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역 프랜차이즈 스타가 홈구장에서 은퇴한다는거 기본적으로 당연한 얘기입니다. 저 역시 그 정도의 상식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서울이 홈구장 개념이 희박하다지만 서울은 SK와 삼성의 홈구장이라는 의식도 있고요.
홈구장 경기에 대한 애착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 잠실구장 얘기가 나왔을 때 저 역시 홈과 잠실 교자개최에 대한 희망사항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허재이기에 꼭 무리한 희망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홈구장의 경기는 구단에서 열어주고 잠실구장의 경기는 KBL차원에서 수익성을 고려한 행사를 치뤘다면 명분과 실익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허재 못지않는 인기를 누린 아니 실제 경기장에 오는 농구팬을 기준으로 한다면 허재 이상의 인기를 누린 이상민을 예로 든다해도 프로시절 내내 대전현대 -> KCC라는 구단주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구단에서 뛰었던 이상민이 당연히 그의 홈구장 전주에서 은퇴경기를 치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근데 허재의 경우는 30년 농구 인생 중 TG삼보는 그 일부분입니다.
실업농구 현대 삼성의 양강 구도를 깨고 돈 없고 (연고대라인이란)빽 없는 대학팀이 실력으로 성인농구를 이길 수 있다는 지극히 스포츠드라마다운 꿈을 심어준 중앙대의 중심에는 허재가 있었습니다. 프로농구 출범의 계기가 되었던 막강 기아 <-> 연·고대 대립 구도의 화려한 농구 중흥기 그 중심에 허재가 있습니다.
허재는 17년간 국가대표로 노력해왔고 한국농구의 핵심 인프라로 농구 인기의 중심에 서있었습니다. 한국 농구사적 의의를 봐도 KBL 주최의 허재 은퇴경기도 그다지 이상하지만은 않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것만은 아닙니다.
홈구장에서 열리는 은퇴경기는 충분한 명분을 지니고 있는 만큼 어지간한 경우라면 좀더 화려한 경기라는 소망도 눌러 참을 수 있습니다.
삼성 & SK - 13,604석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 6678석
안양 SBS 스타즈 - 6600석
울산 모비스 - 6,234석
창원 LG 세이커스 - 6000석
대구 오리온스 - 5500석
부산 KTF 매직윙스 - 5054석
전주 KCC이지스 - 4657석
(* 위의 기록은 각각 실제 좌석수(입석제외)를 표기한 경우도 있고 입석포함 최대수용인원을 표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00으로 끝나지 않고 명확한 좌석수가 끝자리까지 쓰여진 경우 거기에 최대 수백명까지 더 수용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원주 TG는 최대 3400석이 수용인원입니다. 실제 의자를 배치했을 때는 2800석정도가 수용가능 할 정도의 초미니사이즈 경기장입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올스타전 예매는 보통 특석의 경우 1시간내외에 매진, 일반석 2층도 당일이면 매진됩니다.(현장판매분도 따로 두지만...) 그런데 허재의 은퇴경기는 올스타경기로 치뤄질 예정이고... 이 정도면 가볼 생각이 있는 사람이 느낄 실제 걱정을 동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더해 원주구장에서는 응원석 명목으로 관람에 가장 좋은 전면을 무조건 서포터가 선점합니다. 저 역시 서포터 가입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서포터 석은 원주지역 홈팬들에게만 할애됩니다. 알음알이로 좌석 선점이 이루어지는 거죠.
홈구단에 약간(?) 지역적 특혜가 있다는 거 뭐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팀 서포터들은 구장 최고 좋은 자리 대신 약간 비스듬한 서포터석에서 응원합니다만 좌석의 전면을 차지하는 것도 TG구장의 특색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퇴경기일 얼마나 공정한 좌석배분이 될것인지 또 개인의 이기심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전혀 복안이 없습니다.
허재팬이고 뭐고를 떠나 그냥 관객의 입장으로도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구단의 졸속 행정입니다.
