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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날연휴를 맞이하여 3박4일(02/02<수>~02/05<토>) 일정으로 일본 나가사키켄의 츠시마와 이키섬 역사문화기행을 다녀왔다. 4대 주요교통편중 철도가 없는 그곳은 역시 철도의 아쉬움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츠시마는 한*일간의 해저터널이 개통되면서 철도가 놓이기를 희망해봤고, 이키섬에는 싱가폴의 센토사섬처럼 모노레일이 놓일 것을 기대해 봤다.
기행일기문으로 3편(상편, 중1,2편, 하편)으로 나누어 사진과 함께 올려본다. 이번 기행에서의 특징은 여행지가 모두 섬지역이었으므로 교통수단이 주로 선박이었다는 것, 그리고 렌트카를 빌려서 직접 운전하며 여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함께 우리나라의 동남단의 부산과 일본 키타큐슈(北九州) 후쿠오카(하카타)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는 츠시마섬과 이키섬을 향하여 즐거운 여행을 떠나볼까요?
!. 2011년 2월 2일<수요일> 날씨 맑음
[부산<釜山>]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을 하루 앞둔 항구도시 부산의 아침은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고향 가는길을 향한 바쁜 발걸음과 함께 다소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밤 머나먼 길을 자가운전으로 창원시외버스터미날까지 오느라 나의 몸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여행 첫날을 맞이하고 있다. 명절 대이동의 여파로 대부분의 귀향길이 차량의 정체로 움직임이 매우 더딜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였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서해안고속국도에서의 정체현상이 심하여 자칫하면 제 시간에 부산항에 도착하기 어려울 뻔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대전-통영간고속국도와 남해안고속국도에서의 시간지체가 거의 없어 예정시간보다 20분여 늦는 정도로 창원시외버스터미날까지 올 수 있게 되어 오차범위 시간내에 부산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약간은 무리를 하였지만, 아직은 젊다는 징표일까 건장한 모습으로 부산국제여객선터미날에 당도하니 시간은 08시 20분경, 09시 30분에 출발하는 배편이므로 아직은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우선은, 창구에 가서 티켓팅을 하고서 터미날카페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한다. 화장실 세면대앞에서 용모를 단정히 하고서 터미날 2층에서 출국수속을 밟는다. 예상외로 터미날은 많은 사람들로 상당히 분주한 편이었는 데, 아마도 모두들 우리처럼 설날연휴를 맞이하여 단체로 여행을 떠나는 손님들인 듯 싶다. 직장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황금연휴인 것을 이 어찌 놓칠 수 있으랴. 살기가 그만큼 좋아지고 사람들의 삶의 취향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반증이겠다. 언제부턴가 흔히 볼 수 있게 된 명절연휴를 이용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현대판 명절풍속도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저런 생각속에 출국장 수속이 끝나고 막간의 면세점 이용시간에 선물용으로 간단하게 구입할 만한 것을 고른다. 여행을 떠날 때면 으례히 홍삼제품(젤리, 사탕, 연양갱 등)을 주로 준비하였는 데, 이번에는 면세점 코너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마침, 다양한 소재로 가공된 초코렛류가 많이 진열되어 있어 한가지를 고르고, 아리랑 문양의 고급 나무젓가락 셋트가 괜찮을까 싶어서 한 셋트를 고른다.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에서 은연중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나, 현지인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게 된다. 그럴 때의 정감있는 분위기를 위하여 가벼운 향토선물같은 것을 준비하는 것도 아주 괜찮은 발상이지 않을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기념이 될만한 것 정도면 무난한 데, 이번엔 이 두가지를 준비하기로 하고 구입한다. 견물생심이라 보면은 사고싶고, 사면은 또 후회스러운 것이 인간의 욕심이라 일단은 목적에 부합한 것만 첫선에 골라서 쇼핑을 마치는 것이 좋은 생각이다. 길지않은 면세점 쇼핑시간, 벌써 배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 서둘러 면세점 코너를 빠져나와 계류장의 승선통로를 향한다.
이제 배에 오르니 배가 막 떠날 시간, 09시 30분이 지날 쯤에 우리가 탄 드림플라워호 고속훼리는 호줄을 풀고서 부산항을 이탈한다.
[부산항과 츠시마 북항 히타카츠항간을 운항할 오늘의 주인공 대아고속해운사 소속의 "드림플라워호"의 모습]
*** 배의 제원 : 선박의 종류 / 일반 쌍동선<Hydro Jet Foil선>, 조선국(사) / 일본 미츠비시중공업 시모노세키, 건조일 / 1993년도, 길이 / 30.82미터, 톤수 / 303톤, 최대속도 / 38놋트, 여객정원 / 300명, 운항노선 / 부산-츠시마, 취항일 / 2007년 9월 21일
[드림플라워호 선상] 부산항을 떠난 우리 배는 이제 1시간 20분 후에 일본 츠시마 북항인 히타카츠(日田勝)항에 도착한다. 지난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여 피곤한 모습 그대로이다. 잠시 선내 객실을 한 번 둘러본다. 만선이다. 비수기임에도 이렇게 설날 전날 이렇게 여행객이 많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많은 의미를 부여해준다. 명절연휴에 국외로 떠나는 여행객이 많다는 것과, 츠시마와 부산과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워 먼 옛날부터 그 관계가 상당히 밀접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등.
