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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이틀 전 단체SNS에 참여 의사를 여쭈었고
근무 변경으로 못 오게 된 분이 '우는' 이모티콘을 달았습니다.
글쎄 그분 근무가 다시 조정되어 울상이 웃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진실, 김상진, 심선진, 이예림, 최규호, 최우림, 홍지영
일곱 명이 2월 27일 목요일에 '웃는' 얼굴로 만났습니다.
김승철 선생님이 보내준 책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김상진 [쓸 만한 인간](개정증보판) 박정민, 상상출판
배우들 인터뷰 책을 읽다가 박정민 배우가 말맛이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도 잘 쓴다는 구절을 보고 책 한 번 읽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하루는 화가 난 엄마가(이렇게 말하니까 자꾸 엄마가 화만 내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우리 엄마 착하다.) 내 교과서를 가위로 잘라버리려고 했던 순간이 있었다.(우리 엄마 진짜 착하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화가 나서 순간적으로 엄마에게 “뭐하는 거야 이 새끼야”라고 했는데, 우리는 모두 그 순간 행동을 멈추고 말도 잃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욕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혹여 그런 경우가 불가피하게 찾아와도 “이 새끼”라고는 하지 않는다. 생경하고 신선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욕도 해본 놈이 잘하는 것.’
난 아버지의 욕을 그때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다.(첫 번째는 끝말잇기를 하다가 내가 ‘소시지’라고 하자 아버지가 ‘지랄병’이라고 했을 때였다. 이 또한 신선했다.) (중략)
아버지를 존경한다.
당신에게 물려받은 ‘근성’ 덕분에 쓰러지지 않았다고, 지나치게 근면 성실한 아버지의 근성이 결국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재능이자 재산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덕분에 나는 뭐가 됐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쉽게 지치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한 술 더 떠 그 진행 상황을 내게 항상 물어보고 체크한다. 누가 보면 내가 준비하는 영화에 투자한 줄 알 정도다. 가만있어 보자. 이 정도면 이젠 나도 좀 의심이 간다. (중략)
내 아이가 내 아버지의 근성만은 닮았으면 좋겠다. 그럼 그 아이도 힘들 때 쓰러지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안 되는 건 없다. 이것도 근성으로 해내리라.
박정민 배우가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 쓴 글들을 보며 나의 이십 대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나도 스물몇까지는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내 일상과 생각을 나오는 대로 썼습니다. 꼭 그 시절 글 같아서 마음이 가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배우를 볼 때 의식 있는 배우와 덜 그런 배우로 나누는 편인데 젊은 배우 중 박정민은 뭔가 의식 있는 사람 같았어요. 글에도 그런 게 묻어나니 더 반갑고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가볍게 웃으며 읽다가 문득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시나브로 위로도 받게 되는 책입니다.
이예림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김상현, 필름
저는 꿈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주변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일, 그 두 가지면 삶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안함을 불안해하지 말고, 초조함을 초조해하지 말고,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럼 곧 행복이 찾아올 테니, 우린 그때 행복에 휩쓸리면 된다.
에세이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어서, 읽으며 나를 떠올리는 일이 꽤 어색했습니다. 올해 서른이 되면서 지나간, 다가오는 관계들에 관해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마주하는 관계들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홍지영 [인생의 역사: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난다
인생의 역사는, 문학평론가 신형철님의 시화(詩話)입니다.
우연히 보게 된 저자의 몇 문장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영화)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고전시, 외국시, 현대시 등 스물다섯편의 시에 대한 해석과 시인의 삶과 생각, 시대, 그 시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책은 프롤로그와 다섯 개의 본문(고통의 각, 사랑의 면, 죽음의 점, 역사의 선, 인생의 원),
그리고 부록(반복의 묘), 에필로그, 총 7꼭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시와 저자의 글을 읽는 내내 참 행복하고 가슴 벅찬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 한편 한편이 그저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서만이 아닌, 제가 경험한 삶의 모습들을 깊이 있게 다시 경험하게 하고,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생의 역사라는 제목이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책을 소개해야 하는데, 어떤 부분을 소개할까를 두고 고민해야 할 정도로 하나도 버릴 문장이 없었습니다.
<여는 글>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에필로그-돌봄>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
최규호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메이, 복복서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고통에 주목해 보았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별나게 아픈 상태가 아니어도, 작가가 겪고 있는 병과 고통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공감하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고통’이나 ‘아픔’ 대신에
‘유독 나만이 다른사람들 보다 더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 문제들’
‘쉽게 공유하기 어려운 내 약점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걸림돌이 되어서 삶 전체 동안 짊어지고 싸워가야할 숙명같은 것들’....
