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계약직 교육공무원으로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 근무한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항상 아이들을 찾아오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여전도사로 이웃 학교 학생의 어머니이기도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식사를 마친 교직원식당에서 아이들 몇 명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찬송가도 부르며 다락방 큐티묵상집을 공부하곤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같은 장소의 또 다른 귀퉁이에서 JMS소속의 학생회가 모이고 있었습니다. JMS소속의 학생리더는 나중에 제게 불려와 단단히 혼이 나고 모임을 해산당하다시피 하였습니다. 다락방을 비롯한 일반 교단교회에 출석하는 아이들이 그 아이의 전도행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교회를 출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교회가 더 좋은 믿음의 방법과 길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리고 다니기에 기독학생회의 담당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 귀에까지 그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다락방 학생모임에서 가장먼저 JMS학생회를 경계한 사실에 주목하여 이전까지 출석하던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에서 다락방에 대한 상당히 엄중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부교역자로 봉사하던 분이 돌연 지교회의 구원없음을 선포하고 다락방모임으로 가버려 교단에선 제명됨.)하고 거리낌이 없는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말씀에 대한 관심과 나름 체계적인 전도자의 짧은 설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인가 조금 다른 느낌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오해가 없으셔야 할 부분이 저는 교단교회 출석시절 다락방에 대한 어떠한 편중된 지식을 주입받은 적이 없으며, 단순히 이단적인 모임이라는 교회광고시간에 부교역자의 배도건에 대한 엄중한 경고성 광고를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분이 자주 언급하였던 것이 “임마누엘의 비밀” 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 다른 형태로 강조하는 것 같아 처음엔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제물되심을 의심해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파수꾼님도 언급하신 것처럼 기복적인 메시지의 전달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크고 작은 어려움과 인상사에 대한 문제들의 종결자가 되실 수 있으십니다. 작은형제님이 언급하셨다고 말씀하신 다락방의 교리를 기반으로 한 전도사역의 진행이 다소 기복적인 흐름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개인적이고 그 분과 다락방에 대한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의 공통적인 우려라고 느껴지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저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메시지의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임마누엘의 비밀”을 소유할 때에 모든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을 받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확고한 믿음을 더욱 견고히하고 말씀 안에 붙들려 살 수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을 받는다는 것, 물론 이것을 믿음안에서 견고히 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저희학교 학생들은 그리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세상에서 명예적인 맹위를 떨치며(?) 산다는 것 자체가 있기 힘든 일이라는 것(하나님께서 그리 행하게 해주시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저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었던 여 전도사와 학생들 모두 세상에서의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을 꿈꾸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여전도자분은 선동적이고 희망으로만 부풀어 오른 설교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구체적이라 함은 세상에서의 성공가도 인생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은 지극히 다른 문제인 점입니다. 다음 중 하나님께서 완전히 책임져 주시는 믿음의 유형은 어느 쪽이라고 보시는지요. 같은 메시지를 듣고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쫒아가는 삶, (자신의 판단의 주체가 되어) 선택적 수용을 통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리는 삶, 그리고 전하던 말던 내 갈 바를 내가 정하고 가는 삶. 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삶은 첫 번째 말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쉐카이나~에서도 내 양은 내음성을 안다라고 하며 인터넷에서 알게 된 논리와 변론의 홍수속에 허우적대던 어떤 사람들이 떠났었습니다. 그들중 어떤이는 관리자들의 방에서 제 험담도 많이 하였다 들었습니다. 많은 전도자가 바울에게 있어 마가의 문제에 대한 부분이 자신에게도 있음으로 알고 그러한 경우에 자신의 뜻과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말씀을 자신의 이해관계 속에 끼워맞추고 있던 모임과 조직에서 분리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전 다락방 모임의 전도자들을 위한 교육지침과 단행본, 그리고 발행된 유광수 총재의 경건서적을 다수 읽어보았습니다. 