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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期佛敎 緣起論에 나타난 ‘觸(phassa)’의 두 층위와 ‘名色(nāmarūpa)’과 ‘識(viññāṇa)’의 相生相成(互緣性)
— DN 15(Mahānidānasutta)를 중심으로 한 經文 分析 報告書
1. 序論
본 보고서는 Dīgha Nikāya 15경인 Mahānidānasutta(大緣經)에 나타난 연기(paṭiccasamuppāda)의 핵심 구조, 특히 ‘觸(phassa)’의 두 가지 층위와 ‘名色(nāmarūpa)’과 ‘識(viññāṇa)’의 상호의존성(互緣性)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경은 붓다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연기의 심오함을 설하신 경문으로,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함으로써 중생들은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셨다.
특히 본고는 DN 15의 113항과 114항에 등장하는 ‘觸’의 개념적 차이, 그
리고 116항의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미래의 生老死)”가 갖는 연기론적 의미를
Saṃyutta Nikāya의 관련 경문들과 대조하여 규명하고자 한다.
본 보고서에서 특히 강조할 점은 ‘有(bhava)’를 정태적 ‘존재(existence)’나 ‘재생(rebirth)’이 아닌 ‘됨(becoming)’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불교 연기론을 ‘결과로서의 존재론’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생성론’으로 조망하게 해 주는 핵심적 관점이다.
2. DN 15에 나타난 ‘觸(phassa)’의 두 층위
2.1. 113항: 六觸(6근·6경·6식의 삼사화합)
DN 15 113항에서는 ‘觸(phassa)’가 여섯 가지 감각 접촉으로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phassapaccayā vedanā’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phassapaccayā vedanā. phass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kassaci kimhici,
seyyathidaṃ — 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sabbaso phasse asati phassanirodhā api nu kho vedanā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vedanāya, yadidaṃ phasso”.
“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受]이 있다고 함은, 참으로 이렇게 말씀하셨거니와,
아난다여, 그것은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알아야 할 것이니,
곧 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아난다여, 만약 촉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
이를테면 眼觸, 耳觸, 鼻觸, 舌觸, 身觸, 意觸이 — 모
든 방식으로, 모든 형태로, 누구에게나, 어떤 것에도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촉이 없고 촉이 소멸했을 때 느낌이 알려질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이 바로 느낌의 원인(hetu)이며, 근본(nidāna)이며,
발생(samudaya)이며, 조건(paccayo)이니, 곧 촉(phassa)인 것이다.”
이 구절에서 ‘觸’는 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의 여섯 가지(六觸)로 세분화되며,
이는 6근(眼耳鼻舌身意)과 6경(色聲香味觸法) 그리고 6식(眼耳鼻舌身意識)의 三事和合으로
발생하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감각 접촉을 의미한다.
이는 12연기에서 ‘六入處(ṣaḍāyatana)’를 조건으로 ‘觸’가 발생한다는
표준적인 연기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2.2. 114항: 名色을 조건으로 하는 觸 — 名稱觸(adhivacana-samphassa)과 有對觸(paṭigha-samphassa)
그러나 DN 15 114항에서는 동일한 ‘觸(phassa)’가 전혀 다른 층위에서 분석된다.
“‘nāmarūpapaccayā phass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nāmarūpapaccayā phasso.”
“名色을 조건으로 하여 觸이 있다고 함은, 참으로 이렇게 말씀하셨거니와,
아난다여, 그것은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알아야 할 것이니,
곧 名色을 조건으로 하여 觸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부처님은 名身(nāmakāya)과 色身(rūpakāya) 각각의
行相(ākāra)·特相(liṅga)·因相(nimitta)·素性(uddesa)이라는
개념설정(施設, paññatti)의 조건들이 사라질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질문하신다.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nām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 asati api nu kho rūpakāye adhivacanasam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아난다여, 어떤 行相들에 의해, 어떤 特相들에 의해, 어떤 因相들에 의해,
어떤 素性들에 의해 名身의 施設이 성립한다면,
만약 그러한 行相들, 特相들, 因相들, 素性들이 존재하지 않을 때,
과연 色身에게 名稱觸(adhivacana-samphassa)이 알려질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yehi, ānanda, ākārehi ... rūp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
asati api nu kho nāmakāye paṭighasam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아난다여, 어떤 行相들에 의해 ... 色身의 施設이 성립한다면, 만약 그러한 行相들 ...
