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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은 고려시대 후기에 정토(淨土) 신앙이
크게 유행할 때 관음보살과 함께 가장 널리 믿고
받들어졌던 보살이다.
관음 · 문수 · 보현보살과 함께 대승불교의
4대 보살로
"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여 마침내 그들이 보리(菩提)를 깨달아
지옥이 다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으리라! "
라는 서원을 세운 보살이다.
지장(地藏)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땅의 신, 즉 지신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형상화된 보살로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이다.
지장보살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보살과는 달리 머리에 보관을 쓰지 않고
민머리의 스님 모습으로 곧잘 표현된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두건을 쓴 독특한 모습의 지장보살상이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두건 지장보살상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으며,
중앙아시아 일대와 우리나라에서만 보인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는 사찰이 위치한 곳인 선운산에서 유래된 것이다.
‘선운사사적기’에 의하면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 누워 참선하고 도를 닦는다.’는 것을 뜻한다.
선운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조선 숙종대인 1713년에 기록된 ‘대참사사적기(大懺寺事蹟記)’에 의해
신라 진흥왕 때 검단선사가 대참사(大懺寺), 중애사(重愛寺)와 함께 세운 사찰이다.
선운사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279호)과
도솔암 지장보살좌상(보물 280호) 및
참당암 지장보살좌상(전북 유형문화재 33호)등,
삼장의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 도량이다.
삼 지장보살은
천장(天藏) 지장보살(도솔암),
지지(地持) 지장보살(지장보궁),
인장(人藏) 지장보살(참당암)이라고 부른다.
* 도솔암 내원궁 지장보살상
1. 도솔암 내원궁 지장보살
동백꽃으로도 유명한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도솔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이 도솔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면
'도솔천 내원궁'
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법당이 나타난다.
보물 제280호. 대좌(臺座)·광배(光背)는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완전하게 남아 있다.
영락(瓔珞)을 장엄하게, 법륜을 정교하게 치장한 것은
가슴의 화려한 목걸이나 손목의 팔찌 등과 함께
고려 후기의 귀족적인 호사한 취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옷으로는 대의(大衣) 모양의 천의(天衣)를 일정한 두께로 입고 있다.
도솔천 내원궁!
불교의 세계관에서 볼 때 도솔천은 욕계(欲界)의 6천(天) 중 네 번째 하늘에 해당하며,
그 도솔천의 중심부에 내원궁(內院宮)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내원궁은 극락세계와 함께 불교의 대표적인 정토(淨土)로 손꼽히고 있으며,
현재 내원궁에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보살이 머물러 계시면서 법을 설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도솔암의 '도솔천 내원궁'의 문을 열어보면,
미륵보살은 보이지 않고 지장보살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게 만드는 아름답고 당당한 지장보살님의 모습이….
비례감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몸의 어느 한 곳에
인위적인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단정한 자세를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한 다음 성불하겠다."
고 맹세한 지장보살의 의지가 풍겨져 나옴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 초승달 같은 눈썹, 긴 눈매,
오뚝한 코, 단아한 입술 등 단정하면서도 다소 여성적인 얼굴 모습에는
지장보살의 깊은 사랑이 배어 있는 듯하다.
아울러 이 지장보살님께 예배를 드리면,
도솔암이 한국의 대표적인 지장성지가 된 까닭을 저절로 느낄 수가 있다.
도솔암의 지장보살상에 대해 지나치기 쉬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도솔천 내원궁에 당연히 있어야 할 미륵보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왜 지장보살이 좌정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다.
사찰의 전각 이름 중, 석가모니불이 아닌 다른 부처님을 모셔 놓고
그 전각 이름을 '대웅전'이라고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이다.
어떠한 부처님도 영웅 중의 영웅이신 '대웅(大雄)'이시고,
그러한 대 영웅을 모신 '큰 법당'이 대웅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락전'이라 하여 놓고 아미타불 대신 약사여래를 모시거나,
'관음전'이라 하여 놓고 문수보살을 주존으로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이름과 내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륵보살이 아닌 지장보살만을 모신 전각을
'도솔천 내원궁'이라 할 때는 특별한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만 용납된다.
