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통통하게 오른 강아지 발가락 같은 생강이 풍성한 계절이다. 김장철이 되었다는 신호다.
요즘 유통하는 생강 대부분은 중국에서 넘어온 종자로 매운맛과 향이 약하고 알이 굵어 중강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토종 생강은 향이 짙고 매우며 알이 잘아 소강이라고도 한다. 생강은 생선이나 육류의 비린내와 잡내를 잡는 역할을 한다.
김치 양념에 빠지지 않는 천연 조미료이며, 나아가 조미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첩약에도 들어가는 약재로 쓰였다. 예전에 외할머니는 약탕기에 첩약을 부으면서 반드시 부재료를 넣으셨다. 대추와 생강이었다.
어린 생각에도 생강은 약재라는 인식을 하게 했다. 생강은 혈액 순환을 돕고 소화가 잘되게 하며 면역력을 강화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등 효능이 다양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치유의 식물’로 사랑받았다. 중국의 성인군자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반드시 생강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아시아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 생강은 전 세계에서 애용한다. 일본에서는 얇게 썬 생강을 초절임해 먹는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생강으로 쿠키나 빵을 만들어 즐기고, 생강 최대 산지 호주에서는 저민 생강을 시럽에 살짝 졸여 캔디처럼 즐기기도 한다. 알싸한 매운맛, 향기롭고도 강렬한 내음, 샛노란 속살의 생강은 천 천히 음미하면 매운맛은 부드럽고 특유의 향은 식욕을 돋운다. 이처럼 생강은 향과 맛을 강하게 띠면서도, 다른 음식을 만나면 과감히 자기 색을 죽이고 화합해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생강차나 생강 시럽은 감기 예방 식품으로 그만이다. 생강 철이 되면 생강을 넉넉히 사다가 즙을 내어 생강청을 만드는 게 겨울의 연례행사다. 생강청은 생강의 윗물을 받아서 설탕을 넣어 끓인 것이다. 시행착오도 몇 번 겪었다. 처음에는 녹말을 거르지 않고 끓여 풀대죽이 된 적이 있다. 이후에는 맑은 생강물을 받아 끓이기는 했 지만 가라앉은 녹말을 모두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생강 녹말은 건조기에 말려 믹서에 갈아두면 양념으로 쓰인다. 생강물을 지나치게 오래 끓이면 설탕 결정이 생기기도 한다.
즙을 짜서 설탕을 부어 끓이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생강청은 의외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몇 가지만 유념하고 정성을 기울이면 겨울이 두렵지 않은 음식이다.
생강청은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진하게 타서 마시면 어지간한 초기 감기는 거뜬히 물리치는 임상 경험을 해왔다. 생강 속의 매운맛이 살균 작용을 하는 것이다. 생강청에 우유를 섞으면 은은히 우러나는 스파이시한 달콤함이 우아하게 다가온다. 고기를 재거나 드레싱 양념으로도 다양하게 활용하는 마법의 에센스다.
식혜를 끓일 때 생강 한 쪽을 넣어 끓이면 생글생글한 음료로 변한다. 여기에는 기호가 갈린다.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거나. 어쩐지 생강을 먹을 줄 알고 좋아하기까지 하면 어른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생강 산지에서는 으레 생강한과를 만든다. 제천, 서산에 가면 일부러 생강한과를 만드는 집을 찾아간다. 사르르 녹는 한과에서 생강 향이 은은하게 입 안을 감돌면 시름이 잊힐 정도다.
생강은 추위에 약해 보관이 까다롭다. 봉동의 생강 농가에서 지하 5m가 넘는 동굴을 직선으로 파서 생강을 보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예부터 생강을 통째로 말리거나 검게 구워 말렸다. 얇게 썰어 설탕을 입힌 편강은 다과에 곁들이거나 주전부리로 삼을 만하다. 특히 멀미할 때 한 쪽씩 조곤조곤 오물거리면 울렁거리는 속이 다스려진다. 입덧을 유난스레 치르던 임신 초기에 편강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생강의 잎은 댓잎과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조릿대밭처럼 보인다. 생강의 잎을 다져 음식에 넣기도 하고 생강 뿌리를 거두고 난 줄기를 동치미 웃기로 얹어주면 골마지도 끼지 않고 동치미 국물이 더 향긋하다.
