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관객 사이를 헤쳐 조용히 인파를 벗
어나간다.
조명은 마치 연극배우의 퇴장을 따르듯, 경의 길을 비추어 준다.
멍청히 경이 하는 냥만 바라보던 밴드가 정신을 차린다.
보컬이 기지를 발휘해(유치한 발상이지만) 스틸 하트의 She's
gone을 무반주로 선창한다.
조명이 무대 위로 되돌아 오고, 뒤이어 밴드의 연주가 이어진다.
보컬은 꼭 최민수나 김 경호처럼, 있는 폼, 없는 폼 쥐어 짜가며 열
창을 해댄다.
민망한 오버액션이다.
그 사이, 꼬붕이 키보드 옆에 놓여진 경의 가방을 훔쳐 드는데, 복
수가 꼬붕의 손에서 경의 가방을 낚아채며 뛰어 간다.
떨리듯 갈라지는 목소리로, 채 병원 이름을 대기도 전에 택시들은
떠난다.
다행히 경의 손짓을 보고 택시가 와 선다.
경 (차문을 열다 말고 문득 공연장 쪽으로 고
개를 돌린다)...가방.
경, 택시 안으로 디뎠던 발을 빼는 순간, 택시가 출발. 그러다 이
내 급정거.
택시 기사E 야, 임마.
복수가 택시 앞 본네트를 두 손으로 짚으며 막아섰다. 숨을 헐떡이
며 미소짓는다.
경에게 가방을 휙 던져준다.
경, 복수를 빤히 바라본다.
복수 (기사에게) 죄송합니다.
경 (복수에게 인사를 꾸벅한다) 고맙습니다.
(택시에 오른다)
복수, 차 앞에서 비켜서며 택시기사에게 인사를 꾸벅한다.
택시기사, 살짝 인상을 쓰곤 출발.
복수, 떠나는 택시를 바라보며 섰다.
이내 돌아서는 복수가 다시 택시를 바라보면, 경이 뒷 차창으로 여
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한 번, 인사를 꾸벅하는 경의 모습이 정겹다.
복수도 인사를 꾸벅한다.
3. # 택시안(밤)
앞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경.
어느새, 눈물은 말라있고,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복수
가 서 있다.
훔쳐보는 눈길을 들킬라, 부끄러움에 몸을 낮춘다.
가방을 가슴께로 올리는 경.
경의 가방 안에서 삐죽이 나와 있는 복수의 체크무늬 손수건.
손수건을 어루만지는 경의 손등.
차창 안으로 점멸하는 네온불빛.
F.O.
4. # 복수의 방(새벽)
잠든 복수의 귓가를 맴도는 관악기 소리.
제대로 내는 음이 아닌 탓에, 불쾌한 소음이다.
잠결에 인상을 쓰며 뒤척이는 복수.
그러다가 벌떡 일어난다.
복수 (귀를 막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뭐
야, 뭐야, 뭐야아.
방문을 휙 열어본다.
5. # 집 앞 작은 공터(새벽)
중섭이 클라리넷을 만지작대며 입으로 불어보지만 잘 불리지 않는
다. 삑사리 음만 난다.
복수가 열려진 문틈으로 중섭을 바라본다. 어느새 복수의 인상이
풀렸다.
복수 장난감이야?
중섭 (문득 복수를 보며)... 나팔 같은데? 누가
버스에 두고 내렸는데... 한 달 이 지나두 안 찾아
가서, 그냥 갖구 왔다. 달라면 그 때 주지, 뭐.
복수 (툇마루로 나와 앉으며) 주긴 뭘 줘. 그냥
가져. (궁시렁)...지가 잃어버린 걸 뭐 어쩌라구.
중섭 (복수에게 건낸다)
복수 왜?
중섭 너, 한 번 해 봐.
복수 ...
중섭 손재주 있잖어, 너?
복수 이게 손재주로 되나? (클라리넷을 불어보
는데 바람소리만 난다.) 에? 고장
났어. 아빠가 고장냈네, 지금.
중섭 (다시 불어 보면 어찌됐든 소리는 난다) 아
닌데. (악기를 다시 주곤 부엌 으로 간다) 아침
먹자.
복수 (볼이 터져라 불어보지만 소리가 안난다.) 에이, 뭐야
아? (획 집어던진다. 그러다 이내 다시 불어본다.
얼굴이 벌개지고 이마에 힘줄이 솟는다. 결 국 삑
소리난다. 미소짓는다. 그러더니) 웩. (임신한 여자처럼 구토증을
낸다. 부엌에 대고 )아빠, 나 임신했어. 웩.
6. # 신문사-문화부(낮)
동진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고 있다.
동진의 책상위엔 털장갑(강아지) 사진을 넣은 액자가 놓여져 있다.
동진 아가씨. 자꾸 전화만 하면 어떡해요? 나랑
폰팅하자는 건가? ... 아니, 도 대체 왜? ...내가
받으러 가겠다니까. ... 나, 우리 강아지 땜에 불면증 걸
렸어요, 아가씨. ...(가만히 듣다가 돌아버린다) 불면
증 치료부터 받으라 구요?... 당신, 나 놀려, 지금?
7. # 지하철 안(낮)
경 (핸드폰. 난감한 표정이다.) 놀리는 게 아
니구요. ...(한숨) ...제가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
그게 아니죠. ...그래서 제가 레코드 점에, 제 번호 남긴
거잖아요. ... (미안해 죽겠다) 훔쳐 갈거면, 모하러 제
연락철 남겼게요? ... (가만히 듣다가 획까닥 돈
다. 고함) ...무슨 멍멍탕을 해 먹어요, 내가? 털 뽑
고 나면, 뜯어 먹을 살이나 있어요, 그 개가? (핸드폰을 거세게 끊
는다)
한산한 지하철 안에서 경의 고함소리가 주목받는다. 승객들이 바
라본다.
경, 무안하다.
가방을 매곤 자리에서 일어나, 승강장 문가로 가 선다.
노선이 길게 느껴진다.
경, 안되겠다. 옆 칸으로 가야한다.
고개를 숙인채, 옆 칸 이음문의 손잡이를 돌린다.
손잡이가 말을 안 듣는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죽어라 애를 쓴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승객들의 눈이 계속 경을 쫓는다.
그 새, 승강장 문이 열린 것도 모른다.
그러다 문이 닫힌다는 안내 멘트에, 부랴 부랴 승강장 문 앞에 서
지만 코 앞에서 닫힌다.
다시, 옆 칸 이음문으로 가서 문을 열어 보지만, 허사다. 계속 사람
들의 눈치를 살피며 필사의 노력이다.
이음문 옆 좌석에 앉아있는 노인이, 안됐다는 듯 경을 바라본다.
노인 됐어, 고만해. (손짓을 한다) 그냥 앉아 가.
경 (고개 숙인 채) 네. (노인의 옆 자리에 앉
는다)
노인 ...(고개숙인 경을 힐끔 바라본다)
경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
노인 ... 개 잡아 먹었어?
경 ...(다시 일어서서 승강장 출입문 앞에 선
다)
8. # 백화점(낮)
사은품 교환대가 백화점 앞에 설치되어 있다.
쇼핑백을 들고 있는 여자들이 그 앞에 늘어서 있다.
작업복(양복)을 입은 복수도 그 틈에 끼여있다.
어깨엔 쌕을 메고 있다.
그 옆켠에 꼬붕이 있다.
멀찍이 정달이 복수를 정탐하고 있다.
복수 앞엔 한 손엔 쇼핑백을 한 쪽엔 핸드백을 든 중년여성이 섰
다.