지금 은퇴경기를 일주일도 안 남겨 놓고 알려진 것은 이날 경기가 <무료이고> 식전행사로 <TG선수들의 사인회>가 있고 경기장 바깥에서는 <무료로 국수를 먹여준다>는 사실 뿐입니다.
중계 일정은 잡혔는지? 어느 TV에서 중계방송을 할건지? 표는 어떻게 구해야 할지? 무료인데 진짜 오래된 팬 대신 시간 때우러 오는 구경꾼으로 구장이 가득 차는 건 아닌지?, 이러다 혼잡을 우려해 오히려 팬들이 안오는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닌지?, 표 배부는 몇 시에 어디서 할건지?, 일찍 갈 수 있는 지역주민으로 경기장에 갔을 때는 이미 완전 매진되는 건 아닌지?, 표는 일인일석을 기준으로 할지 아니면 한명이 여러좌석을 끊을 수 있을지, 표를 얻기 위해 줄서느라 사인 한 장 못 받는건 아닌지, 불만을 품은 관중들의 반발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등등...
이게 쓸데없는 기우로 보이십니까?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평생 처음 구단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
거기서 몇가지 궁금한 부분을 물었습니다. 그걸 통해 행사를 주축에서 기획하는 분이 TG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분인 걸 알았습니다.(사실 순간적으로 말이 막히더군요. <- TG홈페이지를 가끔 들리시는 분은 제 심정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상부 결제도 있고 윗사람들의 조언도 있겠지만 누구도 전문적인 행사기획 경험은 없는 아마추어들입니다. 팬의 입장 청취 역시 구단 사무실과도 얘기를 트고 지내는 지역팬 몇몇의 입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실은 잠실 경기를 바랬던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잠실구장이 개입되면 KBL의 행사지원팀의 지원을 받을 것이고 KBL에서 전부를 관여하지는 않더라도 기획부분에 상당부분 개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에 부족한 인력을 지닌 TG에는 천군만마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이 정도 스타의 이정도 주목받는 은퇴경기는 처음이고 KBL이 하든 TG가 하든 누가 하더라도 시행착오는 각오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맨 처음 마인드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 행사를 치를지 어느 정도 인원이 올 것인지 지역민이 아닌 타지에서 오는 팬들은 어떻게 맞을 것인지, 행사의 엄숙함이나 화려함은 어떻게 연출할 건지 전혀 마인드가 안 선 행사를 동네 잔치쯤으로 여기는 구단의 모습은 <무료표>와 <무료국수>로 대변됩니다.
무료표가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1. 지역민들의 반발, 2. 체면(은퇴경기로 돈번다는 소리를 들을까 우려하는...) 3. KBL와 수익분할의 번거로움 및 무료로 출연해주는 올스타선수들에 대한 예우의 어려움. 이렇게 압축되더군요.
그러나 제가 봤을 때는 세 가지 이유 다 일리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행정편의를 위해 결국 졸속행사기획을 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무료표를 돌림으로 구단이 책임져야 하는 행정적 대외적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간편한 행사를 하겠다는 얘기밖에 되질 않습니다.
저 정도 번거로움을 극복할 각오도 없이 전국규모의 행사를 진행할 생각을 하다니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게 아직 프로구단으로서 자리매김 하기에 먼 TG의 한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제고에 신경 쓰고 있는 대기업이나 핸드폰, 방송, 전자제품, 과자등 소비자와 직접 부딪치는 기업이 아닌 비소모재에 가까운 컴퓨터가 주력업종인 TG로서는 그 당장당장 소비자 니즈(Needs)를 수용하는 것에 아무래도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스포츠가 뭡니까? 팬을 기반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 프로입니다.
비록 중계권 수익과 관중수입만으로 구단운영이 안 된다 할지라도 기업이미지 제고라는 것 역시 팬을 기반으로 한만큼 기본적인 마인드는 팬에게 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째든 프로란 말이 붙은 만큼 모기업에서 재정적 자립을 하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이고...