명분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던 우리네 옛 스님들이,
불교 교리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편액을 달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사바세계의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위촉받은 지장보살의 역할,
이 땅에 뿌리 깊게 전승되어 온 참회불교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불의 부촉과 지장보살의 맹세
지장경 제 2 품 분신집회품을 보면,
지장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말세중생(末世衆生)의 제도를
부촉(咐囑)받는 장면이 두 차례 묘사되어 있다.
석가모니께서 열반에든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수많은 분신(分身)을 이 사바세계에 나타내어
일체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당부 받은 것이다.
"나는 이 사바세계에서 억세고 거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중 열에 한두 명은 아직도 나쁜 버릇에 빠져 있느니라.
그대는 스스로가 지은 억세고 거친 죄업의 과보로
나쁜 세상에 떨어져 큰 고초를 받는 중생을 보거든
내가 이 도리천궁에서 간절히 부촉한 것을 생각하여,
사바세계에 미륵불이 오실 때까지
중생들이 모든 고통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장차 미륵불을 만나 뵙고 수기를 받을 수 있게 할지니라."
그때 모든 세계에서 모인 지장보살의 분신들은
다시 한 몸이 되어 애절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의 분신으로 하여금 모든 세계에 가득하게 하고
그 한 몸마다 백 천만 억 사람을 제도하여
삼보에 귀의하게 하며,
길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락(涅槃樂)에
이르도록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또, 지장경 제 13 품 촉루인천품에
"현재와 미래의 모든 중생을 내 이제 그대에게 부촉 하노니
그대는 큰 신통과 큰 방편으로 중생들을 두루 널리 제도하여
나쁜 세상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
이때 지장보살이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염려를 놓으소서.
미래세 중에 혹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불법(佛法)에 대해 한생각의 공경심만 있어도,
저는 백 천 가지 방편으로 그 사람을 제도하여
생사(生死) 중에서 속히 해탈을 얻게 할 것이옵니다."
도리천궁에서 열반 전에 지장경을 설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부처님 공백기' 동안에 중생을 제도할 이로서
지장보살을 지정하셨다.
'내가 못 다한 일을 지장보살이 계속해 줄 것'
을 당부하신 것이다.
이에 지장보살은
'불법에 대해 한 생각의 공경심만 있는 이라면
갖가지 방편을 구사하여 반드시 그 사람을 제도하고
고통을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특히 분신집회품에서는 후세 중생을 '책임지겠다.'
고 세 번이나 맹세하였다.
세 번의 맹세는 다른 불경 속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세 번씩이나 맹세를 하였는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후세 중생에 대한 교화를 지장보살에게 부촉하셨다.
그 부촉은 어떠한 보살이나 제자들에게 했던 것보다 간곡하였고,
지장보살의 맹세 또한 지극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운사 도솔암의 '내원궁'에
미륵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신 것이다.
현재 도솔천 내원궁에 계신 미래불 미륵보살을
대신하여 사바세계에서 활동하면서,
중생들에게 현실적인 행복을 안겨주고
마침내는 미륵의 정토로 인도하는 분이
지장보살이기 때문에 '내원궁'에다 지장보살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이다.
백제 위덕왕(威德王) 때의 이야기
인적이 끊긴 심산유곡의 동국에서 홀로 초근목피와
흐르는 계곡물로서 허기를 잊으며 기도하는
40후반의 승려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있었다.
그의 기도는 마침내 응답이 왔다.
동굴 속에서 좌선하여 선정에 들었을 때,
금빛 찬란한 후광 속에 관세음보살을 영접하게 됐다.
관세음보살은 눈빛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왼손에는 감로수병인 정병(淨甁)을 들고 있었고,
오른 손에는 푸른 버드나무가지를 들고서 허공에 서 있었다.
관음보살은 자비로운 미소 속에 이렇게 부촉했다.
“검단선사!
말세중생을 구제하려는 제불보살의 뜻을 전하오.
말세의 유주무주(有主無主)영혼을 천도할 수 있는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지장도량을 만들어 주시오.
인연의 때가 도래하였소.”
검단선사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감격스러움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합장하여 지성으로 세 번 예배를 드리고,
합장한 채 무릎을 꿇고 거룩한 관세음보살을 우러르며 여쭈었다.
“말세중생이 의지하고 영혼천도를 할 지장도량은
어느 곳이옵니까?
“서해안에 있는 도솔산(兜率山)이오.
그 도솔산을 말세의 지장도량의 성지로 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주시오.”
