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손자의 팔을 들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햇빛이 찬란한 정오였다. 주머니에서 잘려진 비둘기 발을 꺼내 우둑우둑 씹어 먹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에 걸린 고물수집상 청년이 리어카 가득 가면을 싣고 가고 있었다. 오늘은 횡재를 했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천변 가에는 아줌마들이 뒤로 뛰어가고 있었다. 뒤통수에 달린 큰 외눈이 꿈뻑일 때마다 정오와 자정이 뒤바뀌었다. 짬이 난 버스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해바라기 꽃에 라이터 불을 붙였다. 시뻘겋게 달궈진 해바라기 아래 몸을 녹이며 칵칵 동전을 뱉어냈다. 성경책을 든 할머니들이 교회 지붕에 앉아 수제비를 먹고 있었다. 성경책을 베고 누워 꺽꺽 구름을 뱉어내고 있었다. 중국집 주방장이 관절염을 앓는 비둘기를 잡아 탕수육을 만들고 있었다. 우걱우걱 탕수육을 먹은 자동차 수리공이 꾸부렁노인이 되어 나왔다. 제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웃고 있었다. 햇빛 찬란한 정오의 북가좌동이었다. 이상한 궁핍들이었다.
---------------- 김 안 / (본명 김명인) 1977년 서울출생. 인하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4년 《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