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신앙의 어리석음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동물은 역사가 없습니다. 일기를 쓰는 물고기가 없고 미래를 계획하는 원숭이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본능에 이끌려 살다가 죽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역사가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고 현재를 생각하며 미래를 꿈꾸고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일기를 쓰고 반성을 하며 자기를 고치기도 합니다.
영국 함정은 위기를 당하면 “동작 그만!”이라는 신호를 울립니다. 그러면 모든 해군들이 동작을 중지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을 합니다.
“동작 그만!”이라는 신호가 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상황을 예의 주시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나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입니까?
주일마다 하나님께서 “동작 그만!”이라는 신호를 주셔서 가정 생활도 스탑하고, 사업도 스탑하고, 취미 생활도 스탑하고, 운동도 스탑하고, 세상의 모든 일을 그만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코치를 받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절대적으로 가장 중요시 생각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 하나님이 없다” 는 많은 사람들을 볼수 있다.
그들의 삶은 자기의 삶을 자신의 계획하 에서 자신들의 존재을 맡기면 삽니다.
그들은 말하기을 “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 ” 그리고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라고 까지 말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 모든 사람 들을 향하여 “ 그들은 어리석은자” 라는 것입니다.
즉 “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고 말합니다.
예외없이 위대하고 , 교육을 받고, 학식 있는, 학식이 없는 사람들 모두 “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어리석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단어의 진의“ 피상적인 사람:[ 본질적인 현상은 추구하지 아니하고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에만 관계하는 것]이라는것입니다.
어리석운 사람은 “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입니다.
시편 2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어리석은자는 “ 이해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명백하게 생각할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결과을 생각하지 않고, 성급하게 행동하는자” 입니다.
“ 이성과 안목이 부족한자”입니다.
하나님의 설교의 목적은 그런 사람을 깨닫게 하고, 잘못을 지적 하는데 있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잠언 1;1-4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책망은 필수불가결합니다.
책망이 없다면 잘못된 길을 옳은 길인 줄 착각하고 계속해서 그 길을 고집할 것입니다.
이때 현명한 이에게는 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만 해줘도 곧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말로 깨닫게 하기에는 너무 미련하기 때문에 신체적인 아픔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움 으로 “ 하나님은 없다 ” 라고 주장하면 자기의 삶을 자신의 계획하에서 자신들의 존재을 맡겨 사는 사람은 비극적인 삶을 살고 준비하고 있다.
.
왜 ? 어리석다고 합니까?
“그의 마음에”...이들의 마음은 자신의 욕망에 의해 지배 받는사람들입니다
그 “마음이 ” 이성적 이라기 보다는 “ 욕망[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에, 자신이 좋아 하는것과 , 자신이 원하는 것에 의해 좌우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획 부동산에 속아 땅을 보러 갔다고 합니다. 그 땅을 사놓으면 이러저러한 시설이 주위에 들어올 것인데, 그에 따라 1년에 40% 이상 땅 값이 올라 수년 안에 대박을 칠 거라고 하더랍니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익률이 좋으면 알음알음 할 것이지 왜 투자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건 또 뭔가?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땅을 하루라도 빨리 사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마구 샘솟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땅을 누가 사갈까 봐 밤새 한 숨도 못자고 새벽에 차를 몰아 그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사실, 사기꾼들은 그들이 치밀하게 사기를 칠 때도 있지만 알고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을 자극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수익률이나 곧 대박을 칠거라는 환상만 심어줘도 사람들은 쉽게 속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선착순’이나 ‘한정물량’이니 하는 경쟁까지 부추기면 그 효과는 배가 됩니다. 자기 욕망에 자기가 속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욕망에 사로잡히면 이성으로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욕망의 사슬을 끊는다는 건 대단히 힘이 듭니다.
