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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번뇌의 산-선시조
수만 길 벼랑 위서 한 발만 내디디면
해탈한 이 육신을 삼천계(三千界)에 떨치는데
독사는 아킬레스 건(腱)을 끈질기게 물거니
* 원적산(圓寂山 563.5m) 경기 광주, 이천. 산 밑 산수유마을에는 구례 산동마을에 비견되는 산수유군락(100년 이상 된 나무 1,000그루)을 이루어, 봄이면 황금천지를 이룬다. 등산로 초입 고찰 영원사(靈源寺) 은행나무도 수령 800년을 자랑한다. 주봉인 천덕봉(天德峰634.5m)과 정개산(鼎蓋山433m)이 같은 능선에 있어 세 산을 묶어 등산하는 게 보통인데, 여러 봉우리를 오를락 내릴락 해 좀 지친다. 왼쪽 사면과 계곡 쪽은 인근 군부대(3901부대)의 사격훈련으로 초목이 모두 타 시커멓다.
* 원적; 승려의 죽음. 열반(涅槃)의 역(譯)으로 덕을 원만히 갖춘 후에 적멸한다는 뜻.
* 태어남은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으나, 죽음은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다.
* 백척간두좌저인(百尺竿頭坐底人) 수연득입미위진(雖然得入未爲眞)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시방세계현전신(十方世界現全身); 백 척이 되는 장대 끝에서 그대로 앉아있으면 어느 경지에는 들었다고 할 수 있으나, 진실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백 척이 되는 정점에서 한 발 앞으로 더 나아간다면, 현재의 세상에 그 위대함이 그대로 나타난다.-무문관(無門關) 제 46측 간두진보(竿頭進步) 256면.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343면.
22. 독 금강경(讀金剛經)-선시조
구려라 위장 안에 우글댄 구더기들
금강경 꼭꼭 씹어 탐욕 무리 토해내면
병풍 밑 푸른 두꺼비 살모사를 삼키네
* 소금산(小金山 343m) 강원 원주 간현. 살모사가 푸른 두꺼비를 잡아먹는 형상으로, 섬강(蟾江)이 병풍을 두른 ‘작은 금강(金剛)’을 뱀처럼 휘감고 돌아간다. 간현(艮峴) 천연암장은 이 강과 어울려 절경을 빚은 유명한 곳인데, 주말이면 전국적으로 약 500명의 바위 꾼이 모인다. 1993년 원주 클라이밍 협회에서 최초로 두 군데 23개 암벽등반 코스를 개발 후, 1999년 현재 다섯 군데 50개로 늘어났다. ‘문연동천’(汶淵洞天)의 별명을 지녔으며, 열차산행지로 안성맞춤이다.
* 살모사는 자기 어미를 잡아먹고 나온다는데, 여기서는 三毒 중 하나인 탐욕을 뜻하고, 두꺼비는 수련심(修鍊心)을 뜻한다.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읊은 섬강 ; 한수(漢水)를 돌아드니 섬강이 어디메뇨? 치악은 여기로다! 삼산천(三山川)의 기암준봉이 병풍처럼 그림자를 드리운다(관동별곡).
* 2018. 1. 11 길이 200m의 출렁다리가 개통되어, 원주관광의 명소로 각광을 받는다.(2019. 3. 26 주해 추가)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286면.
23. 본연의 미(美)-선시조
학 다리 길다하여 자를 수 없듯이
대구입 들창코를 태산(泰山)으로 못 만들 터
청미래 종아리 찌를 때 억울하게 밟힌 난(蘭)
* 군유산(君遊山 403m); 전남 함평, 영산기맥. 군자의 풍모를 지닌 산인데 코가 낮고 계곡이 좀 그렇다. 정상에 봉수대 비슷한 흔적(산성)이 있으며, 조망이 좋아 서해도 잘 보인다. 마루금에 난초가 간혹 눈에 띠는데, 날카로운 청미래 덩굴을 피해가며 길을 열다보니, 본의 아니게 밟는 수가 있어 좀 미안하다. 자락에 영광의 불갑사보다 더 오래된 비구니 도량 ‘연흥사’가 있다.
