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싸움의 대상은 너를 상대하는 한 선수가 아니라 여자를 애 낳고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이나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야.’ 이 한 마디는 딸이 놓여있는 사회 환경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승리의 나팔을 불어주어야 함을 딸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하기는 본인이 그런 환경을 살아왔고 자기 자신도 딸보다는 아들을 원했습니다. 그렇게도 아들을 기다렸건만 ‘딸입니다,’ 하는 소리를 연속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마저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서나마 이뤄보고자 했던 그 간절함마저 버려야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운명인가 보다 생각했겠지요.
어느 날 조카가 부리나케 찾아왔습니다. 집에 사고가 났는가보다 싶어 달려왔습니다. 무슨 일이요? 아내가 눈짓하여 아이들을 쳐다보니 다친 데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만 굴리고 있습니다. 아내가 맞은 편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두 사내 녀석들이 얼굴이 몰골이 되어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건대? 우리 딸들이 그랬대요. 믿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여자 애들이 자기보다 오히려 덩치도 커 보이는 사내아이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말인가? 일단 따지러 온 상대방 어미에게 사과를 합니다. 돌려보내 놓고 딸들을 불러 세웁니다. 이제 혼나겠구나 조마조마하며 아비 앞에 섭니다. 어떻게 된 일이니? 쟤들이 놀려서 좀 만져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여자 애들이 사내 녀석들을 두들겨 패주었다는 것이지요. 아비는 딸들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여자가 받는 금메달은 금메달이 아닌가?
새벽 5시 기상, 호된 훈련이 시작됩니다. 딸들은 영문도 모르고 아비의 명을 따릅니다. 한 마디로 죽을 맛입니다. 애들을 팬 벌이라면 한두 번이면 족할 텐데 그게 아닙니다. 매일 반복됩니다. 아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에 가면 공부는 제쳐두고 조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런데 훈련에 방해된다고 머리까지 잘라버립니다. 여자애들이 사내처럼 바지를 입고 골목을 뜁니다. 머리를 잘라버렸으니 이게 사내인지 여자앤지 구분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창피해서 머리를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며 놀리고 비난합니다. 딸들은 동네서도 학교에서도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아비이니 대들 수는 없고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시는 건가, 동네 창피해서 다니기도 힘듭니다. 아내마저 나서서 남편에게 사정합니다. 아이들 시집도 못 가게 만든다고 말입니다.
자기와 또래인 여자애가 결혼식을 가집니다. 친구인 신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합니다. "강제로 딸을 레슬러로 만드는 아빠가 세상에 어디 있어? 오전 5시에 일어나 뛰게 만들고, 노예처럼 다루고. 남자애들과 싸우게 만들잖아." 그랬습니다. 아비 앞에 대놓고 말할 수는 없어도 불평과 원망이 가득 차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신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옵니다. "난 신이 그런 아버지를 줬으면 좋겠어. 적어도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생각하잖아. 우리 현실은 여자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요리와 청소를 가르치고 허드레 가사 일을 하게 되잖아." 그 문화가 그랬습니다. 여자애는 자라는 대로 어서 시집을 보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집안의 짐과도 같습니다. 어서 보내야 집에 득이 됩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다릅니다.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키우는 친구들의 아비가 부러운 것입니다.
두 딸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비는 그것을 알아챘습니다. 아들을 기다렸는데 딸이면 어때? 여자라고 금메달 색깔이 달라지나? 남자 여자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재능을 살려 실력을 갖추게 하여 경기에 나가도록 하면 됩니다. 누구든 챔피언이 되면 국기가 경기장에 오르고 국가가 울려 퍼집니다.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명예를 얻게 됩니다. 여자가 했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 하든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제 두 딸이 아비의 선택에 마음을 합하여 적극 참여합니다. 아비를 믿고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나가는 경기마다 승리합니다. 동네에서 대표로 나가 주 대표가 되고 이제 국가대표가 되면 됩니다. 그래서 국가 대항전에 나가서 챔피언이 되는 겁니다.
국가대표는 따로 선수촌에 입교를 해야 합니다. 코치나 감독도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 불협화음이 생깁니다. 아빠는 개인 재산 털며 혼신의 힘을 다해 딸들을 가르쳤지만 국가가 운영하는 선수촌에 들어가면 하나의 조직체로 움직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개별적인 관심과 배려를 받기 어려워집니다. 개인별 장단점이나 특성을 고려하여 그에 맞게 훈련이 이루지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정서적 심리적 영향을 크게 받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관심 있게 다루기 어렵습니다. 큰 딸 ‘기타’가 국가 대표가 되기는 했어도 조직에 흡수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국가의 녹을 받는 감독은 하나하나 살펴주지 못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렇든 저렇든 자기 먹을 것은 나오지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더 못된 것은 국가 대표팀의 감독이라는 권위까지 쥐고 있습니다. 누가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게 교만의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닙니다. 사회 인습에 도전하는 한 아버지의 인간 승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느 액션영화보다도 신나고 재밌습니다. 더구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감동도 따릅니다. 영화 ‘당갈’을 보았습니다. ‘당갈(dangal)’은 인도말로 레슬링 경기라는 뜻이랍니다.
첫댓글 감사
좋은 주말입니다. ^&^
잘보고갑니다
포근한밤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
즐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