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 김 경숙
"이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착신이 정지된 전화입니다."
"이번엔 또 뭔 일이람?"
예전같으면 수도 없이 걸려왔을 전화가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불통인지라 수첩을 뒤적거려 그의 전화번호를
찾아가지고는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에서 지워져버릴 정도로 전화를
멀리 하고 살았으니 그의 전화번호가 기억속에 남아있을리가
만무하다.
질기고도 질긴 인연이라고 날마다 입버릇처럼 투정을 하고
살았더니만, 세월이 흐르긴 꽤나 흘렀는가 보다.
"나이도 어린 것이 너무도 함부로 한다."고 꾸짖을 양이면
자기도 40대만 되어보라고 으름장을 놓더니만,
8년 연하인 그와 알게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전 서른 아홉의
꽃다운 나이일 적이다.
당시 31세의 나이로 경상도 창원에서 사업을 하며 잘나가던
그가 하루 아침에 몇억을 털어먹고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분당 조선옥 오픈 실장으로 그 곳에 나타난 것이 악연이라면
악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쇠심줄 보다도 더 질긴
나와의 인연이다.
"제가 40세가 되면 누님은 48세가 되니 그 땐 우리가 같은
40대가 되는 겁니다. "
어서 40대가 되어 나와 동등한 위치에 서보고 싶어했던 그가
이 세상에 나서 누님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행운이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날 따르고 가까이 하고 싶어했으니
내 생전에 그가 내 곁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억에서 쉽게 잊혀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 자신이 거역할 수 없는 일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깡마른 체격에 성질은 칼칼하나 몸이 빠르고 약삭발라
일자리의 동반자로서는 어쩜 제격인지도 모를 그가
소식이 끊기어 가끔씩 사람 애간장을 태우다가도 얼마만에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는 것이 다반사다.
"때로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뻔 했다면서 이틀만에 깨어나보니
병원이더라며 천연덕스럽게 떠들어 댈 수 있는 남자,
"조심해야지. 매사에 신중성이 없으니 그 모양 아니야?" 할라치면
"절대로 죽진 않습니더. 누님 놔두고 죽을 수가 없습니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몰라 내가 당황했던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혔으니 휴대폰 하나를 가질 수가
있겠는가, 어린 놈들을 놔두고 남편이 사업에 망했다고 계집은
눈맞은 사내놈과 줄행랑을 놔버리고, 홀로되신 시골 어머님 곁에
두 아들을 맡겨놓고 객지에 떠돌고 있으려니 그 심정이야
오죽하랴 싶어 늘상 먹는 것 챙겨 먹이고 남편 옷 남아도는 것
몰래 챙겨다 입혀 가며 용기를 북돋아 주곤 하였었다.
베풀어서 무엇인가 돌려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베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는 날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날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하였고,
일을 하다 내가 힘이 들어 그곳을 떠나기라도 할까봐 몸을 아끼지
않고 일구월심으로 날 도와가며 성심껏 일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헤어져 떨어지게 되면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오곤 하였다.
내 명의로 휴대폰을 내어주어 시골에 맡겨논 어린 놈들과도 연락
을 하게 되었고, 급할 때마다 돈 빌려 쓰는 것은 다반사인데다
가져가면 그만인 것이 되어 버리고 마니, 남을 동정하다 고생하여
번 돈 떼어먹히기가 일쑤인지라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마음 다져먹고 어느날부터인가 냉정한 사람으로 돌아서버리려
찾지 말라 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그는 날 찾아오곤 하였다.
IMF다 불경기다 하여 남자들 일자리 얻기가 어려워지자 그는
노숙자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었었고 그럴 적마다 여지없이 날
찾아오곤 하였다.
"배가 고파 죽겠으니 밥이나 한 그릇 사주소."
오라 하여 식사 한끼 대접해 돈 10만원 쥐어주며 '고향 내려가
농사라도 지으며 살아라."해서 보내버리면
얼마 후에 또 찾아와 30만원만 꿔달라, 50만원만 꿔달라 하며
사정을 해 없는 돈 겨우 해서 보내버리기를 되풀이 하던중
어느 날은 찾아와 '이번엔 진짜 고향으로 갑니데이. 가서 연락
드리겠습니더'. 하고 간 이후로 소식이 없어 궁금하길래 전화를
걸었더니, 오늘처럼 그 때도
"이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하여 착신이 정지된 전화입니다."
그랬었다.
그러던 1년후 휴대폰을 바꾸려고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신용불량에 걸려 있어 휴대폰을 새로 할 수가 없게되어
알아보니 그 사람에게 휴대폰을 내어주었던 것이 요금이 연체
되어 어쩔 수 없이 기십만원에 해당하는 그 금액을 울며 겨자
먹기로 또 내가 해결을 하고 해지를 해야 했다.
가면 간다. 오면 온다.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연락이
두절 되다보니 '그럴 사람은 아닌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아님 죽었다든가 했겠지'하며 까마득히 잊혀지려 하던
어느 날,
"잘 계신겨? 오래간만 입니더."하며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아직 귀신 되지 않았습니더."
"참말인가?"
"어찌 제가 죽을 수가 있겠는겨. 아직 억울하여 죽을 수 없습메."
"나 아직 괴롭힐 일 남았는가? 나 돈 없으니 다른데 알아보우."
"에이 왜 또 그러시는겨? 나 미국 가서 돈 많이 벌어왔다."
"미국? 참말인가?"