* 동파화란(東坡畵蘭) 상대형극(常帶荊棘) 견위군자능용소인야(見爲君子能容小人也); 동파가 난초를 칠 때 늘(주위)에 가시를 둘러, 군자는 소인을 능히 용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네!
* 학경수장 단지즉비(鶴脛雖長斷之則悲); 학의 다리가 길다하여 끊어서 짧게 한다면 학은 필시 슬퍼할 것이라는 뜻으로, ‘만물은 제각기 천부의 특징을 갖추어 있으므로, 쓸데없이 가감(加減)할 것이 아님’을 비유하여 이름
* 청미래덩굴; 토복령(土茯笭), 참열매덩굴, 종가시덩굴, 망개나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줄기에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다. 청혈, 해독, 매독, 탁뇨(濁尿) 등에 효험 있어 잎, 줄기, 뿌리 모두 약용하는 좋은 식물인데도 푸대접을 받는다. 길을 방해하여 등산객에게는 혐오(嫌惡)의 대상이다. 꽃말은 장난이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92면.
24. 유곡의 여근폭(女根瀑)
별 떨기 소복 달린 눈부신 조팝나무
태기왕(泰岐王) 이두박근 산릉으로 꿈틀대면
청옥문(靑玉門) 낙수대(落水臺) 아래 은하수가 쏟아져
* 태기산(泰岐山 1,261.4m); 강원 횡성 평창. 신라에 패한 진한(辰韓)의 태기왕이 성을 쌓고 항거한 전설이 있는 산으로, 근래 풍력발전기가 들어섰다. 정상은 군부대가 있고, 등산로는 임도를 따라가 재미없다. 하산길인 큰 성골에 음문 닮은 직폭(直瀑) 낙수대(落水臺)는 위에서 내리꽂는 물보라가 일품인데, 그 위 무덤이 있어 옥에 티라 할까? 신대천은 섬강의 발원지다. 마침 삼짇날(上巳, 重三節)이라 봉복사(鳳腹寺)에서 산신제를 지낸 후 떡을 공양한다.
* 조팝나무; 5월에 무리지어 피면 흡사 함박눈이 퍼붓듯 황홀하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상산(常山), 줄기는 촉칠(蜀漆)이라 하여 말라리아, 학질, 담, 구토 등에 쓰인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571(418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5. 월암산(月岩山) 연가
-영산기맥 종주를 마치며
살얼음 보쟁이다 산 낚시 끝낼 때다
모래성 무너지고 정든 비천(飛天) 날아가니
쪽달을 베고 누운 갯지렁이 깔깔대며 손가락질
* 월암산(338.1m); 전남 영광 함평, 영산기맥 끝점. 정상부는 산불이 난 후 새로운 초목이 자라고 있고, 산줄기는 갯지렁이처럼 꿈틀대다 서해로 가라앉는다. 때 맞춰 노을이 벌겋게 타오르는데, 서해의 낙조는 언제 어디서도 좋다.
* 산이 왜 사람을 버리겠나? 종주를 마친 사람이 “언제 왔느냐“ 식으로 총총히 산을 떠나고 있겠지?
* 비천; 천녀, 또는 가릉빈가(佛)
* 옛날 외도가의 색 품평은? 일도(一盜) 이비(二婢) 삼과(三過) 사랑(四娘) 오기(五妓) 육처(六妻), 첫째 유부녀, 둘째 여자종, 셋째 과부, 넷째 처녀, 다섯째 기생, 여섯째 마누라.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346면.
26. 도락(道樂)의 묘미
서시(西施)도 내 싫으면 추녀(醜女)로 보일진대
술 없으면 부처 되고 술 있으면 신선될 터
대두하(大頭蝦) 먹은 야호선(野狐禪) 날 닮으니 어떡해
* 도락산(道樂山 964m); 충북 단양. 머리가 큰 바위산인데, 깨달음을 얻음에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우암 송시열의 말에 유래됨. 신선봉, 채운봉, 검봉, 형봉, 범바위 등 기묘한 바위가 많고, 북서쪽 단양천에는 단양 8경 중 두 곳인 상선암, 중선암을 가진 명산이다.
