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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 '누군가' 산다 | ||||||
'지인' 빙자해 지적장애인 가택 무단점거 및 학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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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지적장애인이 범죄의 타깃이 됐다. 이번에는 가택 무단점거다.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간이나 턱하니 장애인의 집을 점거했다. 정작 집주인은 이불도 없는 작은 골방에서 지내야 했다. 이 가운데 상습적인 학대 및 폭행도 이뤄졌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해 마치 노숙인과 같은 몰골을 한 장애인은 “어서 빨리 (저 사람을) 내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피해 당사자는 전 아무개(56세‧지적장애 3급) 씨. 그의 사연을 들어봤다. 처음 이 사건을 알려온 윤소라 하계1동 사회복지사는 “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도시락사업 점검 차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집주인 전 아무개 씨가 아닌 다른 사람(비장애인)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인기척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전 씨는 현관문 옆에 딸린 작은 골방에서 간신히 생활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가해자가 거주하는 안방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던 반면 전 씨가 생활하는 골방에는 이불 등 최소한의 생필품도 구비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방 구석구석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있었다고 한다. 과연 전 씨는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의 집을 차지하고 있는 이는 대체 누구일까.
안방 빼앗긴 집주인 “하루 빨리 내보내 달라” 일주일 후인 11월 13일, 센터 측과 함께 하계1동 주민센터에서 전 씨를 만났다.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는 얇은 가을 점퍼에 구멍이 숭숭 뚫린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소재의 여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춥지 않느냐는 질문에 “적응이 돼 괜찮다”는 짤막한 답만 돌아왔다. 무엇보다 전 씨의 몸은 오랜 동안 씻지 못한 듯 매우 지저분한 상태였다. 머리는 장기간 감지 않은 듯 뭉쳐 있었고, 손이며 손톱에는 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심한 악취도 났다. 미간에는 아물어 보일 듯 말 듯한, 그러나 꽤 큼직한 흉터가 있었는데 “함께 거주하는 이에게 맞은 것”이라고 했다. 전 씨는 체형도 매우 외소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 묻자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고 말했다. 과자와 같은 간단한 먹거리는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푸드마켓 카드’로 본인이 직접 구매하기도 한다고(푸드마켓 카드 한도는 1만 원, 한달에 1회 사용 가능하다). “성당을 다니면서 그곳 지인들의 도움도 일부 받는 것으로 안다”고 윤 사회복지사가 귀띔했다. 전 씨는 기초생활수급비에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2000년부터 수급비를 받았으며 중간에 몇 차례 중지 된 기록이 있다고 주민센터 측은 전했다(중지 사유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음). 현재 수급비는 2011년 6월부터 다시 지원되기 시작한 것으로, 장애수당을 포함해 51만 원 정도 된다. 처음 전 씨는 “(수급비에 대해) 모른다”고 하기도 했다 “집사람(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음)에게 갖다 준다”하는 등 여러 번 말을 바꾸기도 했다. 통장을 잃어버린 상태였으나 인출용 체크카드는 본인이 소지하고 있었다. 통장 정리 결과, 매번 한번에 금액을 인출하고 잇었는데 이는 전 씨가 찾아 사용한 것인지 혹은 누군가 전 씨의 수급비 일부를 빼돌린 것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전 씨와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질문을 하면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하고, 몇 십 년 전 옛날 기억을 불쑥 불쑥 끄집어내거나 간혹 가해자를 특정 짓지 못하고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피해상황에 대해서만은 비교적 뚜렷하게 진술했다. 전 씨에 따르면, 현재 집을 점거한 가해자는 과거 어떤 경로를 통해 알게 된 강 애무개(60대로 추정)와 그의 자녀들(40대로 추정, 아들 2명과 딸 1명)이다. 가해자가 한 명이 아니고 2~3명이나 되는 셈. 전 씨가 강 씨와 알고 지낸 지는 상당히 오래 된 것으로 보였다. “옛날에 살던 곳에서부터 알던 사람”이라고 했으며,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함께 지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십수년 전) 강원도 홍천 삼마치리 살 때 강 씨가 택시 운전을 한다며 내 주민등록증을 가져간 적도 있다. 