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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마 5:21-26)
2026, 9/6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 5:21-26절 말씀으로“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근래 북한이 휴전선을 넘어와 비무장지대 2㎞를 자기들 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는데, 지난주에는 휴전선 전역에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우리 군이 경계수위를 최고로 올리고 총을 쏘아 격퇴시켰습니다. 휴전선 전역에서 일촉즉발의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간 것은 그동안 북이 비무장지대 2㎞를 자기들 땅으로 만들어 가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더욱 대담해졌고, 또 우리가 전작권 인수를 비롯해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만들어 틈을 벌였고, 우리 군 스스로도 군을 무력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는 걸 보면서 북이 자신감을 얻어 남침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을 재해석하셨습니다.(21-22절)
둘째로, 우리는 주님께서 재해석 하신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23-24절)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제자들에게 팔복에 대해 말씀하신 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 하시며,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17절부터 율법을 언급하시는데,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시며, 율법은 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 모세의 율법을 재해석하여 사람 죽이는 것만 살인을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것까지 살인으로 확대해 형제와 다투지 말고 화목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그런 후 간음과 이혼, 맹세와 모세의 동해보복법에 관해 말씀하신 후 이 모든 것이 사랑을 전제로 해야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것들이 바로 율법의 대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며 형제와 불화하는 것이 어떻게 살인이 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을 재 해석하셨습니다.(21-22절)
본문 21-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아멘.
주님은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고 말씀하심으로 모세의 율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지키는 것보다 더 열심히 율법을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율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해석의 틀을 새롭게 제시해 주셨는데, 그게 바로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살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먼저 모세에게 주신 율법부터 언급하셨는데,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21절) 이렇게 주님은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에 언급된 "살인하지 말지니라." 이 말씀을 언급하셨는데, 오늘날도 세계 모든 나라가 살인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범죄로 취급합니다.
각 나라가 살인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은 만약 살인자를 관대하게 처분하면 인명 경시 현상이 일어나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보복 살인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 결국 인간 사회가 무너지게 됩니다.
신앙적으로 봐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참으로 귀한 존재인데,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함부로 죽이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과 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물론 공공의 질서나 다수의 행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제한될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일시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살인이라는 이 중대 범죄를 주님은 오늘 전혀 새롭게 해석하셨는데,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다시 말해 형제에 노하는 자, 욕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욕하는 자는 심판을 받고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궁금증이 생기는데, 형제를 미워하고, 욕하고, 무시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면 저부터 지옥에 갈 것인데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러분!!! 율법의 목적 중 하나가 우리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롬3: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22절을 읽고‘나는 남에게 욕한 적이 있으니까 지옥 가겠구나.’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나는 살인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고 멸시한 죄가 있구나. 그렇다면 내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도우심과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 가ᅟᅵᆫ절히 사모하며,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쪽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가면 결국“나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때야 비로소“주님, 제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5:22절을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입니다.
어쨌든 주님은 22절에서 형제를 미워하고 멸시하는 것을 살인으로 규정했습니다.
창 4장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아벨의 제사만 받자 가인은 아벨에 대해 시기와 질투가 가득해 있자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합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그럼에도 가인은 하나님의 질문을 외면하고 분노와 섭섭함이 극에 달해 결국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맙니다.
여러분!!! 사람 마음속에 시기 질투 분노가 가득 차 살인으로 끝나는 경우는 가인 말고도 너무 많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죽인 것만 살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노를 품을 때부터 살인으로 간주하셨는데, 예를 들면 화살에 맞아 사람이 10분 후에 죽었을 때 살인은 그가 죽은 10분 후에 성립하지만, 예수님의 기준은 죽일 생각으로 활을 쏜 순간에 이미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시기 질투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그래서 엡4: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쩔 수 없이 분노를 표출해도 해가 지기 전에 끝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귀가 분노를 타고 들어와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약1:20절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잠14:17절에는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도 일상에서 수시로 형제에게 분노하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는 인간적 모멸감을 안겨줄 때도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살인한 것일까요? 살인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게 지옥으로 바로 간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노와 형제 무시가 일상이고, 또 해가 지도록 분을 풀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온유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 맞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한 번도 율법을 떠나지 않으셨고, 모든 말씀을 율법 안에서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강성 유대인에게 비난받았던 것은 유대인은 율법을 문자적 틀 안에서만 해석했고, 예수님은 율법의 대강령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대전제에서 해석하셨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이 새로운 해석의 틀 안에서 생각하면 왜 형제를 미워하는 것과, 해가 지도록 풀지 않는 분노와 인격적 모욕이 살인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우리는 주님께서 재해석 하신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23-24절)
본문 23-2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아멘.