드림플라워호의 객실환경은 부산-하카타 사이를 운항하는 코비호나 비틀호보다는 그 쾌적성이 다소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승선해야 하는 이유때문일 것이다. 일반 훼리의 넓고 또 많은 휴게시설 등의 쾌적성과 편리성에 비교한다면 지나친 욕심이리라.
우리의 좌석은 출입구 방향으로 6인석이 별도로 구획된 코너라 활동하기에 편하였다. 동행하는 형님은 맥주파가 아닌 소주파라서 혼자서만 아사히 캔맥주를 한 캔 사서 어제 밤 승용차에서 먹다남은 쥐포채안주와 함께 간단히 입가심을 한다. 조각잠이나마 깊게 잠들고싶어서다. 하지만, 커피의 영향일까 잠은 쉽게 오질않는다. 잠시 여행일정표를 확인하며 우리가 여행할 츠시마와 이키섬에 관한 일반정보를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여행을 통하여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기행일정표 이면지상에 여행 목적지에 관한 구체적인 많은 정보를 정리하여 인쇄해 놓았기 때문에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잠시 짬을 내어 츠시마에 관한 이야기를 절리해 본다.
*** 츠시마는 지도상에 동경 129도, 북위 34도에 위치하며, 동서 18km와 남북 82km로 2개의 큰 섬(카미츠시마, 시모츠시마)으로 이루어졌다. 유인도 5개를 포함한 109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는 데, 면적은 약 709km2로 우리나라 거제도의 약 1.5배, 울릉도의 약 10배 정도의 크기이다. 부산에서는 49.5km로 일본열도에서의 147km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나가사키켄(長崎県)에 속하며, 2004년도 3월 1일부로 시쵸(市町)제로 행정구역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져 1市(츠시마시) 6쵸(카미츠시마쵸, 카미아가타쵸, 미네쵸, 토요타마쵸, 미츠시마쵸, 이즈하라쵸)로 되었다. 인구는 약 4만 5천명으로 그 반수(약 2만명)는 츠시마 남항인 이즈하라항이 소재하는 이즈하라쵸에 거주한다. 우리가 지금 가고있는 곳은 츠시마 북항인 히타카츠항으로 카미츠시마쵸에 속하며 츠시마에서는 제 2의 도시이다.
산업은 임업과 어업, 서비스업이 주를 이룬다. 섬 전체의 88%가 산지이며, 자연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섬 내의 삼나무를 모두 베어내어 팔면 일본 인구가 약 4년간 벌어들인 외화수익과 맞먹는다고 한다.
*** 츠시마(対馬)는 옛부터 한반도에 예속된 섬으로 조선 중기까지는 경상도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츠시마 영주는 조선의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츠시마(対馬)란 지명의 어원은 대충 세 가지로 요약되는 데, 첫째는 중국 역사서인 위지왜인전에 츠시마(津島)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어원이 되었다는 설, 둘째로는 옛 한민족인 삼한인들이 두 개의 섬이라 하여 "두 시마"라고 불렀다는 설, 세번째로 일본인들이 이 섬의 형상이 마치 두 마리의 말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것과 같아서 대마(對馬), 즉 츠시마라고 불렀다는 설이 그것이다.
마지막 세번째의 유래를 가장 유력한 것으로 일본인들은 보고 있다.
*** 우리나라와의 상관성이 많은 섬으로 우선은 한일간의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의 창구로서 정거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기타 역사적인 많은 상관성을 갖고 있는 데, 1419년에는 이종무 장군이 정벌에 성공하여 츠시마주에게 항복을 받아낸 적도 있다. 조선의 민간외교관인 안용복이 감금당한 곳이기도 하며, 을사조약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당시 유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이 끌려가 단식 분사한 곳이기도 하다.
신라충신 박제상의 비와 조선역관사의 비, 학봉 김성일 시비가 이 곳에 있다.
왜구의 조선침략의 근거지 역할을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親조선이었으나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집권이후 일본의 親바쿠후(幕府)로 기울어졌다.
이러한 많은 한반도와의 역사적 상관관계속에서 이어져온 츠시마는 현재, 매년 8월의 첫째 토 & 일요일(일본의 축제<마츠리>기간)에 아리랑 축제와 조선통신사행렬 행사가 이즈하라시내에서 열리고 있다.
충분한 공부라기보다는 잠들기 위한 자장가 쯤으로 이해하면 좋을까, 희미하고 몽매함 속에서 맥주의 은근한 알코올 영향이 작용하여 그 사이에 깊은 잠에 빠졌던 듯, 사람들의 웅성거림속에 깨어보니 배는 벌써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원안대로라면 배가 히타카츠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입국절차를 마치고, 정각 11시에 출발하는 이즈하라행 츠시마종단버스를 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데, 주위사정을 들어보니 교통연계가 시간적으로 너무 무리라고 하기에 미리 대안으로 준비해둔 제 2안의 일정표에 맞추도록 정하였다. 그러기에 오히려 느긋한 마음으로 입국준비를 한다.
배가 히타카츠항에 도착하는 시간은 정확하게 10시 50분 조금도 빈틈이 없다.
날씨는 쾌청하여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일기다. 초봄날씨 쯤으로 이해하면 될까? 배에서 보는 입국장의 모습은 듣던대로 초라할 정도의 작은 어촌마을의 회관정도에 불과하다.
선미쪽의 입출구에 사다리가 놓여지고 승객들이 줄지어 하선을 시작한다.
아! 드디어 츠시마 기행이 시작된다.