이런 것들로 바꿔서 읽어봐도 제법 잘 들어맞고 공감도 잘 되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한강)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되는 책입니다. 글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은 우리가 견딜 수 있다), 그것을 읽을 수 있다면. 언어를, 문장을 ‘획득’할 수 있다면.
예민함에 대한 통찰에 감히 동질감을 느끼는 가운데, 예민함의 언어로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작은 일에도 투쟁, 도주의 반응을 보이는 나의 뇌 (중략) 껍질이 사라진 몸, 과민한 것을 넘어 주변 세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감각하는 몸,(중략) 발병 혹은 악화 전에도 나는 언제나 그런 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한다. 내 과민함과 면역계 이상과 염증과 통증이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건 예전에도 나의 이론이었다. (중략) 내 몸은 외부의 것들 뿐 아니라 자신 조차 못견뎌 하며 사방팔방 공격하는데 열심이기 때문이다. (중략) 내 몸이 그러하듯 나는 세계를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 자기 자신의 생각과 기억에 신체적으로 상처받는 사람, 공포가 조건인 사람 아닌가. 이 많은 두려움이 도대체 다 어디서 왔을까. 그렇다면 병의 발병 혹은 악화란 그저 내가 더욱 내가 된 사건이 아니었나. 40-42쪽
어떤 사람들은 얇은 피부를 지녔다. 껍질을 잃은 달팽이, 건드리면 죽어버린다는 식물, 창문이 너무 많이 열려있는 집 같다고 자신을 묘사하는 사람들. 나 자신이 달팽이가 된 후 나는 그들의 흔적을 도처에서, 편집증적으로 발견했다. 평생 조울의 격랑을 통과하며 살았던 시인 로버트 로웰의 시에는 “피부 한 층이 없는 채로 너무 많이 보고 느끼는 가엾은 남자”가 등장한다. 조울병이 있었던 또다른 시인 시어도어 렛키는 “나는 나 자신과 계절들을 안다. 나는 안다. 내게는 바스라지는 피부 하나가 있다”고 말하는 시를 썼다. (중략) 평생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안고 산 소설가 힐러리 맨틀도 자신이 “피부가 없으며” “모든 것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점쟁이가 됐을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중략) 어머니와 이부언니의 죽음을 연달아 겪은 십대의 버지니아 울프는 적었다 “삶은 힘든 일이다. 코뿔소의 가죽이 필요한데 나에겐 없다” (중략) 내겐 버지니아 울프의 병 경험과 몸 경험이, 그리고 그런 경험을 말하는 울프의 언어가 대단히 흥미로웠다.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왜 제겐 병만 주셨나이까) 여기저기 자주 아팠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으며 추위를 못견뎌 했고 자신을 몸과 정신이 붙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바로 신체적 증상이 되는 기전을 궁금해했고, 소음에 몹시 민감해서 귀마개를 즐겨 사용했다는 점까지 그랬다. 비호의적인 서평 하나에 괴로워하며 진통제를 마신 사람이라서 마음이 갔다. 울프가 자신의 과민함을 두꺼운 피부를 갖지 못했다는 말로 표현한 걸 읽었을 때는 동족을 발견한 기쁨을 느꼈다. 156-160쪽
통증이 강도 10으로 24시간 지속되지 않았어도 말할 자격이 있나, 나보다 더 심각한 사람들도 수두룩한데. 그래도 쓴다. 이제와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증에서 멀어진 만큼 언어에 더 가까워진 이 지점을 표시하기 위해, 말함으로써 나만의 특별하고 드물고 소중한 고통을 평범하고 흔하고 별것 아닌 고통으로 만들기 위해, 내 고통에 관한 말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관한 말과 뒤섞이고 그 일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다. 113쪽
“우리는 어떤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고 어떤 이야기를 사용할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216쪽
“몸에서 살아있는 부분이라고는 통증뿐”
세계와 나 사이에 장막이 드리워진 느낌, 또는 남들과 같은 세상에 있지 않다는 느낌
병 연구에 바쁘면서도 환자는 자신의 무위도식을 비난한다. 나는 게으르다,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 않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지금 뭐하세요?” “아프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프기 자체가 일이다. 글쓰는 일과 나란히 놓이는 일이다.
