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근심없이 살기의 비밀
근심없이 산다는 게 불가능한 일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자신있게 믿는다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 삶의 모든 세세한 것이 유일하신 한 분과의 관계 속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은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의미이다. 은혜로운 삶이 곧 수동적인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신뢰하게 된다면 우리는 마음 놓고 편안히 지낼 수 있다.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아는 것, 이는 삶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사는 것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율법적 사고방식은 삶을 '행함'에 관한 것으로만 바라본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찾고 따르는 것이 오롯이 우리의 책임이라 믿게 만든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올바른 선택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근심없이 살아가는 자유를 놓치고 만다.
하나님의 섭리는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신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뒤 자동차에 기름을 주유하듯 세상에 에너지를 주입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지켜보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만큼은 이신론자처럼 행동하기 일쑤다.
헨리블랙커비는 그의 저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섭리를 어떻게 달성하시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1) 그곳에 가 본 친구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다. 지도를 그려줌. 지도를 명확히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음.
2) 그 친구가 동행하면서 직접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친구가 곧 지도가 되는 것이다.
이 예화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연합을 이해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되신다. 우리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드러내심으로써 하나님의 세세한 모든 것이 우리 삶 속에서 이뤄지게 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의식할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즉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행하심. 예수님은 단지 우리의 지도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이자 자동차이며 길이 되신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으며 그분이 다 알아서 행하신다. 이 올바른 깨달음은 우리를 무척 자유하게 한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근심없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선한 일들의 증여자이시며 우리는 그저 수령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은혜로운 삶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는 것은 우리의 임무가 아니다.
율법주의는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때 저절로 그분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근심없이 살기'의 비밀은 하나님이 그분의 계획을 우리로 하여금 분명히 알게 하신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소통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 그분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애쓰신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마련하신 계획을 발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고는 다른 그 어떠한 힘을 통해서도 그분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우리 삶을 다스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다.
우리와 성령의 협력은 '하나님의 섭리는 선하고 완전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우리로 하여금 분명히 그 섭리를 알 수 있도록 한다.
이삭처럼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우리의 삶을 맡겨드리는 것이 그분의 섭리를 깨닫는 토대가 된다. 우리를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려는 시도에서 손을 떼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종함'을 뜻한다.
우리가 개인의 권리에 매달릴 때 그 권리에 대한 위협이 감지되면 두려움에 압도당하고 만다. 근심없이 살기를 경험하려면 우리의 소유라 생각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 밖에는 없다. 우리 삶에서 보장되어 있는 단 한가지는 바로 그분 뿐이다. 그분 하나로 우리는 충분하다.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하려면 우리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두려움은 우리가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권리들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 두려움은 우리가 소유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명과 거룩함 모드 그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부터 나온다.
사도 바울은 종종 환상을 보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종류의 경험을 추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기 위해 먼저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믿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고 고뇌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알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들이 실제로는 자기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야말로 '근심없이 살기'의 본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에 모순되거나 성경을 부정하는 생각들은 모두 우리의 원수에게서 나온다. 당신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다. 어떤 생각을 인지한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그것이 사탄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당신은 그런 생각에 따른 행동만 책임지면 된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사악한 생각에 대한 우리의 방어책은 바로 예수님이다.
기억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녔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곧 예수님과 같은 수준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문다고 해서 각자가 지닌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개인적 특성을 통해 그분의 생각이나 행동을 드러내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싶다면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 다음 담대히 행하라. 그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달렸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면 성령은 우리가 의도치 않게 어긋날 때 개입하실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이끌어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영이 우리를 그분의 섭리에 머물게 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참된 기쁨 안에서 기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시편37:23)
하나님이 당신의 걸음을 정하셨다. 당신이 원하거나 기대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다른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믿음을 따라 행동한 뒤 사자굴 속에 들어간 다니엘을 생각해보라. 멜리데 섬에서 난파를 당하고 그곳에서 독사에 물린 바울을 생각해 보라. 십자가 형벌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해보라.
믿음으로 행한 뒤, 하나님의 섭리를 추측하려 하지 마라.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뭔가 잘못된 일처럼 보였을지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분명 그분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거하셨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한 지점을 정해놓고 달려라. 그러면 이미 도착하셔서 당신을 향해 팔을 벌리신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전진하라. 당신이 그분 안에 거할 때, 매 순간 그분이 당신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 머무르게 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당신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하나님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은혜의 비밀'(스티브 맥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