[카미츠시마쵸 히타카츠항과 시내] 승객들의 하선이 모두 이루어지고 이제 입국절차를 위하여 모두들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동행하는 형님은 부지런하게 저 앞쪽에 있었지만 나는 유유자적하며 입국장 밖의 부두의 모습을 둘러보며 사진 몇 장을 찍어본다.
아직은 감기기운이 가시지 않은 터라 기침을 콜록이며 입국차례를 기다리니 저 앞쪽에 미리 나간 형님이 무어라 손짓을 하며 물어온다. 입국카드에 목적지 숙소의 주소만 기재하고 숙소이름을 빠뜨렸다고 숙소명을 알려달라는 소리다. 통로가 복잡하여 들어갈수도 없고 무어라 알려주는 데, 잘 안들리는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기다렸다가 투덜대면서 다시금 뒤로 나온다. 사실 숙소명까지는 필요없을 것 같은 데, 꽤나 꼼꼼히 챙기는 입국장 스탭아줌마. 차례가 되어 함께 들어가며 입국카드에 다시 적어주니, "아! 거기" 한다. 큰 호텔이 아니니 잘 못알아 듣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30분여나 걸렸을까. 입국장 밖을 나가니, 히타카츠항 터미날 전체의 건물은 꽤 크고 현대식 건물이다. 단지 출국장과 입국장의 건물이 분리되어 있어서 초라해 보였던 것이다. 비록, 부산항간에만 운항하는 국제여객선의 터미날이지만 기본적인 것은 갖춰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히타카츠항에서는 국제선 항구기능 이외에 일본 국내선(후쿠오카의 하카타항간의 일반훼리)이 운항되고 있기 때문에 항구규모는 상당히 규모있게 되어있다. 터미날 밖의 주차장에는 여행객들을 태우고 갈 몇 대의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단독여행이기 때문에 그 버스와는 상관없어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컬러풀한 관광안내 표지판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여객선터미날도 다시 한번 찍어둔다.
특별히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어서 곧바로 지도를 따라 츠시마종단버스 터미날을 향하여 따스한 햇볕과 바다바람을 쏘이며 산보를 시작한다. 공중전화를 사용하기 위하여 전화카드판매소를 찾으니 안보인다. 주로 동전을 이용하는 모양이다. 하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거의 휴대전화나 국제로밍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니 이 작은 도시에 전화카드판매소나 자판기가 있을리 만무하다.
큰 도로를 따라 5분쯤 걸어서 내려가니 괜찮은 식당간판이 인상적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아침도 시원찮게 먹었던 터라 시원한 우동이나 먹을까싶어 들어가니, 식당은 매우 크고 쾌적하며 아늑한 감이 들어 맘에 속 들었다.
많은 단체손님들이 다다미식 방에 이미 넓게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점심메뉴는 한가지만 된단다. 우동셋트, 유뷰초밥이 셋쪽 딸린 얼큰우동이다.
주문을 하고 잠깐 있으니 정감이 가는 인상의 아주머니가 쟁반에 한 사람분씩 가져나와 상위에 올려놓는다. "하이, 도죠(はい、どうぞ!/자,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말이다. 국물이 일품이다.
그런데, 형님이 베낭속에서 이상한 큰 물병을 꺼낸다. 색깔을 보니 끓인 보리차물 같다. "왠, 보리차물이예요!" 하니까, 은근히 웃으며, "인삼주"란다. 애주가이다보니 아예 큰 병으로 담근술을 준비해 온 것이다. 마침, 좋았다 싶어서 물컵을 가져와 한 잔을 들이키니 향기가 제법 괜찮다. 색깔이 보리차물 색깔이니 보는 사람도 물이나 마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눈치보이는 것도 없고.... . (... 하하하...) 한참을 웃으며, 덕분에 점심을 아주 근사하게 잘했다.
실내장식이 이색적이어서 카메라에 담아본다. 음식점이름은 "히토츠바타고" 우리나라말로는 "이팝나무"다. 이팝나무는 츠시마 보호수종으로 카미츠시마쵸의 와니우라(鰐浦)라는 곳에 한국전망대가 있는 데, 그 지역 일대가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봄이면 꽃이 피어 그 절정을 이루며, 관관객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단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니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버스정류소를 물으니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식당옆에 공중전화가 있어 숙소예약을 위하여 동전으로 전화를 하니 전화기상태가 좋지않아 걸리지 않는다.
5분여를 걸어서 내려가니 버스정류소가 보인다. 오래된 건물의 유리창 안으로는 상당수의 손님들이 차시간을 기다리며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출발시간 10분여를 남겨두고 표를 사니 의외로 차비가 싸다. "왜 이렇게 싸죠?" 물으니 근래에 제도가 바뀌어 관광명소개념으로 "1일승차권"도 함께 취급하고 있단다. 원래대로라면 이즈하라까지 "3,330엔"이었는 데, 이 1일승차권은 "1,000엔"인 것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1인 2,000엔 이상이나 싸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횡재한 기분인가~~".
버스표를 사고, 마침 공중전화가 정류소내에 설치되어 있어, 예정한 숙소에 전화를 한다.