통증만큼 끈질기고 가차없는 조련사는 없다.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가끔 해도 되는 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목록은 끊임 없이 이어진다.
이건 다른 몸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통증환자로 산다는 건 통증과 사는것이고 통증과 사귀는 것이다. 통증이 나를 차지하고 내 가장 친밀한 이가 되고 그를 배우고 자신을 배우는 것. 새 철학과 과학을 사사하는 것이다. 116-121쪽
알퐁스 도데나 버지니아 울프나 메이 만큼은 아프지도 쓰지도 조련받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겠지만
이 정도는, 이 정도 문장들은 꼭 안고 가고 싶습니다.
병 치고는 썩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입니다.
증상 치고는 견딜 만 하다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삶 자체가 병이고 나는 증상임을 120쪽
그저 내 자신을 조금 더 잘 견디는 사람이 되었을 뿐 152쪽
다 읽고서 보니, ‘극복’이나 ‘긍정’을 말하는 후반부보다 조금 더 흥미로웠던건 병에 대해 ‘신랄한 한탄’을 하던 초반부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이렇게 아픈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원인을 어디에서 찾는지에 따라 종교인의 길과 혁명가의 길로 나뉩니다.
중병 이후 나의 의심도 안팎을 오가며 지난 시간을 더듬었다. 어느정도는 혁명가가 되어 학벌중심 사회라든지 성과주의 사회 같은 ‘구조적’문제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회심하는 종교인 쪽으로 더 기울었는데, 내 의심의 목록에 ‘그동안 내가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너무 심하게 분노하다보니 아프게 된게 아닐까’라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사논문 주제를 ‘한국남성의 성 구매’ 따위로 잡는게 아니었다. 시대와 지속적으로 불화하는 사람이 되기엔 너무도 허약했던 나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후회했다. 나는 진부한 말들과 진부한 서사로 진부하게 회개했다. 나는 무지했다. 무엇이 진정 소중한지 몰랐고 삶의 목적을 몰랐다. 성서에서 ‘죄’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하마르티아’에는 원래 ‘과녁에서 빗나가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내 이전의 삶에 없던 게 바로 그것이었다. 기원은 나였다. 내가 문제였다.
하지만 과거를 더 이리저리 쓸어보고 뒤집다보면-병자에겐 시간이 많으므로-다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무지가 고통의 근원이라고 해도 어디까지가 나의 의식적인 잘못이고 책임일까. 내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었을까, 내가 대체 무엇을 더 해야 했을까. ‘왜 나는 모든 것이 아프지’라고 적었던 십대 시절의 일기가 생각난다. 나는 예민하고 늘 징징대는 아이였다. 어린시절 내내 언니의 등에 이마를 대지 않고는 무서워서 잠들지 못했다. 나는 주변의 모든게 따갑고 불쾌해서 짜증을 내며 울고 있다. 내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이미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아라는게 생기기도 전, ‘죄’를 저지를 수 있기도 전,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 병은 시작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다시, 하지만-여기가 끝이 아니다. 나는 더 거슬러올라가 엄마 뱃속까지 이를 수도 있다. 어머니 쪽 가계에 유난히 심약하거나 알러지 문제가 있는 친척이 몇 있지 않던가? 유전 뿐 아니라 당연히 엄마도 의심해봐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의 기원은 알다시피 언제나 엄마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안 줘서, 사랑이 지나쳐서, 무관심해서, 집착해서, 방임해서, 엄격해서, 교육에 극성이어서, 제대로 안 가르쳐서... 어머니는 언젠가 나한테는 비밀로 하라면서 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걔를 가졌을 때 스트레스가 많았다” 봐봐, 역시 엄마가 원인이지. 그러나 내가 여성학을 공부한게 영 헛일은 아니어서 나는 ‘고통의 기원은 엄마’라는 말을 고쳐 말할 수 있다. 어머니가 왜 스트레스를 받았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시댁, 돈, 아이들과 생존하기, 노동, 끝이 없는 노동, 몇개의 하늘을 지탱하는 노동, 아마도 그런 문제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쟤(내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네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뱃속에 나를 가진 젊은 엄마는 ‘처녀때의 순진함’을 잃고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한국 엄마로 변신 중이었을 것이다. 몸이 뒤바뀌는 그 과정은 고되고 아팠을 것이다. 나는 그 고통의 우물에 이미 몸을 적시고 태어난, 할머니가 미워했다는 둘째딸이다. 그렇다면 병은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가부장제의 역사에서 온 게 아닌가. 화살표는 다시 바깥을 향한다.