“부족한 제가, 사명을 받아 신명을 바쳐 명을 받들어
도솔산을 기필코 지장도량으로 하겠다는 것을 서원 드리옵니다.”
관세음보살은 이어서 말했다.
“선재 선재로다. 도솔산에 지장도량으로 하려면
두 가지 어려운 관문을 극복해야 하오.
그 관문을 극복하려면 자칫 검단선사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가 있소.”
“생사를 초월하여 반드시 도솔산에 지장도량을 세우겠다는 것을 거듭거듭 서원 드리옵니다.
두 가지 어려운 관문은 무엇을 두고 말씀하시는지요?”
“첫째, 도솔산 입구의 터전에는 지금 사나운 산적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소.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을 파리 죽이듯 죽이는 사나운 자들이오.
그들을 악에서부터 선으로 교화하여 그곳을 떠나게 해야 하오.
그들이 떠나면, 그곳에 대웅보전을 세워 지장도량을 증명해야 하오.
둘째, 말세의 지장도량이 들어설 성지인
도솔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있는 바위산의
그 곳에는
용이 되려고 수행하다가 승천하지 못한 사나운 암 이무기 한 마리가 살고 있소.
그 이무기는 악심을 품고, 인간들에게 악행을 자행하고 있소.
이무기는 오랜 세월 정(定)을 닦아서 작은 신통력을 얻었소.
사람을 무척 싫어해서 사람이 접근하면 풍운조화를 부려서
가까이 오면 신통력으로 사람에게 겁을 주어 내쫓고,
심지어 잡아먹기도 하오.
그 이무기를 악에서 선으로 교화하여 떠나게 해야 하오“.
관음보살은 이어서 말했다.
“그다음 이무기의 터전인 바위산 가운데 청정하고
적멸한 도량을 골라 지장보살을 봉안하여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도량을 만들어야 하오. 하시겠소?”
“신명을 바쳐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운 미소 속에 다시 말씀했다.
“선재, 선재라. 원력이 있는 곳에는 불보살의 가호가 있는 법이오.
생사의 위기에 처하면 내가 불러주는 진언을
외우시오. 그대를 구원할 것이오.”
관세음보살은 큰소리로 진언을 불러주었다.
‘관세음보살 보검수진언(寶劒手眞言)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바탁.’
관세음보살은 간곡한 부촉의 말씀을 남기고는
금빛광채를 뿌리며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검단선사는 선정에서 일어나 감격 속에 마음속으로
고해중생의 복전을 만들어 내겠다는 불퇴전의 원력을 다지었다.
검단선사는 그 날 동굴에서 나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관세음보살의 명호정근을 하면서 인연의 땅인 도솔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 날, 도솔산의 산적 떼들은 약탈에 성공하여
북, 징, 괭가리를 치면서 술을 마시고 자축연을 벌이고 있었고,
이무기는 접근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 조화를 부려
바람을 일으키어 흙과 돌을 날리고 있었다.
산적 두목은 용맹한 자로서 장호(張虎)였다.
거구에 장비같은 수염을 가졌으며,
그는 큰 도끼를 마른 나무 가지 휘두르듯 하여 상대를 찍어 살상했다.
부두목으로서는 장호의 친동생인 장표(張豹)였다.
그는 창술의 달인이었다.
그러나, 용맹무쌍한 장호와 장표도 두려움을 주는 곳은 있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10리 길은 족히 되는
지금의 도솔암 근처에는 얼씬하지도 않고 두려워했다.
그곳에는 기둥 굵기의 용이 못된 암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무기는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이면
바위산에 징그러운 몸을 드러내어 떠오르는 해를 우러르며
태양의 기운을 흡수하려고 정성를 들였다.
달이 밝은 밤이면 미인으로 둔갑하여 바위에 정좌하여 앉았다.
그녀는 무슨 원한이 있는지 달을 우러르며
뜨거운 눈물로 양 볼을 적시었다.
어느 달 밝은 밤, 술에 얼근한 장호와 장표는 소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려고
도끼와 창을 들고서 이무기의 구역을 숨어들어 갔다.
두 형제는 큰 도끼와 창을 휘두르면서 두려운 것이 없다고 호언했다.
이무기를 찾아 헤매든 장호, 장표 두 형제는
마침내 어느 바위 위에 고운 옷을 입은 삼십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자가
홀로 바위 위에 앉아서 달을 우러르며 혼자 흐느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표가 형에게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 무서운 이무기가 아니고 미인인데?