내 명의로 개인택시를 신청했다”고도 진술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명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확실한 것은 최근 3~5년간 전 씨는 강 씨와 함께 생활했고 지난 2012년 전 씨가 이곳 하계1동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강 씨가 따라 왔다는 것. 그리고 이후 줄곧 전 씨의 집을 점거해 왔다. 대화 내내 전 씨는 “(강 씨가) 빨리 집에서 나갔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내보내 달라”는 뜻을 거듭 내비췄다. 이날 오후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전 씨와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는 10평 남짓의 작은 규모로, 문을 들어서자 마자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작은 골방이 전 씨의 방이었다. 벽면엔 외투가 빼곡하게 걸려 있고, 한켠에는 커다란 서랍장이 놓여 있었다. “모두 강 씨의 옷”이라는 전 씨의 진술로 봤을 때, 강 씨 가족은 이곳을 ‘옷방’으로 쓰는 듯 했다. 전 씨의 물건이라곤 세탁을 하지 않은 듯 냄새가 심하게 나는 허름한 옷 한 두 벌이 전부였다. 전 씨는 이 비좁은 공간에서 이불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없는 인스턴드 음식 한 두 가지가 함께 놓여 있었다. 아파트 내에서 전 씨의 생활 반경은 그 방 한 칸이 전부임인 듯 보였다. 마침 강 씨 일행은 모두 외출 중이었다. 안방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권 씨가 그 방에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것. 신발장에는 구두, 운동화 등 10여 켤레의 신발이 들어 있었는데, 남성용 운동와와 여성용 구두 등이 뒤섞여 있었다. 모두 강 씨 가족의 것이라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 정신병원 입원까지 그로부터 얼마 후 11월 말, 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팀이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취재에 나섰다. 센터가 해당 프로그램 담당 PD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가해자 강 씨는 과거 고향 시절부터 전 씨와 함께 지내 온 ‘친구 사이’라는 것(PD가 전 씨의 고향 사람들을 만나 파익한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전 씨와 관계를 가져온 셈이다. 방송사의 취재 움직임을 알아챈 강 씨 일당은 취재 차 아파트에 들어간 PD를 “고가의 시계가 없어졌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등 한바탕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PD가 접근하자, 얼마 후 전 씨에게 이불을 사 주고는 감쪽같이 집을 비웠다는 것. 이승현 센터 주임은 “11월 말 강씨 가족은 모두 이사를 나갔다. PD가 사회복지사와 함께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썩은 음식과 같은 쓰레기들이 모두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 되는 듯 보였다. 그러마 전 씨에게는 꽤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았다.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전 씨. 윤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전 씨는 강 씨 가족이 남겨두고 간 짐들을 수시로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증상을 보였다. 위험하다고 판단한 하계1동 주민센터 측은 정신보건센터와 함께 긴급 입원 수속을 밟았다. 이 주임은 “(짐을 창밖으로 내던지는 행위에 대해) 피해 사실을 정확히 증언하지는 못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센터는 더 이상 이 사건을 두고볼 수 없다고 판단,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무단 점거라는 게 특이한 경우다. 과거 유사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이 주임은 말했다. 한편으로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극단적인 경우 피해 상황이 인정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당 사항은 분명 문제가 되지만 그에 따른 정확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 주임은 내다봤다. 즉, 가해자는 “돌봐줬다”고 진술하며 발뺌할 게 뻔하고 피해자 진술은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주민센터와 센터가 확보한 몇 가지 증언, 증거(사진 등) 외에는 별다른 게 없는 상황인 것. (앞서 TV 프로그램 제작팀도 “증거가 부족해 방송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앞으로 전 씨를 위한 자구책은 주민센터와 정신보건센터가 함께 자립생황을 지원하는 것. 현재 윤 사회복지사는 조만간 전 씨가 퇴원한 때를 대비해 장애활동보조서비스를 알아보고 있다. “전 씨의 장애등급이 3급이라 지금 당장은 서비스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니, 다시 판정을 받아보시게 할 생각이다”고 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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