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옇질않고 짙푸른 바다에 너울성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혀 물보라를 일으키며 철썩철썩 굉음을 뿜어내는 그런 바다에 괴로웠던 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모두 다 털어버리고 싶다.
내가 제천에 자리 잡은 신백동은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시 신백동으로 된 곳인데 화성 아파트 6 동 303 호로 이사했다. 그 주변이 택지 조성으로 거푸집 및 건축자재 찌꺼기 등이 너절하게 널려 있어 지나
다니기에 애먹었다.
매일 TV에 " 어제 충북지역에 최고 20cm 가까운 폭설이 쏟아지면서 도로 정체와 교통사고 등 혼란이 잇따랐습니다.
오늘도 눈 피해 없도록 대비가 필요합니다."라고 방영한다.
나는 가족들이 눈이 많이 와 중앙선, 태백선 철로 건널목 위험
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이곳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에 낯 설어 나도 힘든데 초등학교 1, 5 학년인 진주, 해주가 힘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가족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딸 둘 학업에도 도움이 되고자 부모가 계시는 서울로 가도록
마누라와 의논했다.
그런데 나와 함께한 십수 년의 힘든 생활을 돌이켜보면 혼쾌히 승낙하리라 생각했지만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해주, 진주 학업과 내 고집에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처음으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되어 나도 힘들었지만
마누라는 "시부모 밑에 산다" 라는 부담도 상당했을 것이다.
다행히 마누라는 어렸을 적부터 나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잘 견디어 주었다.
그런데 시엄마가 누구라도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못 보는 성격이라 " 해주 엄마 ! 그렇게 집에만 있지 말고 취미 생활도 하고 나들이 좀 해라 " 라고 하니 媤母 말씀이라
물찬 제비같이 옛 친구도 만나고, 친척들에게 인사도 다니고
서울에 복귀한 고리 사택 아줌마와 본사에서 시행하는 복지 프로그램인 " 서예 교실 " 등에도 다니고, 김욱곤이란 남자 말고 다른 남자 구경도하고 그야말로 살판난 시절이었다
나도 서울에 가면 " 먹고산다고" 찾아 보지 못했던 처가 친척
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특히 서교동 처 외숙모가 해 준 중국요리가 입맞에 맞기도 했지만 서울 본토 말씨로 다정다감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너무 좋아 마누라가 " 이제 늦었으니 집에 갑시다 "라고 할 때까지
처 외삼촌이 따라주는 술잔을 비웠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04시에 회사에 간다고 터미널로 가는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을 테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려와 보는 내 사는 모양이 보기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특히 밑 층 아줌마가 들려주는 " 아저씨가 한 날에 술에 취해 우리 집에 들어와 현관에서 오줌을 누고 마루에 자고 있어 겨우 위층으로 올려 보냈다 " 라는 말을 듣고
해주,진주 뒤치다꺼리는 할매가 어떻게 하겠지 하고 한 달이상 가지 않고 때 아닌 신혼생활도 했다.
나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지역 사업소에 근무하다 보니 지인들이 위로 겸 관광차 자주 찾아 왔다.
마누라의 단짝인 부부가 여름 휴가차 영월 청령포에 함께 가자고 왔다. 승용차 뒤좌석에 앉아 손잡고 함께 보는 풍광은 그림이고 구불구불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유유히 흐르는 강과 산능선이 너머로 보이는 푸른빛을 띤 紫朱色을 머금은 하늘이 넋을 잃게 했다.
숲 속에 숨겨 놓은 듯한 보리밥 집에서 감자煎을 안주로
쭈글쭈글한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한 주전자를 다 마시고 벽을 보니 김삿갓 시가 새겨져 있다.
是是非非 詩-시시비비
是是非非非是是(시시비비비시시)-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是非非是非非是(시비비시비비시)-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是非非是是非非(시비비시시비비)-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是是非非是是非(시시비비시시비)-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