왜 미인을 이무기라고 했을까?”
“글쎄다. 굉장한 미인인데. 이무기는 헛소문 이야!”
장호가 그녀에게 뚜벅뚜벅 걸어 다가서면서 큰소리로 말을 걸었다.
“여보시오.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리 슬피 우는 거요?”
갑자기 나타난 인간으로 인해 그녀는
깜짝 놀라는 얼굴이더니 벌떡 일어나서
“네 놈들은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서
더러운 주둥이를 놀리는 것이냐?”
장호는 화가 치밀어서 큰 도끼를 오른손에 쥐고서
도끼로 그녀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순간, 여자의 손톱은 호랑이 발톱처럼 무섭게 변해 있었다.
두 형제는 기겁을 하여 힘을 다해 형은 큰 도끼를 휘두르고,
동생은 창을 들어 그녀를 공격했다.
오히려 두 형제가 그녀의 무서운 손톱에 옷이 찢기어
몸의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는 딱한 신세가 되었다.
이어서 발로 전광석화처럼 차버렸다.
두 형제는 순식간에 공이 튀듯이 바위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달아나는 두 형제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사는 이곳에 이 세상에 다시 온다면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야….”
장호, 장표 두 형제는 한 달 후에나 겨우 거동을 할 수 있었다.
장호가 방안에 누워 쉬는데, 장표가 들어오며 다급한 보고를 했다.
“형님, 웬 중이 삼인골 동굴에 와 있으면서
형님을 뵙자고 한답니다.”
검단선사는 지금의 선운사 앞산 너머에 있는 천연동굴에 당도하여
행장을 풀고 좌정하여 두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 때, 장호 형제가 도끼와 창을 들고서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은 위엄이 넘치는 승려를 보고서는 주춤하였다.
그러나 장호는 도끼를 힘껏 쥐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봐, 어디서 온 중이야? 왜 우리를 찾지?
당신 진짜 중이 맞아?
관군의 정탐꾼이 아닌가?
정탐꾼 같으면 우리의 도끼와 창 맛을 보고 왕생극락을 해야겠지?”
검단선사는 그들의 속셈을 간파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무량대복을 지으라고 찾았네. 영원한 복을 지으라는 것일세.
마음이 자비로 충만하면 극락이 따로 없고,
마음이 악귀 같으면 지옥이 따로 없는 법이오.
나는 결코 관군의 정탐꾼이 아닌 부처님의 제자라오.”
검단선사는 두 형제를 따뜻하게 대하면서 설법을 하기 시작했다.
산적형제는 점점 검단선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되었다.
두 형제는 정탐꾼이 아닌 진짜 수도승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결론은, 우리의 산채 터에 부처님을 모실 사찰을 지으시겠다고요?
저희들도 부처님은 존경합니다만, 그것은 안 될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터전을 내주고 우리들은 어디로 가지요?
우리는 정든 터전을 비워줄 수 없으니 포기하고 떠나시오.
다음에 올 때에 떠나지 않았을 때는 도끼 맛을 보게 될꺼요.”
그 무렵, 서해안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 때를 맞추어 가난한 바닷가 동네의 아낙네들은
갯벌에 조개를 주우러 나온다.
부지런히 도구로 갯벌을 파헤쳐 조개를 줍던 한 아낙네가
손으로 바다 쪽을 보며 외쳤다.
“저기를 봐 이상한 배가 다가오고 있어.”
조개를 줍던 아낙네들이 모두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생전처음 보는 돌(石)로 만든 배였다.
사람들이 그 배에 가까이 가면 그 배는 사람들을 피하듯 바다로 물러가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면 배는 해변으로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돌배가 서해 바다로 떠 들어왔다.”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순식간에 사방에 퍼졌다.
산적들도 소문을 들었고, 동굴 속의 검단선사도 소문을 들었다.
검단선사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돌배가 있는 곳으로 길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산적들과 갯마을 사람들도 모두 돌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검단선사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간절히 부르면서
갯벌에 발목을 푹푹 빠지면서 돌배로 다가갔다.
이때 사람을 피한다는 돌배가 검단선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검단선사는 돌배위로 올라갔다. 배에는 사람은 없었고,
배안에는 단정한 모습의 금빛 지장보살상
이 실려 있을 뿐이었다.
