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바늘이 멈춰 동네 시계방에 갔다.
오래 된 시계라 맞는 밧데리가 있을까 걱정했더니 당장 교환해 주었다.
밧데리 값은 5천 원이었다.
시계방 주인이 말했다.
"이름 값은 하네요!"
시티즌이 고급 시계도 아닌데 그런 말을 해서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오래 된 고물인데 사연이 좀 있어서 오래 차고 있어요!" 했다.
이 시계는 1995년도에 일본 전당포에서 산 시계다.
그때 선장은 일본 해상 자위대 대좌 출신이었는데 나이는 67세였다.
K-Line 에서 정년퇴직하고 촉탁으로 타고 있었다.
내가 시계가 고장나서 새 시계를 사야겟다고 했더니 고도우 선장이 말했다.
"기관쬬, 새 시계 사지 말고 전당포에 가면 운이 좋으면 명품 시계를 살 수도 있어." 했다.
그래 선장과 같이 상륙을해서 전당포에 가서 산 시계가 지금까지 차고 있는 시티즌이다.
그때 전당포 주인 말이 "이 시계는 야꾸자가 맞겼다가 안 찾아간 시겐데 줄이 꽤 고급"이라고 했다.
일본 선장 덕택에 싼 값에 샀는데 지금까지 탈없이 잘 가고 있다.
동남아로 내려가면 딸보다 어린 필리핀 마누라가 승선했다.
그 크리스티나가 오면 나는 보일러 온수와 에어컨 성능을 '굿 컨디션'으로 유지해주어야 했다.
방이 좀 덥다 싶으면 28살짜리 크리스티나가 여완처럼 날 보고
"치이프! 에어컨 컨디션 노굿!"하고 인상을 썼다.
그 꼴을 보면 늙은 고도우(工藤) 선장은 귀엽다고 빙긋이 웃었다.
내가 그 선장과 그 배에서 딱 1년을 탔는데 그때 크리스티나는 아들을 낳았다.
배가 마닐라 근처를 지나갈 때 태풍을 만났는데 필리핀 선원들이 부추겨 링가엔 만에 피항을 했다.
항해 일지에는 밖에서 피항했다고 가짜로 기록하고 선원가족들이 방선할 수 있도록 배는
연안 가까이 몰고 들어가서 하룻밤을 묶고 나왔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4개월된 고도우 선장의 아들 무쓰오(六男)를 창대 같은 비를 맞고 안고 왔다.
고도우 선장이 살아 있으면 92세가 되었을 것이고 아들 무쓰오는 26살 청년이 됐을 것이다.
그때 고도우 선장은 크리스티나에게 한 달 생활비를 300달러 준다고 했다
많이 주면 엉둥한 짓? 한다고.
첫댓글 마다가스칼국 타마타브항 DOCK기간외는 몇년간 묘지에 엔진도 불량인 유신호 정도되는 몇만톤 냉동모선-작업선 참치 어회물 보관-인데 이곳 일본선장이하 선원들은 약간 검둥이 현지인 여자들 하고 동거하는데..일본에 교대차 귀국후도 장남감,저전거.공등 냉동 운반선으로 자기들 만던 종자들에게 보내던데,일본인들 전쟁은 영토 경제,전쟁도 있지만 일본피 인간들 만들고 돌보고 ,일본 기업체 취업시키고하면 영토전쟁보담 효율적 같아.보르네오섬 키나발루 산 등산 가보니 그곳은 2차 전쟁시 엄청 현지인 고통 줘도 ,대전후 일본 기업체들 들어와 현지인 일본 반종들 고용 시켜주니 아주 좋아 하던데.한국인은 코노피,베트남 자녀들 오면 부끄러워 피하고..
대한 항공 창업자가 베트남여 사이에 만던 자녀들 오지에 고통 받아살다 창업자 노력으로 찾아는데 ,지금은 우찌 되었는지 궁금
재산 상속등 문제도 있고, 한때 창원에도 베트남과 수교시 그곳서 만던 자식 찾아 왔는데 남자가 피하던데. 세월 가니 당시 해외서 만들어서면 기쁨 일인데 .승선 안해본 사람들은 바람둥이라 애기 하겠지만 .일반 젊은 기자들 선원들 해외 씨뿌리고 책임 회피한다고 기사화 하던데 ,전혀 선박생활에 대해 모르는 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