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낭만적’ A. Bruckner, Symphony No.4 in E flat major, ‘Romantic’
- 서울시향 : 20260402 / 롯데콘서트홀
- 지휘 :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은
호른 연주자인 호르니스트 김형주님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곡이었다.
이 곡은 현악기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관악기와 금관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 바탕에는 현악기의 안정적인 받침이 있었지만,
귀에 남는 건 결국 금관의 울림이었다.
특히 1악장의 시작
호른이 첫 음을 내는 그 순간!!!
그 음 하나로 곡 전체의 방향이 결정되는 느낌이었다.
그 음이
조금만 흔들려도,
조금만 과하거나 부족해도
이 곡은 처음부터 무너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첫 음이
정확하게, 우아하게 울려퍼지는 순간 너무 좋았다.
연주 내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집중해서 악기를 불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지휘자가 아니라 호르니스트 김형주님을 계속 따라가며 듣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름은 공연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 공연의 중심이 누구였는지는 충분히 느껴지고 있었다.
■ 너른 들판 위를 달리는 호른과 금관
1악장은
현악기가 푸른 들판 같은 배경을 잔잔하게 펼쳐놓고
그 위를
관악기와 금관악기가 마음껏 뛰어다니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문득
제주에서 삼다수 공장 근처를 지나며 보았던
말(馬)들이 떠올랐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그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자유롭게 움직이던 그 풍경.
평지 같기도 하고
완만한 산등성이 같기도 한 그 공간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자연 그 자체였다.
이 곡의 1악장은
그런 광활하고,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자연의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해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호른과 트럼펫이 있었고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이 그 주변을 맴돌며
마치 그 들판 위를 함께 뛰어노는 것처럼 어우러졌다.
너른 벌판 위의 목장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답고도 생생한 1악장이었다.
그리고 1악장이 끝난 순간,
츠베덴 지휘자님이 조용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 하나로 이 장면이 제대로 완성되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혼자 조용히 손등으로 마구마구 박수를 보냈다. Bravo ㅎㅎㅎ
■ 고요한 호수 위에 번지는 선율
첼로가 조용히 이끄는 선율 위로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2악장은
잔잔한 호숫가를 떠올리게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수면 위에
가끔씩 물고기 한두 마리가 튀어 오르며
동그랗게 퍼지는 물결처럼,
작은 움직임들이
조용한 공간을 깨우고 다시 가라앉는다.
이 악장은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감정을 스며들게 하는 음악이다.
과장되지 않은 흐름 속에서
조금씩 번져 나가는 선율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이미 지나가고 있는 듯한
고요하고도 목가적인 순간이었다.
■ 깨어나는 아침, 활기차지만 얌전한 스케르초
3악장 스케르초는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익숙한 선율로 시작된다.
예전에 광고 음악에서 스쳐 지나갔을 것 같기도 하고,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는 멜로디처럼 느껴진다.
뭔가 공익 광고였던 것 같기도 하고…
어김없이 트럼펫과 호른이 등장하면서
음악은 경쾌하고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스케르초라고 하기엔
다소 얌전한 편에 속하는 느낌이지만…
거기에 묘하게 살포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수련회에서 아침 기상 시간에
방송반이 틀어주는 음악처럼,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을
억지로 깨워 밖으로 끌어내는 듯한 리듬.
조용했던 공간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멈춰 있던 시간에
다시 생기가 돌아오는 순간.
이 3악장은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 다시, 호른으로 돌아오다
4악장은 다시 호른으로 시작된다.
이 곡을 들으면서
호른의 음색이 이렇게까지 매력적인 악기였나,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앞선 1악장부터 3악장까지의 흐름을
하나로 모아 피날레를 향해 밀어붙이는 악장.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한데 섞이고 겹쳐지면서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되어 간다.
말 그대로 잘~~ 비벼진 음악처럼
전주비빔밥의 담음새를 닮았달까~~
이 4악장은
그렇게 앞선 악장들의 요소들을
닮은 듯 혹은 다른 듯,
고루 섞어내며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이끌어간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은
1시간이 넘는 긴 작품이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각 악장에서 반복되는 구절을
조금씩만 덜어냈다면
한 10분쯤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스치긴 한다ㅎㅎ'
(브루크너 쌤 too long…)
길지만
결국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는 곡이었다.
호르니스트 김형주 님을 알게 된 날이라
그 자체로도 한 번 더 감사한 공연이었다.
첫댓글 좋은 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