검단선사는 지장상을 향해 큰절로 예배를 하고
좌정하여 관세음보살에게 지장상이 온 뜻을 알기 위해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기도정근을 시작했다.
검단선사의 눈앞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말씀했다.
“검단선사는 들으시오.
돌배의 지장보살상은 말세의 지장도량을 위해
서역국으로부터 모셔온 것이오.
하루 속히 도솔산에 봉안하도록 하시오.”
검단선사는 산적들과 갯마을 사람들을 불러
힘을 합쳐 지장보살상을 육지에 옮기었다.
지장보살상을 옮기자 돌배는 사명을 다한 듯
스스로 물러서더니 서해로 사라졌다.
얼마 후에 산적형제는 검단선사에게 시비를 걸어
동굴에서 내쫓으려고 찾아가서 검단선사에게 말했다.
“스님께 술 한 잔 대접받으면 산채를 넘겨주는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검단선사는 탐욕으로 가득한 산적들을 교화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으로만 교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방편이 필요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장호에게 시원스럽게 말했다.
“밤이 되면 내가 걸게 술대접을 하면 아니 되겠소?”
두 형제는 반색을 하고서 반기었다.
그들은 밤을 고대하면서 검단선사가 머무는 동굴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검단선사는 두 형제에게 말했다.
“내가 기막힌 술대접을 하겠네. 준비가 되었으니 나를 따르게.”
검단선사는 산적 형제를 데리고 동굴을 나섰다.
산적형제는 의아심 속에서 검단선사의 뒤를 따랐다.
두 형제는 컴컴한 산길을 더듬어 가다시피 걷는데
산적형제의 눈앞에 처음 보는 웅장한 전각들이 나타났다.
장표가 웅장한 전각들을 보고 놀라면서 장호에게 말했다.
“형님, 언제 이 골짜기에 언제 이러한 전각들이 있었지요?”
“글쎄, 나도 처음 보는 집이구나. 굉장한데?”
검단선사는 말없이 솟을 대문을 활짝 열어 산적형제를 사랑채로 안내했다.
사랑채의 방안에 들어서니 촛불이 여러 개 밝혀졌으며
방 가운데는 상다리가 부러질 듯 술과 안주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두 명의 미인이 나타나 검단선사에게 공손히 큰절을 올리며 아뢰었다.
“말씀하신 대로 주연을 준비하였사오니 맛있게 잡수시기 바랍니다.”
두 미인은 함박 미소를 머금고 산적 형제의 술잔에
술을 가득가득 부어주고 또 부어주며 권했다.
미인이 주는 술에 대취한 산적형제가
눈을 크게 뜨고 검단선사를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징, 소리 나팔소리, 북소리가 귀청이 떠나가라 요란하게 들리더니
관군들이 병장기를 들고 무수히 들이닥쳤다.
산적 형제는 그 자리에서 관군에게 포박되고 말았다.
관군의 장수는 칼을 뽑아들고 호령했다.
“여봐라, 무고한 양민을 살상하면서 재물을 강탈하는 산적들은 모두 목을 베어라!”
산적 형제는 죽음에 임박하여 크게 후회하면서
관군의 장수에게 울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저희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시면 다시는 산적노릇을 하지 않을 맹세하옵니다.
한 번 만 살려 주십시오.”
장수는 꾸짖어 외쳤다.
“너희 같은 산적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헛소리 말고 목을 내거라!”
관군장수의 기합소리와 함께 청룡도의 칼날이 두 형제의 목에 닿는 순간,
두 형제는 아악! 처참한 절규의 비명을 질렀다.
순간, 두 형제는 똑같이 눈을 떴다.
두 형제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의복은 식은땀에 흠뻑 젖었다.
그들은 손을 들어 칼 맞은 목덜미를 만져보니
석굴의 천정에서 차가운 물이 떨어져 있었다.
그곳은 솟을대문이 있는 잔치집이 아닌 동굴이었다.
그 때 검단선사는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재생의 기회가 있으면
다시는 산적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애걸복걸했지?”
산적형제는 검단선사가 신통력으로써 깨달음을 준 것을 알았다.
산적형제는 도끼와 창을 버리고
검단선사에게 큰절을 올리고 무례를 참회하면서
사죄하고 재생의 길을 물었다.
