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전문가칼럼
‘65′라는 숫자는 잊어라… 국민연금만큼 노인 돌봄 문제가 급하다
[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입력 2023.05.24. 03:00업데이트 2023.05.24. 06:24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5/24/K4HBZDQN6VC7XHZV6D6ZDNA6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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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고령화와 관련된 논의를 할 때 많은 경우 65세 이상의 인구가 늘고 있다는 통계 자료에 집중한다. 그런데 65세 이상이라는 인구 집단은 매우 큰 범주이며, 연령 등 인구학적 특성과 의학적, 기능적 특성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놓치고, 숫자 나이 65세 이상의 인구 집단이 균질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미래를 예측하거나 대비하지 못하게 된다.
지금부터는 65세 이상 인구집단이 비교적 균질하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볼 수 없는, 방 안의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다. 경도 인지 장애와 골다공증, 고혈압, 만성 콩팥병 등을 앓던 87세 여성 A씨가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진료실을 찾았다. 작년부터 전반적 신체 기능이 떨어지며 조금씩 외출이 어려워졌는데, 6개월 전 경험한 척추 압박 골절로 잘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 늘면서 쇠약감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살던 그는 1년 전에는 기본적 집안일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대부분을 근처에 사는 딸이 챙겨야 했고, 돌봄의 부담을 덜기 위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했다. 신청 후 제출해야 하는 의사 소견서를 받으려고 예정일보다 일찍 내원한 것이다.
A씨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질병과 노화의 결과로 전반적 삶의 기능이 떨어지면 돌봄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집,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등에서 여러 가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인정받은 사람을 모두 합치면 우리 사회의 전체적 노년기 돌봄 요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인 모두를 평균했을 때, 대략 몇 살이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을까?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허리가 굽기 시작하는, 노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72세, 노쇠가 조금 더 뚜렷해지는 시기는 77세다. 이 노쇠의 결과로 돌봄 요구가 생기는 시점이 문제다. 국민건강보험의 장기요양등급 판정 현황 통계와 지난 13년의 시군구별 주민등록 인구를 종합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수는 85세 이상 인구와 거의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탄생한 이래 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 많은 보고서가 나왔지만, 많은 연구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수요 증가를 보수적으로(낮게) 예측했다. 안타깝게도, 이 보고서들은 초기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이용 연령 패턴이 유지된다고 잘못 가정하거나, 미래의 국가적 돌봄 수요가 65세 이상의 전체 인구 변화를 추종하는 것으로 가정하였다. 그런데, 65세 이상 인구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증가했어도 85세 이상 인구는 급증해왔으며, 이러한 거시적 변화는 국가적 돌봄 요구를 5~10년 전의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보다 더 빠르게 증가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못한 기존 보고서에 기대어 정책적 판단을 하는 경우, 예를 들어 요양병원 입원 환자 수가 65세 이상 인구 증가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인구 변화라는 거대한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고, 없는 수요를 영리 목적으로 만들어냈다며 애꿎은 병원들을 비난하게 된다. 참고로 요양 병원의 입원 비용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양 병원 입원이 필요한 사람은 대부분 장기요양보험 등급이 필요한 정도의 노쇠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20년간 급증할 초고령 인구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8년 인지지원등급이 신설된 이후 최근까지 장기요양보험 인정자 수는 85세 인구의 110% 정도에 수렴하고 있다. 이러한 수렴 상태가 당분간은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 미래의 돌봄 수요를 예측해 보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수는 2021년 95만명(85세 이상 인구 86만명)에서 2041년 297만명(85세 이상 인구 270만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95만명을 돌보는 데만 요양보호사는 50만7000명, 사회복지사는 3만4000명이 필요하다.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2041년에 요양보호사가 적어도 150만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계산에서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있다. 20년 뒤에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자녀가 한두 명으로 구성된 베이비붐 세대다. 지금의 80대는 자녀 세대가 주도권을 갖고 돌봄을 수행하며, 장기요양보험 재가 돌봄 서비스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20년 뒤의 베이비 부머에게는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자녀 세대가 부족하거나 없다. 따라서 일일 3~4시간의 재가 요양 개념 역시 20년 후에는 수정해야 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훨씬 더 많은 요양보호사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돌봄 폭증의 부담은 더 적은 수의 젊은 세대가 받는다. 비교적 느리게 증가하는 65세 이상 인구를 다루는 국민연금 문제에 비해 더욱 급격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021년 3700만명에서 2041년 2700만명으로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유지되던 장기요양 서비스 구조가 20년 뒤에도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슷한 가정을 활용한 순천향대학교 김용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0.68%인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필요 보험료율은 2065년에는 자그마치 9.4배 높아진 6.4%가 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 노령 인구 구조의 변화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정해져 있는 미래다. 하지만 ‘65′라는 숫자에 파묻혀 우리 사회는 노쇠와 돌봄이라는 방 안의 코끼리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코끼리를 바라볼 수 있어야 노화를 지연시키고, 노쇠 진행을 더디게 하며, 돌봄 부족을 예방하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을 논의할 수 있는데, 아직은 다들 편안히 눈가리개를 쓰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