중년여성은 쇼핑백을 든 손에 장지갑을 들고 있다.
그러다 이내 쇼핑백을 핸드백 쪽으로 옮겨 들려 한다.
순간, 복수의 손이 그 틈을 비집고 지갑을 낚아채곤 옆의 꼬붕에
게 즉시 건내진다.
둘은 아무 일도 없던 듯 그 자리에 서 있다.
정달 빙고. (미소지으며 복수쪽으로 걸어간다)
이 때, 바로 코 앞에서, 한 청년이 사은품과 쇼핑백을 한 아름 들
고 있는 여인의 핸드백을 날치기한다.
사은품 교환대에 늘어서 있던 줄이 무너지고 청년을 쫓는 정달의
모습이 보인다.
청년이 채 50미터도 안되서 넘어져 잡히고, 이를 구경하느라 사람
들이 기웃댄다.
그 틈에서 복수의 손은 증말 예술적으로 아줌마들의 지갑을 싹쓸
이한다.
청년을 잡아 일으키던 정달이 복수를 찾아보지만, 복수는 사라졌
다.
정달 (날치기의 뒷통수를 냅다 갈긴다) 하필이
면 왜 여기서 일을 벌이구 지랄 이야. 내가 지금
너 같은 거 잡게 생겼어, 새꺄? 이씨...
9. # 밴드 연습실-지하창고(낮)
정국과 기홍 앞에 건방진 표정으로 앉아있는 제리. 무지하게 요란
한 복장이다.
제리 요즘 밴드에 무슨 키보드가 들어가?
정국 키보드 들어가는 건 몇 곡 안돼.
제리 (짜증) 나의 음악세계에 키보드는 없다니
까.
기홍 (짜증낸다) 음악세계가 뭔데요?
제리 진정한 락엔, 키보드가 없어. 왜냐? 촌스럽
거던. 무슨 캬바레 그룹사운든 가? 키보드 들어가
면, 난 안해.
이때, 경이 들어온다.
정국 어, 경아. 내가 말했지? 보컬하는 친구.
경 아아.
제리 (눈을 반짝이며 경을 본다) 제립니다.
경 젤요?
제리 제리. (경의 손을 덥썩 잡으며 악수를 한
다.) 눈이 참 맑다. 누구신가?
정국 우리 키보디스트.
기홍 촌스런 키보드.
제리 (아무일도 없던듯) 촌스럽다니? 키보드가
어때서? 자, 우리 밴드, 화이 팅. 나가자, 싸우
자, 이기자. (썰렁) ... 오늘은 바빠서 이만... (부랴 부랴
나가며 경에게) 눈이 참 맑군. (나간다)
기홍 ... 이상해, 쟤.
정국 ...
경 ...교포야?
정국 아니. (테잎을 건낸다)
경 (테잎을 받는다) 그럼, 이름 좀 바꾸라 그
래. (테잎을 들어보이며) 어때, 목소린?
정국 좋아. 꽤. 연정이랑은 보이스칼라가 달라.
경 (퉁명스레) 잘됐네. 연정언니 보이스, 사
실 별루였어.
정국 ... (씁쓸하게) 그래, 나두.
기홍 (눈살) 뭐가 그래? 웃기구 있어. ...참, 누
나. 집주인 왔다갔어.
경 ...(생각에 잠긴다) 월세, 몇 달이나 밀렸
지?
기홍 (손가락 다섯 개를 편다)
경 한달만 참아달라지.
기홍 당장 나가래.
정국 경아.
경 응.
정국 일단 악기라두 팔자. ...한 달 뒤엔 우리 아
르바이트료 들어오니까, 일단 은 악기상에 악기
맡기고, 한 달 뒤에 찾자. 딴데, 갈데 없다, 우리.
경 악기가 뭐가 있는데?
정국 기홍이 베이스 두 개 중에 하나랑, 연정이
꺼.
경 (한켠에 놓인 연정의 기타를 본다)
정국 금방 찾을껀데, 뭐.
기홍 ...(경에게) 찝찝하지?
경 ...뭐가 찝찝해? 악기가 뭐라구.
10. # 지하철 플랫폼 앞편
지하철 승강장에 경이 내려선다.
연정의 기타를 들고 있다.
잠시 나무벤취에 앉아 기타를 만져본다.
11. # 지하철 플래폼 중간
같은 플랫폼 뒤쪽 벤취에 복수가 앉아있다.
벤취 중앙과 우측엔 신문을 보는 남자 둘이 앉아있고, 좌측에 복수
가 앉았다.
복수의 눈이 남자의 뒷 주머니에 머문다.
복수, 괜시리 두리번 대다가 동전을 중앙남자의 발밑에 떨어뜨린
다. 쨍그랑.
남자가 동전소리에 신문을 내린다.
우측의 남잔 여전히 신문을 본다.
복수는 그저 지하철 오기만 기다리는 듯, 두리번 댄다.
중앙 남자, 우측 남자의 발 밑으로 굴러간 동전을 유심히 바라본
다.
이내 관심없는 듯, 다시 신문을 집어들려다가, 우측남자의 발 옆
에 떨어진 만원권 지폐를 본다.
중앙 남자, 양쪽의 눈치를 보다가, 남모르게 돈을 집으려 몸을 숙
인다. 챤스다.
복수의 손이 남자의 뒷주머니를 향한다.
지갑을 빼어드는데, 그 지갑을 동시에 잡아채는 손이 있다. 신문
을 든 우측 남자다.
둘, 서로 놀라서 바라본다.
순간적으로 복수가 우측 남자의 손등을 꼬집는다. 복수의 차지다.
복수, 바로 일어서 플랫폼 앞쪽으로 걸어간다.
중앙남자, 만원을 손에 꼭 쥔채, 신문을 펼쳐든다. 회심의 미소.
우측남자 (중앙남자에게) 아저씨.
중앙남자 ...
우측남자 만원 내꺼야.
12. # 지하철 플랫폼 앞쪽
미소지으며 걸어가는 복수.
경이 벤취에서 일어선다.
경이 복수를 본다. 반갑다.
경, 부랴부랴 가방에서 복수의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낸다.
복수에게 다가서려는 경.
이 때, 뒤쪽에서 중앙남자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중앙남자 야.
복수 (돌아본다)
중앙남자 야.
복수, 코 앞에 있는 경을 보지도 못하곤 냅다 계단위로 튀어 오른
다.
중앙남자가 복수를 잡으러 뛰어간다.
경도 남자를 뒤따라 뛴다.
13. # 매표소 입구(낮)
남자를 따라 뛰어 올라온 경.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복수를 놓쳤다.
경도 두리번댄다.
남자 (숨을 몰아쉬며 경에게) 아가씨도 당했어?
경 네?
남자 아, 도둑놈의 새끼. 아, 죽겠네. 미치겠네.
아아...
경 ...
경은 멍하니 복수의 손수건만 만지작대고 있다.
14. # 낙원상가 악기매장(낮)
복수, 한 악기점으로 들어간다.
도도하고 야박해 보이는 악기상이 힐끔 복수를 본다.
복수 아저씨.
악기상 (귀찮은 듯 얼굴만 본다)
복수 좀 물어 볼게 있는데요.
악기상 ...
복수 (쌕에서 클라리넷을 꺼낸다) 이거요. 소리
가 안나요.
악기상 (클라리넷을 들더니 유연하게 연주한다. 그리곤 돌려
준다) 됐지요?
복수 어뜩케 하는 거예요?
악기상 나처럼 하면 되잖아요.
복수 난 안되든데?
악기상 ... (무심하게) 연습을 해야지, 뭐.
이 때, 복수의 눈에 멀찍이 경이 보인다.