결국 그 길을 돌이키지 못하고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악한 자는 지옥문 앞에서도 회개하기를 거부한다”(Eruvin 19a).탈무트
인류학을 보면 가장 원시적인 사람들의 상황을 조사해 보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의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그들중 돌들, 나무 들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다른신 들뒤에 주권자 이신 하나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안에 존재하고 있는 본질적인 것과 깊은 것 에 있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오는 “ 하나님은 존재한다” 는 음성을 저버리는 자입니다.
자신들의 양심의 소리에 저항 한다.
더욱기 우리의 양심을 가끔적으로 없애기 원한다.
죄의식을 없애면 죄도 없다.
자신의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수 없다.
결국 죄의 심판의 뿌리을 없애서 회개의 가능성도 제거 한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도 없어진다.
이세상의 사탄의 계략을 대단히 성공적 이어서 교만이 미덕이 되는 높은 문화속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 하게 한다.
더욱기 자신의 실패을 희생자을 만들기위해서,
사회적 환경과 다른 사람 에게 죄을 전가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전하고 있다.
딤후 3;1-5]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려고 아무리 몸부림을 친다고 해도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이 그분의 교회을 세울 것이다. 마16;18]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또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이루도록“ 하실수 있는 분이다.
요17; 14] 그리스도는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자들을 위해 중보 하신다. /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기도 하십니까?
15.17절 ]15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속에 있는 죄을 관심있게 다루시기 원한다.
하나님이 보란 듯이 우리 자신을 보고 정직하게 우리자신의 죄을 다루시기 호소 한다.
회개는 고통의 소리가 아니다.,
양심의 소리있다.
신앙의 양심.아 그얼마나 강한 음성인가?
믿는자에게 있어 그보다 더 강한 것이 있을가?
“ 그 짓을 하지 말어”
“ 그것은 잘못된거야”
거짓된것야! 나의 안에 있는 의식 즉 하나님을 거역한 것 이야! 음성입니다. 시편은 양심의 소리을 듣지 않고,
그것에 주목하지 않으며 지배받지 않는 사람은 무엇에 의해 지배 받습니까?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 환상 또는 다른 유형의 삶에 의해 지배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나도 “ 저렇게만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는 약간은 두려습니다.
그 이유는 그 경건치 못한 생각이 자신의 양심을 정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합리화 합니다. “ 맞아 하나님이 없다,,, 나는 여태껏 바보처럼 살아 왔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 합니다.,
1] 자신의 이해력을 사용하지 않고,
2] 하나님의 말씀에 귀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다 어리석다는 이유는 자신의 지각을 사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짓고도 뉘우칠 줄 모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요? 어떤 이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뻔뻔한 사람도 죄를 회개하면 지옥에 가지 않을까요?”
이에 “뻔뻔한 사람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그가 계신것과 “ 자기을 찾는자들 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 [히11;6]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두뇌는 좋은 두뇌을 소유했다고 할찌 몰라도 자신의 욕정, 과 열정 그리고 욕망에 지배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그들은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라고 묘사하고 그런유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왜? 어리석은자라 부르고 있습니까?
그들은 영원한 삶과 영원한 미래를 모험하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
아하 죽은후에 무엇가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 죽은후 예측할수 없다.
잠시의 세상의 만족을 위해서 “하나님은 없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선악과를 통해서 말이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을 자유가 있다.
인간은 그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담의 자손들은 번성하여 많은 문명들을 낳았지만 결국 죄를 너무 많이 지어 대홍수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 가족만은 남겨두셨다. 노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자손 중 한 명인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그의 자손들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모델 민족인 이스라엘을 만들고자 하셨다.
그들에게 신앙과 삶의 지침이 될 토라를 주었다. 언약도 맺으셨다.
그 토라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었다.
생명과 죽음의 갈래길 곧 자유의지를 발휘할 상황에서 참고로 하면서 그 지침을 따르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옳고 선한 길을 가게 되고 성공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창2:16-17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신명기 30:15-16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당신이 지혜자라는 것을 증명하세요...
잠언1; 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