무엇을 할것인가 관점마저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TG의 비틀비틀한 모습은 이미 8시즌을 지나온 프로구단의 모습으로 한참 모자란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모든 것을 다 수용해서 구단의 입장을 100%수용한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행사 10일 남기고 날짜를 발표하고 일주일 남은 상태에서 전혀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개괄만 발표하는 대신 발빠르게 행사의 진행 사항을 좀더 일찍 팬들에게 알리고 팬들의 불안에 즉각즉각 대응했더라면 이 정도 혼란과 우려가 쏟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재의 졸속은퇴 파문 때도 TG구단은 팬들의 항의에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구단에도 변명거리(공식입장)는 있을 겁니다. 공식입장을 발표하는 것에라도 성의를 보였다면 문제가 자꾸 커져가고 실망이 자꾸 커져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팬이란 약한 존재이고 혹시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응원하는 팀에 그리고 화려해야 하는 행사에 누가 될까 하는 불안감에 어지간한 불만사항은 말하기 꺼려집니다. 챔피언 7차전 대량 티켓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대개 항의의 목소리는 안으로 눌러 참았습니다.(그때 티켓을 취소한 사람이 무려 천명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프로구단의 주체가 어디인지를 잊고 있는 구단은 자꾸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 TG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된 은퇴경기 관련 공지
허재 은퇴경기 일정 확정!! (5월2일)
게시자 : 운영자 작성일 : 20040423
허재 내달 2일 은퇴경기
30년 불같은 농구인생 굿 By (Good Bye) 허재
한국농구를 대표했던 "농구 천재" 허재(39.TG삼보)의 파란만장한 30년 농구인생을 마감하는 은퇴 경기가 다음 달 2일 오후 2시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다.
허재의 은퇴 경기에는 김주성 양경민 신기성 등 팀 후배들뿐 아니라 서장훈(삼성) 이상민(KCC) 김승현(오리온스) 문경은(전자랜드) 전희철(SK) 강동희(LG) 등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급 선수들이 대부분 출전한다. 이들을 허재가 임의로 A, B팀으로 나눠 경기를 벌일 예정이다.
양 팀의 사령탑은 허재의 은사였던 정봉섭 전 중앙대 감독(현 대학농구연맹 회장)과 양문의 전 용산고 감독이 맡는다.
또 식전행사로 연예인 농구팀 피닉스와 용산중 농구부의 친선경기가 열리며, 하프타임에는 허재를 포함한 9명의 선수가 나서 일정한 임무를 수행하면 모교에 PC를 기증하는 이벤트도 열린다. 경기장 밖에서는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TG삼보 선수들의 사인회가 열리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는 국수도 제공될 예정이다.
첫댓글 솔직히 무료에 국수나눠주고 이런건 싫지만 또 졸속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나 속상하지만;; 원주에서 하는건 당연하다고 보네요!! 홈이 얼마나 중요한건데요;; 그나저나 정말 허재팬이 아닌사람들이 시간때우러 오는거;; 너무 짜증날꺼같네요..
홈구장 여부보다 무료표가 더 걱정입니다. 도대체 어떤 행사를 기획하려는 건지...
저도 정말 무료표가 걱정입니다~ 정말 .....
우리 나라의 전형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싶군요.. 언제나 순발력에만 의존하려는 생각. 빨리 고쳐져야 할 텐데요..
그런데 왜 하필 국수였을까..=_= 더운데 냉면이나..쿨럭;; 아니 국수는 몇천명에게 나누어 주기 상당히 불편할텐데.. 그냥 도시락같은걸로 하지... 이해가 안되는;;
문제점은 있지만 저도 홈구장에서 하는건 당연하다고 봅니다..안그래도 서울공화국이라는데..;
선수들 관계자나 친인척들만해도 2층 한두구역은 넘게 찰걸요..-.-a..최소한 중계정도는 해줘야할텐데..그런 기획자체를 안하고있을듯...서울에서도 한다면 정규올스타전 맡는 행사팀에서 하게될테니 조금은 나을듯싶네요..물론 희망일뿐이지만..-.-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