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들과 함께 차를 탈 때가 있으면 은근히 성에 대한 얘길 한다.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性을 금기시하고
자칫 죄와 연결 지어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아들은 가끔 뉴스를 보면서 그런 류의 기사가 나오면
"사람들이 왜 저러지? 더러워..."
하곤 했다.
난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나 또한 결혼을 할 시기까지도 그런 가치관을 가져서
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결혼 후 한참동안 처녀로 지내야 했다.
그러니 신혼시절 성에 대한 기억은 온통 고통뿐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했나보다고 확고하게 믿었을 정도니까....
고통은 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고통을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했다.
의사선생님께 가는 것도 너무 부끄러워서....
한동안 세월이 지나고 혼자서 열심히 성에 대해 공부를 하고나서야
내가 완고한 성에 대한 고정 관념으로 겪은 고통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아이를 가지면 결혼 전에 꼭 그걸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누구나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닌 필부로 살아가려면 性의 아름다움을 느껴야하고
우리가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듯 그것도 하나의 사랑의 표현임을 알아야한다.
사실 엄마가 아들 성교육을 하는 거 좀 어색하긴 하지만
저희집에선 아빠보다 엄마가 표현에 익숙하고
또 여자들 마음을 전하는데는 엄마라면 효율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니까...
"엄마가 이런 말 해서 어색하지 않니? 그저 객관적으로 들었으면 해.
내가 너 어릴 때 기저귀 갈아주던 엄마 아니니?"
"엄마, 모르는 건 배워야지. 알려 주시는 게 더 좋아요.
저도 쿨하게 들으려고 하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감사하죠~"
그래서 시작된 성에 대한 담론은
"우선은 혼전의 성은 반대야.. 그건 교회의 가르침에도 옳지 않고
또 사랑은 절제할 때 더 빛난다는 걸 엄마는 체험했어.
아빠는 육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엄마를 사랑해서 누구보다 잘 챙겨 주었지만
늘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켜주겠다고 말했었어.
엄마 경험으론 그럴 때 아빠에 대한 믿음이 더 생기더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보면 헤어지고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되기도 하니까...
헤어지더라도 상처가 되지 않는 큰 사랑을 하려면 지금의 성욕을 다스릴 줄도 아는 게 좋아.
여자에게 사랑의 상처는 세상을 살아갈 때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거든.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불신하게 되고 인간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할 기회를 빼앗는 행위이기도 해.
영국 속담에 "한 개의 속임수는 천 개의 진실을 망친다'라는 말이 있거든...
한 남자와 헤어지는 게 아니고 평생의 행복과 헤어지게도 하니까
한 순간의 사랑이었더라도 평생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배려하는 건 진짜 남자가 할 일이지."
또 세상은 온통 유혹적인데 그 짧은 시간도 절제할 수 없다면
긴 결혼 기간동안 어떻게 한 사람을 사랑하고 살겠니?
성은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 중에 하나야.
그런데 키스나 가벼운 터치와는 달리
부모가 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일생을 책임질 의사가 있을 때에 시도 되어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 결혼 전까지는 절제했으면 한다.
엄마는 늘 진지하게 네 행복만을 빌어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
사랑 훼방꾼이 되고 싶은 맘 없으니까 그걸 믿으면 엄마의 진심은 알겠지...
언제나 축복만 해주는 부모이고 싶다.
하느님을 닮아야 그리스도신자니까..."
아들은 일단 알았노라 했다.
성은 절제하기 어렵고 충동적 특성을 가진 건 사실이다.
나는 이렇게 시작된 성 담론이 아이를 성적으로 건강하게 만들기를 기도한다.
정말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서
멋진 남자가 되도록 자신을 성장시키길 빈다.
한 여자를 온 맘으로 사랑하는 섹시한 남자!
브람스처럼 먼 곳에서 일생동안 바라만 보고 살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의 몸짓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건 진정 축복이다.
그렇게 영혼과 육신의 합일로 온전히.....
아들에게 성을 전하는 조금 뻔뻔한 엄마지만 그건 온전한 축복의 메시지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