호텔도 많이 있지만, 이곳 츠시마는 민박집도 아주 많아 식사를 겸하여 하면은 분위기도 괜찮을 듯 하여, 미리 예정한 민박집에 전화를 한 것이다. 전화를 하여 물으니 오늘밤 민박이 가능하단다. 식사도 함께하려고 하니, 석식은 어렵단다. 이미, 오늘분 식사재료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예정된 메뉴대로 식사준비하기가 어렵단다. 조식은 가능하다기에 그렇게 하기로 한다. 예약을 해야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츠시마는 섬이기 때문에 보통 갓잡은 신선어류를 메뉴로 많이 활용한다. 그런데, 그 신선한 생선을 준비하자면, 아침 이른 시간에 새벽시장에 나가 지난밤에 잡아온 생선을 사야하기 때문이다. 보통 저녁식사비용이 숙박비에 1,500~2,000엔 정도가 추가되는 데, 츠시마 민박업소에서는 이렇게 그 비용에 맞게 신선한 생선류를 메뉴로 골라 식사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메뉴에는 보통 회와 찜, 어패류의 국물 등 아주 맛깔스럽게 대부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튼, 숙소예약은 마쳤고, 잠시 기다리니, 벌써 버스가 정류소에 와서 대기하고 있다.
[히타카츠항에 도착한 드림플라워호와 히타카츠국제여객선터미날의 모습]
[히타카츠항내에 정박중인 일본해상보안청의 순시선]
[히타카츠항과 여객선터미날앞의 풍정]
[히타카츠항 국제여객선터미날앞 츠시마시 카미츠시마쵸 관광안내표지판]
[점심식사로 우동셋트를 아주 맛있게 먹은 음식점인 히토츠바타고<이팝나무>의 외관과 내부의 모습/ 히토츠바타고는 츠시마의 보호수종이다]
[이팝나무 음식점에서 점심으로 먹은 우동셋트 / 음! 침넘어 가유~~~ㅎㅎㅎ]
[츠시마종단버스] 버스(츠시마교통)에 오르니 많은 손님은 아니라서 차내는 자리가 많이 비었다. 시간이 되어 출발하니 지난밤 피로가 몰려오며 잠이 스르르 온다. 초행이니, 버스속에서 여행다움을 느끼기 위하여 차창밖도 감상해야 하는 데, 이것 참 낭패다. 장장 2시간 40분을 타고가야 하는 데, 하는 수 없이 반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가는 수 밖에.
출발하자마자 버스는 오르막길을 내닫는다. 꼬불꼬불 오르다 내리다 하는 산길이다. 그야말로 곡예운전이다. 길이나 넓으면 좋겠지만, 큰 마을을 지나는 신설도로를 빼놓고는 거의 중앙선이 그어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위험한 도로 일색이다.
내심 걱정되는 것이 이런 곳에서 렌트카를 빌려서 어떻게 여행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다. 하지만, 어쩌랴. 교통편도 불편한 데, 그렇지 않고는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말이다.
비몽사몽간에, 버스가 달리는 츠시마의 도로상태를 보면서 의외로 도로사정이 않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터널도 많이 생겼지만, 섬 전체가 바위산 지형으로 되어있어 도로망 구축이 상당히 난해한 모양이다. 어떤 곳은 차량 두대가 비껴갈 수 없을 정도로 편도로만 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도 상당한 속도로 달리는 운전수 아저씨가 대견하기만 하다.
그 차를 타고 통학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나의 어릴적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일본 전통의 사각의 우체통 가방[일본에서 가방이 처음 사용된 것은 메이지<明治>시대<1868~1912> 이후로, 서기 1873년에 한 상인이 프랑스에서 구입한 가방을 흉내내어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 당시에는 "카쿠호<革包>"라 불렀는 데, 이후에 "가방<カバン>"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 이 가방 이전에는 "후로시키<風呂敷き>"라는 보자기를 사용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이 가방은 "란도셀<ランドセル>"이라 불리는 데, 이 어원은 네덜란드어로 가방이라는 뜻인 "란셀<Ransel>"에서 온 것으로 원래는 군인들이 사용하는 "천으로 된 베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일본의 공립초등학교였던 "가쿠슈인<学習院>"에서 통학용 가방으로 이 베낭을 사용하였는 데, 이 학교에 "타이쇼<大正;1912~1926> 일왕"이 입학하게 되자 "가죽"으로 주문해 만든 것이 이 "란도셀"가방이라고 한다]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등에 메고 총랑거리며 총총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시골스럽기 보다는 너무도 순수하고 낭만스럽기까지 하다. 베낭에 든 포도알사탕이라도 한 줌 내주고 싶었지만, 요즘에는 무작정 음식을 주다가는 오히려 실례가 되는 경우도 있기에 마음만의 인사를 그 아이들과 나눈다.
산림은 우거져 열대림을 방불케 한다. 삼나무 숲의 우거짐은 이루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의 리키다 소나무처럼 쭉쭉 높이 뻗어 그야말로 재목이다. 이상하게 산불도 거의 없는 모양이다. 그만큼 숲이 잘 보존되고 있음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숲이 이 정도니, 츠시마의 삼나무를 모두 베어서 팔면, 일본인구가 4년간 벌어들인 외화와 맞먹는다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비몽사몽 이런저런 생각속에 마침내 츠시마 남항이 있는 이즈하라시내에 접어든다.
형님은 그래도 졸지않고 츠시마종단 버스여행을 마음껏 한 듯 싶다. 사탕머금은 잎속에서는 단물이 침으로 흘러 옷깃을 얼룩지게 하였던 듯... . 옷메무새를 만지며 털털 털고 일어나는 나의 모습. 자못 초췌한 모습으로 비칠까봐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스려 본다.