이 존재하지 않을 때, 과연 名身에게 有對觸(paṭighasamphassa)이 알려질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이어서 名身과 色身 모두의 施設 조건이 없을 때 名稱觸과 有對觸 모두가 알려질 수 없는지,
나아가 名色 전체의 施設 조건이 없을 때 觸(phassa) 일반이 알려질 수 있는지를
질문하시고, 아난다 존자는 매번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답한다.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phassassa,
yadidaṃ nāmarūpaṃ”.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이 바로 觸의 原因(hetu)이며, 根本(nidāna)이며,
發生(samudaya)이며, 條件(paccayo)이니, 곧 名色(nāmarūpa)인 것이다.”
2.3. 두 觸의 관계: 基礎(infrastructure)와 發顯(manifestation)
以上의 분석을 종합하면, DN 15의 113항과 114항에 나타난
두 ‘觸’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위계적(hierarchical)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區分 113항의 六觸 114항의 名稱觸·有對觸
適用 段階 六入處가 완성된 이후의 구체적 감각 접촉 六入處 성립 이전의 근본적 名-色 상호작용
分析 焦點 根(감각 기관)과 境(대상)의 만남 名(정신)과 色(물질)의 情報 交換 方式
役割 受(느낌)의 직접적 조건 六入處와 六觸 전체의 存在論的 土臺
關係 具體的 發顯(結果) 原初的 作動 原理(原因/基礎)
즉, 名稱觸(개념적 접촉)과 有對觸(감각적 접촉)은 六觸이 발생하기 위한
인식론적·존재론적 인프라(infrastructure)이며,
六觸은 이 인프라 위에서 六入處를 매개로 하여 구체적으로 發顯된 현상이다.
이는 12연기의 표준적 순서(名色→六入→觸→受)에서 六入處가 省略된 채
名色에서 바로 觸로 연결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즉, 觸이라는 현상은 六入處가 완성되기 훨씬 이전 단계(수태 직후의 名色 결합 단계)에서
이미 作動하기 때문이다.
3. DN 15 116항: ‘名色 緣 識’과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未來 生老死)’의 意味
3.1. 115항과 116항의 대칭적 구조
DN 15의 115항과 116항은 ‘識’과 ‘名色’의 상호의존성(互緣性)을 보여주는 대칭적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115항 (識→名色):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n’ti ... viññāṇañca hi,
ānanda, mātukucchismiṃ na okkamissatha,
api nu kho nāmarūpaṃ mātukucchismiṃ samuccissathā”ti? “no hetaṃ, bhante” ...
“tasmātihānanda, eseva hetu ... nāmarūpassa — yadidaṃ viññāṇaṃ”.
“識을 조건으로 하여 名色이 있다고 함은 ...
아난다여, 만약 識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名色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成熟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이 바로 名色의 原因이며 ... 곧 識인 것이다.”
116항 (名色→識):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n’ti ...
viññāṇañca hi, ānanda, nāmarūpe patiṭṭhaṃ na labhissatha,
api nu kho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 dukkhasamudayasambhav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 viññāṇassa yadidaṃ nāmarūpaṃ”.
“名色을 조건으로 하여 識이 있다고 함은 ...
아난다여, 만약 識이 名色에 住處(patiṭṭha)를 얻지 못한다면,
미래의 生老死와 苦의 발생(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 dukkhasamudayasambhavo)이 알려질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이 바로 識의 原因이며 ... 곧 名色인 것이다.”
3.2. 有(bhava)를 ‘됨(becoming)’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
116항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와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의 관계이다.
이 연쇄는 다시-됨(再-生成, punabbhava)이 있을 때
비로소 生(jāti)과 老死(jarāmaraṇa)가 있다는 구조를 보여준다.
