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군자는 처자식 일을 쉽사리 입에 담지 않는 법. 이웃 집 아이에 대한 관심보다 넘어서는 자기자식 이야기는 도를 아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논어 전편을 두고 공자는 아들 鯉(리)를 향하여 詩禮(시례)를 읽으라는 충고가 있었을 뿐이다. 공자가 통곡한 것은 잉어가 죽고서가 아니라 안회가 죽고서였다.
불세출의 웅변가 맹자의 광양자자한 문장 속에서도 자기 자식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옛날 구닥다리 교육방식을 21세기 첨단 과학시대에 되뇌이고 있다고 핀잔을 할수 있으나 그렇치가 않다.
교육의 대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고 그 인간은 자기자신을 닦고 수양하는 것이다. 자식교육의 첫걸음은 부모가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 자신의 언행을 자식은 속속들이 다보고 있고 따라하는 것이다. 知識(지식)은 학교에서나 기타 매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고.
그래서 본데가 있는사람, 또는 본데 없는놈 이란 말이 생기는 것이다.
자식 사랑이나 양육은 짐승도 하는 것이고 교육도 짐승을 포함한 미물도 한다. 짐승도 하는 그 당연함을 항차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처자를 자랑하고 으시대니 이것을 팔불출이라 하는것이다.
작금의 우리교육은 대의를 벗어난 경쟁의 틀속에 기어다닐때 부터 구겨넣어서 입시와 출세지향주의 교육을 하고 있으니 정신적인 것은 말할것도 없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지출이 있는 것이다.
공부란 것이 평생을 해도 부족한 것인데 고등학교 삼년 죽도록 하고 좋은대학가서 펑펑 놀아도 되는 것이 우리현실이니 더 말할것이 무었이 있겠는가?
진실로 교육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이시대를 살아가고자 한다면 학부모 교육자 모두는 명심할 일이다.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잘 갈고 닦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하늘로 부터 부여 받은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고 형제와 우애있는 것이고 친우와 신의있는 것이고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고 남을 배려하는 평범한 일상 들이다.
이런것을 지키게하고 따르게 하는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그런대 왜 지켜지지 않는 것인가 이는 모두 나의 잘못이다. 욕심과 아집 불안 비교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과감히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남이하니까 어쩔수 없이 따라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고 못난일은 없을것이다. 잘못된 일은 남이 다해도 잘못인줄 알면 나는 안해야 되는 것이다.
방안에서 잃은 물건을 마당에서 찾는 어리석은 이에게 물었더니 마당이 밝아서 마당에서 찾는다고 한다. 방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방에서 찾아야 한다. 어두우면 불을 밝히면 되는 것이다. 잘못되어지고 잃어버린 우리의 교육풍토를 다시 되찾아야 한다. 나부터 하면 된다***尋山***
첫댓글 "나부터 하면 된다"하신 선생님의 결기어린 다짐을 함께 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지요.
나부터 하고나서 말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