복수, 클라리넷을 챙기더니 도망간다.
멀쭝이 복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악기상.
그 앞에 이 번엔 경이 다가와 선다.
경 (기타를 내어 놓으며) 아저씨, 중고 악기
도 사시죠?
악기상 (가타부타 말은 않고 악기를 살펴본다. 돈지갑을 열어
서 8만원을 내민 다)
경 (놀라며) 이거 70만원 짜리예요.
악기상 (고개를 갸웃. 만원을 더 얹어준다)
경 아니. ...너무 터무니가 없다.
악기상 갖구가요, 그럼. (돈지갑을 도로 넣는다)
경 ... 쫌만 더 주시면 안돼요?
악기상 여기 뒷판에 낙서까지 있네. 이거 못팔아 먹어요.
뒷판의 낙서를 본다. 연정의 이름이 반짝이로 새겨져 있다.
짐 모리슨의 프린팅도 있다. 한참을 바라본다.
경, 손을 내민다. 악기상, 9만원을 주고 기타를 가져간다.
경, 나가려다가 키보드 앞에 선다.
경 이거, 소리 좀 들어봐두 되죠?
악기상 그러든가...(말투가 얄밉다.)
경, 살짝 음을 조율해 본다.
그리곤 Doors의 "Light my fire" - Ray Manzarek의 키보드 부분
을 연주한다.
악기상 (슬쩍 고개를 든다. 짧게) 잘하네.
경 (연주를 멈춘다. 입술을 잠시 깨문다. 악기
상의 눈치를 본다.) 이건요? (그러더니 낯선
락 블루스를 한 소절 연주한다)
악기상 그건 키보드론 안 어울린다.
경 (표정이 화사하다) 네. 원래는 기타, 베이
스, 드럼만 들어가요. 이건 보컬 멜로디 라인인
데... (다시 연주. 연정에게 맛보인 그 곡이다)
악기상 (관심있게 듣는다) ...작곡가신가?
경 ...(곡을 멈춘다) 네.
악기상 (톡 쏜다) 근데 왜 악기는 팔아먹어? 음악가가?
경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악기상 ...(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잘 들었어요, 작곡가님.
경 ...(여전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수줍은 미
소) 이 곡... 아저씨한테 제일 먼저 들려드린 거
예요.
악기상 ...(쌀쌀맞던 그의 표정에 비로소 미소) 영광이네.
복수 (혼자서 빙그레. 괜시리 뿌듯하다.)
경 (인사를 꾸벅한다) 안녕히 계세요.
악기상 이봐요. (기타를 내어준다) 안 사.
경 (당황한다. 그러다 이내 9만원을 내어준
다)
악기상 (돈을 안받는다. 그리곤 구석 소파로 가서 팔짱을 끼
고 앉는다. 다시 도 도해진다) 공연비.
경 ...
악기상 (냉정하게) 더 좋은 악기 살 일 있어 그러는 거 아니
면, ...악기 팔구 다니 지 말아요. 그렇게 연주하고
돌아다니면서, 몇 만원씩 벌면 되잖아. (전 화벨)
네. 한음 악깁니다. ...와서 보셔야지. 그 많은 베이스 종류를 어뜩
게 다 말해, 전화루... 뭐, 가격은 천차만별
이지... 나와서 보라니까...(악기 문의를 하는 듯 옥
신각신이다)
경 ...(들릴락 말락) 고맙습니다.
악기상은 경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채 전화통화를 하고, 경은 다
시 경의 손에 들리워진 기타를 들고 자리를 뜬다.
전화를 끊은 악기상 앞에 어느새 복수가 나타난다.
악기상에게 다가간다.
악기상, 뭔가 싶은 표정으로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악기상의 볼에 뽀뽀를 해 주곤 도망간다.
15. # 버스 안(낮)
경이 오른다.
좌석이 없으므로 손잡이를 잡고 섰다.
출발하려던 버스 문을 두드리는 복수.
복수가 오른다.
경이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는 안면까고 경을 지나쳐 뒷자리 기둥앞에 기대선다.
경, 아는 척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복수를 힐끔힐끔 쳐다보지
만 복수는 창밖만 본다.
복수 앞에 자리가 난다.
복수, 자신의 쌕을 자리에 놓아두고 경에게 다가온다.
경, 복수를 바라보고 꾸벅 인사한다.
복수 (덩달아 인사하곤) 자리 났는데요. (그리
곤 경의 기타를 들고 자리로 간 다)
경, 주춤주춤 복수가 앞장 선 자리로 가 앉는다.
복수는 경 앞에 자신의 가방과 기타를 들고 서 있다.
경 (복수의 가방과 기타를 가리키며) 그거, 이
리 주세요.
복수 아니예요.
둘, 어색하다. 복수는 자신의 뒤쪽으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 마다
자꾸 두리번댄다.
소매치기의 습성이다.
경 ...저기. (복수를 올려다 보며) 이거...(어
느새 가방에서 꺼낸 복수의 손수 건을 돌려준다)
복수 ...(손수건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아, 어
디갔나 했네.
경 ...
복수 ...
경 ...
복수 (대뜸) 피아노 잘 치드라.
경 ... (놀라며) 악기점에서요?
복수 ... 돈이 급했나봐요? (기타를 슬쩍 들어보
이며) 이거 팔라 그러든데...
경 (씁쓸하게) ...좀. 있는 돈두 잃어버리구...
복수 ...(찔끔)
경 저두 아까 지하철에서 봤어요.
복수 (눈매가 싸늘) 뭘 봐요?
경 ... 막 뛰어 가든데... 누가 막 쫓아가구...
복수 ... 아, 아. 걔가 내 친구거든요.
경 그 사람이 도둑놈이라구 그래서...
복수 (가당찮다는 듯) 아, 그 자식. ...걔가 왜 그
랬냐면요...
경 엄마야.
경의 집 앞 버스 정류장이다. 경이 부랴부랴 버스에서 뛰어내린
다.
복수, 엉거주춤하느라 따라 내릴새도 없이 버스는 출발한다.
기타를 들고 선 복수.
차창밖으로 놀라서 버스를 바라보는 경의 모습이 보인다.
16. # 경의 집 앞 버스 정류장(낮)
경, 떠나가는 버스를 바라본다.
경 어뜩하냐? ...기타.
17. # 다음 정류장(낮)
내리자마자 경의 정류장 쪽으로 뛰어가는 복수.
거슬러 뛰어가는 복수의 얼굴이 화사하다.
18. # 경의 정류장(낮-저녁)
마침내 당도한 경의 정류장.
경은 없다.
복수의 얼굴에서 실망의 빛이 감돈다.
서성이다 벤취에 앉는다.
담배를 피워문다. 긴 한숨.
꼼짝도 앉는다.
O.L.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해가 저물고 정류장의 광고판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복수는 담배 한 갑을 다 피도록 그 자리에 앉아있다.
복수 (혼잣말)... 나, 왜 이러냐?
19. # 치킨집 앞(저녁)
복수가 유순의 치킨집 앞으로 걸어온다.
20. # 치킨집 (저녁)
복수 엄마. 고 복수 왔어.
닭을 튀기고 있던 유순이 힐끔 복수를 본다.
성호는 비닐봉투에 절인 무를 담고 있다. 복수를 보자 꾸벅 인사한
다.
복수 (성호를 번쩍 들어 올리곤 미소짓는다)아
고, 무겁다. (이내 내려 놓으며) 형아가 할게. 성
혼 들어가서 공부해.
유순 냅둬. 배달 해야돼, 쟤.
복수 내가 하면 되지.