종교인이 되든 혁명가가 되든 병자에게 과거는 과오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개심이든 각성이든 계기는 하나다. 바로 고통. 30-34쪽
심선진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지성사
이 책을 읽기까지 몇 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어렵게 느껴졌고, 책장을 넘기면서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낭독을 해보고, 독서 노트를 쓰면서 읽는 방식을 바꿔보았습니다. 단순히 텍스트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서야, 왜 이 책이 추천도서로 꼽히는지, 그리고 요약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원권을 부여받고 인정받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회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과 맥락 속에서 인정받아야만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빌려와 이 개념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육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려면 일정한 공간과 자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우리는 ‘사회적 성원권’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성원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환대란 결국 그림자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특정한 공간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환대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환대보다 배제가 더 익숙합니다. 경제적 능력, 국적, 사회적 배경, 학력, 젠더 등 수많은 조건들이 사람됨을 가로막고, 사회는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할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건부 환대는 "네가 나와 비슷한 모습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내포합니다. 그렇다면 "절대적 환대"는 가능할까요...
책을 읽으며 쪽방촌에서 일했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일’을 했지만, 내 그림자는 거기에 남아 있었을까. 그 공간은 나를 허락했을까. 때때로 환대보다 조건부 환대, 혹은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더 명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사회적 성원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지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지만, 때때로 제 자신도 경계 밖에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를 가지고 있고, 누구나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이를 보려는 의지가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사회의 일부로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여전히 배제와 차별, 경계 짓기가 만연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 책을 겨우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환대라는 개념이 사실은 얼마나 제한적이며, 많은 이들을 배제하는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회복지사로서 어떤 실천을 해야하는지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이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덮었던 분이라면 6장부터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저를 평소에 멍청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추천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도전해보자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저도 끝까지 읽었습니다. 혹시 덮은 분들이 있다면 용기내세요.
‘사람’, ‘장소’, ‘환대’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 개념들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다시금 고민해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결국 타인의 그림자를 지우지 않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속한 공간이, 그리고 내가 만들어가는 공간이 나와 타인의 그림자까지 허락하는 곳이길 바랍니다.
최우림 [질병과 함께 춤을] 다리아, 모르, 박목우, 이혜정, 푸른숲
이 책은 아픈 몸과 살아가는 네 명의 여성이 쓴, 아픈 몸의 서사이다. 난소낭종, 조현, 희귀 질환에 따른 중증 장애, 류머티즘.
삐걱거리는 몸의 경험은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한다. 세상과 불화하는 몸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몸에 귀를 기울여본 사람은 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언어와 서사를 가진 존재라는 걸.
(···) 오래전 내가 그랬다. 언어가 고팠다. 몸이 아프던 초기, 질병 경험을 설명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질병 서사에는 질병은 '선물'이거나 '절망' 중 하나였고, 나의 질병 경험은 둘 다 아니었다. 그러나 그 둘 다가 아닌 '무엇'임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답답했다. (···) 그러나 변변한 언어를 찾지 못했고, 답답함을 넘어 고통스러웠다. 통상 언어가 부족하면 타인과의 소통에서 오는 어려움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 인간은 자기 경험에서도 소외된다.
이 세계에서는 나의 질병을 권리라고 말했다. 질병은 이야기할 가치가 있으며 이는 질병을 가진 사람의 책임이라고까지 했다. 어리둥절했다. 아무런 가치가 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던 삶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져 그것이 그/그녀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춤, 영어로 댄스 dance는 산스크리트어 탄하 tanha가 어원이다. 이는 생명의 욕구를 의미한다. 그리고 질병이 바로 생명의 욕구다. 건강을 인체의 각 구성 요소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할 때, 그 균형과 조화를 잡기 위해 흔들리는 상태가 질병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바이러스를 내보내기 위해 몸은 열을 발생시키고, 평형대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흔들림이 필요하다. 건강과 생명 유지를 위해서 질병이 생기고 이는 필연이다.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질병과 리듬을 탄다는 것인데, 이는 건강 중심 세계가 규정한 질서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아픈 몸에 맞는 질서인 질병권에 맞춰 삶을 재구성해 보는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운 아픈 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해지라는 요구보다는 잘 아플 권리이고, 이를 통해 보다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아프다는 것이 의구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병명으로 삶의 고통이 재단 당하지 않는 사회, 몸이 아픈 사람도 원하는 만큼의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질병이 빈곤과 불행이 아닌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인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이기 때문에 의존과 취약함이 인간의 보편적 속성으로 수용되는 사회, 의존과 취약함이 보편적 속성이기 때문에 돌봄을 주고받는 게 인간의 덕목·권리·의무·기쁨인 사회이다.
