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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과 한은 자정을 넘기고서야 희선의 재촉에 마지못한 듯 돌아갔다.
새벽이 되자마자 일직의사의 간단한 검사를 받고 희망 원으로 돌아온 희선과 희연은
교구청에서 택지가격을 재조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희건은 일요일 새벽에 교구청 사무장의 전화를 받았는데 내용인즉,
희망 원 신부님의 요청에 택지 계약서를 작성 하던 중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요건을 찾아냈으니, 조정된 가격으로 월요일에
계약하자는 것이었다.
그 가격은 오천만원이 하향된 가격으로 희건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형제들은 불시에 고민에서 벗어나 축제 분위기로 빠져들었다.
어찌되었든 희망원의 소유권이 완전히 형제들에게로 귀속되는 기쁜 날이었다.
희령이 뛰어나와 희연의 양쪽 볼 살을 잡아당기며 ‘이 사고뭉치야’하고 흔들어댔다.
희연은 ‘아야, 아야’ 하면서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희선이 희건에게 ‘별 희한한 일도 다보겠네 땅값이 내려갔다는 소린 들어보지도 못한 괴사인데‘
하고 중얼거리자, 희건이 ’글쎄 말이야 그래도 한시름 놨다. 다행이야‘ 하고 대답했다.
희랑이 희연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봐, 우리 엽기공주가 사고치지 않았으면 2년 후엔, 오른 가격으로 사야 했을지도
모르잖아 다들 희연에게 고마워해야 돼. “
희랑의 말에 형제들이 ‘우’하고 야유를 퍼부었다.
희령이 삐죽거리며 희연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뭐가 고마워, 초상집 분위기 만들고, 지가 뭘 잘했다고 병원으로 실려 가서
형제들을 기절초풍하게하고 밤잠도 설치게 했는데, 오늘 설거지는 다 희연이 시켜.“
희령의 구박에도 희연은 ‘헤헤’ 하고 웃기만 했다.
희망원의 내 집 마련 기념 운동회가 열렸다.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희건, 희선, 희랑이 빠진 26명이 13명씩 편을 갈랐다.
종목은 족구, 피구, 제기차기, 공기놀이 4종 경기.
희건이 이긴 팀은 탕수육과 짬뽕, 진 팀은 달랑 자장면 한 그릇이라고 하자
모두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대표 두 명이 가위 바위 보로 가기 팀을 뽑아갔다.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팀별로 수군수군 작전을 짰다.
깍두기 전담 희연도 오늘은 당당하게 백군의 자리를 차지했다.
희랑의 구령아래 준비체조를 끝내고 이판사판의 열기로, 남자 형제들의 족구가 시작됐다.
총 29명중 남자 형제가 18명 희건과 희랑이 심판으로 빠지고 16명이 8명씩 편을 갈라
족구장에 자리 잡고서서 파이팅을 외쳤다.
모두들 자기 집을 가졌다는 기쁨에 흙바닥을 뒹굴면서도 웃음들이 가시지 않았다.
스물아홉명의 행복한 기운이 희망원을 둥실 하늘로 떠 올리는 것 같았다.
열심히 응원하는 희연을 희령이 슬그머니 끌어당겼다.
“왜?”
“야, 어제 내가 닉 사이먼이란 사람한테 너 입원한 병원 가르쳐 줬거든?”
“응, 어제 병원으로 왔었어.”
“뭐? 언니 오빠한테 안 혼났어?”
“응, 언니가, 천천히 사귀어 보라고 했어”
희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엽기, 너 정말 엽기다. 이제껏 남자는 꼴도 안쳐다 보더니 처음 사귀는 사람이 외국인이라고! “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던 희령이 ‘으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희연을 탁 쳤다.
“야!, 저기 들어오는 저 사람들 봐, 혹시 저 중에 있어?”
돌아보니 닉과 한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희연이 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은 희건에게로 가고 닉이 희연을 향해 걸어왔다.
잠시 멈칫하던 족구경기가 다시 진행되었다.
희령이 뛰어가더니 긴 의자를 질질 끌고 왔다.
희령이 닉을 의자에 앉히고 희연도 앉히더니 자신도 희연 옆에 탁 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닉 사이먼씨죠? 제가 전화 드렸던 희령이예요”
“아! 희령씨. 고맙습니다”
희령이 노골적으로 닉의 얼굴과 몸매를 뜯어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닉이 까다로운 희령의 눈을 통과하게 좋아서 희연이 방실방실 웃었다.