“중생이 마음 한 번 바꾸면 부처도 되는 법이라네.
여러분이 양민으로써 일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보아 두었지.
내가 여러분에게 호구지책으로 소금 굽는 방법을 알려 주겠네.
여러분이 지은 죄는 인과의 업보가 되어
세세생생 피할 수 없는 것이라네.
과거를 뉘우치고 소금 굽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
여생을 살면서 세상에 착한 일로 보은하게!”
마침내 검단선사는 산적, 모두를 지금의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서
고창군 심원면의 바닷가 마을로 집단 이주를 시키고
소금 굽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침내 산적들은 이주하여 소금 굽는 양민이 되었다.
그 때 양민이 된 사람들은 검단선사의 자비의 은혜를 기리는 마음에서
마을 이름을 검단 마을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해마다 소금을 거두는 철이면
검단선사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선운사에 무상 보시를 하였고,
그 불문율은 수백 년 간 이어 오고 있다.
검단선사는 두 번째 관문인 지금의 도솔암 근처에 살고 있는 이무기를 찾아 나섰다.
지금의 도솔암 건너편의 천길 바위 절벽 위에
소복을 입은 여자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자신의 금역을 당당히 걸어들어 오는
검단선사를 내려 보면서 사납게 투덜대었다.
그러나 검단선사는 굴복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 할 뿐이었다.
검단선사는 그녀에게 간곡히 말했다.
“천년의 수행을 잘하여 용으로 승천하여
고해중생을 돕는 용이 되지 않고
어찌 사악한 이무기가 되어 중생을 해롭게 하는가!
인과의 업보가 무서운 것을 모르는가!”
이무기는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부처님의 제자라고 해서 끝까지 봐 줄 수는 없으니 당장 따니시요!”
검단선사는 자비롭게 미소하며 말했다.
“이제 이곳은 말세 고해중생의 영혼을 천도해주는
지장보살님의 진신이 상주해야 하는 지장성지로 해야 하오.
그대는 이곳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곳을 떠나 새로운 수행처로 떠나시오.”
그 때, 검단선사는 바위에 정좌하여 가슴에 합장하고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이 담긴 보검수 진언을 큰 소리로 외웠다.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바탁
진언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우주를 지키는 팔만사천의 신장을 지휘하는
수신장(首神將)이요, 보살인 동진보살이 금빛 갑옷을 입고,
보검을 들고 무수한 신장들과 함께 나타났다.
이무기는 눈물을 흘리면서 검던 선사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저는 원래 소녀 시절에 장차 짝을 이루기로 맹세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선업의 선정을 닦아
훗날 함께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용으로 승천하자고 굳게 맹세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사냥꾼이 저의 짝이 될 소년을 화살로 죽여 버렸습니다.
인간에 대해 아무런 해악을 끼친 바도 없는데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원한의 복수의 일념으로 인간을 죽였습니다.
저의 죄는 바다와 같아 참회하고 싶어도
어찌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때, 무수한 신장은 사라지고, 금
빛 광명 속에 백의를 입은 관세음보살이 자비로운 모습을 나타나
버드나무 가지를 정병 속에 담아 감로수를 묻힌 다음에
소복한 여인의 머리에 관정(灌頂)하면서 교시를 주시었다.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연은 하나도 없느니라.
모두 자신이 지은 업에서 이루어지느니라.
네가 오매불망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너의 짝의 죽음도
모두 정업에 의한 것이니,
이제 너는 원한의 마음을 씻고,
마음을 돌이키어 부처님께 참회하고 귀의하여 수행하라.
대자대비로서 기회를 주겠노라.
이 도량은 검단선사에게 맡기고,
너는 새로운 각오로 너의 수행처인
고창 방장산(方丈山)으로 떠나거라.
그곳에는 네가 수행할 용연(龍淵)이 있느니라.
일심으로 수행하여 승천하는 용이 되고,
용이 되어 이 지역의 중생의 인과에 따라 고루 비를 내려 공덕을 쌓거라.
그 길이 네가 지은 업보로 영원히 받게 되는
초열지옥의 고통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라.
내 말에 따르겠느냐?”
마침내 어두운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 빗속에 그녀는 순간 땅을 박차고 훌쩍 구름 속에 뛰어 오르며,
그녀의 진신인 거대한 이무기의 몸을 드러 내었으며
그 때, 도솔산은 지진이 일듯 진동하였다.