유순 (성호에게 포장을 내어주며) 어디가 어딘
줄 알고 니가 가? (성호에게) 얼른 갖다 와.
성호 네. (포장을 들고 나간다)
복수 (나가는 성호를 보며) 엄마, 나두 어려서
저랬어? 저렇게 순했어?
유순 (냉정하게) 왜 왔니? 배달해 주러 온 건 아
닐거 아니야?
복수 잘 돼, 치킨?
유순 왜? 안되면 돈 더 줄래?
복수 그러지, 뭐.
유순 안 말려.
복수 엄마, 그래서 얘긴데... ...내가 엊그제 준
돈 있잖아.
유순 ...(의아한 듯)
복수 그거... 내가 당장 쓸데가 있는데... 좀 빌
려 줘. 한 5일, 아니 일주일 안 에 갚을게. 응?
유순 (냉소. 그러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돈가방
을 들고 나온다)
복수 (미소)
유순 (가방 안의 돈뭉치를 꺼내서 복수의 얼굴
에 집어던진다. 바닥에 흩어지 는 지폐들.) 갖구
가. 일없어. 줬다 뺏었다, 나한테 유세하냐, 너?
복수 ... 빌려달란 거지.
유순 (냉정하게) 니 손 떠난거면, 그 돈이 있단
사실도 잊어. 그게 원칙이야. ...그렇게 머리 속
에 계산기 돌릴거면, 내 앞에서 돈지랄 하지마. 가. (들
어가려 할 때)
복수 (유순의 손을 잡는다) 잘못했어, 엄마. 미
안. 응? (유순의 손을 몸둥이 삼 아 자기 머리를
막 때린다) 안 그럴게. (또 유순의 몽둥이 손) 화풀어,
응? 더 때릴래? (다시 유순의 손을 잡아 드는데)
유순 (팔을 뺀다) 돈이나 주워.
복수 응.(돈을 줍는다)
유순 (자신도 돈을 주으며) 잊을만 하면 염장을 질러대.
복수 ...(눈치를 본다)
유순 너는 가끔 하는 짓이겠지만, 난, ...염장터
질 일이 줄줄이 사탕이야. 니꺼 못 받아 줘.
복수 ...
유순, 돈을 챙겨 일어선다.
이때, 한 중년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중년남 정 마담, 나 저녁밥 좀 줘.
복수 (입을 벌린 채 남자를 올려 본다)
유순 ... (복수를 보며) 넌 인제 가 봐. (남자에
게) 찬이 별로 없는데...
중년남 (테이블에 앉으며) 언젠 당신하고 내가 진수성찬 먹었
나? 얼른. 배고파.
복수 (고깝다는 듯) 밥을 먹겠으면 밥집엘 가셔
야지. 여긴 닭집인데?
중년남 ...
복수 (남자의 테이블에 마주 앉으며 유순을 쏘
아본다) 성호 아빠야?
유순 (냉정히) 누구면?
복수 ... (유순을 노려보는 눈빛이 일 내겠다)
유순 ...애 아빠 아냐. (돈을 챙겨 방으로 향하
며 남자에게) 쫌만 기다리셔요.
이때, 성호가 바삐 들어오려다가 남자를 보곤 시무룩해서 나간다.
문 앞에 쪼그려 앉는 성호.
성호의 뒷모습에 눈빛이 빨개지는 복수.
중년남 (복수의 눈치를 본다) 어른을 그렇게 노려 보시나? 버
릇없이...
복수 ... 몇 살이나 쳐 드셨는데?
유순 (방에서 나오며) 얘.
복수 (중년남만 보며) 닥치고 방구석으로 들어
가시지, 아줌만.
유순 ...
중년남 (얼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복수 저 꼬마가, 할아버지 보고 나가네? 왜 나가
지?
중년남 ... (유순을 보며) 정 마담.
복수 여기서 몇 끼나 먹었어?
중년남 ...
복수 몰라? ...이 집 밥 맛있어?
중년남 ...
복수 그 쌀값, 내 주머니에서 나온건데... 밥값
뭘루 줄래?
중년남 (유순을 보며 지원요청) 왜... 그래?
유순 ...
복수 ...나, 전과자야.
중년남 ...
복수 (테이블을 번쩍 들어 한 구석에 집어 던진
다) 자, 길 만들어 줬으니까, 일어서, 할아버
지.
중년남 (벌떡 일어난다)
복수 얼루 나가는지 알지? 문 열어 줘?
중년남 (문 앞으로 부랴부랴 간다)
복수 또 내 눈에 걸리적대면, ...그 다음은 내 책
임 아니야. 응?
중년 남자, 쭈뼛대다가 부리나케 튀어 나간다.
남자가 나가자, 성호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복수 (애써 분을 삭이며 성호를 본다.) 성호야.
밖에서 100까지만 세고 들어 와.
성호, 복수와 유순을 번갈아 보다가 다시 문을 닫고 나간다.
복수 (유순에게) 왜? ?어?
유순 어쩌라구, 나더러?
복수 엄마, 남자없이 못 살지?
유순 ...그래.
복수 (냉정하다) 그건 알어, 나두. ...그러니까,
줘 터져가면서두, 이 놈 저 놈 한테 빌붙어 먹고
살았지.
유순 뭐? 너...
복수 (단호하게) 닥치구 들어. ...사내놈들 밝히
는 거야, 아줌마 맘이야. 근데... ...저 쬐끄만 아들
새끼한테, 쪽팔리면 안된다. ...애가 늙은이 보자마자 알
아서 밖으로 기어 나가드라. ...할짓이냐? 여관비두 줄
까?
유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이 돈다)
복수 쭈그렁 바가지가 되서, 참 볼만하다. ...재
혼을 다시 하든가. ...한 눈에 봐 두 구질구질한 새
낄, ...그걸 남자라구 불러 들이냐? (소리친다)제대루
된 새낄 만나란 말야.
유순 ...제대루 된 게... ...왜, 날 만나냐?(눈물
이 흐른다)
복수 ...
유순 ...
복수 ...(허탈하다) 왜... 엄마가 어때서? 엄마
아껴 줄 놈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까...
유순 한 놈두 없었다. 오십이 넘도록...
복수를 외면한 채, 문가의 성호만 바라보는 유순의 눈가엔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유순의 슬픔을 바라보는 복수의 마음이 깊고 어두워진다.
유순 (방으로 들어가며) 성호, 들여 보내.
성호는 닫혀진 유리문 밖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 보며 서 있다.
그런 성호를 바라보는 복수.
복수 (유리문을 사이에 둔채, 나직이.) 100까
지...다 세었어, 성호야?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성호.
복수 ...(고개 숙인다) 그럼, 끝까지 세고 들어
와. ...형도 100까지 세고 나갈 께...
강한 적막감이 복수를 에워쌌다.
21. #마을 버스 안(밤)
주택가 오르막 도로를 운전하는 중섭.
갑자기 차를 세우곤 자동문을 연다.
중섭 (열린 문 틈으로 복수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복수야. (복수가 돌아본 다) 어여 타.
복수, 중섭을 힐끔 보곤 말없이 제 갈길을 간다.
중섭 (문을 연채 복수를 따라 천천이 차를 몬
다) 뭐해, 임마. 얼른 타.
여전히 외면하며 가는 복수.
중섭 지금 이거 막차라니까...
복수 (성났다.) 아이, 그냥 가, 좀.
중섭, 인상을 쓰며 걸어가는 복수를 이해할 수 없다.
22. # 달동네 골목길(밤)
복수가 숨이 턱까지 찼다.
헥헥대며 골목길을 오른다.