희연이 닉에게 희령이 스타일리스트고 닉이 희령의 심사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닉이 희령에게 ‘땡큐’ 라고 말하자, 희령의 눈이 반짝이더니
영어로 이것저것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실력이 녹슬지 않았나. 시험이라도 하는 듯 별별 질문을 다 퍼부었다.
심지어 밥 먹을 때 밥을 먼저 먹느냐, 국을 먼저 먹느냐 까지 물었다.
희령이 질문할 때마다 희연은 연방 ‘아!’ 하며 안타까워했는데
자긴 왜 그런 것을 물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것 같았다.
희령이 질문하면, 희연이 더 궁금한 표정으로 닉을 쳐다봤다.
닉이 대답하면, 희연은 희령을 쳐다보며 얼른 다른 걸 물어 보라는 듯이 눈을 반짝거렸다.
희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희령은 온갖 기상천외한 것을 물었는데
중간에 앉은 희연의 머리가, 감탄으로 끄덕이며 테니스를 관람하는 관객처럼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 다녔다.
급기야, 잘 때 입고 자느냐, 벗고 자느냐를 물으며 질문이 끝이 났다.
닉은 놀라서 눈썹을 꿈틀했고 희연은 ‘야!’ 하고 희령에게 소릴 질렀다.
희령은 뻔뻔한 얼굴로, ‘대답하기 어려우면, 노코멘트하면 되지’ 라고 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닉이 희연에게 중얼거렸다. ‘저런 아가씨가 있는데 희연의 별명이 엽기공주 라고?’
희연은 닉에게 그 별명은 진짜 오해고, 자기는 절대로 엽기가 아니며,
단지 형제들이 재미로 붙인 별명이라고 우겨댔다.
형제들 때문인지 희연은 닉의 손을 못 잡고 양복자락만 만지작거렸다.
희령이 뛰어와서 제기 차러 가자고 희연을 끌고 갔다.
한이 닉에게로 와서 말했다.
“해결됐다고 도움은 필요 없답니다.”
“해결되지 않았어도 필요 없다고 했겠지”
“아마 그랬을 겁니다.”
희연이 제기를 들고 마당 중간으로 나왔다.
그녀는 바지를 종아리까지 둥둥 걷어 올리고,
얼굴에는 굳은 의지를 내보이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남자처럼 제기를 찼다.
닉과 한은 희연의 제기 차는 실력에 깜짝 놀랐다.
몇 개차고 떨어지겠지 한 제기가 거의 백 개 정도가 되어서야 떨어졌다.
자기 차례를 끝낸 희연은 나머지 사람들이 차는 걸 다 지켜보고, 백팀이 이기자
기쁜 얼굴로 닉에게 돌아와 한을 보고는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고 인사했다.
닉이 둥둥 걷은 종아리를 쳐다보자 얼른 바지 단을 내리며 ‘헤헤’ 웃고는 옆에 앉았다.
닉 옆에서 종알거리던 희연은 다시 피구대회에 끌려 나갔다.
한은 희연의 이상한 피구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형제들은 희연을 맞추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공을 다른 방향으로 던졌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듯 사색이 된 희연은, 전혀 딴 곳으로 가는 공을,
마치 방향을 예측이나 하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쫒아 다녔다.
같은 팀 사람들은 공은 상관 안하고 희연이 뛰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반대편은 희연이 없는 쪽으로 공을 던지면, 비명을 지르는 희연이
공이 지나는 곳으로 아슬아슬하게 교차해 다녔다.
결국 그녀는 공을 향해 돌진해서는 죽었다.
희연이 죽어나오자 잠시 피구가 중단되고 모두가 배를 잡고 웃느라 떠들썩해졌다.
죽어서 수비 자리로 간 희연은, 자신이 수비임을 망각하고 공만 보면 움찔거리며
도망 다녔는데 그럼에도 그녀가 몇 번 더 공에 얻어맞고서야 경기가 끝났다.
오늘의 내기는 희연 팀인 백팀의 패배로 끝이 났다.
희연이 닉에게로 돌아와 ‘쳇, 피구는 정말 싫어요. 모두 나만 괴롭힌다니까요‘ 하는 말에
큭큭 거리던 닉마저 배를 잡고 웃었다.
한참 웃던 닉이 희연을 꼭 안아주었다.
잠시 후 자장면 네 그릇이 차려진상에 닉, 희연, 한, 희선이 둘러앉았다.