다락방이 전도방식과 교리체계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광수 총재가 스스로 기복적인 전도내용에 대한 개연성 여부를 밝히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이상 어느 교단에서 다락방에 대한 공식입장을 천명한들 다락방모임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끝도 없는 변론이 뉴스엔조이를 비롯한 각종 교단의 인터넷 소식지의 게시판에 넘쳐날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스스로 보이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치며 한때 그릇되이 행한 부분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있을런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모두 자기가 더 옳다고만 합니다. 성령세례와 방언이 없으면 안되는 순복음, 꾸준한 헌금과 봉사만을 최고의 교회생활의 미덕으로만 가르치고 구원과 믿음의 문제를 언급함에 율법적이라 단죄하고 이단적 이질감을 숨긴 발톱으로 해결하는 여러 교단들, 특정성경 제일주의자들의 관용함없는 오만함, 세대주의 사상의 위험성을 언급하는 것을 죄악시 하는 극단적 형제교회 및 배타적 독립침례교회, 그외에 그릇된 길에서 벗어남을 입었지만 육신의 약함으로 아직도 그늘이 남아있는 여러 약한 모임들....(제가 여러 공동체들에 대한 쓴소리를 할 수 잇는 자격이 있는것마냥 이야기한다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진리를 실천함에 있어 서로의 모자란 부분에 대해 성령에 의한 자발성 자성의 움직임의 부족함을 애통하는 것 뿐입니다)
어느날 점심 교제시간에 그 여 전도자는 저게 “선생님은 학교의 렘넌트시군요”라고 이야기해 주더군요. 예전 어느 인터넷 모임에서도 제가 그런 명칭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렘넌트는 다락방에서만 쓰는 "남겨진 자"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요 한 것은 학생들이 그러한 기복적인 신앙의 흐름에 빠지지 않도록 조금 더 부연을 했더라면 괜찮치 않았다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면 고민끝 행복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처한 환경에서 그리스도가 새로이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구율법 종결자로서의 말씀으로 육신으로 행하던 이전 일들에 대한 더욱 많은 고민을 하여야 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번민과 희생의 감수, 거기에서 오는 아직은 육신에 속한 자아의 온전한 순종을 이루지 못함에서 오는 수많은 크고 작은 변론과 다툼에서 하나님의 법으로 승리하여야 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시작되는 것임을 모인 영혼들을 위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결국 전한자와 들은 자 모두 거짓부렁의 행위만이 남을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저희 학교의 학생 다락방 모임은 공식적인 모임으로 신고하지 않은 탓에 공립학교에서의 특정종교모임에 대한 편향성 지양을 위한 규제지침에 의하여 전도자분은 더 이상 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다락방 출신임을 묻고 나서 제가 그렇게 조치를 취하게 했을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학교옆 아파트에 사시니 원하면 언제든지 제게 학교출입 사안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한가지는 사단의 세력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영들의 할동하는 기간을 인정하시고 심판전 그들의 활동을 어느정도 인정하셨습니다. 여전도자의 전파 내용중에는 사단의 세력과 하나님의 권능이 서로 호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우는 사자와 같은 악한 영에게 삼켜질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단의 파워가 하나님의 그것과 호각을 이루는 과정에서 임마누엘의 비밀을 깨달은 렘넌트들이 세상과 마귀에의 승리를 확신한다는 것은 어딘가 조금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신의 능력은 사단과 힘의 대결구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서로에게 호각의 적수의 개념이 아니며, 악한 영도 욥의 생명에 대한 권세를 하나님에게 명령받아야 함을 보였듯이 불못에 던지워질 영적 존재들도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아래 활동하는 (필요에 따라 당신의 속성안의 악을 부리시는 아이템적 개념이 아닌 모든 것의 주관자이시고 인간의 인지적 선악의 개념을 초월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요? 세력대 세력으로의 인식은 어둠의 영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초래하고 더불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장 바른 지혜의 근본이 우리 영혼에 자리잡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가 힘들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성경말씀으로 지금도 역사하시며 죄사함을 통한 은혜로 구원받은 삶들의 최종여정인 마지막 심판을 남겨두고 계십니다. 파수꾼님이나 다른 모든 믿음의 공동체에 계신 분들이 온전히 전하여 지는 성경을 그릇되이 이해함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지 않으시는 영역에 거하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세간에서 무엇이라 불리우던 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로서의 우리들이 하나님께 겸손함으로 꺾여지고 꺼져감과 다를바 없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제가 속한 모임은 7가정이 모이는 작은 교회입니다. 저희 모임안에도 규모면에서도 어려움이 많고 진리를 실천함에 있어 그릇되이 행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정말 그런 부분들이 진리적 정의감을 발동시켜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요동된 적도 많았습니다. 누룩으로 망가져가는 곳에는 반드시 짠 소금이 뿌려질 것이란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실천함에 모자른 부분을 공동체의 허물이라 생각하고 부정함을 외치고 나오기 보다는 그 부분에 대한 간절함을 기도로 아뢰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모임만을 찾다가 인생이 허비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제 자신이 그 모임의 소금이었노라고 알려주시면 무척 기쁘겠네요.