한숨을 돌리는데, 구멍가게 앞에 내어놓은 헌 비닐소파에, 중섭이
아이스 콘, 두 개를 들고 앉아있다.
복수, 힐끔 보고 걸어간다.
중섭이 복수를 발견하고 일어선다.
둘, 나란히 걷는다.
중섭 (걱정스레) 웬 땀이 잔뜩이야? 그러게 이
놈아. 타랄 때 타지. 아부지 차 가, 조기 세탁소까
진 올려다 주잖아. (아이스크림을 포장을 벗긴다)
복수 (퉁명) 그게 왜 아빠차야? 회사차지.
중섭 ...
복수 ...
중섭 (포장벗긴 아이스크림을 내민다. 삐졌다.)
그래서 챙피하냐?
복수 (미안하다. 그리고 짜증난다.) 에이씨. 뭐
가아? 운전수가 그렇게 쪽팔린 일인가? (아이스
크림을 와구와구 먹는다) 이거 맛있네.
중섭 복수야.
복수 응.
중섭 대학 가라.
복수 ...아빠. 난, 지금도 머리가 뽀개져. 나, 아
침마다 파스 붙이는 거 봤지? 내 대구리에 책까
지 쳐 넣으면... 대구리 박살나.
중섭 딴 거 다 비구, 지식만 채워 넣어, 그럼.
복수 (미간을 찌푸린다) 재벌이야, 내가? 그렇
게 속 편하게 살 처지야?
중섭 (의아하다) 난 니가 이해가 안 간다. 니가
나 먹여 살리냐?
복수 ...
중섭 딴 뜻 없어. 내 벌이로... 너, 나, 그럭 저
럭 살어. 모가 걱정이냐?
복수 ... 학비도 없잖아.
중섭 있어, 학비.
복수 ...
중섭 공부 시작해.
복수 아빠. (단호하다) 싫어. 돈 모아놨나 분
데, ...그건 아빠꺼야. 아무한테두 주는거 아냐. ...
내친 김에 좀 더 모아서, 왕창, 신나게, 미치게, 드럽게,
그냥 써 대. 것도 괜찮아. ...(사색적) 그렇게 한 번 살
아보는 거, 그거 해 봐야 돼. 더 늙기 전에, 꼭 해
봐. ...아빠 내 돈은 안 받으니까, 아빠 돈 으로
그렇게 해. 난... ...그냥 좀, 냅둬. 아직, ...답이 없어. 나한테...
중섭 ...(멈춰선다)
복수 ...
중섭 고아원에 두는 게 아니였는데.... (콧잔등
이 시큰하다. 담배를 뽑아문다.)
중섭은 골목 중턱에 쪼그려 앉아, 달동네 지붕밭을 내려본다.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
복수는 뒷 켠에 서서 중섭을 지켜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복수 (슬프다) 담배 피지마아. ...뇌졸증 걸려.
망부석이 되어 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F.O.
23. # 야외 공연장(밤)
락 페스티발을 하고 있다.
동진이 중간에 앉아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음악소리에 묻혀 그렇지, 동진은 거의 고함을 지르고 있는거나 다
름없다.
동진 이 밴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요?
근데, 이게 뭐야. 하나두 신이 안나잖아, 당신땜
에. ....내 바둑이, 털뽑고 있을까봐 그래, 왜? ...몰라,
몰라. 지금 당장, 무조건 만나. ...어차피 이 상태론,
나 또 밤새. ...어디? 이태원? ...헬로우 호텔 건너
편? ...그 집이 단골집이야, 아가씨? ..나두 거 기 자
주 가는데, 왜 못 만났지? ...아니, 그 건너편이 아니라, 호텔이 내
단골이라고... 알았다니까아. ...지금 바로
쏠테니까, 댁두 바루 와. 괜히 멋내고, 화장하
고, 자시고 그럴려 그러지 마. 택두 없어. (핸드폰을 끊는
다)
24. # 헬로우 비즈니스 호텔 건너편 돌계단(밤)
계단 꼭대기에서 추리닝 바람으로 쪼그려 앉아있는 경.
그 곳에서 커다랗게 보이는 헬로우 비즈니스 호텔은 경의 아버지
소유다.
저만치서 씩씩대며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동진.
동진 아, 왜 계단 위까지 올라오게 해요?
경 (일어선다)
동진 잠깐만. 숨 좀 쉬자. (담배를 피워문다. 그
리곤 담배갑을 내민다) 한 대 줘요?
경 네. (받으려 한다)
동진 별걸 다 하네. 안 어울리게... (담배갑을 도
로 넣는다)
경 ...네?
동진 그나저나. 바둑이...
경 ... 저기...
동진 (좋아라 두리번댄다.) 어디?
경 ...잃어 버렸어요.
동진 (사색이 된다)...
경 ...
동진 ...그런게 어딨어?
경 ... (발 끝에 시선을 둔 채) ... ...잡아 먹진
않았어요.
동진 이유 씨. (금방이라도 울 듯,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경 (멍청히 동진을 바라본다)
동진 (멀리서 소리친다) 뭐해요? 안 따라오구?
25. # 재즈빠(밤)
늙은 아저씨들이 텍사스 풍의 옷과 모자를 쓰고 올드째즈를 한다.
동진 (이미 얼근히 취했다. 흐느적댄다. 술주정
이다. 헤롱헤롱 미소) 아, 음악 좋다. 그지?
경 아뇨.
동진 아니, 왜? 운치 있잖아. 저 나이에 의상도
특이하구... 진정한 자유인 아 닌가, 저들은?
경 우리 아빠 옷이네요. 모자만 빼구...
동진 아빠가 멋쟁이다. 아빠두 진정한 자유인이
겠네.
경 (억지 웃음. 양주 스트레이트를 한 번에 털
어 넣는다)
동진 (술을 따른다) 원샷 (경이 한 방에 먹는
다. 그러자 그 잔에 또 따른다) 원샷. (경, 가볍게
털어넣는다. 곧바로 또 따른다) 원샷. (또 먹는다. 가만
히 본다) 안 취해요?
경 네. 술맛이나, 물맛이나 비슷해요, 전.
동진 몇 잔 째지?
경 한 병 더 드실래요?
동진 ...아니, 왜, 죄 안 어울리는 짓만 해?
경 네?
동진 술 못 먹게 생겼는데?
경 ... 아저씨. 도대체 제가 뭘 어?게 생겼단
건가요? 모가 안 어울린다는 건가요?
동진 순둥이 같이 생겼잖아.
경 ... (걱정스레) 그게 ...티가 나요?
동진 그러니까 첨보는 여자한테 싸대기를 맞고
두, 빙신같이 가만있지. ...화두 안나나 봐.
경 ... 화낼 시간이 ...없었잖아요.
동진 자기야.
경 네?
동진 너, 허구헌 날, 당하고만 살지?
경 ... 왜 자꾸 반말을 해요? 나이두 어려뵈는
데...
동진 그게 그렇게 중요해? 에이그. 옷이나 바꿔
입어. 어디서 옷두, 으이그...
경 ... 이 아저씨가 미쳤나?
동진 모가 미쳐? (밴드를 보며) 저거해서, 먹구
는 사나, 저 사람들? 처자식 맥여 살리긴 했을
까, 저들?
경 ... (남의 일이 아니다)
동진 음악은... 내 말 좀 들어 봐아. 음악은... 취
미로 하는 거야. (손가락을 젓 는다) 저럼 못써.
고달퍼. 천재들이나 하는게 음악이거던.
경 ...천재 아니면... 음악하지 말아요?
동진 그럼.
경 ...네에. (우울하다)
동진 (갑자기 엉엉 운다) 우리 니이체. 헉헉
헉.... 우리 니이체.
