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의 축구낙서] 대한민국 최연소 해설위원 “임형철”을 만나다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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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8일, K리그 챌린지의 대구와 안양간의 경기가 끝난 뒤 친구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경기 해설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2부리그 경기에 이렇게 침착하고 알찬 해설은 처음이었다며 저에게도 꼭 들어보라고 권하더군요. 한 축구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경기 해설에 대한 칭찬글을 곳곳에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해설위원이 누군지 궁금해졌습니다. 임형철이라는 처음 듣는 분이었습니다. 조금 더 찾아보았더니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8일 경기가 이 해설위원의 데뷔 해설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나이가 저랑 같은 만20세였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20세의 아주 젊은 나이로 축구 해설위원에 데뷔했다니. 기자라는 직업을 떠나서 같은 나이의 친구로서, 그리고 축구 팬으로서도 정말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임형철씨가 평소에 칼럼을 개제하는 사이트를 통해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친절하게 승낙해주셨습니다.
본 인터뷰는 크게 3개의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임형철씨 본인에 대한 이야기 ▲K리그에 관한 이야기 ▲일반 스포츠와 생활체육에 대한 이야기.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으신 임형철씨를 보며 왠지 모르게 저도 뿌듯해지는 인터뷰였습니다.
분량 상 임형철씨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1부로, 나머지 이야기들을 2부로 나누었습니다.
1. 최연소 해설위원 임형철
김지우 :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정말로 반갑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형철씨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임형철 : 반갑습니다. 축구 칼럼니스트이자 해설위원인 임형철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블로그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꾸준히 칼럼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는 해설위원으로 데뷔하면서 아마추어였던 제가 프로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팬들과 함께 소통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축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김지우 :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시고,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축구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임형철 : 우선 스포츠를 대체적으로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야구를 많이 챙겨봤고 요즘도 야구, 축구, 배구 등 종목에 가리지 않고 다 즐겨보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도 축구를 유독 좋아하게 된 계기는 첫 번째로 “2002 한일 월드컵”입니다. 약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강팀들을 차례차례 누르면서 올라간 우리나라의 집념. 대한민국 대표팀의 4강 신화를 보면서 남다른 감동을 느꼈습니다.
김지우 : 비록 어렸을 때지만 저도 그 때 승부차기를 보면서 정말 짜릿했습니다. 첫 번째로 4강 신화를 꼽으셨는데, 두 번째 계기는 뭔가요?
임형철 : “07/08 맨유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입니다. 비록 박지성 선수가 뛰지는 않았지만 그 때 본 승부차기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라 그 경기를 승부차기부터 봤거든요. 학교 가려다가 우연찮게 본 거였습니다. 호날두의 실축과 존 테리의 미끄러짐. 아넬카 슛을 막아낸 반데사르의 멋진 선방으로 맨유의 우승까지. 그걸 보면서 축구라는 스포츠가 이렇게 큰 매력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07/08 맨유vs첼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하이라이트
김지우 : 그 승부차기는 잊을 수가 없는 경기죠. 이제는 형철씨의 고등학교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축구에 관한 책을 쓰시고, 팟캐스트를 진행하셨잖아요. 어떻게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런 일들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임형철 : 사실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별다른 꿈이 없었습니다. 마케팅 전문가를 해보고도 싶었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도 되보고 싶긴 했습니다. 구체적인 제 목표라고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냥 이런거나 해야겠다.’ 식의 모호한 생각이었죠. 1학년 때는 성적도 참 안 좋았어요. 마땅히 공부를 해야 된다는 이유를 못 찾았었어요. 그런 생각을 누르고 공부를 열심히 해도 정말 잘하는 친구들을 이길 수는 없었고 소외된다는 느낌도 받곤 했습니다.
김지우 : 많은 고등학생들이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죠. 저도 1학년 때 고민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임형철 :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공부를 잘하는 저 친구들 못지않게 어떻게 하면 내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나의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일단 좋아하는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두 가지를 조합시켜 봤습니다. 그 교집합에 있는 직업군이 축구 칼럼니스트와 해설위원이더군요. 그 때부터 그 두 가지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김지우 : 1학년 때 그렇게 꿈을 결정하시고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신 건가요?
임형철 : 네. 그런데 막상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에요. 게임처럼 육성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가지고 그냥 무작정 써봤어요. 일단 뭐라도 직접 써보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칼럼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여러 축구 커뮤니티에 칼럼들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팟캐스트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임형철씨 블로그. 어렸을 때부터 써온 칼럼이 가득하다.
주간 K리그 팟캐스트. K리그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김지우 :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형철씨의 20대가 정말 멋있습니다. 그런데 축구를 생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에 두려움은 없었나요? 안 되면 어떡하냐는 망설임도 분명 있었을 것 같은데.
임형철 :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꿈이 없었을 때는 왜 사는지 회의감을 많이 느꼈었어요. 남들 하는 걸 이유도 모른 채 따라하며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 때 느꼈던 마음이 강했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 때부터 강하게 마음을 먹고 밀고 나갔어요. 지금 선택한 길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 순간 도전을 해야지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은 거예요. 지금 도전을 안 하면 나중에는 훨씬 더 후회를 할 것 같고. 실패를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전을 해본다면 나중에 미련을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김지우 : 그렇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니 두려움은 없었겠군요.