어릴 적 친정 마당 한 귀퉁이에 생강이 자랐다. 모친이 양념과 비상 약재로 쓰기 위해 길렀다. 나는 한철내내 화초처럼 관상했고, 오가며 생강 잎을 쓰다듬기를 즐겼다. 그러고는 반드시 코에 생강 잎을 만진 손바닥을 갖다 댔다. 상큼한 향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냄새만으로도 치유력을 뿜었다. 맵고 쓴 생강은 몸과 마음에 알싸한 향기를 전하는 치유의 식물이다.
편강
재료 생강 1kg, 설탕 700g
만들기 1 생강은 마디마디를 분질러 껍질을 벗기고 흙이 남지 않도록 깨끗이 씻는다. 2 씻은 생강을 얇게 썰어 물에 한 번 헹구고 끓는 물에 데친다. 3 삶은 생강의 물기를 충분히 뺀 다음 냄비에 담고 설탕을 부어 섞는다. 설탕이 녹아 투명해지면 강한 불에 끓인다. 4 생강이 반질반질해지면서 수분이 거의 마르면 불을 줄인다. 불을 줄이지 않으면 설탕이 타거나 결정화된 설탕이 다시 녹아버릴 수 있다. 5 설탕 결정이 생기기 시작하면 생강을 훌훌 털면서 섞어준다. 이때 엉겨 있던 생강이 낱개로 떨어지면서 설탕 입자가 생긴다.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날 때까지 섞은 다음 펼쳐서 남은 수분을 날린다.
생강청을 넣은 고구마 파이 생강청
재료 생강 1kg, 설탕 500g
만들기 1 생강은 마디마디 자른다. 2 흐르는 물줄기로 흙을 씻은 다음 소쿠리나 양파망에 조금씩 넣고 사정없이 문지른다. 넉넉한 물에 흔들어 헹군다. 3 믹서에 대충 간 다음 착즙기에 내린다. 30분 이상 가만히 두면 녹말은 가라앉고 생강즙이 윗물로 남는다. 4 전분은 남기고 냄비에 윗물만 따라 낸다. 5 거른 즙이 700ml면 설탕 500g을 넣어 섞고 끓기 전까지는 서서 지킨다. 생강물이 넘치지 않게 지키다가 끓기 시작하면 중간 불로 줄이고 절반 정도로 줄 때까지 끓인다. 너무 과하게 끓이면 설탕 결정이 생긴다. 6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생강청을 담는다.
만들기 1 고구마는 껍질을 벗겨 굵직하게 썰어 삶는다. 2 부드럽게 익으면 우유를 넣어 으깬다.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저으며 약한 불에서 조린다. 3 생강청과 생크림, 버터, 달걀, 계핏가루를 넣고 섞는다. 4 용기에 버터를 얇게 바르고 위의 재료를 넣은 뒤 표면에 달걀노른자를 바른다. 5 180℃로 예열한 오븐에 20분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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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달걀, 토란
토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수를 해야겠다. 추석을 앞둔 달의 월간지는 어김없이 토란국을 다룬다. 추석에 먹는 명절 음식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한 달을 미리 당겨 작업을 하는데 양력 8월에 토란을 시장에서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토란이 아직 나올 때가 아니어서다. 재료가 없다고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없는 것도 감쪽같이 만들어내야 하는 게 직업적 숙명이다. 감자를 깎았다. 토란 모양으로 조각을 한 것이다. 그러다 마로 대체했다. 뽀얀 빛깔이나 미끄덩한 질감이 토란에 더 가까웠기때문이다. 이제야 말을 하는 유감스러운 고백이다.
토란(土卵)은 가을에 먹을 수 있는 별미다.