경 니이체?
동진 그래에. 엉엉. 바둑이. 내 바둑이. 엉엉.
(돌연) 자기야. 일루와 봐. 할 말 있어. (손가락으
로 경을 부른다)
경 (동진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동진 (경의 입술에 쪽 키스를 한다)
경 (놀라 고개를 뺀다)
동진 (헤죽) 속았지? 나, 뽀뽀박사야. (그러다
두팔을 벌리며 발끈. 소리친다) 근데, 넌 왜 안 취
해?
그리곤 바닥으로 곤두박질해 뻗는다.
멍청히 동진을 바라보는 경.
밴드 연주가 멈춘다.
경의 좌석에 시선이 머문다.
경 (낄낄 웃는다) 귀엽다아.
26. # 헬로우 비즈니스 호텔(밤)
경이 동진을 엎고 들어온다.
카운터로 간다.
매니져가 경을 보곤 앞으로 와서 인사를 꾸벅한다.
종업원에게 눈치를 하면 종업원이 동진을 부축한다.
매니져 누구예요, 이 사람?
경 친구예요. 방 좀 주세요, 아저씨.
매니져 (열쇠를 주며) 사장님, 호텔 안에 계세요. ...조심하세
요.
경 네.
27. # 호텔 룸(밤)
종업원이 동진을 눕히곤 인사를 하고 나간다.
경, 침대 옆 쪽에 놓여진 메모지와 연필을 든다.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턱을 괴고 무슨 말인가 쓰려한다.
이 때, 동진이 경을 덮친다.
경, 동진을 피한다.
동진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지만 잠에서 깨어나진 않는다.
경, 동진을 침대로 올리려다 그냥 문을 열고 나간다.
그러다 이내 들어온다.
문틈으로 복도를 보면 낙관이 보인다.
28. #복도(밤)
낙관이 종업원에게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가리킨다.
낙관 (비아냥 댄다) 이거 3시간 전에도 여기 있
었어. 내가 어쩌나 두고 봤지.
종업원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신경을 못 썼습니다, 사장님.
낙관 (종업원의 정강이를 카우보이 부츠 끝으
로 톡 찬다) ...이 호텔, 장사 잘 되면 아예 쓰레기
장이 되겠네, 그럼? 응?
종업원 죄송합니다.
낙관 복도 샅샅이 훑어. 기어다니면서...
종업원 네.
낙관은 복도 벽에 붙어서 있고, 종업원이 비닐봉투를 들고 복도바
닥을 구석구석 훑는다.
29. # 호텔 룸(밤)
경, 문틈으로 보이는 낙관탓에 끝내 나가지도 못하고 문을 닫고 방
쪽으로 돌아서는데, 눈을 감은 채 경 앞에 서 있는 동진.
동진 자기야. 어디 갔었어?
몽유병 환자처럼 경의 손목을 끌고 침대로 가서 눕는다.
그리곤 경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중얼댄다.
동진 우리 멍멍이.
연신 경의 머리칼을 쓸어 내리며 잠꼬대를 한다.
경, 그런 동진의 품에 안긴 채, 동진의 얼굴을 본다.
눈가를 덮은 동진의 앞머리를 귀 옆으로 넘겨준다.
30. # 치어리더 연습실(낮)
사방이 유리로 메워진 허름한 연습실... 남영동 한 건물에 있다.
연습실 한 켠, 조그만 책상에 나란히 앉아있는 복수와 미래.
책상 위엔 정성스런 김밥 찬합이 놓여 있다.
미래 (복수입에 김밥을 넣어주며 아무일도 아니
란 듯) 너 바람났다며?
복수, 놀랐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김밥을 물고 있다.
미래 (역시나 별일 아니라는 듯) 씹어. 씹으라
고 준건데 왜 물고만 있냐? 뼈다
구 물고 있는 개새끼같다.
복수 (겁에 질린채) 기집애가... 개새끼가 뭐야
아?
미래 (헤죽) 개새끼나 기집애나.
복수 (긴장이 풀린 듯 애교스레) 아우, 기집애.
미래 (손목에 찬 경의 시계를 보이며 미소) 이쁘
지?
복수 (미소) 음, 손목 가는 것 좀 봐, 기집애.
미래 (난데없이) 걘 이쁘냐?
복수 (다시 긴장) 누구?
미래 (톡 쏜다) 누군진 니가 알지, 내가 아냐?
복수 (짜증) 에이씨, 진짜. 너, 아무 껀수도 없
지? 그냥 틱 던져보는 거지? 그 러구나서 별거 없
으면, 응? “아님말구” 그럴라 그러지?
미래 (무심하게) 아님말구. (다시 복수의 입에
김밥을 넣는다)
복수 (어이없다.) 그럴 줄 알았어.
미래 (듣지도 않는다) 복수야. 바람피는 놈은, 소매치기보
다 더 드런 놈이야. 넌 그것만 외고 다녀.
복수 (볼멘소리) 그 말할라구 불렀어, 나?
미래 아니, 김밥 멕일라구.
복수 (삐졌다) 김밥에 금 넣었냐? 그걸 먹으라
고 여기까지 오게 만드냐? 똥개 길들이냐?
미래 (다정하다) 너 주고 싶어서 만들었잖아, 내
가.
복수 누가 주고 싶으래?
미래 (찬합 뚜껑으로 복수의 머리를 친다.) 먹
어.
복수 (인상을 찌그러진다.) 참기름이 많이 들어
갔나 봐.
미래 느글거려?
복수 (여전히 인상을 구긴채) 아니, 고소해.
미래 앙탈을 부리고 지랄이야. (김밥을 먹는 복
수의 모습이 좋다. 가만히 턱을 괴며) ...내가 안
바쁘면... 널 여기까지 오라겠니? 내가 니 똥꼬에 매달려
다니지. (가만히 복수를 본다)...복수야.
복수 왜?
미래 (진지하게) ...그래주지 못해서... 미안하
다. ...바빠서, 미안하다.
복수 ...
미래 (복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치 어린 아
들을 다루듯. 그러나 참 상냥하 다.) 그러니까...
오랄 때, 재까닥 와. 니가 여기 오는 건, 내 접대 받으러
오는 거니까.
복수 응.
미래 근데, 안 오면...
복수 난리 부르스가 나지.
미래 그게 아니라... (눈을 내리깐다) 너, 죽어.
완전 골로 가. 알았지?
복수 지 서방한테 싸가지없이... 나, 일하러 가
야 돼, 지금.
미래 그, ...일 말이다... 1년 안에 은퇴하는 방향
으로 가자.
복수 놀구 있네.
미래 노는 건 너지. 지금 니가 하는 일은, 일이
아니라 노는 거야, 남의 돈으 루... ...그러니까,
은퇴 준비해라. 내가 먹여 살릴테다,너. 내 통장 봤지?
복수 아니.
미래 봤잖아.
복수 안 봤다니까.
미래 나 잘때, 니가 내 통장 훔쳐보는 거... 내
가 다 봤어.
복수 ... (버럭) 그걸 왜 지금 말해? 쪽팔리게.
미래 그러니까, 멋진 년이지. 알거 다 알고두,
후진 새끼 하나 사람 만들라구. ...복수야. 그 통장
갖구, 우리 잘 살자. 1년 후면, 그 돈 찾을거다.
복수 미래야.
미래 왜?
복수 너, 나 사람 만들어서 모할라 그러냐?
미래 델구 살라구.
복수 날 모하러 델구 사냐?
미래 너처럼 만만한 게 어딨어?
복수 그게 좋아?