* 서시봉심(西施捧心); 가슴앓이를 견디기 어려워 손을 대고 찌푸린 서시의 얼굴이 몹시 아름다웠으므로, 어떤 여자가 자기도 예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가슴에 손을 대고 얼굴을 찌푸렸던바(동시효빈, 東施效矉), 사람들이 그 추악한 얼굴에 놀라 도망갔다는 고사에서, ‘같은 행위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됨됨이, 또는 행하는 경우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생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비슷한 말로 서시빈목(西施嚬目), 서시효빈(西施效矉)이 있다. 서시(별칭, 沈魚)에 버금가는 미인은 동시대 오(吳)나라 모장(毛嬙)이다. 장자 내편 제2편 제물론 제 20장 참조.
* 무주학불(無酒學佛) 유주학선(有酒學仙); 술이 없으면 부처를 본받고, 술이 있으면 신선을 본받는다는 말인데, 불가(佛家)에서는 술이 사람의 본성을 해친다며 경계하나, 선가(仙家)에서는 정기를 보한다며 적당히 마실 것을 권장한다. 대련(對聯)으로 어울리는 절묘한 문구다.
* 대두하; 새우는 머리만 크고 살도 맛이 없는 데서, ‘사치만 부려 가난하게 된 사람‘을 놀리는 말.
* 야호선; 선을 수행하는 자가 아직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스스로 이미 진리를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것을 이르는 말.(佛)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134면.
27. 불두착분(佛頭着糞)-선시조
욕계육천(欲界六天)을 급히 먹다 체한 돌중
할머니 약손인양 뾰족 폄우(砭愚) 한 방에
미륵불 숨구멍에다 바위 똥을 싸놓다
* 도솔봉(兜率峰 1,314m);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 경계. 백두대간. 정상은 마치 바위 똥처럼 생긴 돌산으로 조망이 뛰어나며, 봄 철쭉이 좋다. 급히 오르려 대변을 참다 어쩔 수 없이 도솔봉 꼭대기에서 실례하곤, 미안해하며 머리를 긁적인 자, 그 누구냐?
* 욕계육천; 물질에 속박된 어리석은 중생이 사는 세계와, 부처의 여섯 하늘.
* 도솔천(궁)은 육천 중 미륵불이 계시는 곳.
* 폄우(砭愚); 돌침. 어리석은 사람에게 돌침을 놓음. 우자를 경계함의 비유.
* 불두착분; 부처의 머리에 똥을 묻힌다는 뜻으로, ‘훌륭한 저서에 졸렬한 서문(序文)임’, 또는 ‘썩 깨끗한 것을 더럽힘’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137면.
28. 요녀(妖女)에 홀려-선시조
뙤약볕 비탈길에 나부소녀(羅浮少女) 누워있기
복숭아로 보인 유방 게걸스레 빨았더니
절정(絶頂)에 이른 멧부리 하얀 점액 토해네
* 흰봉산(1,240m); 경북 영주, 충북 단양. 백두대간인 삼형제봉과 죽령 사이에 있는 1,286봉 능선분기점의 남서쪽에 있다. 이름이 희한하며, “능선이 꼭 요녀의 눈매 같다”는 어느 문우(文友)의 말이 실감난다. 첫 번째 맞닥트린 동그란 봉우리로 착각한 듯? 이후는 아기자기한 암릉길이 나타난다. 실은 이 산의 두 계곡이 수려한데, 출입통제로 가보지 못해 ‘미래의 산’으로 남겨둔다.
* 나부소녀; 나부산(羅浮山)에 있는 매화의 정령(精靈)이 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고사에서, ‘미인’을 이르는 말.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459면.
29. 색탐경고(色貪警告)-선시조
이 산의 꽃도 집적 저 산의 풀도 슬쩍
심전(心田)을 어지럽혀 어색(漁色)에 빠진 백우(白牛)
인두로 불알 지진 후 금강줄로 코꿰다
* 민드기봉(1,023m); 경기 포천, 한북정맥. 계곡 쪽에는 등산복장이 아닌 사람들이 두릅이나 다래순을 따려고 얼쩡댄다. 심하게 오를락 내릴락 한 능선에 지친 산객 마냥, 민둥산도 축 늘어져 소불알 같다.
