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역사에는 If라는 가정은 없지만 역덕후에게 If라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고 싶어하는 그런 것 있잖아요..[알아서 상상]마치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제 또 할 지는 모르겠지만 게릴라성 토론을 하겠습니다.
19세기말에 조선은 개항을 했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물론 서구 열강이나 일본에 비하면 약했지만요.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배함에 따라 동아시아의 패권이 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1899년 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고 1900년에 연합국 8개국(독일, 미국, 이탈리아, 일본,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랑 청+의화단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연합군이 대승을 거두었죠.
그런데 이 전쟁에 조선이 연합군에 참전했으면 20세기 역사는 어떻게 변경되었을까요?
조선이 끼어들여 단, 100명이라도 참전해서 9개국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선은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이여서 일본에 외교권같은 주권을 박탈당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참전을 할 명분이 있는 것이죠.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이지만 조선의 국위선양을 해서 적어도 주권은 강탈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러일전쟁은 발발하지 않했을 것이고 일본은 조선 대신 중국을 침략했을 것입니다.
조선도 중국을 일본과 함께 냠냠했을 것이죠.;-_-;
그렇다가 조선하고 일본하고 대연합을 해서...;
태평양 전쟁때 공동으로 미국땅의 뺨을 때리다가 사이좋게 침몰 할 듯...;-_-;
뭐 아닐 수도 있죠.. 일본의 삽질 원인 중 하나가 대한독립군의 효율적인 테러[-_-..]에 의해 쓸만한 인재들이 다 죽어벼러서 어중이떠중이들이 요직을 차지한 것이니깐요.
인재들이 요직을 계속 이어받아서 미땅..[..]의 뺨을 때리는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재미있게 흘려갈 듯 합니다.
그럼 중국땅에 있는 한 사람은 인터넷[..]에 "만약 조선이 의화단 전쟁에 참전을 하지 않았다면?"라는 주제로 역사토론을 하겠죠. 뭐..-_-;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p.s 그런데 패러럴 월드에선 이런 일이 충분히 있을 듯.-_-;
첫댓글 러일전쟁 대신에
일본 曰 "러시아를 칠 길을 빌려달라."(러시아가 중국에 침바르기 전에 먼저 쳐버리자. 시베리아에 군대도 얼마 없을건데)
조선 曰 "빌려주는 대신 사용료 내라."
이렇게 일본이 정벌가서 러시아를 밀어내고, 조선은 연해주를 찾는다. 이런 역사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만주지방 통제력을 잃은 청은 조선에게 만주의 지배권을 넘기게 되고,,, 고구려 영토 회복.(희망사항입니다. 이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p.s 웬지 패러럴 월드에서는 여몽 일본 정벌이 성공해버렸을것 같습니다.
1885년 부터 구미열강들한테 여러차레 조로밀약설이 퍼지졌는데 대충 내용이 러시아한테 원산만을 조차하고 대가로 러시아로 부터 지원을 받아서 청나라로 부터 간섭을 물리칠려고 한다는 것 때문에 구미열강과 일본에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고 합니다.(러시아의 남하정책 저지문제) 그래서 나온게 거문도사건(원산만에서 러시아 함대가 나오더라도 거문도부근 해역에서 영국함대가 저지한다는 생각으로)입니다. 이것으로 일본이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구미열강들에게 어필할수있고, 왜 조선을 자신들이 합병해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어필할수있는 기회인데(남하정책저지) 조선과 손잡을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의화단운동때 구미열강들이 군을 파견하는데 경비와 시간을 이유로 대규모로 보내지 못해서 육군의 주력을 현지조달방법하는 것 중 하나가 일본을 끌어들이는것이었기에 청나라로부터 직접적으로 선전포고를 받은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선전포고를 받은 열강들의 요청을 받지도 못했는데 참전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문도사건은 사실 엄밀히말해서 단일사건이아닙니다 어떤사건에 포함시켜서봐야죠
단일사건으로 본거 아닌데요ㅎㅎ 본문에서는 조선과 일본이 연합에서 같이 러시아를 공격한다는 내용에 대한 부분에 댓글부분이었기에 발칸반도와 아프가니스탄등에서 영국등 열강들하고 러시아문제를 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그냥 간단하게 러시아의 남하정책저지문제로 묶은거죠ㅎㅎ 러시아와 다른 열강들간의 이해관계를 모두 서술한다면 많이 길어지지 않을까요? 또 그렇게 되면 본문의 내용에서 많이 벗어날듯하구요.
전제 자체가 좀 불가능해 보이네요.
