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시 모음 아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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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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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심장
신석정
별도
하늘도
밤도 치웁다.
얼어 붙은 심장 밑으로 흐르던
한 줄기 가는 어느 난류(暖流)가 멈추고.
지치도록 고요한 하늘에 별도 얼어 붙어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정지하고
푸른 별이 모조리 떨어질지라도
그대로 서러울리 없다는 너는
오 너는 아직 고운 심장을 지녔거니
밤이 이대로 억만 년이야 갈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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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으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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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抒情詩
신석정
길이 넘는 유리창에 기대어
그 여인은 자꾸만 흐느껴 울었다.
유리창 밖에서는 놋낱 같은 비가 좌악 좍 쏟아지고
쏟아지는 비는 자꾸만 유리창에 들이치는데
여인의 흐느껴 우는 소리는
빗소리에 영영 묻혀버렸다.
그때 나는 벗과 같이 극장을 나오면서
그 여배우를 아무래도 잊을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 일이 있다.
생활의 창문에 들이치는 비가 치워
들이치는 비에 가슴이 더욱 치워
나는 다시 그 여인을 생각한다.
글쎄 여보!
우리는 이 어설픈 극장에서 언제까지
서투른 배우 노릇을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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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구도
신석정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날 지구(地球)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 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 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더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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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류에 서서
신석정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한 줄기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검은 밤이 흐른다.
은하수가 흐른다.
낡은 밤에 숨 막히는 나도 흐르고
은하수에 빠진 푸른 별이 흐른다.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못 견디게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빛나는 태양이
다다를 무렵
이 강물 어느 지류에 조각처럼 서서
나는 다시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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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아로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은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 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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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촐한 밤
신석정
새새끼 포르르 포르르 날아가 버리듯
오늘밤 하늘에는 별도 숨었네.
풀려서 틈가는 요지음 땅에는
오늘밤 비도 스며들겠다.
어두운 하늘을 제쳐보고 싶듯
나는 오늘밤 먼 세계가 그리워
비 내리는 촐촐한 이 밤에는
밀감 껍질이라도 지근거리고 싶구나!
나는 이런 밤에 새끼궝 소리가 그립고
흰 물새 떠다니는 먼 호수를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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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이 되고 싶어
신석정
하늘이 저렇게 옥같이 푸른 날엔
멀리 흰 비둘기 그림자 찾고 싶다
느린 구름 무엇을 노려보듯 가지 않고
먼 강물은 소리 없이 혼자 가네
뽑아 올린 듯 밋밋한 산봉우리 곡선이 또렷하고
명항한 날이라 낮달이 더욱 희고나
석양에 빛나는 까마귀 날개같이 검은 바위에
이런 날엔 먼 강을 바라보고 앉은 대로 화석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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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하세요?~
그도세상 김용호님!~~^^
오늘은 식석정시인님의 모음시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수고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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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드립니다...
그도세상 김용호님..
환절기 입니다...따뜻하게 몸 챙기세요.......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