여기서 ‘有(bhava)’를 정태적 ‘존재(existence)’나 단순한 ‘재생(rebirth)’으로 읽으면,
‘집착(取)→존재(有)→태어남(生)’이라는 인과가 부자연스럽고 정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bhava를 ‘됨(becoming)’,
즉 “갈애와 집착에 의해 현재의 오온이 미래의 새로운 오온으로 생성되어 가는 역동적 과정”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區分 ‘存在(existence)’로 읽을 경우 ‘됨(becoming)’으로 읽을 경우
bhava의 性格 정태적 결과물 능동적 생성 과정
取→有의 관계 집착이 결과(존재)를 낳음 (비약적) 집착이 현재의 오온을 재구성하는 과정(됨)을 촉발함 (연속적)
有→生의 관계 존재가 태어남을 낳음 (중복적) 생성 과정이 완성되어 첫 순간(착상 등)이 ‘生’으로 드러남 (단계적)
윤회의 動態性 정적 존재들의 반복 (순환론적) 역동적 생성의 연속 (과정론적)
또한 이는 12연기에서 bhava가 업유(kammabhava, 業有)와 생유(upapattibhava, 生有)라는 두 측면을 아우르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됨(becoming)’은 현재의 능동적 업 형성(業有)과
그 결과로 다가올 생의 현현(生有)을 하나의 흐름으로 포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3.3. 名色의 下降(avakkanti) — ‘착상’을 넘어 ‘현현(manifestation)’으로
SN 12.64(Atthirāgasutta)에서 사용된 “nāmarūpassa avakkanti”는
흔히 ‘名色의 下降’으로 번역되며, 태아의 자궁 착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bhava를 ‘됨(becoming)’으로 읽는 관점에서는 보다 넓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yattha patiṭṭhitaṃ viññāṇaṃ virūḷhaṃ, atthi tattha nāmarūpassa avakkanti.”
“識이 住立되고 增長한 곳에는 名色의 下降(avakkanti)이 있다.”
avakkanti는 어원적으로 ava(아래로) + √kram(걷다, 나아가다)에서 유래하여 ‘내려앉음’, ‘들어감’, ‘현현함’의 의미를 가진다.
‘착상’으로 좁게 읽을 경우: 115항의 mātukucchismiṃ okkamati(자궁 속으로 들어감)와
사실상 동의어가 되어 115항과 116항의 논리적 대칭성을 흐릿하게 만든다.
‘현현(manifestation)’, ‘발현(emergence)’으로 넓게 읽을 경우:
이는 “식이 특정한 명색(정신-물질 복합체)에 의지처를 얻게 되면,
그 조건 아래에서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서의 명색이 (비로소) 현현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bhava를 ‘됨(becoming)’으로 보는 관점과 완벽히 조화된다.
즉, avakkanti는 생물학적 착상이라는 특정 사건보다는,
연기적 조건이 성숙했을 때 명색이라는 현상이 새로운 양상으로 드러나는
생성적 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경문의 철학적 함의에 더 부합한다.
4. 관련 經文을 통한 論證 强化
4.1. Cetanāsutta (SN 12.38) — 意圖(思)와 識의 住處
Cetanāsutta에서는 意圖(cetanā)와 計劃(pakappanā) 그리고 潛在的 性向(anusaya)이
識의 維持(ṭhiti)를 위한 所緣(ārammaṇa)이 되며, 識이 住立(patiṭṭhita)되고
增長(virūḷha)될 때 미래의 다시-됨(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미래의 生老死(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와 諸苦가 발생한다고 설해진다.
“yañca, bhikkhave, ceteti yañca pakappeti yañca anuseti,
ārammaṇametaṃ hoti viññāṇassa ṭhitiyā. ārammaṇe sati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hoti.
tasmiṃ patiṭṭhite viññāṇe virūḷhe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 hoti.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sati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비구들이여, 무엇을 意圖하고, 무엇을 計劃하고, 무엇에 대해 潛在的 性向을 가지면,
그것이 識의 維持를 위한 所緣이 된다. 所緣이 있을 때 識의 住立이 있다.
그렇게 住立되고 增長한 識이 있을 때 미래의 다시-됨(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이 있다.
미래의 다시-됨이 있을 때 미래의 生老死(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와 愁悲苦憂惱가 發生한다.”
반대로 意圖·計劃·潛在的性向이 없으면 識의 所緣이 없고, 識이 住立되지 않으며,
미래의 다시-됨이 없고, 미래의 生老死가 消滅(nirujjhanti)한다.
이는 DN 15 116항의 “識이 名色에 住處(patiṭṭha)를 얻지 못하면
미래의 生老死가 알려지지 않는다”는 논증과 정확히 一致하며,
현생의 名色(五蘊)이 어떻게 識의 住處를 통해
미래의 生老死를 準備하는지를 具體的인 因果 連鎖로 보여준다.