임형철 : 네. 단순하게 생각을 한 거죠. 축구 하나에만 집중을 해야겠다. 내가 쏟아 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김지우 : 축구직업설명서라는 책에 해설위원에 대해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해설위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새로운 비선출(선출 : 선수출신) 해설위원 자체가 나오기 힘들거다.’ 살아있는 반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형철 : 해설위원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주위에서는 다 그런 반응이었어요. 선수도 아니면서 어떻게 해설위원을 할 거냐는. 저도 지금 해설위원을 꿈꾸고 계신 분들께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말해줄 자신은 없어요. 그래도 저는 이런 생각입니다. 제 인생의 좌우명이기도 한데요, “두들기면 응답합니다.” 저는 2015년 여름, 서울 유나이티드 SUTV에서 명예기자 겸 해설위원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기 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어디서 해설을 할 수 있을지 여러 차례 궁리만 하다가, 꾸준히 두들겨 본 끝에 드디어 응답해주는 곳을 찾은 거예요. 해설위원을 꿈꿨지만, 마땅히 내가 될 거라고 상상은 못하던 때에 일단 두드려봤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해설을 시작했더니 어느덧 프로 단계까지 오게 됐습니다. 결국, 열정이 있으면 일단 두들겨보고, 두들겨보는 과정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지우 : 도전을 하는 자체에 행복을 느끼고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임형철 : 그렇죠. 저도 아직 두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메이저 해설위원이 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설하는 자체가 행복합니다. 그 끝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최선을 다해서 두드리며 끝까지 나아갈 생각입니다.
김지우 : 본인의 첫 데뷔 해설이 4월 18일 대구와 안양 경기였잖아요. 평을 찾아봤는데 아주 좋은 평가가 많더라고요. 첫 해설이라는게 믿을 수 없다는 등. 과연 본인은 본인 해설에 만족하셨나요?
임형철 : 그 날 에피소드가 있어요. 해설이 끝나고 폰을 보니까 단톡방이 난리가 나있는 거예요. 갓형철, 갓철 그러는 친구도 있고. (웃음) 반응이 좋더라고요. 당연한 얘기이긴 하지만 해설하기 전에 부담이 좀 됐거든요. 주위에 반응도 비선출 해설위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도 있었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경기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남한테 잘 보이려는 생각보다 내가 재밌게 하자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제가 즐기면서 최대한 편하게 했고, 다행히 팬 분들께 좋게 어필이 된 것 같아서 첫 중계로 부담이 덜어졌어요. 완전히 백지상태였는데 첫 중계를 통해 어느 정도 스케치를 그려 나갈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김지우 : 평소에 축구 칼럼을 꾸준히 써오셨고, 책도 내셨을 만큼 아는 것도 많으시잖아요. 그런 풍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서 내용적으로 알 찬 해설이 된 것 같습니다. 준비를 정말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임형철 :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해설위원이라는 일 자체가 축구를 잘 아는 것은 물론이고, 왜 두 팀이 경기를 하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왜 두 팀이 경기를 하고 왜 시청자들이 이 경기를 봐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전달해주는 역할이 해설위원이에요. 평소에 축구 경기를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시청자들이 경기를 봐야하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점들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를 했습니다. 선수 개개인에 대한 정보, 팀의 현재 전력, 짚어주어야 할 점들, 주목해야할 관전 포인트들을 다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 모든 자료가 단 한 번의 경기를 위한 것들이다.
김지우 : 본인이 지향하는 중계 스타일이나 철학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롤 모델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임형철 : 어느 분이 롤 모델이라 하기는 어려워요. 날마다 바뀌거든요. 여러 분들의 장점이 보이고 그런 장점들을 하나하나 참고하며 저만의 색채에 녹여 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지향하는 스타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흐름을 제대로 짚어주는 거예요. 당연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주 중요하거든요. 공격 전개 방식, 수비 형태 등 이런 흐름들을 적재적소에 짚어 주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경기를 봐야하는 이유를 알려주려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런 것이 재미 요소입니다. 너무 흐름 얘기에 치중하다보면 재미가 없어지거든요. 경기에 대한 내용 분석과 함께 재미도 함께 챙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선수 개개인에 대한 이야기예요. 선수들의 그 날 플레이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배경, 스토리에 대해 알려주려고 합니다. 이런 건 해설이 아니면 짚어주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세 가지들을 기본으로 해야겠다는 목표에 입각해서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김지우 : 정말 앞으로의 해설이 기대가 됩니다. 이제 일부러라도 임형철 씨 해설을 찾아 들어야 겠어요.
임형철 : 바로 내일 모레 수요일(5월 25일, 안산 무궁화 vs 부산 아이파크)이 경기에요. 꼭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와우 멋있어요...!!! 글 잘 보고 갑니다!!
스무살에 해설위원이라니 대단하네요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