이무기는 그녀는 검단선사의 머리 위를 세 번 날아돌며
도솔산이 흔들리도록 소리쳐 경의를 표하고,
지금의 고창, 방장산으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용연(龍淵)이 있어
그녀를 만날 인연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무기가 도솔산을 떠날 때, 흔적을 남겼다.
이무기는 도솔산의 바위에 뻥 하니 굴을 뚫어 버린 것이다.
그날의 이무기가 뚫은 굴은 그 후,
사람들은 도솔산의 용문굴(龍門窟)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용문굴은 지금의 도솔암의 윗쪽의 바위에 있다.
지금도 바위굴에는 이무기의 비늘 자욱을 볼 수 있다.
이무기는 훗날, 수행을 잘하여 용으로 승천하였는데
승천하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지금도 방장산 기슭의 촌노들은 용의 승천을 목격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침내 검단선사는 선운사를 창건하였고,
도솔산이 지장성지가 된 것이다.
그 당시, 검단선사는 소금을 굽는 양민들과 함께
나무를 베어 갯벌 속에 무수히 깊이 파묻었다.
검단선사가 파묻은 갯벌속의 그 나무는 오랜 세월에 의해
지구상에 가장 좋은 천연의 향인 침향(沈香)으로 변화 하여
서해안에는 천년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검단선사의 침향이 일정한 시기를 두고 바다에 떠오른다.
갯마을의 사람들은 침향이 떠오르면
선운사와 도솔암에 공양을 하고 있으며,
검단선사는 자신은 죽어도 자신이 만든 침향으로
영원히 지장도량의 불보살께 헌향(獻香)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첫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검단선사는 자신의 선실에서 수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그를 따르던 사부대중을 불러 아래와 같이 부촉 하였다고 전한다.
“나의 육신은 제행무상에 의해 멸하지만,
영혼은 도솔산의 산신이 되어 영원히 말세 고해중생의 지장도량을 지키겠다.
도솔산의 승려들이여,
뼈를 깎는 수행정진으로 정각을 이루고,
오직 고해중생을 위해 헌신할 때 말세 불법은 도솔산에서 일어난다.
도솔산의 승려들이여,
제행은 무상하니 방일하지 말고 촌음을 아끼어
수행정진하고, 중생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라!”
지장도량인 선운사와 기도처인 도솔암이 존재하는 한
검단선사의 공덕은 영원히 칭송 받을 것이다.
후세인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직 고해중생을
구제하려는 원력을 세운 검단선사를 기리고,
유언을 봉대하여 선운사 영산보전 뒤에 동백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곳에
작은 산신각을 만들어 검단선사의 진영을 모시었다.
사찰 순례 시에 도솔암을 찾을 때,
동백숲속의 검단선사의 진영을 찾아 예배하기를 권장한다.
검단선사의 진영 앞에서 은혜를 칭송하면서
향 하나를 피워 시주하고 예배하고 기도한다면,
자비로운 검단선사는 여러분에게
모르게 닥치는 불행을 막아주고,
건강 속에 행운을 주시리라 생각한다.
* 선운사 금동 지장보살좌상
2. 선운사 금동 지장보살좌상
선운사에 있는 조선 초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은
1963년 1월21일에 보물 제279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을
2014년 지장보궁전(地藏寶宮殿)이 완성되면서 그곳으로 옮겨 모시고 있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에 도난당하였다가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당시 도난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사찰에서 전하는 기록에만 간략하게 적혀 있다.
보물 279호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 절도범에
도난당하고 일본으로 팔려가 소장가들 꿈에 나타나
“나를 고향으로 보내달라” 호소를 외면하던 소장가들
병이 들고 우환 끊임없이 반복되자 고창 경찰서 연락해
2년 만에 고창 선운사로 귀환하였다.
1936년 여름 어느 날 문화재 절도범은 일본인 2명과 함께 공모하여 금동지장보살상을 훔쳤다.
그 뒤 거금을 받고 불상을 일본으로 팔아넘겼다.