올해 3월부터 조현과 조울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 두 분과 공부 모임(탐구 모임)을 시작한다. 함께 공부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이 두 분의 증상, 질병, 장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자기 삶으로부터 더는 소외되질 않길 희망한다. 책을 통해 이 일의 당위성을 하나 더 획득했다.
고진실 [아무 일도 없는 삶] 시모 베마스, 리타 미에톨라 외 지음, 김성남 역, 쌤스토리
‘아무 일도 없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사건 사고 없이 평화로운 삶 일수도,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단순한 삶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 앞에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수식어로 붙는 순간, 답은 후자에 훨씬 가까워진다.
제한된 삶의 공간, 제한된 경험, 제한된 관계, 제한된 선택지..
당사자를 만나며 ‘정말 잘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다.
비언어적 소통도 쉽지 않은 당사자 앞에서 나는 종종 어쩔 줄을 모른다.
그때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사과와 인사만 느는 것 같아 무력감을 느낀다.
이때 좋은 책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밑줄이 많았다.
그래도 가장 큰 배움은 결국 당사자를 지원하는 사회사업가로서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는가’하는 관점이었다. ‘당사자에게 좋은 삶은 무엇인가?’사업사업가의 관점에 따라 해석과 추측이 달라지고 태도와 서비스에 차이를 만든다,
이러한 서비스는 그룹의 이질성과 개별화된 관행을 강조하지만, 일반적으로 최중증 중복 발달장애인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진 적절한 방법에 대한 가정이 서비스 관행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때때로 그러한 방법이 실제로 돌봄 이용자의 개인적인 이익을 대변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이들이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자기 확증적 논리로 적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명한 활동 구성 방식의 또 다른 함의는 돌봄 이용자가 자신의 역량과 최중증 중복 발달장애인의 역량에 대해 미리 규정된 개념에 의구심을 갖거나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관의 문화와 풍토에서는 제공된 활동의 적절성과 돌봄 이용자에게 기대되는 최대 역량 수준에 관한 생각(기대치)에 쉽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최중증·중복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다양한 능력을 갖춘, 서로 다른 집단으로 묘사되고 여겨지고 있지만, 인지능력이 극히 낮다는 사회적 통념은 여전히 이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자원 및 활동의 종류를 좌우합니다.
서비스는 이론적으로 전제된 특성을 가진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기 때문에 개인에 대해 재인식하는 지식이 아니라 기존의 진단적 지식이 실무를 규정하기 시작합니다.
김승철 [아이들이 물었다, 가족이 무엇이냐고] 이연신, 구슬꿰는실
현재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위탁아동과 가정을 돕는 일을 하는 사회사업가로써
내 일을 바르게 잘 하고자 애써 온 저자 선생님의 공부 흔적이 담긴 이 책,
이맘때가 되어서야 제대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읽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이든 책이든 때가 있음을 다시 느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와 닿은 내용들도 좋았지만 (아래 밑줄로 소개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 포인트를 배웠습니다.
1. 우리에겐 문해력을 넘어 '인(人)해력'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기존 혈연 중심의 아동&청소년, 가족과는 다른 모양의 가족을 소개하며
(조손가정, 생활동반자, 게이&레즈비언 가족, 위탁가정&아동 등..)
그들 또한 함께 살면서 인정을 주고 받는 '가족' 으로 인정받고
우리가 그렇게 바라보는 눈을 갖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문해력을 넘어 인(人)해력' 이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인해력, 문해력이란 단어를 변형하여 제가 만든 말입니다)
최근들어 계속 화두가 되는 문제가 문해력의 수준이지만,
사회사업가라면 그 만큼의 무게감으로 봐야 할 것이
'인(人)해력의 수준' 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나를 찾아 오는, 만나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인(人)해력,
그 인해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과 학습을
평소 꾸준히 해야 됨을 느낍니다.
2. 내 일과 연관지어 살피는 '해석력'을 키우자!
이 책에는 아동&청소년 그리고 가족에 대한 도서와 영상이 여럿 소개되는데
그 내용들을 내 일과 연관지어 해석하고 풀어낸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소개된 책과 영상이 적어도 20편은 넘습니다! 그 많은 자료를 저자 선생님은 언제 다 보셨을까?..)