[히타카츠 버스정류소의 창구 모습/사진 위의 도표는 츠시마시 버스노선의 구간별 운임표이다]
[히타카츠시내 상세도]
[히타카츠시내 츠시마종단버스정류소 가는길에 잠깐 카메라에 담아본 토요자키진쟈]
[이즈하라 시내] 거의 오후 4시가 다되어 도착한 곳은 이즈하라 우체국 앞이다. 보아하니 이즈하라 시내 중심부쯤 되는 모양이다.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운전기사님께 인사를 하면서 버스를 내리니 제법 바다바람이 살결을 맛사지 한다. 중심도로변 한 켠으로는 인도확장을 위하여 소형 포크레인이 작업중이다.
잠시 주위를 살피다가 우체국 맞은편 츠시마시 교류센타앞 광광안내표지판이 보여 접근하여 살펴보니 인근에 츠시마 민속자료관과 반쇼인 등 일몰전 2시간 정도에 돌아볼 수 있는 역사유적지가 눈에 들어온다. 우선 그곳을 출발점으로 삼기로 한다.
세세한 일정은 항상 현지 즉흥식이기 때문에 현지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그런데, 오늘 일정에 대한 계획을 일단 그렇게 세우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데, 잠시 어디좀 다녀온다고 가신 형님은 함흥차사다. 한 참을 기다리는 데도 오질 않는다. 시간이 벌써 20~30분은 지난 듯 한데도 말이다.
약간 초조한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서야 맞은 편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며 나오는 형님! 이제 여행의 시작인 데 걱정이 앞선다.
서점에 잠시 들렀단다. 찾는 도서가 있어 혹시나싶어 들러보니 없단다. 대도시의 서점이 아니고서는 아마도 찾기 힘든 도서일 듯 싶다.
일몰시간이 가까워지니 서두르자며 나서서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츠시마민속자료관이다. 입구의 좌측에는 소학교가 있고, 츠시마 시야쿠소(시청)가 있다.
[이즈하라시내 중심부의 상징적인 건물인 츠시마시 교류센터]
[반쇼인으로 가는 깨끗하고 잘 정비된 도로와 하수구]
[츠시마민속자료관] 민속자료관 정문 좌측으로는 "조선통신사의 비(朝鮮通信使之碑)가 서있고 조선통신사 행렬을 맞기 위해 세운 솟을 대문이 서있었다.
이 조선통신사의 비는, 일본 무로마치(室町; 1338~1578, 일본의 남북조시대 및 전국시대를 포함한다)시대에 처음 시작된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서기1428년 최초)이 그 이후로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출병을 명하면서 조일간의 국교가 단절되었다가,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사후(서기1598년) 토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가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명(서기1599년)하면서 조일간의 국교가 재개(서기1607년)되었는 데, 이 때 츠시마한(藩)의 노력이 컸으며, 그 이후 약 200년간(서기1607~1811년) 12회에 걸쳐 이루어진 조선통신사(일본 방문 조선의 공식 사절단)의 일본 방문을 통한 조일간의 활발했던 교류와 우호적인 관계를 21세기 한*일간 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세운 것이라 한다.
또, 그 옆의 고려문(솟을 대문)은, 옛 이즈하라 성문으로 에도(江戸; 서기1600~1868년)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맞이하기 위하여 만들어 "고려문"이라 칭하였는 데, 태풍으로 인하여 훼손되었다가, 다시 복원(서기1989년)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란다.
비문이나 현판을 자세히 읽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이미 예습한 것을 상기하면서 기념촬영만 하고는 다음으로 이동한다. 이제 곧 마감시간이기에 츠시마민속자료관(서기1978년 12월 개관)을 보기 위하여 서둘러 들어간다.
안내자의 친절한 안내로 내부에 들어서니 섬내의 각종 문화재와 고고 역사자료, 민속자료, 츠시마 번주인 소(宗)씨 일가의 문고 등 귀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촬영이 가능하여 메모리는 충분하기에 가능한 많이 담아본다. 고려판 대장경과 대반야경, 홍문자회 등 한반도와의 교류흔적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공간은 비록 넓지 않았지만, 내용만은 무엇인가를 깨닫기에 충분했다.
마감시간이 지날쯤에야 자료관을 나오면서 입구에 전시된 각종 인쇄물을 챙겨보며, 짐이 되지않은 츠시마역사연표 한 장을 구입하였다.
해는 이미 졌는 듯,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자료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서 곧바로 덕혜옹주비가 있는 옛 카네이시성(金石城) 정원으로 이동한다.
[츠시마 민속자료관의 모습]
[츠시마 민속자료관 정문입구에 세워진 조선국통신사의 비의 모습]
[츠시마 민속자료관 정문입구 우측에 보존되고 있는 고려문]
[덕혜옹주*소 타케유키 결혼봉축 기념비] 덕혜옹주비가 있는 옛 카네이시성터를 가고자 방향을 잡으니 아리아케(有明;558.2m)산을 향하여 곧게 뻗은 도로와 가로수, 그리고 하수구가 매우 이색적으로 보인다. 바로 옆에 츠시마 시청이 있어서인지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보는 이의 기분을 해맑게 해주었다. 막다른 곳에는 츠시마도주인 소씨 일가의 묘소 등이 있는 반쇼인(万松院)이라는 사찰이 보인다. 그 길을 조금 따라 올라가 보니 우측으로 옛 카네이시성의 성문누각이 오똑하게 서있다.
입구의 상징물과 고목 등을 촬영하고 누각에 올라가 주위를 살펴보니 정원이 한 눈에 올려다 보이며, 산 기슭의 체육관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축구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덕혜옹주비가 정원의 수목들과 함께 서있는 것도 보인다.