* 어색; 여색(女色)을 탐함. 여기서 色은 꼭 성(性)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소위 불가에서 논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물질’일 수도 있다.
* 백우; 심우도(深牛圖) 일곱 번째인 망우존인(忘牛存人-소는 잊고 사람만 남다)에 나오는 흰 소.
* 전생에 끼인 역마살(驛馬煞)을 무슨 수로 잡을까?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187면.
30. 굴욕을 이김-선시조
큰 뜻을 세웠으니 칼날에 묻은 피도
실력자의 똥구멍도 기꺼이 핥았거늘
남들이 뱉은 침 따윈 마를 때를 기다려
* 성주산(聖主山 623.9m), 양각봉(兩角峰 568m); 충북 영동, 전북 무주에 있는 금강(錦江)의 둘레산이다. 초입을 잘 못 찾아 임도로 오른 바람에 고생이 무척 많았는데, 거북바위 등 그런대로 볼거리가 있다. 산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다.
* 타면자건(唾面自乾); 남이 나의 낯에다 침을 뱉었을 때 이를 닦으면,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세(處世)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비유하여 이름.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의 신하 누사덕(婁師德)은 팔척장신에 큰 입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됨이 신중하고 도량이 컸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일을 당해도 겸손한 태도로 오히려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얼굴에 불쾌한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아우가 대주(代州)자사로 임명되어 부임할 때 누사덕이 아우에게 참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자 아우가 말했다.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그냥 닦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누사덕이 말했다. “아니다. 그 자리에서 침을 닦으면 상대의 화를 거스르게 된다. 그냥 저절로 마르게 두는 것이 좋다.”(其弟守代州, 辭之官, 敎之耐事. 弟曰, 有人唾面, 潔之乃已. 師德曰, 未也. 潔之, 是違其怒, 正使自乾耳.). 출전; 《신당서(新唐書) 〈누사덕전(婁師德傳)〉》. (고사성어대사전)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제 1-354번(280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발행.
31. 속연(俗緣)을 못 버린 직녀(織女)
황매화 떨어질 쯤 달거리 쏟은 철쭉
은하수 실꾸리로 개짐을 짜든 직녀
북바늘 빼내버리고 베틀에서 내려와
*베틀봉(946.3m); 경남 합천. 황매산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온산이 철쭉으로 뒤덮였다. 베틀굴이 있고, 직녀가 베틀에 앉은 형국이다. 속계가 그리워 선연(仙緣)을 가위로 잘라버렸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207면.
32. 탈각선(脫殼蟬)
키조개 살맛 같은 통천문(通天門) 뚫고 나면
살쾡이 만발한 봄 금선(金仙) 님 한 마디에
둔한 소 바늘귀 꿰니 갑수충(瞌睡虫)이 기어나와
* 성제봉(聖帝峰 1,115m);경남 하동군 악양면(岳陽面). 일명 형제봉으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나오는 평사리(平沙里)가 등산 기점이다. 사적 제151호 고소산성(故蘇山城)을 지나, 여자의 음문 같은 통천문 바위를 겨우 빠져나오면, 금빛바위 신선대와 마주친다. 정상도 역시 암봉인데, 주위의 철쭉은 조밀하지 않고 살쾡이(삵)털 만큼 듬성듬성 있다.
* 금선; 금색을 입힌 신선, 즉 생각을 초월한 붓다를 의미한다.
* 둔한 소; 불도(佛道)를 감내하지 못하는 사람. 둔한 바탕, 우둔한 천성, 둔근 등.
* 갑수충; 잠벌레. 코에 넣어버리면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들게 만든다’는 벌레, 즉 ‘게으름’을 이름.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279면.
33. 산천(山川) 굿
시퍼런 작두날 위 널뛰듯 칼춤 추는
용녀(龍女)의 내림굿에 돌부처도 혼비백산
솔방울 구른 청류엔 팔랑개비 돌아가
* 용암봉(龍岩峰 892m); 충북 제천, 월악산 국립공원. 등산로 입구에 송계(松溪)8경의 하나인 팔랑소가 있으며, 줄곧 날카로운 바윗길을 오르면 정상이 나오고, 멀지 않아 만수봉(985m)에 닿는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3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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