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 손택수
감나무에 한겨울에는 명태가 열렸다 앙상하게 빼마른 가지 맨 아래 귀한 손님이 오면 따곤 하던 명태가 한두 마리씩 매달려 있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뒤란의 우물처럼 캄캄하다가도 홍시를 묻어논 쌀뒤주처럼 환하게 밝아오던 외할머니 품속을 더듬다 잠이 드는 밤이면 감나무 뿌리는 용궁에 사는 모양이지 용궁에 친 그물처럼 물고기들을 낚아올리는 모양이지 어느날인가는 눈보라 속에서 서걱서걱 동태 부딪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핸가, 새뱃돈을 유난히 후하게 주던 삼천포 큰이모부가 손꼽아 기다려지던 어느 밤인가 기다리던 이모부는 어째 오지 않고, 저녁 늦게 두 그릇이나 먹은 식혜에 오줌보를 쥐고 내려선 토방앞 줄 끊어진 연처럼 간드랑거리던 명태 옆에서 이모는 까닭 모를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모가 무서워서 그만 오줌보 대신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슬하에 짙은 먹그늘을 드리우고도, 봄바람이 불면 감나무 이파리는 어김없이 도톰한 파도소리를 내며 돋아나곤 하였다 겨우내 명태가 슬어놓고 간 알처럼 꽃이 피어나곤 하였다 그러면 어린 나는 감꽃 목걸이를 만들고, 곶감처럼 하나하나 빼어먹는 재미로 날이 저무는 줄 모르고…… 벌써부터 나무 위에서 명태를 낚는 계절이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명태와 함께 오지 못한 사람들이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 손택수,『목련 전차』(창비,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