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수출보험 민간시대 열렸지만...
4개사 참여 불구 아직 계약실적 없을 정도로 부진
‘중소·중견기업 의무인수율 적용’ 땐 시장 더 위축
단기수출보험의 민간시대가 본격 시작됐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손해보험회사들은 3년 전 민간에 개방된 단기수출보험 시장에 최근 잇따라 참여를 선언하고 상품 판매에 들어갔는데, 아직 체결된 계약이 없을 정도로 시작이 미미하다.
그렇다고 앞날이 창대할 것 같지도 않다. 정부가 민간 손해보험회사에 최대 25%의 중소·중견기업 의무인수율 적용을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분간 민간의 단기수출보험 판매가 더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동부화재는 10월 1일 단기수출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 8월 31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단기수출보험업 허가를 받은 지 한 달여 만이다.
가입 대상 계약은 ‘결제기간이 180일 이내인 물품 및 용역 공급계약’이다. 보험기간은 통상 1년이다. 보험료는 가입대상 매출액의 0.2~1.0% 수준이다. 업종, 거래특성, 보험 가입규모, 결제조건, 구매자 분포 등을 고려해 산정된다. 신용한도는 동부화재가 구매자의 재무, 비재무 요소 등을 평가해 산출한다. 보상비율은 신용한도 승인업체의 80~95%이다.
이에 앞서 AIG손해보험은 8월 1일부터, KB손해보험은 9월 13일부터 각각 단기수출보험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아직 계약 실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해상은 금융위로부터 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상품을 출시하지 않았다.
단기수출보험(선적후)은 수출자가 수출대금 결제기간 2년 이하의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물품을 수출한 후 수입자로부터 수출대금을 받을 수 없게 됐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다. 제도 도입 이후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독점해 왔다. 그러다가 2013년 8월 정부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통해 민간보험업체의 시장 진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경험이 전혀 없는 손해보험업체들은 리스크 분석과 사업 타당성 검토에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지난해 1월 모뉴엘 사태가 터지면서 손해보험업체들은 몸을 사려야 했다.
정부는 단기수출보험 가운데 무역보험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2017년까지 60% 이내로 축소(민간 손해보험업계의 점유율을 40%까지 확대)시키고 무역보험공사는 중장기 수출보험 전담기관으로 특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같은 목표는 실현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손해보험업체들의 시장 진출이 워낙 늦어진데다 민간 손해보험회사들이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수출 대기업 중심의 방어적인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단기수출보험 시장은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지난해 1600억원 규모이고 손해율이 100%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역보험공사는 지난해 단기수출보험에서 25억원의 적자를 냈다. 무역보험공사의 20년간 누적 평균 손해율은 10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진다.
2014년 기준 중소기업의 단기수출보험 손해율은 155%, 중견기업은 88.5% 대기업은 53.2% 수준이다. 손해보험업체들이 수출 대기업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손해보험업체들의 단기수출보험 연간 인수실적의 20~25%를 중소·중견기업으로 채우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4년을 기준으로 사실상 ‘손해’인 중소기업과 소폭의 흑자인 중견기업으로 연간 인수실적의 20~25%를 채워야 할 경우 당초 기대보다 실익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손해보험업체들에게 중소·중견기업 의무인수율을 적용하려는 이유는 현재 상태로 둘 경우 대기업 시장만 고스란히 민간 손해보험업체들로 넘어갈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무역보험공사의 단기수출보험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보험료가 동일하지만, 민간 손해보험업체들의 단기수출보험은 인수 위험이 낮은 대기업에 대해 더 낮은 보험료를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대기업들은 무역보험공사가 아닌 민간 손해보험업체에 부보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중소·중견기업만 무역보험공사에 남게 돼 ‘공사의 수익성 악화→무역보험기금 손실→중소·중견기업 보험료 인상 및 지원 축소’의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상품 출시 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을 해 왔다”면서 “중소·중견기업 의무인수가 확정되면 수익률이 낮아져 대기업에 대한 보험료 할인 등이 어려워질 것이고 영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OECD국가의 경우 단기수출보험의 95%를 민간 손해보험업체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무역보험공사의 연간 단기수출보험 인수실적은 약 200조원가량이다.
<주간무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