그런데 일본으로 건너간 후 지장보살상의 영험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불상을 불법으로 구입한 소장가의 꿈에
수시로 지장보살상이 나타나서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으니 어서 그곳으로 보내 달라”
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이후 병이 들고 집안이 점점 기울게 되자
지장보살상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그러나 다른 소장자 역시 꿈에 지장보살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그 후에도 지장보살상은 몇 차례에 걸쳐 옮겨 다녔으나
매번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쩔 수 없이
고창 경찰서에 연락하여 모셔갈 것을 부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은
1938년 11월에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가서
지장보살상을 다시 모셔오게 되었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종교적인 영험 때문인지
신라나 고려 불상과는 다른 불심이 엿보인다.
높이 1m 정도의 아담한 크기에 단독 상으로 모셔져 있다.
단독상일 경우에는 좌우에 지하 세계를 주재하는
시왕(十王)을 거느리고 명부전(冥府殿)
안치되며 삼존불상은 지장보살상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좌우의 협시나 시왕상들이 남아 있지 않고
관음전에 봉안되었다고 하니
전각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상체가 크고 두 다리가 빈약하여 신체 비례가 자연스럽지 않다.
머리에는 두건을 쓴 전형적인 지장보살의 모습인데
두건을 묶은 좁은 띠가 이마를 감싼 후 양쪽 귀를 덮으면서
가슴 아래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어깨 위를 덮고 있는 두건은 머리 뒤쪽에서 매듭으로 묶였으며
그 아래로 층단을 이루는 주름이 표현되었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상 역시 왼쪽 손바닥 위에 남아 있는 지물의 흔적으로 보아
법륜을 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륜은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중생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공덕을 가진 보주와 거의 같은 상징성이 있다.
3. 선운사 참당암 옥돌지장보살상
높이 0.8m. 보물 제2031호. 문화재 지정 명칭은
‘고창 선운사 참당암 옥돌지장보살좌상’이다.
오른손에 보주(寶珠를 쥐고 있어 흔히 약사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머리에 두건을 쓴 전형적인 두건(頭巾) 지장보살상이다.
얼굴은 풍만하며 가는 눈초리와 작은 입, 반달형의 눈썹으로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의 두건은 이마에서 관자놀이까지 두른 뒤 이마 부분에 긴 끈을 묶어 귀 뒤로 내린 형식이다.
양어깨 밑으로 길게 드리워진 머리띠 자락의 끝 부분은
3엽의 꽃무늬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목에 삼도(三道)를 새겼다.
목 아래의 목걸이는 가운데에 화형(花形)의 고리 장식을 달고
가슴 가운데로 세 가닥의 장식을 늘어뜨린 화려한 형식이다.
가사(袈裟)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으로
오른쪽 소맷자락을 허리 아래에서 가사 자락 밑으로 여며 넣었다.
옷 주름은 폭이 넓고 직선적인 평판 형태로 단순화되어 활력을 찾을 수 없다.
군의(裙衣)는 가슴까지 치켜 올라가 있으며,
복부에는 군의를 묶은 허리띠 매듭이
나비 리본 형태로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엄지와 둘째 손가락 사이에
보주를 쥐었으며 왼손은 손가락을 곧게 펴서
가부좌(跏趺坐)한 무릎 밑으로 내렸다.
가부좌한 하체에는 오른쪽 발목이 노출되어 있다.
머리띠로 묶어 내린 두건의 착용 방식과
세 줄의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이 달린 목걸이,
왼쪽 어깨에서 내려오다가 팔꿈치 부근에서 삼각형 꼴로 접혀진 옷주름 표현 등에서
이 절의 도솔암에 안치된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과 같은 계열의 지장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도솔암 지장보살상은
왼손에 보주가 아닌 법륜(法輪)을 쥐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굴곡이 적은 직선적인 신체, 크고 넓적한 얼굴,
직선적으로 가늘게 그어진 눈매와 딱딱한 표정,
평판적인 옷 주름 표현 등에서 조성 시기는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선운사 경내에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3구의 단독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는 사실은
예부터 이 지역이 지장보살의 도량으로
지장보살 신앙이 널리 유행하였음을 말해준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모 지장보살마하살
꼭 가 보고 싶은 사찰 입니다. 저는
금동 지장보살 좌상에 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감사하게 공부 했습니다.
늘 봉사 하시는 모습 존경합니다.
선운사를 갔었지만 그때는 무지하여....ㅠ.ㅠ
감사합니다.
선운사 꼭 다시 가보고 싶어집니다.
늘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