글자 그대로 땅속의 알이다. 껍질을 벗기면 매끄럽고 뽀얀 속살이 마치 달걀 같다.
토란국을 끓일 때는 토란알을 먼저 쌀뜨물에 담가 아린 맛과 미끈거리는 식감을 없애야 한다. 색이 변하는 것도 막아준다. 토란은 구워 먹거나 쪄 먹으면 크림치즈처럼 부드럽다. 물렁하고 심심한 맛이지만 열량이 낮고 포만감은 높아 과식이 염려되는 추석에 부담 없이 먹기 좋다.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 듣고 토란이 자란다는 말이 있듯 토란은 일찍 파종하지만 더디 나온다. 그러나 일단 잎과 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쑥쑥 자란다. 토란잎이 도열한 밭에 서면 웅장함에 가슴이 일렁인다. 작물 중에서 토란만큼 잎이 넓은 게 있을까 싶다. 쪽쪽 쪼개 말린 토란대는 고사리처럼 육개장, 보신탕 등에 거섶으로 넣어 먹거나 나물로 볶아 먹는다. 하루 이틀 꾸덕꾸덕 말린 뒤 껍질을 벗기면 잘 벗겨진다.
토란을 처음 수확했을 때의 일이 잊히지 않는다. 토란대를 데쳐 들깻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졸깃한 질감이 고기 맛을 닮아 놀라웠다. 그런데 곧바로 목구멍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이 오는 바람에 또 놀랐다.
옥살산칼륨이라는 독성의 작용이었다. 토란대는 껍질에 아린 맛이 많아 껍질을 벗겨야 한다는 걸 간과한 탓이다. 옛말에 얄미운 시누이 국은 덜 삶아진 것을 대접한다고 할 정도로 토란의 독성은 만만한 게 아니다.
토란도 고구마처럼 꽃이 핀다. 아주 드물게 피워 토란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모르기 십상이다. 하얀 꽃의 수려함이 참으로 정숙하고 단아하다. 오랫동안 재배 작물로 키우면서 개화 습성이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날씨가 유난히 더운 해 가을에는 간혹 꽃을 피운다.
어느 해였다. 겨우내 얼고 말라 쪼글쪼글해진 토란을 먹기도, 심기도, 버리기도 마땅치 않아 물에 담가보았다. 양파처럼 싹이 나더니 점점 더 자란 토란잎은 환호를 지르게 했고, 무더운 여름날 한동안 눈 맛을 즐겼다.
한여름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할 때 토란대 하나를 꺾어 들면 초록 우산이 되는 동화 같은 서정도 자아낸다. 토란잎은 밥을 싸는 보자기로도 사용하고, 테이블 매트로도 활용한다. 토란을 캐고 버림받기 예사인 토란잎을 정자 아래 매달아 말렸다. 묵나물로 볶아 대보름 복쌈을 여며볼 것이다. 토란은 뿌리와 줄기는 물론, 잎사귀마저 쏠쏠한 소용이 닿으니 밥상의 완전한 순환이다.
이 넉넉하고 푸른 토란잎은 ‘뒤란의 토란잎은 수정 같은 물방울이 또르르 맺혔다’는 글로 시작하던 전주 양반댁 셋째 딸이 보낸 여고 때 편지와 함께, 그녀의 어른스러운 글씨를 떠올리게 했다.
어느 날에 ‘안녕!’ 이라는 달랑 두 글자와 느낌표를 돋보기로 태워 보낸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참으로 뜬금없고 납득되지 않는 태도였다. 일방적인 결별 편지를 받은 나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그녀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모호한 편지의 까닭을 캐묻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녀가 나를 수소문해 연통이 되었을 땐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온 나는 아이의 어미로, 그녀는 경찰 공무원으로 살고 있었다. 편지를 몇 번 주고받다가 다시 소식이 끊겼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고 그녀의 소녀 적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으니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토란잎이 그녀에 대한 기억을 붙드는 단서다. 지금도 토란잎을 보면 무정한 친구가 떠오른다. 이다음에 혹여 재회의 연이 닿으면 물어봐야겠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강아지 발가락 같은 생강이 풍성한 계절이다. 김장철이 되었다는 신호다.