미래 응. (복수의 손가락을 만지작 댄다) 난 딴
놈들은 다 싫어. 쥐뿔도 아닌 것들이 나한테 개
기는 게 싫어.
복수 ... 니가... 부자집 딸년이 아니라 다행이
다. 부자년이었으면, 증말 재수없 는 얘기다.
미래 그렇다, 응? 내가 부자였으면 너 같은 놈
안 만났겠다, 그지?
복수 그르지.
미래 ... (생각에 젖는다. 조용히) 그럼 참, ...불
행했을거야, 나. 그지? (눈매가 촉촉하다)
복수는 급작스런 미래의 진심에 할 말을 잃었다. 말문을 잃은 채,
미래의 애잔한 눈만 바라본다.
복수 이따가... 현지 데리구 야구장 갈까?
미래 (의외의 제안에 놀라다가 사르르 미소)
너, 현지, 무섭잖아.
복수 싫음 말구...
미래 현지한테 연락 해 둘게. 햄버거 집에 있으
라 그럴께, 응? (볼에 뽀뽀)
이 때, 치어리더들이 들어온다.
복수를 향해 우르르 몰려 와서 복수를 에워싼다.
치어리더1 (복수의 등을 치며) 복수 왔네.
치어리더2 복수, 밥 먹어?(복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랑 같
이 먹지 그랬어. 냉 면 먹었는데, 우린.
치어리더3 나두 하나만... (김밥을 집어 먹으며) 자주 좀 와, 복수
야.
치어리더4 (목을 감으며) 우리 연습, 구경하러 온 거야, 고 복수?
미래 (복수를 만지는 손들을 치우며) 고만 좀 주
물럭 대, 이것들아.
치어리더짱 (손뼉을 치며) 얼른 준비들 해라. 복수 좀 냅두고...
치어리더들이 홀 중앙으로 모인다.
복수 (치어리더 2,3을 가리키며) 미래야, 쟤네
가 나보다 어리지 않냐?
미래 짱 빼곤 다 니 동생이지? (부리나케 치어
팀 쪽으로 간다)
복수 (가만히 바라보다 치어리더 4에게) 야, 근
데 넌 누구냐? 난 너 모르는 데?
치어리더4 나두 너 몰라. (혀를 낼름)
복수 (어이없다. 중얼대며 문쪽으로 간다) 이런
식으로 자꾸 갑빠 무너지면 안 되는데...
미래 경마장으로 가?
복수 경마장?
미래 요즘 꼬붕이 거기서 놀던데?
복수, 고개를 갸웃하고 나가려는데, 음악이 시작된다.
치어리더들, 어느새 옷을 벗었다. 얇은 옷들로 몸매가 드러난다.
치어리더 짱의 구령에 맞춰 안무 시작.
복수, 머리 위까지 가랑이를 찢어대는 치어리더들을 보곤 헤롱대
며 다시 제 자리에 앉는다.
31. # 헬로우 모텔- 룸(낮)
전화벨.
동진, 숙취로 몸이 무겁다.
전화를 받는다.
동진 네에. ...지금 몇신데요? 근데, 댁은 누구시
죠? ... 호텔 안내요? 호텔에서 저한테 무슨 볼일
이 있으세요? (눈살) ... (전화를 끊는다) 왜 악은 쓰구
난리야. (인상을 긁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허탈) 아,
또 여관이네. (담배 를 찾는다) 담배두 없구...
문득, 침대 협탁에 놓은 쪽지를 본다.
경E 베드 테이블 위를 보세요.
동진 (본다. 숙취 제거용 드링크가 놓여 있다.
쪽지를 본다)
경E 드세요.
동진 (드링크를 먹는다)
경E ...강아지, 꼭 돌려 드려요. 사실, 다른 강
아지 사서 드릴 수도 있어요. ... 다시 정 붙이고 사
랑해 주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데... 근데...
음악은 꼭 천재만 해야 하나요?
동진, 부시시 몽롱하게 쪽지를 덮는다. 은근히 미소가 돈다. 다시
쪽지를 편다.
경E 네?
동진, 경에게 호감이 간다.
32. # 경마장(낮)
복수가 경마장 안을 두리번대고 있다.
꼬붕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기수들의 경주가 막바지에 이르고 승부가 가려진다.
투기꾼들의 환호와 실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일군의 관객이 빠져 나간 자리에 꼬붕이 웅크리고 앉아 머리를 쥐
어 뜯고 있다.
꼬붕, 벌떡 일어난다.
복수, 꼬붕의 뒤를 밟는다.
33. # 경마장 주차장(낮)
꼬붕이 한 남자에게 다가가 사정을 한다. 중고차 매매업자다.
주차장 한켠엔 중고차 매매 팻말이 붙어있다.
꼬붕 아저씨. 100은 더 쳐 줬어야 해.
매매업자 왜 이러셔? 한 시간 전에 흥정 다 끝난건데. 우리 더티
하게 굴지 맙시다.
꼬붕 에이. 옆 사람두 아저씨한테 나랑 똑같은
차 팔았다는데... 나보다 100 더 받았다 그러드라.
매매업자 아저씨. 차 판 돈 다 날렸나 분데, 이러지 마아. 나두
피곤해.
꼬붕 에이, 의리 없이.
복수 (꼬붕앞에 선다) 뭐냐?
꼬붕 (놀란다)... 형.
복수 뭐냐고? (매매업자에게 다가간다)
꼬붕 (소리지른다) 바가지 썼어. 이 놈이 사기쳤
어.
매매업자 ...(실소)
강E 뭐야? (어느새 그들 앞에 나타났다)
매매업자 사장님.
강 (복수와 꼬붕을 번갈아보곤 지갑에서 10만
원짜릴 꺼내 준다) 야. 택시비 다. 가라, 인제.
복수 (강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싫다면?
강 싫어?
복수 싫다.
강, 기다릴 것도 없이 복수를 엎어치기 한다. 유도 유단자 솜씨다.
바닥을 뒹구는 복수. 강, 다시 한번 멱살을 잡더니 패대기. 또 패대
기.
널부러진 복수.
강 거 봐. (돌아서려는데)
복수, 강의 바짓 가랑이를 붙잡는다.
강, 다시 한 번 복수의 등쪽을 감아지며 패대기.
복수, 널부러지다가 다시 강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강 얘 봐라.
다시 한번 패대기... 꼬붕은 놀라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복수가 강의 다리를 문다.
34. # 꼬붕의 승용차 안(낮)
운전을 하고 있는 꼬붕
꼬붕 형. 많이 아퍼?
복수 (뒷좌석에 널부러져 있다) 말 시키지 마,
새꺄.
꼬붕 ... 고마워. 내 차 찾아줘서...
복수 말 시키지 말라 그랬지?
꼬붕 ...근데... 그 사장두 완전 또라이다. 노력
이 가상하다구, 그냥 차를 줘 버 리냐? 또라이들 끼
린 통하나 봐, 응?
달리는 승용차의 차창 밖을 바라보던 복수의 눈에 경의 버스 정류
장이 보인다.
문득 정류장 앞에서 경의 모습이 스친다.
복수, 문을 벌컥 연다.
꼬붕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형.
37. # 패스트푸드점(해질녘)
강아지를 안고 있는 현지.
강아지에게 햄버거를 먹이고 있다.
현지 (중얼중얼) 시간만 안 지켜봐라. (강아지
에게) 확 물어 버려, 응?
38. # 버스 정류장(해질녘)
복수, 바삐 정류장 앞에 와 섰지만 경이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 거리다가 실망한다.
이 때, 버스가 와 선다.
39. # 버스 정류장 앞 편의점 안(해질녘)
경이 음료수를 사들고 문을 나서려 할 때, 정류장 앞의 복수를 본
다. 활짝 웃는다.