오늘 내가 본 책과 영화 혹은 수 많은 자료들을
내 일과 연관지어 해석하고 풀어내는 힘(해석력)은
세상 모든 일에도 적용되어 내 일을 잘 하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 해석력을 갖추기 위한 훈련을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내 일을 잘 하기 위한 자기 공부의 과정이자
인해력과 해석력의 힘을 보여 준 저자 선생님의 공부노트,
흥미롭게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현재 아동&청소년, 가족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라면
꼭 읽어볼 책으로 강력추천 합니다!
아이들과 가족을 잘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로써 나의 이상과 철학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 공부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과 아이들이 속한 사회를 연구해야 함에 마땅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과 가족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과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와 연결해 생각하고 정답은 없는지 고민하며 글을 썼다. 3-4쪽
재혼 가정도, 미혼 가정도, 한부모 가정도 유전적으로 내 아이가 아니어도 모두 괜찮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면 그 모습이 어떻든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가족'이다. 이게 이 드라마에서 그리고자 하는 찐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11쪽
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다보면 어느새 식성이 닮아가고 습관이 닮아 가면서 "진짜 가족"이 된다. 19쪽
한번 또 한번 도와주고 나니 이제 마음까지 나누게 된다. 머피 가족 속에서 칼리는 사랑받는다. 점점 자신도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25쪽
낮선 두 사람이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면서 주거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나이, 성격, 취향 차이가 하늘 땅만큼 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를 인정한다. (...) 영화 끝에 금분씨와 지웅 학생은 이제 룸 쉐어링 사업이 아닌 가족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같이 산다. 54쪽
혼자라면 기억이 되지만 함께하면 추억으로 남는 것을 배웠다. 63쪽
우리는 모두 누군가 필요한 나약한 존재들이다.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시절 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고 돕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같이 의지하며 설 수 있는 것이 진정 '자립'의 모습이 아닐까. 71쪽
아이들은 믿어주는 대로 자란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기 이해서라도 아이들은 노력한다.
(...) 그러니 세상의 모든 문제아를 만들어버리는 시선은 이제 버리고, 그 아이를 믿어주고 응원해주자. 내가 보는 만큼 그 아이는 변할 것이다. 97-98쪽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어도 엇나가는 아이들은 분명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들에게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은 자신을 다시 돌아오게 할 한 가닥 희망의 끈이 되어 줄 것이다. 103쪽
콜필드는 자기 생각과 행동을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콜필드는 가족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눈에 낙오자, 문제아, 비정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106쪽
그들이 함께 어울려 살 때는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당연했고 그들을 위해 내 것을 내어주는 것도 당연했던 거 같다. 어울려 살아야하기에 그렇게 사는 법을 자연스레 배웠다. 133쪽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런 기대나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조현병 환자를 도와줄 수도 었고 때론 병세를 악화시킬 뿐이다. 141쪽
2025년 3월 서울 책사넷 모임 안내
일시 : 3월 19일(수) 저녁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1층 가람작은도서관
참여자 : 참여를 원하는 당신!
준비물 :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 1~2권
신청 : 기존 참여자 외에 참여를 원하는 분은
비밀 댓글 혹은 연락책에게 문자 남겨주세요.
연락책 : 김상진 (010-7308-2433)
첫댓글 웃상,
고맙습니다.
웃상이 된 본인입니다. 😊😊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2월 책사넷도 풍성히 누렸습니다. 이번 달은 함께하신 선생님들 추천 책 읽느라 하루하루가 금방 가고 있어요~ 3월 모임 때 뵙겠습니다!
김상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승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멀리서 잊지 않고 때마다 책 나눠주니 자리가 더 풍성합니다.
저는 책 내용보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읽으셨는지가 더 궁금한 것 같아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실까.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3월에 또 만나요~
고맙습니다^~^
"말맛이 참 좋다"...
최우림 선생님, 공부모임(탐구모임) 잘되기 바랍니다.
두 분 당사자에게도 최우림 선생님과 학생들에게도 복이 되기 바랍니다.
한덕연 선생님. 감사합니다.
작년 <장애인복지지망생네트워크>를 통해 알게 된 이다정 학생이 탐구모임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함께 합니다.
선생님 덕에 귀한 일을, 귀한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두려운 마음도 큽니다. 그래도 작년부터 꽤 오랜 시간 궁리해온 일인 만큼, 잘 이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