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역이 자신과 어울리는 문학 작품을 낳기도 하지만 어떤 문학 작품이 특정 지역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아마 듣기만 하여도 숨이 멈출 정도로 가슴 벅차 오르는 그런 이름 하나씩은 누구나 가슴에 묻어둔 데가 있을 것이다. 경남 하동 평사리가 바로 바로 그런 곳이다.
갑오 동학혁명부터 광복까지 우리 근대사를 악양 지주 최참판댁의 삼대를 중심으로 펼쳐낸 박경리의 대하소설 ꡐ토지ꡑ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가노라면 이런 산골짝 어디에 이렇게 너른 평야가 있을까 싶을 것이다. 평사리 산꼭대기의 고소성에 오르는 언덕 에 서면 섬진강 왼편으로 쑥 들어간 산자락을 끼고 드넓게 발달한 평야가 내려다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금빛 모래 반짝이는 섬진강 푸른 물이 보인다.
지리산 형제봉을 우러러보면서 타박타박 마을로 걸어가면 구멍이 숭숭 난 낮은 돌담길이 꼬불꼬불 미로처럼 뒤엉켜 있다. 유난히 돌이 많고 비스듬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소설 속 최참판 댁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그동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도 최참판댁이 어디냐고 물어와 2㎞ 떨어진 상신마을의 조부자집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토지’에 한 번 빠져 본 독자라면 반드시 찾고 싶은 이곳 평사리를 그래서 하동 군청은 아예 최참판댁을 작품에서 묘사한 대로 지었다. 서슬 퍼런 부자집의 소슬 대문을 들어서면 동학혁명을 수군대던 머슴들의 숙소인 중간채가 가로막는다. 중간채를 통과하면 안주인 윤씨부인의 안채, 그 왼편은 서희가 머물던 연못 달린 별당, 그 오른편은 누마루 최참판댁의 기품 넘치는 사랑채가 있다. 그 뒤로 사당과 초당…. 소설 속 풍경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오가며 엄마 찾아오라고 버둥질을 치며 우는 서희를 길상이가 업어 달래는 환청과 환상에 젖어 한참을 그 자리에 못박게 한다. 그러나 하동 군청이 산자락의 거친 밭을 골라 6년만에 완성한 기념물이건만 2년 전 이곳을 찾은 대가 박경리씨의 한 마디는 ‘지리산에게 미안하네요.’였다고 한다.
2. <토지> 속으로
박경리의 ‘토지’는 1부 1969년 8월부터 5부 1994년 8월까지, 저자의 나이 43세에 시작하여 68세에 이르기까지 만 25년에 걸쳐 씌어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궁벽한 시골 평사리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진주와 지리산, 서울, 그리고 만주 벌판과 러시아, 일본에까지 이어지면서 굴곡 많던 한국 현대사의 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토지의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일본의 침략과 그에 저항하는 한국인의 민족운동 흐름을 서술한 것이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고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이렇게 1897년 가을 한가위로부터 시작된 ‘토지‘는 1945년 8월 15일 다음과 같이 대장정을 끝낸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더움 순간 모녀는 부둥켜 안았다. 이때 나루터에서는 읍내 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학이 뚝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 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 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또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하동 갑부 최참판댁이 재산을 잃었다가 다시 찾는 과정을 4대에 걸쳐 추적하지만 작가의 관심이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ꡐ소설로 읽는 근대사ꡑ라는 평을 듣는 작품답게 동학 혁명, 청일 전쟁, 러일 전쟁, 그리고 한일 합방, 독립 운동, 3․1 운동 등 우리 근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려져 있지만, 기나긴 ‘토지’의 이야기를 서희를 중심으로 대략 말해 보겠다.
<볏섬을 져 나르는 구천의 다리 뒤에 숨어서 살금살금 걸어오던 자그마한 계집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앙증스럽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의 나이는 다섯 살. 장차는 어찌 될지, 현재로서는 최치수의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서희는 어머니인 별당아씨를 닮았다고들 했으며 할머니 모습도 있다 했다. 안존하지 못한 것은 나이 탓이라 하고 기상이 강한 것은 할머니 편의 기질이라 했다.>
다섯 살짜리 서희는 제1부 1장에서 이렇게 존재를 드러내어 할머니가 되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소생이자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인 최서희는 어린 나이에 육친을 잃어 고아가 된 후 조준구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이주한다. 윤씨 부인이 비밀리에 남긴 금괴를 처분한 돈을 밑천으로 하고, 용정 대화재 와 전쟁을 계기로 막대한 부를 이룩한다. 용정에서 거상으로 자리잡아 가면서도 조준구로부터 몰락한 가문을 부흥시키고 귀향할 것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아 이동진의 독립운동 자금 요청도 거절하며 일본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서희는 자신의 잃어버린 자존심과 집안의 빼앗긴 재산을 도로 찾겠다는 집념의 화신으로 변하면서 다소 광폭해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이상현과의 은밀한 사랑을 냉정히 정리하고 하인 출신의 길상과 혼인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낳는다.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빼앗긴 대부분의 토지를 회수한 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간도에 남은 길상과 헤어져 귀국을 감행하고 진주에 자리잡는다. 결국 몰락한 조준구에게서 평사리의 집문서를 넘겨받음으로써 가문의 재건과 복수를 마무리한다.
