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레포츠와 오묘한 동굴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양희선
두메산골 삼척으로 갔다. 덩치 큰 악산들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첩첩 산들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생기가 넘친다. 산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한가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이따금 보였다. 논밭이 없는 산중에서도 터를 잡고 정들면 고향이 되겠지. 미세먼지로 짜증스런 도시에 살다가, 공기 맑은 청정지역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보니 좋아보였다. ‘산불조심’ 빨간 깃발이 이곳저곳에서 나부낀다. 초행길인 큰아들은 내비게이션navigation의 도움을 받으며, 해양레일바이크 타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오후2시30분에 출발하는 승차권을 예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승차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어린이들이 아빠엄마를 따라 레포츠를 즐기려 온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우리같이 허연 노인네는 없는 것 같았다. 폐선 된 기차 철로를 재활용하여 해양레일바이크를 운행하면서 레포츠도 즐기고, 관광수입도 올리니 일거양득이다. 레일바이크는 2인승과 4인승 두 차종 중 우리는 4인승을 탔다. 아들과 딸이 앞에 앉아 페달pedal을 힘차게 밟으니 잘 굴러갔다. 우리는 뒤에서 바퀴를 돌리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젊어서는 부모인 우리가 자식들을 이끌고 다녔지만, 이젠 자식들이 성장하여 힘없는 부모를 옹호(擁護)하고 다녔다.
소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쾌적한 바닷바람을 쐬며 신나게 달렸다. 백발노인이면 어떠랴. 동심으로 돌아가 그저 즐거웠다. 환상의 터널을 지날 때는 휘황찬란한 오색 불빛이 반짝거리며 돌아가 눈이 부셨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북이, 공룡, 나비, 별 등 환상의 물체들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춤을 추듯 연출하였다. 신이 난 아이들은 우와~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 신나게 달리다가 차간거리가 좁혀지자 깜짝 놀라 제동을 걸어 추돌할 위험을 막았다. 중간지점에서 잠깐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과 어묵을 사먹고, 다시 탑승하여 한참을 달리자 즐기던 1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종착역에 도착했다.
삼척 쏠비치리조트에서 투숙하고, 아침산책을 나갔다. 동해바닷물은 하늘같이 푸르고, 잔잔한 파도소리는 고요히 귓가를 스쳤다. 붉은 태양은 검푸른 바다에서 솟아올랐다. 망망대해 배한척도 보이지 않고, 수평선은 저 멀리서 가물거린다. 잘 가꿔놓은 산책길을 따라 한가하게 걸어갔다. 바닷가는 군사기지라 철문이 잠겨져있고, 오전9시에 문이 열린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딸이 앞서고 아들은 뒤에서 따라오며 우리의 거동을 살피는 눈치다. 약속이나 한 듯, 어디를 가든 자식들이 우리를 감싸고 다녔다. 늙으면 애가 된다더니 “벌써 우리가 자식들의 짐이 되고 있나?”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때 자식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야 재미도 있었을 텐데…. 그 때는 자기앞가림하기도 벅차 그럴 겨를이 없지 않았던가. 해당화가 곱게 웃으며 반겨주는 해안 길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갔다. 우뚝 치솟은 바위가 촛대 같다하여 지어진 이름인가 보다. 오묘한 바위들이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바위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대금굴로 갔다. 동굴이 산속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모노레일이 드나들 만큼 인공으로 통로를 파서 관광객들을 굴 입구까지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열차처럼 객실을 길게 연결한 모노레일은 아무런 운전 장치도, 통신망도 없는 것 같았다. 텅 빈칸을 보니, 학창시절에 구름처럼 몰려든 학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열차통학을 했던 때가 떠올랐다. 달랑 우리가족 네 식구만 타고 갔다. 비좁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날 때, 행여, 갑자기 멈춘다면 종사자도, 비상연락망도 없는데 어쩌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모노레일은 철로를 이탈할 수 없도록 되어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금굴은 5억 3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회암 동굴이다. 항상 많은 물이 솟아나고 있어 물골이라 불리던 지역을 탐색하여 2003년에 발견하고 2007년에 개장했다고 한다. 동굴 속은 석순, 석주 등 희한하게 생긴 다양한 모습들이 많았고, 동굴 속에 큰 폭포가 있는 것도 처음 봤다. 암석의 갈라진 틈새를 따라 흘러내리면서 굳어져 영락없는 커튼모양을 하여 자연의 신비에 감탄했다. 막대형 석순이 촛대 같이 곧게 자라 지름이5cm 높이가3.5m로 국내최대 크기란다. 석순이 100년에 1cm 자란다니 억겁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금굴은 물의 조화로 형성된 굴이라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넘쳐 개장을 금한다고 한다. 발판이 미끄럽고 암석이 머리에 부딪칠까 두려워 조심조심 걸었다.
대자연의 오묘한 신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어느 예술가가 감히 흉내라도 낼 수 있겠는가? 공기, 물, 습도, 암석, 온도가 자연의 기(氣)와 융합되어 무한억겁의 세월을 견뎌낸 신의 조화로운 창조물이 아닐까? 대금굴 근처에 환선굴이 있다. 우리나라 석회암동굴 중 가장 규모가 큰 동굴로 1997년에 개방되었다. 이곳 뿐 아니라 아직도 산속에 묻혀 있는 동굴이 많다고 한다. 요즘은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지만, 자연으로 생성된 신비로운 동굴도 볼만하다. 도로가 잘 나있어 맘만 먹으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아들과 딸이 바쁜 짬을 내어 부모자녀지간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먼 길을 운전하면서 피곤한 기색 없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 고마웠다. 나이 들수록 내 가족이 소중하고 믿음직하여 모든 걸 의탁할 수 있어 든든하다.
(2017.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