성문누각을 내려와 덕혜옹주비를 향하여 올라가려니 공원의 하수구 덮게구조물이 아주 인상적이다. 도시미관을 위하여 이렇게 섬세하게 배려하여 구조물을 제조토록 하고 또 공사토록 한 관계기관의 아이디어는 본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우측으로 보이는 B&G재단 이즈하라해양센터앞 표어와 게시판의 내용이 아주 맘에 들어 속독으로 읽어보며 카메라에 담는다.
그 내용은 아래 사진과 같은 데, 그 내용은 "물을 마음으로 삼으라"는 교훈적인 글로 다음과 같이 번역해 본다.
*** 표어는 "세계일가 인류형제(世界一家 人類兄弟 ; 세계는 한 가족이고, 세계인류는 한 형제이다)"라 하여 평화를 상징하는 글로 해석된다.
*** 게시판의 글은 "미즈록쿤(水六訓 ; 물의 6가지 교훈)"이라 하여 "물(水)을 마음으로 삼으라"는 뜻이겠다.
-. 모든 생물에 생명력을 부여해 주는 것이 물이다.
-. 항상 스스로의 진로를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 물이다.
-. 어떠한 장해도 극복하는 용맹심과 방형과 원형 등 어떤 형의 그릇에도 잘 따르는 화합성을 겸비한 것이 물이다.
-. 스스로가 맑고 다른 더러움을 씻어주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서로 융합할 수 있는 도량을 가진 것이 물이다.
-. 동력도 되고 빛도 되어 생산과 생활에 무한한 봉사를 행하고도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는 것이 물이다.
-. 온 바다를 채우고, 증발하여서는 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눈으로 변하고, 안개가 되어도, 그 성질이 변하지 않는 것이 물이다.
물을 마음으로 삼는 것이 평화와 건강과 장수의 묘약입이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정치가, 사회사업가였던 사사카와료이치(笹川良一;1899~1995)씨의 글이다. 물의 성질을 글로 아주 잘 표현하여 우리들의 교훈으로 삼기에 매우 좋은 내용인 것 같다.
잠시 감상과 촬영의 시간을 갖고서 공원로를 따라서 위쪽으로 걸어가니 잔디정원과 덕혜옹주의 결혼봉축비가 서있다.
[카네이시 성터안에 있는 B&G 이즈하라해양센터 건물과 건물 앞의 게시판의 모습이다 ]
덕혜옹주와 츠시마도주였던 소 타케유키(宗武志)의 결혼봉축기념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건립되었는 데, 훼손되었다가 2001년 11월 10일에 츠시마에 거주하는 한인들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다. 요즘에 광고에 많이 나오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소설관련 이야기가 마침 머리에 되내어진다.
비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옮겨 적어본다.
*** 사진의 비문내용 : 조선국 제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德惠翁主)는 1931년 5월 소 타케유키(宗武志)공과 결혼하여 동년 11월에는 츠시마를 방문했다. 옛 츠시마도주(對馬島主)인 소케(宗家)당주가 조선의 왕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내도(來島)하였으므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비는 두 분의 성혼을 축하하여 츠시마거주 한국인들이 건립했다. 한편 키요미즈(淸水)산성에는 츠시마 도민들이 경축하여 세우고 심었던 기념비와 철쭉이 잘 남아 있다. 결혼생활은 많은 고난이 있었으나, 딸 정혜(正惠)를 낳아 서로 신뢰와 애정이 깊었다. 그러나 양국의 관계는 갈등이 심하여 두 분은 1955년에 이혼하였으며, 타케유키공은 1985년에, 덕혜옹주는 1961년에 귀국후 1989년에 별세하였다. 이제 역사에 묻혀있던 이 기념비를 재건하여 두 분의 힘들었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양국민의 진정한 화해와 영원한 평화를 희망한다.
[덕혜옹주결혼봉축비가 있는 카네이시성 정원입구 성문누각의 모습]
[인상적으로 본 카네이시성 공원내의 하수구덮게 구조물과 그것에 주조된 츠바키(동백꽃) 꽃문양]
[공원의 정서와 아주 잘어울리도록 작업해 놓은 하수구덮개 구조물]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문]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와 카네이시정원 가는길]
[일본 바쿠후<幕府>가 조선통신사를 맞이한 장소]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를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본 뒤, 잔디정원을 거슬러 오르니 카네이시성 정원이 울타리로 둘러쌓인채로 보인다. 이제 시간이 지나 폐문이 되어 들어갈 수 없지만 울타리를 돌아보며 안쪽을 보니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일본의 수많은 훌륭한 정원들이 제각기 특징이 있지만 이 정원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안으로 움푹 들어가 있는 형상으로 큰 저택의 사설정원정도로 보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안쪽에 들어가서 사진촬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보는 것에 만족했다.
울타리 뒷쪽 산 기슭을 돌아서 나가니 구름다리와 옛 카네이시성터 일부가 남아있어 보존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해는 져서 산그림자가 어둠을 드리우기 시작하니 이제 서서히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반쇼인(万松院)까지 둘러볼까 했는 데, 어둔 그늘 속에 묘비들이 잔뜩 세워진 산속을 들어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은 기분이어서 입구의 구조물과 묘소로 올라가는 계단을 배경으로 사진촬영만 하고서는 이키섬 기행을 마치고 다시 보기로 하고 이즈하라 시내를 향한다.