요즘 유통하는 생강 대부분은 중국에서 넘어온 종자로 매운맛과 향이 약하고 알이 굵어 중강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토종 생강은 향이 짙고 매우며 알이 잘아 소강이라고도 한다. 생강은 생선이나 육류의 비린내와 잡내를 잡는 역할을 한다.
김치 양념에 빠지지 않는 천연 조미료이며, 나아가 조미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첩약에도 들어가는 약재로 쓰였다. 예전에 외할머니는 약탕기에 첩약을 부으면서 반드시 부재료를 넣으셨다. 대추와 생강이었다.
어린 생각에도 생강은 약재라는 인식을 하게 했다. 생강은 혈액 순환을 돕고 소화가 잘되게 하며 면역력을 강화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등 효능이 다양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치유의 식물’로 사랑받았다. 중국의 성인군자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반드시 생강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아시아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 생강은 전 세계에서 애용한다. 일본에서는 얇게 썬 생강을 초절임해 먹는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생강으로 쿠키나 빵을 만들어 즐기고, 생강 최대 산지 호주에서는 저민 생강을 시럽에 살짝 졸여 캔디처럼 즐기기도 한다. 알싸한 매운맛, 향기롭고도 강렬한 내음, 샛노란 속살의 생강은 천 천히 음미하면 매운맛은 부드럽고 특유의 향은 식욕을 돋운다. 이처럼 생강은 향과 맛을 강하게 띠면서도, 다른 음식을 만나면 과감히 자기 색을 죽이고 화합해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생강차나 생강 시럽은 감기 예방 식품으로 그만이다. 생강 철이 되면 생강을 넉넉히 사다가 즙을 내어 생강청을 만드는 게 겨울의 연례행사다. 생강청은 생강의 윗물을 받아서 설탕을 넣어 끓인 것이다. 시행착오도 몇 번 겪었다. 처음에는 녹말을 거르지 않고 끓여 풀대죽이 된 적이 있다. 이후에는 맑은 생강물을 받아 끓이기는 했 지만 가라앉은 녹말을 모두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생강 녹말은 건조기에 말려 믹서에 갈아두면 양념으로 쓰인다. 생강물을 지나치게 오래 끓이면 설탕 결정이 생기기도 한다.
즙을 짜서 설탕을 부어 끓이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생강청은 의외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몇 가지만 유념하고 정성을 기울이면 겨울이 두렵지 않은 음식이다.
생강청은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진하게 타서 마시면 어지간한 초기 감기는 거뜬히 물리치는 임상 경험을 해왔다. 생강 속의 매운맛이 살균 작용을 하는 것이다. 생강청에 우유를 섞으면 은은히 우러나는 스파이시한 달콤함이 우아하게 다가온다. 고기를 재거나 드레싱 양념으로도 다양하게 활용하는 마법의 에센스다.
식혜를 끓일 때 생강 한 쪽을 넣어 끓이면 생글생글한 음료로 변한다. 여기에는 기호가 갈린다.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거나. 어쩐지 생강을 먹을 줄 알고 좋아하기까지 하면 어른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생강 산지에서는 으레 생강한과를 만든다. 제천, 서산에 가면 일부러 생강한과를 만드는 집을 찾아간다. 사르르 녹는 한과에서 생강 향이 은은하게 입 안을 감돌면 시름이 잊힐 정도다.
생강은 추위에 약해 보관이 까다롭다. 봉동의 생강 농가에서 지하 5m가 넘는 동굴을 직선으로 파서 생강을 보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예부터 생강을 통째로 말리거나 검게 구워 말렸다. 얇게 썰어 설탕을 입힌 편강은 다과에 곁들이거나 주전부리로 삼을 만하다. 특히 멀미할 때 한 쪽씩 조곤조곤 오물거리면 울렁거리는 속이 다스려진다. 입덧을 유난스레 치르던 임신 초기에 편강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생강의 잎은 댓잎과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조릿대밭처럼 보인다. 생강의 잎을 다져 음식에 넣기도 하고 생강 뿌리를 거두고 난 줄기를 동치미 웃기로 얹어주면 골마지도 끼지 않고 동치미 국물이 더 향긋하다.
