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편지 / 권정희
해마다 여름이면 우체국이 따로 없다
나무마다 톡톡 터지는
안부 담은 꽃편지들
저마다 마음을 담아 정성껏 내걸었다
백 일 동안 피고 지는
다함 없는 삶이지만
비 내리는 아침에도
노을 진 저녁에도
두고 온 그리움처럼 붉게 쓴다
꽃 편지
사랑은 장맛비처럼 / 권정희
종종 빛을 들이다가
아주 짧게, 너를 생각했다
말 한 마디 없어도
각별하진 않아도
자꾸만 꽃으로 피는
너 때문에
오늘도 비
겨울, 성산에서 / 권정희
빛과 바람의 땅 성산의 한겨울은
푸른빛 아니면 온통 붉은빛이다
귤피 밭 타는 저 붉음, 바다마저 달군다
귤피 그물 잡고 끄는 잡부들의 손놀림에
바다가 밀려왔다 스르르 몸을 푼다
귤 향에 취하는 바다, 그 눈빛이 황홀하다
저렇듯 혼을 밝힌 바다여 그대 앞에
끝없는 공허가 세운 바람 집을 허문다
쓸어도 꺼지지 않는 꿈, 다시 타오른다
한생 끓는 파도 소리 잦아드는 오후 한때
돌아갈 길 열어놓고 생의 무게 벗겨본다
그제야 보이는 세상 봄볕인 양 환하다
ㅡ 시집 『사과나무 독해법』 상상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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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감상
배롱나무 편지/ 사랑은 장맛비처럼/ 겨울, 성산에서 // 권정희
정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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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6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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