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1월 1일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배경]
1948년 11월 1일 ''국가보안법''으로~ 인하어 나라를 지키는 기틀''이 만들어졌다는
글을 올리겠습니다.
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14연대 반란'' 사건에
김지회 중위와 지창수 상사가 중심이 되어 반란을 일으킵니다.
''김지회의 아내 조경순''은
일본 유학 후 ''광주 국립병원 간호사''로 근무 중 공산주의자 김지회를 만납니다.
김지회가 병원에 3개월 입원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이어지고 결혼을 합니다.
조경순은 공산주의자 남편에게 사상적 물이 들어 공산주의자로 변합니다.
김지회는 10월 19일 반란 사건에 핵심 멤버로 움직이다가
다음날 토벌군(국군)이 들이닥치니 '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으로 들어갑니다.
김지회의 아내 조경순(간호사 출신)은
빨치산들의 부상을 치료해야 함으로 함께 빨치산으로 들어갑니다.
지리산 ''빨치산''이 된 김지회에게 끌려간 14연대 군인들이
춥고 배가 고프면 밤중에 도망가다 잡히면 ''죽창''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지리산은 무척 추운 깊은 산속인데요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배가 고프고 추웠을까요?
5개월 뒤 국군(토벌군)은 지리산 인근 ''선술집''을 찾아갑니다.
''빨치산''이 찾아오면 아주 친절히 해주고
''호롱 불''을 환하게 켜서 ''봉창''위에 올려 놓으라 시킵니다.
얼마 후 ~
1949년 4월 9일 ''빨치산''40명이 선술집을 찾아온다.
선술집 주인은 시키는 대로 친절히 잘 해주고 호롱 불을 ''봉창''위에 올려놨습니다.
그날 저녁 토벌군(국군)이 선술집을 포위하고 30명을 사살합니다.
사살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지회 아내 조경순은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채포가 된다.
그런데 김지회가 보이질 안는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산기슭 밑 화전 밭에서 까마귀 떼가 빙글빙글 도는 겁니다.
''깍악 깍악''
가까이 가서 보니 총을 맞고 창자가 쏟아져서 죽어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신원을 파악하고자 조경순을 데려와 확인을 시킵니다.
조경순은 남편 김지회 임을 확인 후 대성통곡을 하면서~
''여수, 순천 14연대'' 반란 사건은 막을 내립니다.
그 후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는 판단에
''국가보안법''을 그 해 11월 1일에 신설을 합니다.
''국가보안법''으로 군대 안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제대, 감옥, 사형을 시킵니다.
4700명은 사형, 감옥, 7500명은 도망을 갔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시작 되면서 춘천 김종호 장군 사단에서도 잡히면 감옥 아니면 사형이니
숙군(공산주의자)들이 북한으로 넘어가는 일이 일어났니다.
팩트는 여기부터 입니다
1년 뒤 6.25가 터져서 전쟁이 났는데
''국가보안법''으로 적색분자 공산당 프락치들을 뽑앗기에~
한국군 안에서 반란이 단 1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숙군공산주의자가 부대 안에 있었다면
앞에서 우리 군이 싸우고 뒤에서 반란군이 우리 군을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하신 정책 중 또 하나의 ''신의 한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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