흠.. 이거 전제자체가 무리한 설정인듯...
일단 조선이 근대화한다고..아니 그것도 되게 힘들지만... 뭐 일단 근대화를 해야 문명국이던 열강이던 낄테고. 의화단 진압 출병을 하겠지요. 그리고 조선도 코카서스~극동 영러 그레이트게임 라인이었습니다.
막부가 뒤집힌것은. 사실 공적인 권위가 파탄나서였지 않을까요.하지만 조선왕조의 공적권위는. 패망 직전까지도 파탄나지 않앗고 그것이 변혁의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적인 권위는 정권의 유지에 아주 중요한 것으로서 깨어지기 전까진 정권의 유지의 핵으로 작용을 하지만. 한번 깨어지고 나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는 속성이 있죠. 다만 한가지 의아한것은. 에토막부의 권위는 미국의 포함외교와 함께 무너졌지만 조선왕조의 권위는. 일본이 일으킨 운양호 사건의 파탄에도 불구하고 깨어지지 않았다는것. 차이가 뭔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IF이니까. 조선의 구체제가. 1600년도경에 2대전쟁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어 무너져버리고. 그것을 대신할. 신진. 불교+상업우대 정권이 들어서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여봅니다.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정약용등. 문제점이 뭔지 똑똑히 알고 있었던 신진관료들이 정권의 중핵을 차지할 수 있었더라면? 최소한 일본을 따라잡지는 못했겟지만. 일본애들이 우리를 때릴려 하면 한방 세게 먹여줄 수 있는 그런 상황정도까지는 만들 수 있지 않았었을까요?
정조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까요?
정권이 붕괴안한것은 버틸만한 상태엿기에 2대 전쟁을 거치면서도 붕괴를 안 한 것이죠 역사에 if는 아무 의미가 없죠 그냥 소설...
정조는 '르네상스' 군주지 개혁과 일신의 선구자가 아닙니다. 별 수 안 남..
안타레스님의 답변이 왠지 신빙성이 있어보이는군요. 외교에서는 항상 영토나 경제문제에 있어서 공격적이고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파탄형 외교를 펼치는 국가가 꼭 한시대에 한두국가는 있는데 그 시절의 러시아가 딱 그런 경우였죠. 그런 러시아와 뭔가를 도모할수도 있다고 하는 것을 은근슬쩍 보여주고 하는 국가가 잘나봐야 어디까지 갔을지는 의문입니다. 어떠한 관점에서 보면 후에 민비암살사건역시 공식비공식의 기록이 없어서 문제지 영미등에선 속으로 은근히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후 미국이 가츠라-태프트조약따위를 맺고 하는 정황으로 봐선 말입니다.
매천야록에는 청나라 공격한다니까 연합군에게 쌀을 보내주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에 앞서 이 사건의 여론을 들면 上은 우리 병대를 연합군으로 파견하려다가 차마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북경이 격파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하였고, 또 吳仁澤에게 백미 1천석, 麥粉 1천5백포, 卷烟 2천갑을 보내어 그들을 호궤하였다-메천야록
근데 이때 러시아가 '우리가 40만을 보내 너희 지켜주겠음 군대주둔 ㅇㅋ?'했는데 조선도 바보가 아닌지라 당연히 거절 하였죠.
이에 앞서 이 사건의 여론을 들면 上은 우리 병대를 연합군으로 파견하려다가 차마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북경이 격파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하였고, 또 吳仁澤에게 백미 1천석, 麥粉 1천5백포, 卷烟 2천갑을 보내어 그들을 호궤하였다-메천야록
근데 이때 러시아가 '우리가 40만을 보내 너희 지켜주겠음 군대주둔 ㅇㅋ?'했는데 조선도 바보가 아닌지라 당연히 거절 하였죠.
애당초 조선의 군사력 자체가 의화단을 제압하러 파견 내보낼정도의 여유가 없었죠.. 만약 그런 군사력이 있었으면 동학농민운동때 일본 힘을 빌리지도 않았겠죠..
그당시 가장 좋았을 대안으로는 일본이면 일본 러시아면 러시아 청나라면 청나라 이렇게 딱 한나라에만 치중하지 말고 여러 나라에게 조선의 이권을 분배하면서(어쩔수 없이 손해는 봐야겠죠.. 다만 나라 지키는게 더 중요하니)각 열강들의 힘의 균형이 조선에서 알맞게 이루어 지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어느 한쪽하고만 무조건 손잡으려고 했죠.. 그게 결국 업치락 뒤치락 하면서 결국 먹히고 말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