[이즈하라항 국제여객선 터미날] 저녁식사 하기에는 다소 이른 듯 하여 시내를 둘러보며 이즈하라항의 국제여객선 터미날을 가본다. 내일 이키섬을 가기 위하여 사전에 한 번 둘러보는 것이다.
이즈하라대교가 있고 터미날 입구에는 오늘 우리가 묵기로 한 민박집 광고판이 산쪽 도로변에 큼직하게 서있다. 이즈하라 국제여객선 터미날은 히타카츠항 터미날과는 다른, 규모있는 모습으로 다른 건물들과 함께 조화롭게 서있다.
안쪽에 들어가니 1층은 국내선, 2층은 국제선, 각각 창구가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안온한 느낌의 대기실 소파가 맘에 든다. 잠시 앉아 자판기의 캔커피를 따끈하게 마시며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피곤이 조금 가셨을까, 터미날을 나서서 이제 저녁식사를 위한 적당한 음식점을 찾는다. 우선은 깔끔하고 괜찮을 듯한 음식점으로 미리 봐둔 곳이 있어 그 곳으로 향한다.
[이즈하라 국제여객선터미날 맞은 편의 "페코챤 민박집"숙소광고 / "향토요리를 만족할 수 있는 가정적인 숙소!! 민박집 페코챤"이란 광고가 이색적이다.]
[이즈하라 시내 식당가의 음식점] 이른 아침 부산항을 출발하여 츠시마 북항 히타카츠항에 도착해서 점심을 우동셋트로 먹고 버스로 약 2시간 40분여에 걸쳐 이곳 이즈하라까지 와서 인근의 역사문화 유적지를 돌아보고 이즈하라항에 들렀다가 이 곳에 오니 어제의 피로와 오늘의 피로가 겹치니, 괜한 넉두리다. "여행은 곧 중노동이다"며 엉뚱하고 행복한 비명같은 것.
피곤하고 허기짐 속에서 아늑한 음식점에 들르니 오히려 침대같은 느낌에 금방 잠이라도 청해야 할 듯한 기분이다.
음식점은 깨끗하고 아늑했다. 먼저, 음식부터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왠 인상적인 아줌마가 말을 걸어온다. 식당주인 아줌마와는 절친한 사이인 모양이다.
부산에 아는 사람이 있어 통화를 해야 하는 데, 양쪽 모두 서로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 전화좀 해달란다. 내일이 한국의 설날명절인 데, 안부인사좀 하고싶다는 뜻이다. 어려울 것은 없어 그 전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전해주니 고맙다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대화의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으니 한결 부드럽다. 일본청주를 따뜻한 것으로 한 잔씩 곁들이니 별미다.
여행중의 식비는 6~7백엔으로 잡았는 데, 매 식사 때마다 적자다. 더군다나 애주가 형님이 함께 하니 무어라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진다. 다행히 가져온 술이 있어 한 잔씩 곁들이니 그 기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기분이기에 호탕한 웃음속에 즐거운 정찬의 시간이다. 음식은 가리지 않으니 뭐든 맛있게 먹는다.
적은 양의 식재로도 보다 맛있게 요리의 진미를 보여주는 일본 요리사들에 다시 한 번 감동한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 예약된 숙소로 가야 할 시간, 숙소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데, 공중전화를 찾으니 식당주인아주머니께서 연락을 해준단다. 자기네도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데, 다음에 오면은 꼭 들르라면서 말이다.
고맙다고 하면서 기다리니, 금방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께서 도착하여 인사를 한다.
"고치소사마데시타(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고 숙소주인아주머니의 승용차에 오르니, 반갑다면서, 우선은 훼리터미날 근처의 츠시마어민들의 "오징어잡이 어선" 야경을 보여준다며 그 곳으로 간다. 경사진 도로를 타고 잠깐 올라가니 멀리 난바다에서 열심히 오징어잡이를 하는 어선들의 불빛(이사리비<漁火>)이 불야성을 이룬 듯 보인다.
잠시 감상을 하고서 되돌아 나와서는 이즈하라대교를 건너 이즈하라시내를 빠져나와 쿠타(久田)라는 인근 마을로 향한다. 5분여 거리에 있는 항구마을로 제법 큰 마을이다.
[식도락 츠시마 음식점 / "화롯불구이, 닭고기구이 등이 일품요리임 / 매일매일 이제 갓잡은 계절생선을 준비해 놓습니다"의 내용이 담긴 음식점 간판 ]
[저녁정찬이 너무 푸짐하다는 생각이~ 하~하~하 . 하여튼, 건배!!! / 아주머니의 사진찍는 솜씨가 좀 서툰것일까? 아니면 건배잔에 도취된 것일까?ㅎㅎㅎ ...]
[요리사님의 멋진 음식솜씨는 일품!!! 그야말로 일품요리다... 으~음]
[페코챤 민박집] 페코챤 민박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30분 쯤 되었을까. 2층의 다다미방을 안내받고 둘러보니 깨끗하고 맘에 들었다. 우선 샤워실과 화장실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었는 데, 그 위치를 안내받고 씻기 전에 거실에서 잠깐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생오징어구이를 금방 해서 같이 먹으며 인사겸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형님은 때가 때인지라 가져온 술을 내오면서 한 잔 권한다. 잘 시간이니 부담없이 마신다. 사전예약을 하지 않아 저녁식사 준비를 할 수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며 히타카츠 버스터미날에서 공중전화로 예약하며 나누었던 얘기를 거듭 해명해 준다.