토지는 얼핏 서희를 위한 연대기요, 모든 것은 서희를 위해 존재하는 부속물 같은 생각도 들게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서희는 간간이 나올 뿐 작가의 시선은 광범위하게 넓고 깊어가기만 한다.
3. 700여 명의 인물과 온갖 짐승, 사물이 모두가 주인공
장장 16권에 달하는 ‘토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다수일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가 간직한 특출한 개성들은 이 대하소설을 이끄는 주요 부속물들이 된다. 차디찬 물의 여자, 살을 지지는 불의 여자 서희가 물론 소설의 가운데 우뚝 서 있긴 하나, 그리고 어떤 한 특정인이 아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심지어는 말 못하는 미물에게도 애정 어린 시선을 주는 작가에게는 하잘 것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범우주적인 생명사상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토지 속 곳곳에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송곳같은 문장들이 포진하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더 없이 아름다운 표현들이 우리의 감성을 뒤흔들어 놓는다.
<돌담 용마루 높이 만큼 키를 지닌 옥매화, 매초롬한 회색가지를 뻗은 목련, 삼화에 석류나무, 치자나무는 마치 봄날의 햇빛을 받아 노곤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미 순환은 멈추어졌을 것이며 메말라버린 나뭇잎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잎을 추려버린 파초 역시 누릿누릿 시들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존엄하다는 것을 용이놈은 잘 알고 있지요. 그놈이 글을 배웠더라면 시인이 되었을 게고 말을 타고 창을 들었으면 앞장섰을 게고 부모 묘소에 벌초할 때마다 머리카락에까지 울음이 맺히고 여인을 보석으로 생각하는, 그렇지요. 복많은 이 땅의 농부요.>
따라서 <토지>는 작가가 전지전능성을 지닌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다시 말해 작품 전체를 총괄하는 총지휘자는 작가지만, 작품을 엮는 데 필요한 사건의 관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는 확실한 개성의 소유자들이라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특히 등장 인물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아픔과 갈등을 경험하면서 어느덧 내 인생이 살찌워 감을 깨닫는다. 근 700여 명에 달하는 인물 누구 하나 무게 없는 삶이 없다. 독자가 어떤 성격의 인물이든 작품 속에서 꼭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16권을 덮던 그날 바로 1권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는 어떤 독자는 말한다. 이것은 분명 기막히게 기분 좋은 설레임이며, 단순한 엑스트라로 넘겨버렸던 사람들 하나 하나를 새로이 발견하고 사랑에 빠질 때마다 가슴이 뛰는 즐거운 경험이라고 말이다.
4. 어린 독자들을 위한 <청소년 토지> 출간
<토지>는 25년이라는 집필 기간이 말해주듯 엄청난 소설이다. 시간적으로는 50여 년에 이르며, 공간적으로는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만주와 일본 동경에까지 미친다. 또한 수백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은 평사리를 중심으로 5세대에 걸쳐 전개된다. 따라서 웬만큼 독서경험이 쌓인 독자들이라 하여도 인물들의 관계나 집안 가계표, 혹은 토지사전을 펼쳐놓고 읽어야 하리만큼 방대한 작품이다.
우리 문학사상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에 복잡하고도 다양한 사건 전개 등의 이유로 ‘토지’는 그 동안 우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조차 전권을 제대로 다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하물며 우리 청소년들이 ‘토지’를 완독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문학 교과서에도 ‘토지’가 수록될 만큼 현실적으로 그 독서에 대한 필요성은 절실히 요구되고 있지만, 작품 자체의 엄청난 양은 물론 책을 읽는 데에 필요한 역사적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한 이해, 낯선 우리 고유어-특히 사전에도 오르지 않은 사투리들, 얽히고 설킨 수많은 인물들은 쉽사리 완독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박경리 선생과 ‘토지’ 연구위원들이 철저한 검증과 논의를 거듭한 끝에 <청소년 토지:12권/이룸>를 펼쳐 냈다. 박경리 선생의 생명사상까지 담으려면 토지 5부 전체 내용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 방향 아래 분량은 청소년들-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생이 읽기에 부담이 없는 정도로 하되, 그 안에 있는 호흡과 느낌, 토지 전체의 흐름과 사상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것 등을 우선 고려한다는 원칙으로 삼았다.
