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들빼기꽃/안상학
벤치 밑 고들빼기꽃 피어 있네
하늘 너무 낮아 허릴 굽혔네
꽃들은 하나같이 발밑을 보며 웃고 있네
비 한번 맞아본 적 없겠네
별 한번 쳐다본 적 없겠네
이슬 한번 매단 적 더욱 없겠네
그래서 쓰디쓴 사랑 품고서야 꽃 피었겠지
다음 생에는
빗속도 걸어보고
별빛으로 머리도 빗어보고
이슬에는 아침 해도 가볍게 담아보는 꿈도 꾸었겠지
벌써 몇몇 꽃송이는
야무진 바람 부는 날 기다려
홀홀 이사 갈 거라고
서둘러 솜털 옷 갈아입고 있네
갓 핀 것들은 철없이 웃고만 있네
<시 읽기> 고들빼기꽃/안상학
시인은 일상의 작은 것들을 눈여겨보는 존재인 것 같다. 돌배기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풀꽃에 다가서거나 여치소리 또는 콩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도 시의 창窓이 되기도 한다. 시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앞서 인간적 무늬가 먼저라는 듯이.
사람들은 고들빼기꽃보다 고들빼기김치에 더 익숙할 성싶다. 거무튀튀한 겉모습이며 약간 쓴맛이 배어나는 고들빼기김치는 곰의 혈통을 가진 한국인에게 보약일지도 모르겠다.
시는 고들빼기꽃에 관심을 가진다. 벤치 밑에 피어나서 더는 못 크고 허리가 굽었다. 제 몸에 희거나 노란 꽃을 매달기는 했겠지만 꽃들은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비를 맞아 봤거나 별을 올려다봤거나 이슬방울을 매달아 본 적이 없다는 고들빼기꽃. 벤치 밑에서 열매까지 맺을 그의 일생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런 면에서 1연과 2연의 시행 종결어미를 “피어 있네”, “허릴 굽혔네”, “웃고 있네”, “없겠네”로 갈무리한 것은 연민이나 체념이 아니다. 동시대를 사는 모두의 오늘을 환기하는 것으로 읽힌다. 다음 生에는 “빗속도 걸어보고/별빛으로 머리도 빗어보”며 이슬방울에 “아침 해도 가볍게 담아보”자는 소박한 꿈이 시의 목젖에 축축이 젖어 있을 성싶다.
꿈은 언제쯤이나 다음 生으로 미뤄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반가운 일만 있지 않은 일상을 고들빼기꽃에 빗댄, 불편한 오늘을 결코 벗어난 적 없는 시인의 눈길이 소주처럼 맑다.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 2021.
첫댓글 이 시에서
작고 소박하지만 미래도 보이고
장소 탓하지 않는 한점 불편하지않은 낮은 삶이 읽어집니다. ^^
눈길조차 주지 않는 고들빼기꽃에 눈길을 주면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