4.2. Tatiyacetanāsutta (SN 12.40) — 傾向(nati)과 來去(āgatigati)
Tatiyacetanāsutta에서는 識이 住立되고 增長하면 傾向(nati)이 생기고,
傾向이 있으면 來去(āgatigati)가 있으며, 來去가 있으면 死生(cutūpapāto)이 있고,
死生이 있을 때 미래의 生老死(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가 發生한다고 설해진다.
“tasmiṃ patiṭṭhite viññāṇe virūḷhe nati hoti. natiyā sati āgatigati hoti.
āgatigatiyā sati cutūpapāto hoti. cutūpapāte sati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 ... sambhavanti.”
“그렇게 住立되고 增長한 識이 있을 때 傾向(nati)이 있다.
傾向이 있을 때 來去(āgatigati)가 있다. 來去가 있을 때 死生(cutūpapāto)이 있다.
死生이 있을 때 미래의 生老死가 發生한다.”
이 경문은 DN 15 116항의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이 단순한 結果가 아니라,
傾向→來去→死生이라는 一連의 心理·存在的 過程을 거쳐 發生하는 段階的 結果임을 보여준다.
이는 識이 名色에 住處를 얻는 것이 靜態的인 依支가 아니라,
윤회를 持續시키는 動態的인 過程임을 示唆한다.
4.3. Atthirāgasutta (SN 12.64) — 四食(āhāra)와 名色의 現顯(avakkanti)
Atthirāgasutta에서는 네 가지 食(āhāra) — 段食(粗·細), 觸食, 意思食, 識食 —
이 衆生을 維持하고 再生을 助援한다고 설해진다.
이 경문의 핵심 連鎖는 다음과 같다:
“kabaḷīkāre ce, bhikkhave, āhāre atthi rāgo atthi nandī atthi taṇhā,
patiṭṭhitaṃ tattha viññāṇaṃ virūḷhaṃ.
yattha patiṭṭhitaṃ viññāṇaṃ virūḷhaṃ, atthi tattha nāmarūpassa avakkanti.
yattha atthi nāmarūpassa avakkanti, atthi tattha saṅkhārānaṃ vuddhi.
yattha atthi saṅkhārānaṃ vuddhi, atthi tattha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
yattha atthi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 atthi tattha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
“비구들이여, 段食에 貪欲(rāga)이 있고, 喜樂(nandī)이 있고, 渴愛(taṇhā)가 있다면,
거기에 識이 住立되고 增長한다. 識이 住立되고 增長한 곳에는 名色의 現顯(avakkanti)이 있다.
名色의 現顯이 있는 곳에는 行의 增長(saṅkhārānaṃ vuddhi)이 있다.
行의 增長이 있는 곳에는 미래의 다시-됨(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이 있다.
미래의 다시-됨이 있는 곳에는 미래의 生老死(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가 있다.”
이 連鎖는 DN 15 116항의 名色→識 구조를 四食→識→名色→行→다시-됨→生老死라는 더욱 具體化된 因果 過程으로 展開시킨다.
특히 ‘名色의 現顯(avakkanti)’는 단순한 생물학적 착상이 아닌, 식이 주처를 얻음으로써
새로운 명색(정신-물질 복합체)이 현현하게 되는 현상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4.4. Moḷiyaphaggunasutta (SN 12.12) — 識食(viññāṇāhāra)과 未來 다시-됨
Moḷiyaphaggunasutta에서는 識食(viññāṇāhāra)이
미래 다시-됨(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의 條件(paccayo)이며,
그 存在(bhūta)가 있을 때 六處(saḷāyatana)가 있고,
六處를 條件으로 觸(phasso)가 있다고 설해진다.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ti.
“識食은 미래 다시-됨(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의 條件이며,
그 됨(名色)이 있을 때 六處(生)가 있고, 六處를 條件으로 觸이 있다.”
이 경문은 DN 15의 115-116항이 보여주는 識↔名色의 상호의존성이 十二緣起 전체의 骨格이며,
특히 識食→未來 다시-됨(有)→六處→觸라는 連鎖를 통해 識과 名色의 相互 條件性이 윤회의 核心 動力임을 確認시켜 준다.
5. 結論
以上의 經文 分析을 통해 다음과 같은 結論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DN 15 113항의 六觸(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과 114항의 名稱觸·有對觸은
相互 排他的인 개념이 아니라 基礎(infrastructure)와 發顯(manifestation)의 關係에 있다.