지금까지 우리가 살인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으로 주님은 형제 사랑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인 순종의 방법으로는 먼저 형제들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을 하지 말고, 만약 원망 들을 만한 일을 했다면 즉시 그 형제와 화해하고 바로 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가 먼저일까요? 형제와 화해하는 게 먼저일까요? 오늘 주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형제와 화해 화목 하는 것이 더 먼저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왔는데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한 후에 돌아와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제와의 화해가 예배보다 더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만사 모든 일에 순서가 있듯이, 신앙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이 순서를 지킬 때 신앙이 바르게 서고, 지키지 못하면 혼란이 오고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건물을 지을 때 땅을 먼저 다진 후 기둥을 세우고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급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땅을 다지지 않고 건물을 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화장실이 아무리 급해도 바지를 내리지 않고 일을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 만물에 질서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듯이, 영적 세계에도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형제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은 우리의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에 우선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보다 형제와의 화해가 더 우선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예배하고, 충성과 헌신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대강령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됩니다. 또‘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의역된 말씀과 연관하여 보면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밀양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데, 밀양에서 아이를 죽인 살인범이 교도소에 들어가 신앙을 갖고 평안하게 지냅니다. 아이 엄마도 신앙을 통해서 드디어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할 마음이 생겨 교도소를 찾아가 어렵게 용서를 말하는데, 이 살인범은 자기는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았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용서와 상관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범인을 보고 엄마는 완전히 흑화되어 버립니다.
여러분!!! 왜 아이 엄마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돌변했을까요? 이 범인이 피해자의 감정은 생각치 않고 하나님을 내세우는 뻔뻔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충성과 헌신 정말 중요하고 아름답지만, 그러나 먼저 형제와 화해부터 하라는 주님 말씀에 불순종한 이 살인범이 엄마의 영혼까지 죽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이 하나님께는 잘하면서 형제와 원수 맺고, 불화하고, 이웃에 원망과 비난받을 일을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형제 사랑이 실행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러면 하나님께 드린 예배는 헛수고요, 하나님이 원치 않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나도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으면 내 형제도 이웃도 용서해 주고, 또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집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님이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 사과하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왜냐하면 그걸로 큰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갈 때 논쟁이나 싸움이 일어나면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워 세상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법정으로 가면 잘잘못을 떠나 쌍방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일단 변호사비용이 만만치 않고, 재판이 끝나도 감정적 앙금이 남아 승복이 안 되고 죽을 때까지 서로 얼굴 안 보는 사이가 되어버립니다.
형제들도 특히 재산 문제로 법정에 가면 판결이 나도 진 쪽이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로 영원히 남남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 법정에 가면 안 된다고 고린도 교회에 당부하신 것입니다.
일상에서도 싸우면 자기가 잘못했어도 자존심 때문에 절대 승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도 나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법정으로 가기 전에‘급히’사과하고 화해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또한 갚을 돈이 있다면 한 푼이라도 남기지 말고 다 갚으라 하셨는데, 이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 주변에 빌린 돈을 갚을 때 꼭 얼마를 남기거나, 계산을 흐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모습도 신앙인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은‘한 푼이라도 남기면 절대 못 나온다’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고 치밀한지를 보여주시는데, 이는 심판이 이르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고 죄의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라는 엄중한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한 푼’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이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해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찾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죄 값을 그리스도께서 담당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모두에게 필요하고, 우리는 그 대속의 은혜로 인해 새 생명을 얻었고, 거듭남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해서 형제와 화해와 화목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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