어릴 적 친정 마당 한 귀퉁이에 생강이 자랐다. 모친이 양념과 비상 약재로 쓰기 위해 길렀다. 나는 한철내내 화초처럼 관상했고, 오가며 생강 잎을 쓰다듬기를 즐겼다. 그러고는 반드시 코에 생강 잎을 만진 손바닥을 갖다 댔다. 상큼한 향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냄새만으로도 치유력을 뿜었다. 맵고 쓴 생강은 몸과 마음에 알싸한 향기를 전하는 치유의 식물이다.
편강
재료 생강 1kg, 설탕 700g
만들기 1 생강은 마디마디를 분질러 껍질을 벗기고 흙이 남지 않도록 깨끗이 씻는다. 2 씻은 생강을 얇게 썰어 물에 한 번 헹구고 끓는 물에 데친다. 3 삶은 생강의 물기를 충분히 뺀 다음 냄비에 담고 설탕을 부어 섞는다. 설탕이 녹아 투명해지면 강한 불에 끓인다. 4 생강이 반질반질해지면서 수분이 거의 마르면 불을 줄인다. 불을 줄이지 않으면 설탕이 타거나 결정화된 설탕이 다시 녹아버릴 수 있다. 5 설탕 결정이 생기기 시작하면 생강을 훌훌 털면서 섞어준다. 이때 엉겨 있던 생강이 낱개로 떨어지면서 설탕 입자가 생긴다.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날 때까지 섞은 다음 펼쳐서 남은 수분을 날린다.
생강청을 넣은 고구마 파이 생강청
재료 생강 1kg, 설탕 500g
만들기 1 생강은 마디마디 자른다. 2 흐르는 물줄기로 흙을 씻은 다음 소쿠리나 양파망에 조금씩 넣고 사정없이 문지른다. 넉넉한 물에 흔들어 헹군다. 3 믹서에 대충 간 다음 착즙기에 내린다. 30분 이상 가만히 두면 녹말은 가라앉고 생강즙이 윗물로 남는다. 4 전분은 남기고 냄비에 윗물만 따라 낸다. 5 거른 즙이 700ml면 설탕 500g을 넣어 섞고 끓기 전까지는 서서 지킨다. 생강물이 넘치지 않게 지키다가 끓기 시작하면 중간 불로 줄이고 절반 정도로 줄 때까지 끓인다. 너무 과하게 끓이면 설탕 결정이 생긴다. 6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생강청을 담는다.
만들기 1 고구마는 껍질을 벗겨 굵직하게 썰어 삶는다. 2 부드럽게 익으면 우유를 넣어 으깬다.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저으며 약한 불에서 조린다. 3 생강청과 생크림, 버터, 달걀, 계핏가루를 넣고 섞는다. 4 용기에 버터를 얇게 바르고 위의 재료를 넣은 뒤 표면에 달걀노른자를 바른다. 5 180℃로 예열한 오븐에 20분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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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달걀, 토란
토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수를 해야겠다. 추석을 앞둔 달의 월간지는 어김없이 토란국을 다룬다. 추석에 먹는 명절 음식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한 달을 미리 당겨 작업을 하는데 양력 8월에 토란을 시장에서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토란이 아직 나올 때가 아니어서다. 재료가 없다고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없는 것도 감쪽같이 만들어내야 하는 게 직업적 숙명이다. 감자를 깎았다. 토란 모양으로 조각을 한 것이다. 그러다 마로 대체했다. 뽀얀 빛깔이나 미끄덩한 질감이 토란에 더 가까웠기때문이다. 이제야 말을 하는 유감스러운 고백이다.
토란(土卵)은 가을에 먹을 수 있는 별미다.