마지막으로 파수꾼님의 삶이 이어지는 어느 곳에서든 더욱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시는 삶으로 하나님의 자랑스런 종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천국에서 복음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한 형제로 만나뵙고 싶습니다.
첫댓글 형제님의 애틋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그릇들의 모양을 갖고 있어 다르게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 담는 바가지가 술 담는 바가지에게 왜 너는 술만 담는가라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하나의 책(말씀이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으로만 되어있다는것 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어떻습니까? 수많은 역본들이 나와 잇습니다. 다르게 번역되고 다른 시본들이 난무하여 교리마저 다르게 형성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바로 사탄이 교묘한 술책으로 창세기 2장 종반부와 창세기 3장 초반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브와 사탄의 대화가운데 주 하나님이 말씀하신부분을 잘 비교 해 보면 삭제해 버리고 첨가하고 바꿔버린 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둘은 장난질 했습니다.
전 개역성경에 왜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 [없음] 이라고 성경에 나오도록 하셨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찾은것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마저도 이 땅에서 7-8명이 번역하여 서로 다르게 주장하고 있음을 목도할 수있는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영문판킹제임스 성경 1611이 4번에 거쳐 오탈자 수정 작업하여 발행한1769년이후 변경됨이 없이 지속되어 오기에 그걸 보고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느낀것은 바로 번역자들의 번역에
개인의 교리와 사상이 들어가게되면 ~이었다가 ~ 이니다. 즉 과거 완료형이 현제 진행형으로 바뀌는 사례들이 종종있어 말씀과 교리가 혼탁하게 되는구나 하는것을 알 수있었습니다.
필사본을 공부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NIV,RSV등은 레슬 알란판에서 KJV는 맛소라원문에 각각 저본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적해 올라가 보면 결국 창세기 2장과 3장에 거쳐 있는 사탄의 계략에 이세상의 식자층이 놀아났다고 볼 수있는 근거가 됩니다.
이런 연유로 각자 믿음대로 행하시되 형제님 말씀처럼 그냥 나열만 하시고 다른의견은 제시만 하시면 됬지 인격적인 모독까지는 삼가해 주셧으면 하는바램이 간절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인격적인 모독이라...음 날을 세우려는 생각없이 이야기한 것에 반응하신다면 의도는 아니었지만 일단 사과드립니다.
보수적인 형제교회 개방적인 형제교회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거 같습니다,,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을 아주 경계합니다,,
극단적인 형제교회라 하신 말씀은 조금 낯설고 생소하게 들리네요,
약한 모임들은 그릇된 길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을 보면서 요즘은 작은교회가 대세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각보다 작은 가정교회들이 참 많더군요,,설마 교회가 작아야만 주님이 감당하실수 있어서
작은교회가 합당하다는 생각들은 아니시겠지요,,,
교회가 크든 작든 그 구성원들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것이라고 분별합니다,,
규모에 상관없다는 표현으로 분별하심이 제 의도와 일치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글로 다 전하기도 어렵고 문장을 다스리는 능력도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문장으로만이 아니라 같은 믿음의 공동체였다면 훨씬 용납함이 더 부드러웠고 서로 깊은 이해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soldier님 그길님 모두 시간내서 언급해주신 내용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규모가큰 교회 일수록 세를 과시하고 집단 식이 강하게 변질되어 옴을 표현 한것 같습니다. 저는가정교회든 작은교회든 주 하나님께 얼마만큼 충실하게 쓰임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 이루어 나가며 하나님 나라를 형성해 가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대형교회로서 주 하나님의 그릇으로 쓰임 받는 목자들이나 상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일부 과격하신 분들이 자신들의 세를 형성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변질되는것에 너무싫어 가정모임이나 작은 무리들의 교회가 형성 되어저 가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