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를 이어온 무교회 신앙
(이마이칸뉴스 제59호, 2024.7.31.)
츠치야 마호(土屋 真穗)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교회 기독교 신자였다. 그 신앙은 부모님으로 이어져 나도 무교회의 가지에 연결되어, 3세대에 걸쳐 무교회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우치무라 간조 선생이 자기 스스로 신자가 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게 하셔서 신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신앙이 시작된 가정이었다.
외할아버지이신 이시하라 쇼이치(石原正一, 1917~2010, 淸水집회) 님은 신앙에 들어가기 전 그리스도교에 대해 혐오감을 품어, 아버지께서 가지고 있던 성서를 발견하고는 불에 태웠던 사람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터에서 같은 고향의 지인(望月)이 간직하고 있던 ‘가신(嘉信)’을 읽고, 전쟁이 끝난 후 신앙에 들어왔다. 전쟁은 죄이며 자기 자신도 죄인의 괴수였다고 평생 반복하여 말씀하셨었다. 이후 스스로 집회를 시작하였고, 10명 정도가 모여 매주 일요집회를 하셨다. 지금은 니시사와(西澤正文) 선생님이 이어서 이끌어가고 계신다.
손자인 우리를 위해 어린이들도 알아듣기 쉽게 성서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종이로 하는 성서 연극도 들려주셨다. 또 생일에는 해마다 꼭 성서 말씀을 하나 뽑아서 카드에 적어 보내주셨다. 요한복음 1절부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나하나 말씀해 주셨던 할아버지. 젊은 세대인 나의 고민이나 내가 처한 상황도 다 이해해 주시고, 직접 상담까지 해주시는, 정말 유연한 생각을 가졌던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언제나 조용히 우리를 지켜봐 주셨던 외할머니(石原美千代)의 모습도 지금 눈앞에 선하다.
친가 쪽 우리 할머니, 츠치야 유리코(土屋百合子, 1928~2018, 東京집회)는 시숙님이었던 이노우에(井上伊之助) 선생이 대만 전도를 마치고 귀국하여, 유리코의 집에서 잠시 머물렀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성서와 대만 전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그분의 소개로 마사이케 진(政池仁) 선생의 집회에 다니기 시작하여 신앙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는 오고세(越生)에서 열렸던 성서집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전차에서 기쁨의 찬송을 부르며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할아버지(土屋孝一)는 매우 솔직담백한 분이었는데, 결혼하면서부터 신앙을 갖게 되었고, 두 분은 늘 함께 성서를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부모님이신 사토시(土屋聰)와 메구미 님은 독립학원고등학교에서 만나 결혼하여 내가 태어난 것이다. 할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약 100년. 성서 말씀과 우치무라 간조 선생의 가르침이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다. 가족 안에서 세대를 이어가며 형성되고 발전해온 무교회 신앙은 기도, 이웃에 대한 배려, 평화의 소망, 그리고 청빈한 생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가훈이나 법전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에서 생겨났다. 언제나 성서를 읽고, 기도하고, 가족과 집회원을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을 써가면서 진지하게 평화를 구하며 살아가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전해진 것이리라.
자세히는 모르나, 집회원 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 하셨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랑이 부족했었다.”
겨우 한 마디였지만, 천국은 우리 안에 있다고 성서가 가르치듯이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며 격려하는 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일을 주께서 가장 바라신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두 할아버지와 두 할머니로부터 받은 신앙을 바탕으로, 나도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참으며 책망할 일이 있더라도 용서하십시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성하게 하는 띠입니다(골 3:13~14).” (桜台가정집회)
* 외할아버지로 소개된 이시하라 쇼이치(石原正一) 씨는 참전용사에게 주는 군인연금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전쟁이 죄악이며, 그 죄악에 참여했다고 베푸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신앙양심에서 한 일이라고 합니다.
첫댓글 감명깊게 읽었어요 한국무교회도 이런 가정이 많이 나오길
귀한글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참 부러운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