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시작되었다. 10월1일 국군의 날이 임시 휴일로 지정되었다. 하루 출근하면 또 개천절이다. 퐁당퐁당 휴일이다. 지난 휴일에 시골에서 고구마 캐고 온 뒤로 오늘까지 컨디션이 개운하지 않다. 호미를 들고 고구마를 캔 것도 아니다. 낫을 들고 벌초를 직접 한 것도 아니다. 세끼 밥을 한 것밖에는 없다. 물론 대식구 식사를 준비하고 차리고 뒷정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모든 시스템이 아파트와는 달라서 앉아서 식사하는 것부터 부엌에서 일하는 것까지 불편해서 힘이 든다. 밥상에 차리는 것부터 일일이 부엌에서 차려서 쟁반에 나른다. 앉은뱅이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면서 서너 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바쁘다. 간장이 없다느니 수저가 모자라니 하면서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일 새가 없이 바쁘다. 밥을 먹는 건지 도대체 정신이 없을 때가 많다. 차라리 나중에 혼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함께 먹자고 하지만 며느리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신경이 곤두서있다.
어쩌다 가족 행사가 있으니 망정이지 매일 이렇게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오면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서 딱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도 아니고 묘하게 가라앉는다. 쌍화탕을 먹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천천히 마음을 만져주고 몸도 달래준다. 오늘은 서재에서 노래를 불렀다. 신나는 노래부터 감성이 폭발하는 노래까지 소리 질러 불렀다. 한 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고 나니 한결 속이 시원했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응어리가 진 것이 풀어지는 기분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환성사를 오랜만에 갔다. 환성사 가는 길에는 많은 추억이 있다. 50대를 함께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친구와 자주 오갔던 길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가슴에 묻은 채 남남이 되어서 살아가지 않는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정이 깨지는 것도 경험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아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주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잠시 외출로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잘 먹고 쉬면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갈 거다. 오늘도 가슴 설레는 하루다. 가을은 멋진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