名稱觸과 有對觸은 六入處가 成立하기 이전의 原初的 名色 相互作用을 分析한 것이며,
六觸은 그 基礎 위에서 六入處를 媒介로 하여 具體化된 現象이다.
둘째, DN 15 116항의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미래의 生老死)는
115항(識→名色)이 説明하는 發生論的(genetic) 次元과 달리,
現生의 名色(五蘊)이 어떻게 識의 住處(patiṭṭha)를 통해
未來 다시-됨(有)의 條件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時間的(縱的)인 緣起 構造를 드러낸다.
셋째, ‘有(bhava)’는 ‘존재(existence)’나 ‘재생(rebirth)’이 아닌 ‘됨(becoming)’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取→有→生→老死의 연쇄를 정태적 결과물의 나열이 아닌,
집착이 현재의 오온을 재구성하는 역동적 생성 과정(有, 됨)을 촉발하고,
그 생성 과정이 완성되어 첫 순간에 生(태어남)으로 현현하며,
이어서 老死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는 12연기가 ‘존재의 사슬’이 아닌 ‘생성의 흐름’임을 보여주는 핵심적 통찰이다.
넷째, ‘名色의 下降(avakkanti)’ 역시 생물학적 착상으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識이 특정한 명색에 住處를 얻게 됨으로써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서의
명색이 현현(manifest)하는 현상”으로 읽어야 한다.
이는 bhava를 ‘됨(becoming)’으로 보는 관점과 조화되며,
경문의 생성론적(process-oriented) 성격을 강화한다.
종합하면, DN 15(Mahānidānasutta)는 緣起(paṭiccasamuppāda)의 核心 構造,
즉 ‘識’과 ‘名色’의 相互 依存性(互緣性)과 ‘觸’의 二重的 層位를 가장 精密하게 分析한 經文이며,
이는 初期佛敎의 存在論과 認識論이 單一한 平面이 아닌 多層的 因果 網目으로 構成되었음을 示唆한다.
또한 相關 經文들은 이 構造가 윤회(saṃsāra)의 持續 動力으로서 作動함을 確認시켜 준다.
특히 bhava(有)를 ‘됨(becoming)’으로, avakkanti(下降)를 ‘현현(manifestation)’으로 읽는
것은 이 構造를 정태적 존재론에서 역동적 생성론으로 전환하는 解釋的 地平을 제공한다.
本 報告書는 DN 15(Mahānidānasutta)를 中心으로 SN 12.38, SN 12.40, SN 12.64,
SN 12.12 등 相關 經文을 比較·分析하여 初期佛敎 緣起論의 構造的 理解를 提供하며,
‘有(bhava)’를 ‘됨(becoming)’으로, ‘名色의 下降(avakkanti)’을
‘名色의 現顯(manifestation)’으로 再定義함으로써 緣起의 生成的 性格을 浮刻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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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DN15의
'Iti kho ānanda ime dve dhammā dvayena vedanāya ekasamosaraṇā bhavanti.'
의 위치 문제와 'dve dhammā dvayena'에서 둘의 의미
https://www.digitalpalireader.online/
♦ 112. “‘taṇhaṃ paṭicca pariyesanā’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taṇhaṃ paṭicca pariyesanā. taṇh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kassaci kimhici, seyyathidaṃ —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sabbaso taṇhāya asati taṇhānirodhā api nu kho pariyesanā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pariyesanāya, yadidaṃ taṇhā.
iti kho, ānanda, ime dve dhammā {ime dhammā (ka.)} dvayena vedanāya ekasamosaraṇā bhavanti”.
♦ 113. “‘phassapaccayā vedanā’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phassapaccayā vedanā. phass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kassaci kimhici, seyyathidaṃ — 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sabbaso phasse asati phassanirodhā api nu kho vedanā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vedanāya, yadidaṃ phasso”.
♦ 114. “‘nāmarūpapaccayā phass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nāmarūpapaccayā phasso.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nām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tesu liṅgesu tesu nimittesu 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rūpakāye adhivacanasam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rūp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 pe ...
https://84000.org/tipitaka
{59.9} Taṇhaṃ paṭicca pariyesanā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taṇhaṃ paṭicca
pariyesanā . taṇh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kassaci kimhici seyyathīdaṃ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 sabbaso taṇhāya asati taṇhānirodhā api nu kho
pariyesanā paññāyethāti . no hetaṃ bhante .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pariyesanāya
yadidaṃ taṇhā.
