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2026.08.23.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사도행전 15:22-41
주 제 : 하나님의 일을 할 때라도, 협력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1. Project Hail Mary.
최근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도 곁들여서 재밌게 보고 있는 중입니다.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대개는 외계인 영화라면,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고 인간들이 그것을 물리치는 오락물이지요. 그런데 이 영화는 인간과 외계인이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태양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어서 얼마후면 지구가 얼음 바다가 될 것 같은 위험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주선을 다른 행성으로 보내는데, 그 과정에서 같은 문제때문에 그곳에 오게 된 외계인을 만나서 인간과 외계인이 협력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어서 지구도 살고, 그 외계인의 행성도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협력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들 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도 협력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나만 옳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양보하고 서로 도울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2. 안디옥 교회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를 잘 해서 안디옥 교회는 활기를 띄었고,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너희도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안디옥 교회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툼이 생겼어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한 마디만 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단번에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정도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보기를 드리겠습니다. 할례를 포함해서 모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까? 대답은 명확하지요. 그런데 아직도 이 시기에는 이런 구원에 관한 교리가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렇게도 분명하게 가르쳤지만,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사람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마디 하니까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사람의 말이 더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3. 오직 예수의 죽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도 우리의 신앙을 분명히 합시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우리가 착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가 빠짐없이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그 정성때문에 구원을 받습니까? 주일마다 빠짐없이 헌금을 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까? 나는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주일마다 빠짐없이 교회에 나와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예수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4.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과 바나바
그런 문제가 일어났을 때, 안디옥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이 문제를 깊이 토론해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굉장히 과격한 사람입니다. 그는 스데반 집사를 사형시킬 때, 앞장서서 사형을 적극적으로 지휘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말한대로 그 당시 보통의 유대인보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었어요. (갈 1:14)
이처럼 그는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좀처럼 굽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른 예를 볼까요. 그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보통 그의 성정으로 본다면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사람과 심각하게 싸우면서, 나가 놀아라. 내가 옳다. 나의 말을 따라라. 아니면 저주를 받으리라. 이렇게 강력하게 나올텐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자기의 주장을 양보한 것이지요.
5. 협의는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는 아직도 바울을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향해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사도와 장로들이 모여서 이 일을 의논하려고 모였어요.
많은 변론이 있었고, 지난번에 고넬료 사건으로 인해서 강력한 체험을 했던 베드로가 일장 연설을 하고 마지막으로 그때의 의장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야고보가 결론을 내림으로서 바울의 주장을 받아드렸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제 일회 공의회입니다. 이 일 후에 교회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공의회를 열어서 어려운 사건을 해결했어요.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 공의회는 그들 가운데 두 사람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 교회로 보내어서 그들의 분명한 뜻을 밝힙니다. 즉 율법을 규정을 지킴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주장을 굽히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거기에서도 협의가 쉽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그의 주장이 받아드려진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양보한다고 해도 일은 쉬워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참고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쉽게 저절로 되는 것 없습니다.
망망한 우주에서 인간과 외계인이 만났어요. 생김새부터 전혀 달라요. 외계인은 마치 거미 같아요. 팔 다리 모두 합해서 다섯개였습니다. 생체 조건도 전혀 달라요. 인간은 체온이 36.5도 이잖아요. 외계인은 기본적으로 200도입니다. 인간이 보호 장비없이 외계인이 있는 환경 속으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타 죽습니다. 반면에 외계인이 인간의 속으로 들어오면 너무 추워서 얼어죽습니다. 언어도 달라요. 의사소통을 하려고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자동 번역 시스템으로 의사소통을 했어요. 식사도 달라요. 서로의 음식을 먹을 수 없어요. 모든 것이 달라요. 그렇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합력할 수밖에 없어요.
5. 협력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직 나만 옳다 나만 따라라. 이렇게 밀고 나가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나만 옳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분쟁은 그칠 날이 없어요.
세상에 하나님이 일을 하기 때문에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하나님의 일일수록 양보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하물며 이 세상의 일을 할 때는 얼마나 타협과 양보가 중요하겠습니까?
15장 끝에 보시면, 바나바와 바울이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이 지난 번 여행 때, 함께 가지 않았다고 해서 싸웠어요. 두 사람 다 절대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요. 결국 두 사람은 찢어지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나중에 보세요. 바울은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마가를 가리켜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디모데후서 4장 11절)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의 주장을 조금만 굽혔으면 훨씬 일찍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아름다웠을 텐데요.
모든 일을 하실 때, 나를 너무 내세우지 마시고, 조금만 양보하십시다.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우리의 관계도 훨씬 좋아질 것이고 이 나라도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이리라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