복수의 얼굴에 상처가 나 있다.
경, 카운터 옆에 일회용 반창고를 사들고 바삐 문을 나선다.
40. # 버스 정류장(해질녘)
한 노파가 지갑에서 동전을 꺼낸다. 지갑안에 지폐가 두둑하다.
노파는 지갑을 가방에 도로 넣으며 정차한 버스 앞으로 가 선다.
복수도 노파의 뒤에 선다.
노파가 올라 타려는 순간 복수의 손이 노파의 가방속으로 들어간
다.
이 때, 복수의 손목을 잡아채는 손.
복수가 돌아보면 경이다.
경의 눈가에 살얼음이 인다.
41. # 패스트 푸드 점 앞(해질녘)
강아지를 들고 선 현지의 표정은 불만에 가득차 있다.
강아지가 낑낑댄다.
강아지를 도로에 내려놓는다.
도로를 뛰어가는 강아지.
놀라는 현지. 덩달아 뛰어간다.
현지 야, 어디가?
42. # 경의 버스 정류장(해질녘)
버스가 떠난다.
버스가 떠난 그 자리에 경과 복수가 마주섰다.
경의 분노어린 눈망울과 복수의 난처한 눈빛.
경 ...
복수 ...
경 ... (의심의 눈초리로 나직이) 나, ...아저
씨 봤어요. 여기서.
복수 ... (놀란다)
경 내 뒤에 서 있었죠?
복수 ...(고개 숙인다)
경 지갑을 잃어 버렸는데... 혹시... 그거 아세
요?
복수 ...
경 네?
복수 ... 알아요.
경 (입술을 깨문다. 눈물이 흐른다.)알아요?
복수 알아요.
경 (복수의 뺨을 거세게 후려친다)
복수 (묵묵히 서 있다)
경 (다시 한 번 더 힘껏 후려친다)
복수 (휘청 뒤로 넘어간다)
경 (넘어진 복수를 바라보며 눈물 흘린다)...
너 땜에, ...내 친구가 죽었어. 이 나쁜 놈아. ...개새
끼야.
경, 쓰러져 있는 복수를 보며 엉엉 울다가 손에 들고 있던 일회용
반창고를 복수의 얼굴에 던진다. 그러다 얼핏 의아한 눈초리로 복
수를 본다.
복수, 그렇게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
43. # 야구장(해질녘)
경기종료.
관중들과 치어리더들이 빠져 나가고 있다.
미래, 혼자 남아서 관중들을 두리번댄다.
44. # 거리(해질녘)
현지가 울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다.
현지 강아지야. 어딨어? 잉잉. 내 털장갑 좀 찾
아줘요. 앙앙. 이 똥개야아. 앙 앙.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 앙앙 소리높여 울어댄다.
철없는 막내같다.
45. # 응급실(밤)
복수, 눈을 뜨면 하얀 병원이다.
머리가 아프다.
눈 앞에 경이 서 있다. 아니다, 간호사다.
복수, 다시 한 번 의식이 혼미해진다.
46. # 경의 방(밤)
방으로 들어오는 경.
침대 위에 놓인 원피스. 바이어스를 두른 목둘레 앞섶엔 작은 리본
이 달렸다.
경, 원피스에 무관심하다. 바닥에 떨어 뜨려 놓고 침대 위에 올라
간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옥.
인옥 (부리나케 들어오더니 원피스를 집어든
다) 오늘, 방 안 닦았어어. (원피 스를 턴다)
경 ...(멍청)
인옥 (경에게 다가가 앉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다.) 엄마 없는 동안, ...아빠한테 많이 깨졌어?
경 ...(멍청)
인옥 맞았어?
경 ...(멍청)
인옥 (걱정스레) 벳뿌에서 온천하는 내내... 개
운치가 않드라, 어쩐지. ...근데... (멍청한 수다) 역
시 물은 좋드라. 만져 봐. 죽여. (팔을 들이민다)
경 ...(멍청)
인옥 ...그리구...(엄마가 아니라 친구같다) 원피
스 이거 좋은 거야아. 아무데나 쳐 박아 두지마.
일본애들이 이런 거 좋아한대. 그러니까 니가 입어야지.
너 꼭 일본애 같이 생겼잖아.
경 ...(멍청) 얼만데?
인옥 7만엔. 그럼, ...한 70만원 하나부다, 그
지?
경 ...
인옥 ...표정이 뭐 그래?
경 엄마.
인옥 응?
경 엄만 왜, 리본 달린 옷만 사와?
인옥 (원피스를 옷걸이에 걸며) 이쁘잖아.
경 리본에 미쳤어?
인옥 ...응?
경 리본에 미쳤냐구.
인옥 ...
경 응?
인옥 ...(경이 기분이 심상찮다. 일어선다) 엄마
그만 나가 볼게.
경 리본에 미쳤냐니까?
인옥 (울음이 터진다) 왜 나한테 그래? 내가 죽
였어, 니 친구?
경 ...
인옥 ...(민망하다) 불 꺼줄까? (불을 끈다)
경 ...(목소리가 떨린다) 내가 죽였어.
인옥 ...경아.
경 (어둠에 가려 표정을 볼수가 없다) 근데...
친구얘긴 하지 말지 그랬어? 난 벌써 잊었는
데...
경을 바라보고 선 인옥.
47. # 야구장(밤)
불꺼진 야구장.
치러리더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운동장을 바라보는 미래.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다. 슬픈 눈빛으로 시계줄을 어루만진다.
입술을 깨무는 미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미래 복수새끼, 죽었어. ...(눈물이 흘러 내린
다. 까만 마스카라가 범벅이 된다. 슬프다) ...이런
적, 없었잖아아, 복수야. (눈물을 훔치곤 가만히 운동장을
바라본다) 나, 왜 이렇게 불안하냐?
미래의 볼을 타고 눈물줄기가 이어지고 미래의 얼굴은 지워진 화
장으로 얼룩배기가 되었다.
밤하늘이 깊어진다.
48. #병원(밤)
어렴풋이 눈을 뜨는 복수.
복수 (혼잣말) 뭐야, 쪽팔리게...
복수, 은근슬쩍 나가려는데... 복수의 팔을 붙잡는 레지던트.
복수 (눈을 부라리며 위협적으로) 어? 왜 이러
셔?
레지던트 (맹하니) 나랑 얘기 좀 해야 되는데?
복수 치료비, 내구 갈거야, 왜 이래? ...(째린
다) 도망 안가.
레지던트 치료빈 나랑 상관 없는데? (사진을 들고) 일루 와 봐
요.
복수 (쭐래쭐래 쫓아간다)
레지던트 (스테이션 한 켠 형광판에 사진을 건다) 자, 설명 잘 들
어요? 네? 이게 환자분 뇌거든요. 이 안에 검
은 거 보이시죠?
복수 보면 아나, 뭐? 그래서, 한 마디로 뭔데요.
레지던트 ...암이요.
복수 ...
레지던트 (조심한다) 뇌종양이요.
복수 ...
레지던트 ...(미안한 눈빛으로 복수를 본다)
복수 (너무도 무심하게) 그래서... 죽어요?
레지던트 ...
복수 (낄낄 웃는다) 아니, 죽냐구우?
레지던트 ...그럴 수도 있어요.
복수 (어이가 없다) 하 참. 아, 뭐야아. 하 참...
아, 몰라. 나 갈래. (비실비실 돌아서는데 기가
막혀서 걸을 수가 없다. 입만 벌리고 있다가 히스테릭
컬하게 소리친다) 그런게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