5. <토지>를 기리고자 하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노력
‘ 토지’의 중심 무대인 하동 평사리에는 지난 해 소설에서 선생이 묘사한 공간들을 3000여평의 부지를 매입해 한옥 14동을 지어 인위적으로 최참판댁을 복원하여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하동문학회가 주관하여 올해 두 번째로 개최한 토지문학제에는 시낭송, 아역 서희의 팬사인회, 초청문인과의 간담회, 평사리문학대상 시상, 문학강좌와 백일장 등이 열렸다. 또한 작가가 토지 4-5부를 집필하던 원주 단구동의 집과 텃밭은 작가 선생과 그 업적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토지개발공사가 원주시에 기증한 토지문학공원이 있는데, 여기에는 토지 관련 자료와 작품의 무대를 재연한 홍이동산, 평사리 마을, 그리고 나무로 된 전신주, 일송정, 용두레 우물이 있는 당시의 만주 용정촌을 만들어 놓았다. 10여 킬로 떨어진 매지리에는 세미나 및 심포지엄 개최를 위한 학술․문화행사의 기획이나 추진, 창작․집필 활동을 위한 장소로 지은 토지문화관이 있다.
그리고 190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토지를 사랑하는 모임(http://cafe.daum.net/ttang)’에서는 ‘토지’를 심도 깊게 연구하고 감상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외국어 번역 작업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는 회원들의 사랑과 결속력은 놀랄 만하다. 올 연말쯤에 SBS TV에서 대하 드라마 <토지>를 방영할 계획으로 배역과 장소 물색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데 역시, 이 모임이 적극 참여하여 ‘토지’가 올바른 관점에서 대중에게 알려지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또한 ‘토지’는 제1부에 불과하지만 프랑스어와 일어로 번역되었고, 한편 헬가 피히터 교수의 독일어판 번역도 지금 한창 진행 중에 있으며 이미 ‘토지1’은 시판되고 있는 실정이다.
6. 인간과 역사와 생명
<토지>의 주제가 무엇이냐고 하면 한두 마디로 말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대하소설이라는 칭호가 붙을 만큼 웅장한 규모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으로 짜 있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주제, 그 역사 아래 민족의 운명과 민족 운동, 그 아래 동학이라는 주제, 또는 농민의 삶과 현실, 다른 한편으로 민족 고유의 한과 비극적 운명, 우연으로 이어지는 인간사의 얽힘, 애증 그리고 생명 사상 등이 합쳐서 이루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헐어서 소멸이라는 집을 짓는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박경리 선생이 이룩해 낸 견고한 문학의 탑은 자신의 불우했던 삶에서 힘입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하니 그만큼 작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양과 질은 무한하고도 질겼나 보다.
다시 소설 『토지』의 고향에 앉아서 그 등장인물들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서희, 길상, 구천이, 윤씨부인, 최치수, 이상현, 용이, 홍이, 월선이, 봉순이, 주갑이, 임이네, 함안댁, 판술네, 두만네, 귀녀, 평산이, 조준구, 칠성이, 영팔이, 김훈장, 관수, 윤보, 강포수, 공노인, 임명빈, 명희 남매, 오가다, 인실, 거복이, 윤복이, 영광, 두메, 몽치, 환국, 윤국, 양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가족과 핏줄, 흙, 정, 그리고 한(恨) 같은 것들이 섞여 이 인생이, 삶이 흘러감을 가슴 아리게 느끼면서 ….(끝)
첫댓글달희님, 자신을 변화시킨 것 세 가지---책, 자연, 전교조라 하셨죠? 저도 동감이예요.토지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의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끼며 작자이신 박경리님에게 오체투지의 절을 무수히 올리고 싶습니다. 넓고 깊은 생명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원동력이 결국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만석꾼의 곳간엔 칸마다 수확한 곡식들로 넘쳐났는데, 어느 해 겨울,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모녀가 찾아왔었다지요. 하인들이 막았는지 아니면 주인이 몰라라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간 그 모녀는 밥 한 톨 얻어먹지 못하고 그 악양 들판에서 모진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답니다.