[60] Iti kho ānanda ime dve dhammā dvayena vedanāya
ekasamosaraṇā bhavanti.
{60.1} Phassapaccayā vedanā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phassapaccayā
vedanā 1- . phass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Footnote: 1 Ma. vedanāti.
Sabbaṃ sabbathā sabbaṃ kassaci kimhici seyyathīdaṃ 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 sabbaso phasse asati phassanirodhā api nu kho
vedanā paññāyethāti .
no hetaṃ bhante .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vedanāya
yadidaṃ phasso.
{60.2} Nāmarūpapaccayā phassoti iti kho panetaṃ vuttaṃ. Tadānanda
imināpetaṃ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nāmarūpapaccayā phasso .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nām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tesu liṅgesu tesu ...
초기불전 연구원 디가 니까야 제2권 130-131쪽
18. “갈애105)를 조건으로 추구가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갈애를 조건으로 추구가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갈애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갈애가 소멸하여 버려 갈애가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추구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추구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갈애다.
105) “갈애(taṇhā)는 추구하는(esana) 갈애와 추구된(esita) 갈애의 두 가지가 있다. 그 갈애 때문에 양들이 다니는 길과 갈고리를 사용해야만 하는 험난한 길 등을 다니면서 즐길 거리를 찾고 구하는 것을 ‘추구하는 갈애'라 한다. 찾았고 구했고 획득한 것들에 대한 갈애가 ‘추구된 갈애'이다. 이 두 가지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갈애(samudācāra-taṇhā)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느낌을 조건으로 이러한 두 가지 갈애가 있게 된다.”(Ibid)
아난다여, 이와 같이 두 가지 법들이106) 이처럼 두 가지 부분으로 느낌에 의해서 하나가 된다.107)"
106) 여기서 두 가지 법(dhamma)들이란 윤회의 뿌리가 되는 갈애(vaṭṭamūla-taṇhā)와 바로 위 주해에서 설명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갈애(samudācāra-taṇhā)를 뜻한다.(DA.ji.500)
107) “이것은 취착의 원인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갈애이다라고 설한 '윤회의 뿌리가 되는 갈애와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추구가 있다라고 설한 '현실에서 벌어지는 갈애'라는 이 두 가지는 갈애라는 특징으로는 하나의 성질을 가졌으며 모두 느낌이라는 하나의 귀결점을 가지게 되나니 느낌이라는 공통된 조건으로 하나의 조건을 가진다는 뜻이다.” (Ibid)
즉 윤회의 뿌리가 되는 갈애와 현실에서 벌어지는 갈애, 둘 모두 결국은 여섯 감각장소에서 기인한 느낌을 조건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갈애는 느낌이라는 하나의 조건을 가진다.
의견:
{iti kho, ānanda, ime dve dhammā dvayena vedanāya ekasamosaraṇā bhavanti”.}에서
'iti'라는 표현은 앞 내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문맥상 이후의 내용에 대한 선언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dve dhammā'란 명칭촉과 유대촉으로 읽을 수 있지만 6촉(근경식 삼사화합 촉) 앞에 이 문장이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6촉(근경식 삼사화합 촉)과 명색을 연한 촉---이 두 가지 법으로 읽으면 이어지는 내용이 연결된다.
@봄봄 갈애 땅하는 생명체의 본능이 포함된다('욕애'라고 함)라고 봅니다.
논문인 것깉은데요...
D15 <대인연경>에서 근경식 삼사화합이라는 촉phass과,
사대물질과 변형된 '안이비설신'의 물질(색신, rupa)을 의지해서 생겨나는 심장 토대의 기우는 특징의 느낌 인식 의도 감각접촉 식 등등의 정신들(명신, nama)로서 구분되는 정신•물질(명색)을 알음알이가 곧 '재생연결식'이고,
또한
정신•물질(명색)을 알음알이(재생연결식)하는 연유로 육입이 생겨나고
(이때 육입, 여섯 감각장소를 알음알이하므로 근.경.식의 삼사화합) 감각접촉을 설명한것이 되고요(D15)
...
그래서‘觸’의 二重的 層位는 무리한 기술이고요...
논지는 대체로 맞는 데요.
D15경의
해석에서는 추측성 사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