희연이 닉에게 자장면 비빌 줄 아냐고 묻자,
닉이 젓가락을 딱 가르더니 능숙하게 비벼 희연의 자리에 놓아 줬다.
신나게 자장면을 먹던 희연이 다른 상을 넘겨보며 부러워했다.
희령이 탕수육 하나를 들고 뛰어와 ‘아’ 했다. 희연이 신나서 ‘아’ 하니까,
희령이 자기 입에 쏙 넣고는 ‘냠냠’ 하면서 돌아가 버렸다.
희선이 안됐다는 투로 말했다.
“희연아, 넌 매일 당하면서 거기서 ‘아’가 되니? 참 신기하다”
희연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자장면을 볼이 미어터지게 집어넣었다.
닉이 냅킨을 들어 희연의 입가에 묻은 자장면을 닦았다.
희연은 스르르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면서 기다리다가, 다 닦은 닉이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치자, 눈을 반짝 뜨고는 다시 신나게 자장면을 먹었다.
별거 아닌 장면에 괜히 한과 희선의 얼굴이 붉어졌다.
멀리서 희령이 탕수육을 한 조각 들고 ‘희연아’하고 부르자 희연이 벌떡 일어나 쫓아갔다.
희선이 말했다.
“쟤가 저래요. 가족 앞에서는 언제든 바보가 되고, 몇 번이고 속아주죠.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달팽이처럼 껍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답니다.“
희연이 탕수육 한 조각을 들고 와서 닉에게 ‘아’ 하라고 했다.
망설이던 닉이 ‘아’ 하자 희연도 자기 입에 쏙 집어넣고 ‘냠냠’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 닉은 희건에게 신부님을 뵙겠다고 청했다.
면담 후 닉은 희건, 희선과 얘기를 나누고 희연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주 수요일 닉은 영국으로 돌아갔다.
희건은 토지매매의 서류 절차을 끝내고, 형제들에게
여태껏 모아오던 개인 수입의 50퍼센트를 20퍼센트로 내리겠다고 통보했다.
직업을 가진 열여섯 명의 형제들에게, 20퍼센트는 나머지 형제들이 졸업할 때까지
유지할 것이며, 개인적인 공간을 가지고 싶은 사람은 독립하도록 허락했다.
형제들은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며 독립생활을 설계했다.
아직 고등학생과 대학생인 열세명의 형제들은 희망원에서 졸업을 마칠 것이고,
희망원의 2백 평 택지는 희건의 계획대로,
시간이 흐른 후에는 멋진 연립주택으로 바뀔 것이다.
희연이 받은 일억은 희건이 직접 이옥이 여사를 방문해서 돌려줬다.
희연은 닉이 돌아간 한 주를 이력서를 발송하는 일로 보냈다.
그다음 이주일은 면접 보러 다니는 것이 희연의 모든 스케줄이었다.
계절은 칠월로 접어들어 점점 더워지고 있었고,
닉과 희연은 저녁 9시에서 10사이의 전화통화로 테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영국의 닉에게는 점심시간이었는데, 희연은 면접 본 일과 조건과 전망에
대해서 종알거리고, 원거리 키스를 인사로 하루를 마감했다.
몇몇 조건이 좋은 회사에서 합격통지를 받은 희연이,
두 개로 선택후보를 줄여놓고 고민에 잠겼다.
한 곳은 연일그룹이었고,
다른 한 곳은 조금 작은 규모의 단일기업인 해주산업이었다.
해주산업의 입사조건인 완벽한 영어와,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영국으로의 수시 여행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대목이
희연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결국 희연은 해주산업으로 마음을 정했다.
출근 날짜를 잡은 희연이 희건에게 해주산업으로 결정했다고 보고하자
희건은 세간에 이미지가 좋은 기업이라며 희연의 합격을 축하해줬다.
희령이 입사 축하 선물로 딱딱해 보이는 도수 없는 검은 뿔테 안경과
유행에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답답해 보이는 여름정장을 선물했다.
그리고 아무리 흔들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사무실용 머리 올리기 방법을
희연이 숙달 될 때까지 연습시켰다.
희령은 이 패션 콘셉트를 ‘관심 꺼주세요’라고 했다.
첫댓글 '관심 꺼주세요!!' ㅋㅋㅋ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ㅎㅎㅎ 감사, 감사합니다.^*^ ^0^
다음편이 더욱 기대되는군요 재미있어요 ^^*
감사합니다.^^ ^^ ^^
정신없게 굴러가는 날들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희연이 빨리 닉을 다시 만났으면 해요
예, 급하게 넘어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