죽어 가면서 그 어미, 만석꾼에게 저주를 퍼부었다지요. "나는 입이 있으나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지만, 너희는 곳간마다 곡식이 넘쳐나도, 먹을 입이 없으리라." 그 끔찍한 죽음과 저주 이후... 돌림병이 돌아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그 만석꾼은 후손도 없이 .....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답니다. ㅠ.ㅠ
지리산을 뒤로하고 섬진강을 바라보는 하동의 악양땅은 '토지'와 무관하여도 아름다운 땅 입니다. 평사리의 상평마을에 올라 한걸음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위가 많은 감나무 밭이 있습니다. 새로 단장한 최참판댁이 아니더라도, 그 대봉 감나무밭에 서서 악양땅을 내려다 보면 가히 ,그 너른 땅을 그냥은 볼 수없고
저절로 우러나는 감흥에 드디어 '토지'의 서희가 보이고 이서방이 보이고 합니다. 멀리 두그루 소나무는 악양땅에서도 아름다움의 극치이고 , 많은 사람들이 철에 따라 자운영 밭 속에서,밀밭 너머에서, 미나리 밭 너머에서 이 두그루의 소나무를 경이롭게 바라봅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이고, 악양은 악양입니다.
첫댓글 달희님, 자신을 변화시킨 것 세 가지---책, 자연, 전교조라 하셨죠? 저도 동감이예요.토지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의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끼며 작자이신 박경리님에게 오체투지의 절을 무수히 올리고 싶습니다. 넓고 깊은 생명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원동력이 결국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정확히 세 가지를 다 기억하고 계시는데, 어쩌자고 '선택'은 틀리셨을까요?ㅎㅎ 정말 사람은 연구해도 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을 창조하는 작가들에게는 자기 인생은 잘못 살아도 저는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소산성에서 내려다본 악양 들판이 뚜렷이 기억납니다. 보리가 푸릇푸릇할 때 다시 가 보고 싶어요. 힘들게 정리한 글 잘 읽었습니다.
방학중에 김천팀 이끌고 안동으로 한 번 가려 합니다( 1월 하순경). 미리 연락을 드릴 게요. 봄날에 본 평사리 들판이, 그 보리밭이 아직 눈에 시립니다.
팔 아프게, 그러나 감동에 벅차서 자판을 두드렸을 달희님. 잘 읽었습니다. ^^ 악양 벌판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지요. 거기에 사연이 숨어 있답니다. 하동의 최참판댁은 물론 소설 속의 최참판댁을 재현해 놓은 것이지만, 그 악양에 실제로 만석꾼 부자가 살았었답니다.
만석꾼의 곳간엔 칸마다 수확한 곡식들로 넘쳐났는데, 어느 해 겨울,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모녀가 찾아왔었다지요. 하인들이 막았는지 아니면 주인이 몰라라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간 그 모녀는 밥 한 톨 얻어먹지 못하고 그 악양 들판에서 모진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답니다.
죽어 가면서 그 어미, 만석꾼에게 저주를 퍼부었다지요. "나는 입이 있으나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지만, 너희는 곳간마다 곡식이 넘쳐나도, 먹을 입이 없으리라." 그 끔찍한 죽음과 저주 이후... 돌림병이 돌아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그 만석꾼은 후손도 없이 .....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답니다. ㅠ.ㅠ
그럼 그 죽은 모녀가 바로 소나무 두 그루로 태어났나요? 오호...고맙습니다.
박경리 샘께서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토지'를 구상하셨다는 이야기.... 최참판댁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최영욱님께 들은 이야기.... ^^ (기억이 맞나 몰겠네용). 야튼...그 돌림병 이야기는 소설에서 마을의 돌림병과 윤씨부인의 죽음으로 나타나지요.
지리산을 뒤로하고 섬진강을 바라보는 하동의 악양땅은 '토지'와 무관하여도 아름다운 땅 입니다. 평사리의 상평마을에 올라 한걸음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위가 많은 감나무 밭이 있습니다. 새로 단장한 최참판댁이 아니더라도, 그 대봉 감나무밭에 서서 악양땅을 내려다 보면 가히 ,그 너른 땅을 그냥은 볼 수없고
저절로 우러나는 감흥에 드디어 '토지'의 서희가 보이고 이서방이 보이고 합니다. 멀리 두그루 소나무는 악양땅에서도 아름다움의 극치이고 , 많은 사람들이 철에 따라 자운영 밭 속에서,밀밭 너머에서, 미나리 밭 너머에서 이 두그루의 소나무를 경이롭게 바라봅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이고, 악양은 악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