글자 그대로 땅속의 알이다. 껍질을 벗기면 매끄럽고 뽀얀 속살이 마치 달걀 같다.
토란국을 끓일 때는 토란알을 먼저 쌀뜨물에 담가 아린 맛과 미끈거리는 식감을 없애야 한다. 색이 변하는 것도 막아준다. 토란은 구워 먹거나 쪄 먹으면 크림치즈처럼 부드럽다. 물렁하고 심심한 맛이지만 열량이 낮고 포만감은 높아 과식이 염려되는 추석에 부담 없이 먹기 좋다.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 듣고 토란이 자란다는 말이 있듯 토란은 일찍 파종하지만 더디 나온다. 그러나 일단 잎과 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쑥쑥 자란다. 토란잎이 도열한 밭에 서면 웅장함에 가슴이 일렁인다. 작물 중에서 토란만큼 잎이 넓은 게 있을까 싶다. 쪽쪽 쪼개 말린 토란대는 고사리처럼 육개장, 보신탕 등에 거섶으로 넣어 먹거나 나물로 볶아 먹는다. 하루 이틀 꾸덕꾸덕 말린 뒤 껍질을 벗기면 잘 벗겨진다.
토란을 처음 수확했을 때의 일이 잊히지 않는다. 토란대를 데쳐 들깻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졸깃한 질감이 고기 맛을 닮아 놀라웠다. 그런데 곧바로 목구멍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이 오는 바람에 또 놀랐다.
옥살산칼륨이라는 독성의 작용이었다. 토란대는 껍질에 아린 맛이 많아 껍질을 벗겨야 한다는 걸 간과한 탓이다. 옛말에 얄미운 시누이 국은 덜 삶아진 것을 대접한다고 할 정도로 토란의 독성은 만만한 게 아니다.
토란도 고구마처럼 꽃이 핀다. 아주 드물게 피워 토란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모르기 십상이다. 하얀 꽃의 수려함이 참으로 정숙하고 단아하다. 오랫동안 재배 작물로 키우면서 개화 습성이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날씨가 유난히 더운 해 가을에는 간혹 꽃을 피운다.
어느 해였다. 겨우내 얼고 말라 쪼글쪼글해진 토란을 먹기도, 심기도, 버리기도 마땅치 않아 물에 담가보았다. 양파처럼 싹이 나더니 점점 더 자란 토란잎은 환호를 지르게 했고, 무더운 여름날 한동안 눈 맛을 즐겼다.
한여름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할 때 토란대 하나를 꺾어 들면 초록 우산이 되는 동화 같은 서정도 자아낸다. 토란잎은 밥을 싸는 보자기로도 사용하고, 테이블 매트로도 활용한다. 토란을 캐고 버림받기 예사인 토란잎을 정자 아래 매달아 말렸다. 묵나물로 볶아 대보름 복쌈을 여며볼 것이다. 토란은 뿌리와 줄기는 물론, 잎사귀마저 쏠쏠한 소용이 닿으니 밥상의 완전한 순환이다.
이 넉넉하고 푸른 토란잎은 ‘뒤란의 토란잎은 수정 같은 물방울이 또르르 맺혔다’는 글로 시작하던 전주 양반댁 셋째 딸이 보낸 여고 때 편지와 함께, 그녀의 어른스러운 글씨를 떠올리게 했다.
어느 날에 ‘안녕!’ 이라는 달랑 두 글자와 느낌표를 돋보기로 태워 보낸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참으로 뜬금없고 납득되지 않는 태도였다. 일방적인 결별 편지를 받은 나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그녀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모호한 편지의 까닭을 캐묻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녀가 나를 수소문해 연통이 되었을 땐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온 나는 아이의 어미로, 그녀는 경찰 공무원으로 살고 있었다. 편지를 몇 번 주고받다가 다시 소식이 끊겼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고 그녀의 소녀 적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으니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토란잎이 그녀에 대한 기억을 붙드는 단서다. 지금도 토란잎을 보면 무정한 친구가 떠오른다. 이다음에 혹여 재회의 연이 닿으면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