"예이 인간아, 미국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휴대폰은
그렇게 요금도 안내고 내버려두고 가서 날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놔? 니 사람 맞나? 그 돈 다 언제 갚을겨? 돈 많이 벌어왔음
내 돈 다 갚아봐."
"에이 치사하데이. 조금만 더 참아주소. 다 되 가니께"
여전히 그는 큰 소리를 쳐왔고 금방이라도 돈 싸들고 달려올 것
처럼 그러더니 그 후로도 일자리를 부탁하네 어쩌네 하며
아쉬운 소리를 해왔고 마침내 영등포에 아는 사람 통하여 일자
리를 소개하게 되었었는데 몇년동안 잘도 박혀 있는다 싶더니
오늘은 또 뭔 일로
"이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하여 착신이 정지된 전화입니다."
하니, 명절도 돌아오고 하여 잘 지내고 있는지 목소리나 들어
보자 하였던 것이 괜히 마음만 산란하여진 것이 울컥하고 가슴
이 메여 오는 것은 또 웬 까닭인지,
뻔뻔스런 목소리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살아 그 목소리
다시 한번 들어봤으면 해진다.
"저 로또 당첨되어 떼부자 되었어요 누님~"하며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 그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있기나 한건지......?(08.02,03)
|
첫댓글 진짜 궁금해서 전화해보면 예쁜아가씨가 톡 튀어나와 들려주는 목소리는. 차라리 전화를 안해보았으면 잘있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서두, 착신금지라는 소리를 듣는순간 더 궁금해지지요. 마음편히 가지세요. 잘~살고 있겠지요. 즐거운 휴일되세요.
전화가 와두 가슴이 철렁하고 한참 동안 너무 조용하다 싶어 무슨 일 있는가 궁금하여 전화를 하면 '고객의 사정에 의하여 착신이 정지된 전화이다'라는..수 없이 반복되는 그의 고난의 세월이 엿보이는 듯하여 가슴이 메여오곤 하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어쩌면 내가 편하고자 만들어낸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 듯 싶기도 해요. 자신의 요청으로 정지가 된 전화이면 "고객의 요청에 의하여 착신이 정지가 되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올 것인데, 더 이상의 아쉬운 소리가 없는 것을 보면 저 자신도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양심적 무언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가슴이 메여와요. 제발 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 갖어봅니다.
예쁜 아가씨 상상할 그런 사치스런 처지는 아닌 것이 분명하와 안스러운 마음만 드네요.ㅎㅎ..지난번에도 2년만에 나타나 미국가서 아파트 한 채 벌어왔다 하더니 이번에도 또 말없이 외국으로 날랐으려나 싶어 그리되면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을텐데....언제가 되려는지 몰라도 내입에서 "니 뒤지지 않고 아직 살아있나?" 할 날을 기대하면서.... 미옥시인님 언제 구정 세러 가시나이까? 좋은 명절 되시옵소서.
왠지 가슴이 시려옴니다, 남의일이 아닌 모두의 일인듯, 휴-우.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 자신이 '착신이 정지된 전화'의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만,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는 이런 일들이 삶의 안타까운 단면을 말해주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총장님, 오늘 하루도 즐거우셨는지요?
당근,매일이 해피 뉴 데이,메리 크리스마스.
"Happy new everyday!" 이신 최총장님, 정말 부럽습니다--ㅇ,
언제나 달콤했던 님의 시처럼,,,,, 시인님 마음 또한 비단 같구려,,,,, 사랑하는 김시인님,, 나, 배고파,,,,, 김치찌게 한그릇만 사주소,,,,,,,, 돈 있으면 나도 10만원만 빌려주소,,,,, 돈있으면 나도 50만원만 빌려주소,,,,,,,,,,,, 사람이 일생을 살다가 보면 누구나 어려운일을 겪게되지요,,,,,,,,,,,, 존경하는 김시인님,,,,,,, 이제 김시인님 곁에는 내가 있으니 앞으로는 꼭, 제게 물어보고 하세요,,,,,, 그래도 물어보세요,,,,,,,,,,, 김시인님 다가오는 설날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시길 두손모아 빕니다,,,,,,,*
언젠가 한번 사주팔자를 보러 간적이 있었어요. 신내린지 얼마 안되어 신기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 가야 진실된 점을 쳐볼 수가 있다하여서 모든 일 뿌리치고 직장 동료와 함께 경기도 광주까지 달려간 적이 있었지요. 그 분이 점을 다 보고나서 제게 신신당부를 한 말이 있었습니다. 45세 이후로 사업운이 텄으니 사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동업은 절대로 하지 말고 남의 빚보증이나 외상장사 또는 돈을 빌려주지 말라 이르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절 너무나도 잘 알고 지적을 해줬던 부분이 아닌가 해서 웃어보곤 합니다. 전 돈빌려주고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럴 일이 있으면 꼭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安在翼 시인님께 여쭐까 합니다. 그런 도움까지 주시겠다 하니 참으로 난 든든한 동반자를 곁에 둔듯 흐뭇하기만 합니다. 참 고맙고 자상하기까지한 시인님....ㅎㅎ, 오늘도 행복바구니에 행복이 철철 넘치시는 하루 되시옵길요.^*^
설 연휴즐겁게 맞이 하소서!
고맙습니다. 바브시인님도 즐거운 한 때가 되시옵길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곁에 있어 즐거움이 배가 되시는 삼용이 시인님.....!
감사합니다,,, 인생철학 상담은 국번없이 0 번을누루세요,,, 安아무개 인생철학상담소
그리하옵지요. 安在翼 철학가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