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새재사랑산악회] ☆… 평창 잠두봉-백석산의 하얀 눈길을 걸으며 (1)
<산행> (평창군 대화면 신리삼거리)→[산행들머리]모릿재(터널 앞)→(오름길)→대화·진부면계 능선→(오름길)→잠두산(1,243.2m)→(설원의 능선길)→안부(신리3리 하산지점)→(오름길)→백석산(1,364m) 정상 헬기장(대전망)→정상아래의양지(점심식사)→미랑치→영암사 하산길→던지골(대화3리) 송어양어장→<귀경>
▶ 산으로 가는 길, 봉평의 이효석을 생각하며
☆… 아침 서울의 기온이 영하 9℃의 매서운 날씨,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연일 이어지는 한파가 오늘도 그 겨울의 성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의 버스는 중부·영동고속국도를 타고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장평I.C에서 31번 국도로 진입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6번 국도를 타고 가면, 가산(可山)이효석(李孝石)의 소설「메밀꽃 필 무렵」그의 문학의 숨결이 살아 있는 봉평으로 가고, 남쪽으로 31번 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그 소설의 또 한 무대인 대화로 가는 길, 평창읍내로 이어진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 작품은 토속적이면서 동시 서정적이다. 봉평장터 옆 가산공원에는 주인공 ‘허생원’과 장돌뱅이들이 하루의 지친 여정을 푸는 주막인 ‘충주집’이 있다. 다리를 건너 ‘허생원’과 ‘성씨 처녀’가 정을 통했던 ‘물레방앗간’을 지나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메밀밭 길을 돌아가면 ‘이효석의 생가’에 이를 수가 있다. 작품은 봉평과 대화의 장터로 이어지는 무대에서 펼쳐지므로 오늘 우리가 산행하기 위해서 내려가는 대화 가는 길이 바로 소설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윽한 달밤, ‘허생원’이 ‘동이’의 등에 업혀 건너던 개천이 어디쯤일까. “옛 처녀나 만나면 모를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을 걷고 저 달 볼테야” 단 한 차례 인연을 맺은 ‘성씨 처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자신이 아들일지 모를 ‘동이’의 등짝은 어찌 그리 따뜻한가.
▶ 잠두산-백석산으로 가는 길, 산행의 들머리
☆… 우리는 대화 읍내로 들어가기 전, 신리 삼거리에서 진부로 넘어가는 지방도로로 들어가서, 산행의 들머리인 모릿재 터널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예리한 칼끝을 느끼게 하는 차가운 바람결이 옷깃을 파고든다. 하늘은 눈이 시린 청람(靑藍) 빛이었다. 문지르고 문지르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파랗게 질린 듯한 쪽빛이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태양은 눈부신 햇살을 지상에 뿌리고 있는데, 햇살은 산록에 쌓여 있는 하얀 눈밭에 내려와 다시 무수한 순백의 빛살이 뿜어내고 있었다. 우선 차가운 금속성으로 매섭게 찔러오는 차가운 냉기가 숨을 막히게 했다. 스패츠를 치고 아이젠을 장착한 뒤, 얼마간의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했다. 10시 40분, 우리 산우들이 순백의 산길 위에 오색의 대열을 이루었다.
☆… 우선 잠두산은 남쪽으로 향하는 산길이다. 오늘 산행지인 잠두산-백석산은 강원도 평창군의 대화면과 진부읍 사이에 위치해 있으므로 면계능선(面界稜線)인 셈이다. 북쪽의 백적산에서 안부 모릿재를 넘어 일로 남으로 내리뻗는 평창군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줄기인 것이다. 그리하여 산의 서쪽은 대화천-평창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오대천이 흘러내려 정선의 아우라지 강과 합류한다. 그리고 오늘 산행 기점인 모릿재 북쪽에 위치한 백적산(1,141m)을 거슬러 올라가면 진부(터널)를 지나 오대산의 호령봉(1,531m)-정상 비로봉(1,563.4m)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남쪽의 백석산의 줄기는 그 남으로 내달리다가 동쪽의 가리왕산(1,560.6m), 서쪽으로 중왕산(1,376m), 그리고 그 아래쪽 평창 청옥산(1,255.7m, 정상의 고원 지대는 일명 육백마지기로 칭하는 고랭지 채소밭이 있다.)과 더불어 평창의 중심 산군을 이룬다.
▶ 하얀 눈길에서 떠올린 선인의 시 한 수 …
☆… 처음부터 가파른 오름길이었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자 아래에서 거의 느끼지 못했던 바람결이 살아나오기 시작했다. 손이 아리고 볼이 차가와진다. 무릎까지 쌓인 눈밭은 얼어 있었고 길은 앞서 갔던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눈이 오고 난 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 본 적이 있는가. 길을 낸다는 것은 나와 이 길을 같이 가는 사람들의 발자취이면서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행자의 발자취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의 길잡이가 되느니만치 자신의 행동은 늘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행해져야 한다. 문득 선인의 시 한 편이 생각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내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野雪>(야설)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조선시대의 서산대사(西山大師, 1519~1604)의 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아 애송한 시로도 유명하다. 백범(白凡) 선생께서 큰 결단을 내릴 때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어 행여 후세 사람들이 전철(前轍)을 밟게 될까 경계하였다고 하니 선각자나 지도자의 자질과 품격을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어서 실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 시의 작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주(註)] 백범 선생의 글에도 서산대사의 시로 나와 있고, 이 시를 새긴 빗돌에도 서산대사의 시로 명시하고 있어 예전부터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서산대사의 문집인 『淸虛堂集』(청허당집)에는 이 시가 실려 있지 않아서 작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혹자는 이 시를 조선후기의 문신인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의 소작이라고 정리하기도 한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는, 『臨淵堂別集』(임연당별집)과 1917년 장지연(張志淵)이 편찬한 『大東詩選』(대동시선) 등에 이 시가 조선시대 순조 때 활동한 이양연(李亮淵, 1777~1853년)의 작품으로 나와 있다고 했다. 『大東詩選』8권 30장에 나와 있는 이 시의 제목이 ‘穿雪’(천설)로 되어 있고, 내용 중 ‘踏’(답)자가 ‘穿’(천)자로, ‘日’(일)자가 ‘朝’(조)로 되어 있는데, 글자가 다를 뿐 그 의미를 같은 것이다. 북한에서 발간한 한시집에도 이와 같이 쓰여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작품의 작자를 문헌고증학의 입장에서 볼 때 이양연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