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서평>
역사를 현실로 불러오는 힘
하늘이 낳은 아이들(조연화 글. 황여진 그림. 단비어린이)
가릉빈가(김희숙 글. 유시연 그림. 가문비틴틴북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이며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나침반이다. 역사적 사실에다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진 역사동화도 서사로 우리를 과거와 대화하게 하고 미래로 안내한다. 그런 면에서 역사동화 『하늘이 낳은 아이들』과 『가릉빈가』가 눈길을 끌었다.
『하늘이 낳은 아이들』은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에 천민 백정들이 겪어야 하는 실상을 보여준다. 요즘 출생부터 빈자임을 통탄하는 흑수저라는 말이 있다. 금수저는 물론이고 은수저에도 못 미치는 흑수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 벽일 수 있다. 현실이 그러 할진데, 신분사회인 조선시대 천민의 삶은 어떠했을까?
작가는 광양 숯불고기 집 벽에 흥미로운 설화가 적혀 있는 걸 보고 이야기를 잉태할 수 있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즉, 전라남도 광양시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상상력과 역사 고증을 거쳐 빚은 작품이다.
정당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았던 우의정 강 대감(강상효)은 모함을 받아 마로현(광양)으로 귀양을 온다. 강 대감은 오로지 백성을 위하고, 부패한 관리를 법대로 처리한다. 그 때문에 좌의정을 중심으로 부패한 조정 대신들의 음모를 받은 것이다.
강 대감은 유배지에 온 날, 백정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더 경시하는 걸 보고 놀란다.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일개 이방에게 전 재산을 잃고, 그것도 모자라 마을 현감 한마디에 어머니를 잃은 불휘! 강 대감은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백정마을 아이들을 위해 느티나무 아래에 멍석사당을 열고 글을 가르친다.
“고기 판 금액, 외상값을 적어 돈을 많이 벌겠다고? 그걸로는 안 되느니라. 글을 깨우쳐 홍길동 이야기를 읽고 또 읽어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 서야만 내게 글을 배울 자격이 있느니라. 너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너희가 다르게 살 수 있느니라.”(p.68)
백정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안다는 것은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는 희망이고 힘이었다.
“기억하거라. 양반이든 천민이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귀히 쓰일 데가 있어서 하늘이 낳은 것이다.”(p.73)
강 대감이 하는 말이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마을 현감은 백정에게 글을 가르치는 강 대감을 역모죄로 감옥에 가두고, 강 대감을 모함했던 좌의정에게 올릴 장계를 작성한다. 다행히 강 대감의 진실이 밝혀져 다시 한양으로 가게 된다. 강 대감은 백정의 아이들 중에 불휘를 양자로 데려간다. 양반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불휘는 강 대감의 지지를 받으며 글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원급제를 한다. 불휘는 형조좌랑으로 지원해서 백성들 간의 분쟁이나 노비 문제, 여러 재판에서 약자가 억울함을 당하지 않는 데 힘쓴다. 불휘는 강 대감이 해준 말을 새겼음이 분명하다.
“불휘야, 살아보니 한때 옳은 일을 많이 하고 마는 것보다, 적더라도 평생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널리 이로운 것이더구나.” (p.162)
백정마을 아이들이 글을 배웠다고 해서 당장 약자들이 살 만한 세상으로 바꾸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올 그 날을 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는 데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가릉빈가』는 통일신라시대 최상의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고자 하는 가릉의 이야기를 다뤘다. 가릉빈가는 경전에 나오는 상상속의 새다. 새 모양의 몸에 머리와 팔은 사람의 형상이고 용의 꼬리가 달려 있다. 머리는 새의 깃털이 달린 화관을 쓰고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자태가 아름답고 소리 또한 묘하여 묘음조, 호음, 미음조라고 부르며 극락에 깃들인다고 하여 극락조라 부르기도 한다.
작가는 에밀레종의 전설과 가릉빈가를 모티브로 하여 가릉이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작가는 후기에서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길이 있다.’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주인공 가릉은 최상의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고자 한다. 그런 소망이 깊은 탓인지 꿈에 가릉빈가를 보개 된다. 결국 가릉은 실행에 옮기기 위해 아내에게 당나라에 가서 종 기술을 배워오겠다고 한다.
“달포 전에 꿈속으로 찾아들었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어야겠소.” (p.19)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한답니까? 당신이나 나나 또 배 속의 아기도 모두 뼛속까지 천민인 것을….” (p.19)
아내의 만류에도 가릉은 아기 이름을 빈가라고 지어주고 당나라로 떠난다. 성덕대왕 신종은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며 아이를 시주로 받아서 만들어서 ‘에밀레 에밀레’ 운다는 전설이 있다. 빼어난 소리를 내기 위해 시주한 아기를 가릉의 아내 뱃속에 있었던 빈가로 설정을 했다.
가릉은 당나라로 떠나고 빈가는 시주로 바쳐지고, 아내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비 오는 날 저수지 둑에 굴러 목숨을 잃는다.
가릉이 돌아왔을 때 들은 가정 비극은 예술혼을 흔들어 놓는다. 가릉은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은 고통의 몸부림에서도 놓지 못하는 열정으로 탄생하는 터! 가릉은 꿈에 보았던 비천상을 떠올린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종의 형틀에는 상대와 하대는 반원의 연꽃이 곱게 그려져 있고, 종복에는 관음보살이 아이를 안고 살포시 웃음 지으며 서 있었다.(p.113)
사람들은 가릉의 아내와 빈가라고 여기며 숙연한 표정으로 기원을 한다.
“관세음보살이시여! 기릉과 아내 그들의 딸을 받아주셔서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p.114)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가야 했던 가릉의 예술혼이 천상의 소리로 울려 퍼진다.
역사동화 『하늘이 낳은 아이들』과 『가릉빈가』는 생명의 고귀함과 자신의 길을 가야 했던 예술가의 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그려보게 한다. 역사를 현실로 불러오는 작가의 상상력이 빛나는 이유이다.
함영연
동화작가. 문학박사.
계몽아동문학상(1998) 방정환문학상(2015) 한정동아동문학상(2017) 강원아동문학상(2021)
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문학나눔,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출판 콘텐츠, 세종도서나눔 다수 선정.
작품집으로 『함경북도 만세소녀 동풍신』 『아기 할머니』 『석수장이의 마지막 고인돌』
『실뜨기 별』 외 여러 권. 현재 동화를 쓰며 대학에 출강.
출처 : 아동문학사조 제5호
첫댓글 1월4일부터 사작되는 역사동화 특강의 서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참 고맙습니다♡♡♡~
♡.♡
선생님.!!!!!!! 감사해요.♡♡
눈물이 날것 같은 마음으로 감사히 읽었습니다
글을 퍼가도 괜찮을까요?
ㅎㅎ 반가워요.
당연히 되지요.
@숲지기 감사합니다. 영광이에요~~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