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과제
김지나
당신을⋯⋯.
끝맺지 못한 말이 어느 계절처럼 흐려진다. 당신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발 밑에서 자주 부스러지곤 했던 마침표는 도로 삼켰다. 붉다. 어떤 마음은 자란다. 고작 입을 벌리는 것으론 토해낼 수도 없이 커져서는 사지를 가르지 않고선 꺼낼 수 없을 만큼 자란다. 그렇게 뿌리내린 것들이 곧 우거져 숲을 이룬다. 잠시나마 붉게 물들었다가도 당신이란 겨울 앞에선 얼마 버티지 못하고 초라하게 시들곤 했다. 한 때엔 바랐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늘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던 그 눈이 한 번쯤은 웃었으면 좋겠다고. 늘 무거워 보였던 어깨를, 허공에서 머뭇거리던 손끝을, 기댈 곳 하나 없는 듯 보였던 생을 감히 연민했던 때가 있었다. 자주 생각했다. 정해진 노선대로 고분히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이 새장을 부수고 나를 구원해줄 이는 당신뿐이라고. 더는 꼭두각시처럼 웃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당신과는 보낼 수 있어 좋았다고.
바다가 얼마나 깊고 아름답든 아가미 없는 자의 결말이란 싸늘하고 비참하기만 한 법이다. 벌어진 입술 안으로 당신이 끊임없이 들어찬다. 시린 파도가 폐부를 채운다. 비어버린 폐허를 덮쳤다. 뚫려버린 구멍을 지난다. 아물지 않을 상처로 파고든다. 잘 감춰둔 마침표와 앙상히 시든 계절 위로 쏟아졌다. 손끝부터 파래지고 있었음에도 왜인지 불타는 것만 같았다. 그 작열통엔 비명처럼 울부짖었다. 다만 고요했다. 공깃방울만이 떠올라 뭍으로 향한다. 고통스러웠다. 당신이. 당신이 두고 간 모든 것들이. 다만 한 조각도 토해내지 못했다. 꾸역꾸역 삼켜 창자에 되는 대로 우겨넣곤 시선 닿지 않을 곳에서 웅크리는 법밖엔 몰랐다. 감히 안아달라 청할 용기 없으니 그렇게라도.
숨이란, 끊어지는 순간보다 되찾는 순간이 더 아픈 법이다. 나를 구해낸 이가 당신이 아니라 슬펐다. 정희야, 정희야. 부르는 음성이 당신의 것이 아니라 울었다. 더는 함께 누울 수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실감했다. 온 몸이 축축했다. 엠뷸런스 소리가 먹먹하다.
당신이 잠든
파도의
박자는
여전했다.
* 정희가 모든 것을 놓고 그저 무기력하게 가라앉은 데엔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사고로 사랑했던 이를 잃었다면, 그 바다로 뛰어들 만큼 그리움을 견디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