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사경을 통하여
화정교당 김영월(김수현) 010-2211-2750
법문사경시작한 지는 4년이 조금 넘었고 11번째 사경중.
5년 전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컴퓨터 앞에 근무시간 내내 앉아 있다. 그러다 보니 한가한 시간에 인터넷의 기사를 보는데 너무 익숙하다. 그러면서 실시간 바뀌는 기삿거리를 통해 나의 일인 것처럼 기사거리로 화제를 삼아 저녁시간에 가족에게 전달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남의 얘기들을 주고받고 생각을 말하는 게 나의 저녁시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직장을 다니고, 일요일 마다 교당에 가고, 집안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간다.
유일한 휴식 시간이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법문사경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회원 가입하여 법문을 사경하다 보니 컴퓨터 앞에서 법문 두드리는 재미가 생겨 직장에서 한가할 때면 법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내 키보드가 소리가 나서 옆에 일하는 직원에게 방해가 되는지도 민폐인지도 모르고 계속 두드렸다. 빨리 많이 쓰고 싶은 욕심으로 일관하다 보니,
옆의 직원이 “키보드 바꾸시는 게 좋겠다.”해서 알아차렸다. 타이핑을 하다 보니 조용히 일하는 데 많이 거슬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키보드까지 바꿔가며 열심히 사경에 매달렸다.
그러다 나의 취미생활과 유일한 휴식 시간이 드라마 보는 시간도 줄이고 사경을 하게 되었다.
법문을 새기며 사경을 하다 보니 알고 있던 내용과 단어의 차이도 생기게 되어 차근차근 법문을 찍게 되었다. 한 구절 한 구절 사경하며 뜻을 새겨보는 재미가 있고,
집에 가서 저녁식사 때 법문 사경 속의 기억나는 법문을 대화의 주제로 바꾸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그러다 디지털 대학 원불교학과에 등록하게 되었다. 강의를 들으며 수업하다 틈틈이 머리를 식힐 겸 법문을 사경하다 보니 진도가 더디게 되었다.
어느 날 교당에 갔는데, “언제 그렇게 법문을 많이 사경하셨어요? 교당 내 1등이던데요?” 하여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시작할 때, 먼저 시작한 교도님은 벌써 7번을 사경하였기에, ‘나는 언제 저만큼 따라 가냐?’하며 1등은 포기하고, 그냥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사경하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소성대의 법칙이 이런 때 하는 말이구나, 그 분이 이미 많이 법문사경을 해 놓았고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시간 나는 대로 꾸준히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밥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이 천천히 하면 되는 것임을 다시금 배우는 경계였다.
어떤 때에는 몇 줄만 쓰고 나올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한가하고 몸의 컨디션이 좋아 키보드가 잘 두드려지면 몇 시간을 쓴 적도 있다.
버스를 기다릴 때 법문을 궁굴리다 내가 탈 버스가 지나나는 줄도 모르고 빠져 있다가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웃은 적이 있다. 내가 버스를 타야 할 일과 법문을 궁굴리는 일을 두 가지 다 일심으로 챙겨야 하는데 법문에 몰입하다 보니 버스가 왔는데, 타야 된다는 생각을 잊은 것이다. 웃으며 다른 정거장으로 걸어갔다. 배차시간이 길어지니 다른 정류장에 가서 다른 버스를 타러 걸어가면서 오늘은 내가 운동하기를 싫어하니 이 경계를 통해 운동을 하게 만드는구나. 하고 웃으며 길을 잘 보고 걸어갔다.
특히, 대산상사님의 신심편 24장 법문 중,
대종사님께서 책 한 권을 맡겨(3년) 놓고, 10일에 한 번씩 갖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보라는 말씀이 없어서 열어보지 않았다고 하신 법문이다.
나 같았으면 궁금해서 몰래 열어보았을 것 같았다. 스승님의 말씀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지키시며 나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그 마음을 신심이라고 하는 것임을 느꼈다.
<교사>는 어렵고 재미도 없어 맨 나중에 쓰다가 원불교학과 과목을 수강하다 보니, 다음 사경 때에는 맨 먼저 쓰기도 하고, 이리저리 먼저 공부할 내용을 사경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예전>을 공부 중이라 먼저 사경하기도 하였다.
이래도 공부 저래도 공부, 아무도 뺏어가지 못하는 나만의 것이 있다는 자부심에 혼자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 재미를 느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법문사경 중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용어사전을 검색한다. 대답이 미흡하다고 여기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아본다. 어떤 때에는 용어사전보다 더 기막히게 답이 나와 있어 재미가 있다.
법문을 사경하면서 마음에 새겨지는 법문이, 똑같은 말씀인데 그때그때 느끼는 것이 다 다르다. 평소에도 자주 봉독하던 법문인데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오기도 하고, 예화들은 꼭 내가 그 자리에서 같이 앉아서 듣는 것 같이 그 법문을 하시는 장면과 상황들이 상상이 되기도 한다.
법문을 많이 사경하다 보니 자연히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설교 시간에 질문하면 답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교리 퀴즈 시간은 내 독무대나 마찬가지 이다. 그러니 교도들의 비난을 들을 적이 있다. “가만히 좀 있지,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좀 주지, 등등 .....”의 비난의 말을 듣고 ‘그래, 보림함축하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구나’로 알아도 모른 척 다른 교도님들이 말하기를 기다리다 아무도 모르면 그때 대답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사경할 때의 마음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우쭐해하고 자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은 법문 말씀을 단어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할 수 없는 나의 뇌의 한계에 놀라고 있다. 생로병사의 이치를 따라 점점 퇴화되고 있음을 느끼니, “젊을 때 공부해라”하시던 말씀의 뜻이 새겨진다.
법문을 사경하다 보니,
우리의 교전 전부가 내 마음을 사용할 때 갖다 쓰라는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교육받는 대로, 관습으로 전해오는 규칙을 다 내려놓고, 법문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접목하면서 경계마다 대조하는 공부하다 보니, 말씀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사무치고 새겨진다.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의 본의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중생들에게 알려주시려고 애쓰신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법문을 사경하다 보니 스승님들과 교단을 향한 신심이 더 깊어지고, 의심나는 단어를 궁굴리다 보니 깨달음이 생긴다. ‘경계에서 해탈하고 심신을 자유 한다’는 의미가 ‘이런 맛’을 말 하는구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황 따라 내 수준에 맞는 정도에서 보시를 하게 된다. 육신에 집착하는 나를 법문에 의지하고 실천하며 유.무념 대조로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얼음판을 디디듯이 늘 챙기다 보니 극락이 따로 없음을 맛본다.
자녀들도 내가 낳으려고 해서 낳은 게 아니고 지가 나오려고 움직이니, 내가 도와서 낳았고,내가 잘해서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이 아니라 건강을 타고난 것이어서 건강하고, 남편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주어 가정이 행복했음을 느끼니 모든 것이 은혜의 산물이다.
지금은 나의 기도의 주제가 항상 감사의 기도이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하루속히 이렇게 좋은 법을 갖다 쓰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다른 사람의 꼴을 잘 보는 공부를 잘 하려고 애쓴다. 만나지는 인연과 사사물물에 불공하여 연원지도에 더 정성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의 기도뿐이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법문사경을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첫댓글 공부하는 재미속에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