사실은 이렇게 민박집에서 먹는 저녁식사가 훨씬 운치있고 부담없는 일인데,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최소한 츠시마에서만은 그렇다는 뜻이다. 갓잡은 생선의 회와 조림음식 등의 성의있는 요리를 부담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30분여를 대화를 나누다가 이제 씻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수면에 들어야 하기에 방으로 돌아온다.
각자에게 준비해 준 유카타(숙소의 실내복, 목욕가운)로 갈아입고서 공동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니 온 몸의 피로가 싹 풀린다. 형님과 교대로 씻고 나서는 방에 돌아와 오늘의 일정을 메모지에 정리해 보고서 TV를 켜니, 평소에 즐겨보는 NHK위성방송의 일본 역사다큐멘터리인 "역사비화(歷史秘話)"가 방영되고 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오늘을 마무리한다.
"형님! 오야스미나사이(안녕히 주무세요!) " 하면서 달콤한 꿈속으로 내닫는다.
[페코챤 민박집의 모습]
!. 2011년 2월 3일 목요일 맑음
[페코챤 민박집] 포근한 요와 이불 그리고 따스한 난방으로 지난밤을 아주 잘 보내었기에 이른 아침의 기분은 매우 상쾌하였다. 5시 30분경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나니 한층 더 상쾌한 기분이다. 형님은 지난밤의 음주로 피곤하실 듯 하여 깨우지 않은채 동네어귀를 한 번 돌아볼까 하여 밖을 나온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기에 거리엔 희미한 어둠이 깔려있고, 새벽공기 또한 다소 차갑다. 숙소 맞은 편의 마트에 혹시 오픈을 했을까 하여 들려보니 오전 9시에 오픈이다. 마을 복판에 큰 정자가 한 그루가 서있는 것이 보이기에 골목을 따라 들어가 보니 허름한 작은 토리이(鳥居;일본 진쟈입구에 세워진 기둥문으로 신이 드나드는 문의 상징물)와 진쟈가 있다. 우리나라도 시골 어느 마을이나 커다란 정자나무 한 그루씩은 다 있듯이 이 마을도 같은 맥락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골목골목 신기하듯 돌아 보니 꽤 전통있는 가옥 한채가 눈에 뜨인다. 마당의 정원이 아주 잘 가꾸어져 있었다. 물론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상당히 넓고 정원수와 바위 등 아주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카메라에 담아본다.
또한 대부분의 집 울타리가 큼직한 돌담으로 쌓여 있어 처음에는 바닷가라서 바람막이를 위하여 그랬겠지 하였는 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화재예방을 위하여 돌담을 그렇게 높게 쌓은 것이었다. 전쟁이 잦았던 때에 화재가 한 번 발생하면 마을 전체가 화마에 휩싸이기 일쑤였기에 그의 예방을 위한 것이었단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서 숙소에 들어가니 형님은 아직도 한 밤중이다. "이제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하니 금방 일어나신다.
7시가 지날쯤에 1층 거실에 내려가니 벌써 식사준비가 되어 있다. 먹음직스런 생선구이가 주메뉴다.
한국은 오늘이 음력 정월 초하루날 설날이라고 하니, 일본의 오쇼가츠(우리의 설날)음식으로 먹는 전통음식인 오조니(お雑煮;떡국)에 관한 얘기를 한다. 한국에서도 물론 떡국을 먹는다고 한다면서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니, 주인아주머니 맛있는 오뎅요리를 해서 또 차려주신다. 맛을 보니 진국이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오리지날 맛이다. 형님은 역시 애호음료가 빠질 수 없어 반주를 곁들이니 나도 장단을 맞출 수 밖에.
대화도중 TV를 보니 스모에 관한 뉴스가 나온다. 요즘 일본 스모계가 한참 술렁이고 있는 데, 다름 아닌 바로 그 내용이다. "야오쵸(八百長;짬짜미란 뜻으로 스모경기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행위를 말한다)"라는 행위가 도마에 올라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다. 주인아주머니로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들으며 이해하니 쉽게 납득이 가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입장에서 서로 먹고살자는 행위"인 것이다.
일본 스모계에서는 대회가 열리면 짜여진 대진표(토리쿠미)에 따라 경기를 진행하는 데, 각 베야(部屋;스모선수가 소속된 단체를 일컫는 말)마다 출전한 선수가 일정이상의 승률을 가져야만 월급을 받는 데, 1승이나 2승 정도가 부족하여 급여를 못받게 되거나 선수생활을 그만 두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단다. 이 때에 대진표에 짜여진 상대가 이미 본인 입장에서는 급여받을 만한 승률은 이미 확보하였고, 그 상태에서 1승을 더 얻는다고 해봐야 특별히 체급이 승급되는 것도 아닌 그런 입장에 있는 상대선수에게 얼마 정도의 댓가를 주기로 하면서 고의로 져줄 것을 사전에 권고는 등 서로 짜고하는 행위를 말한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휴대폰이 있어 문자메시지 등으로 쉽게 주고 받을 수가 있는 데, 지나간 경기중에서 일부 그런 점이 엿보여 일본 경시청에 수사의뢰를 요하는 신고가 있어, 수사한 결과 몇 명의 전화메시지에서 그런 점이 발견되었고, 또 당사자들도 시인한 것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 얘기의 화두로 오늘 아침식사시간이 어느새인지 금방 지나가고, 시간을 보니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여행일정을 시작할 시간이다. 오뎅요리 특별서비스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자리를 일어나며 사정이 허락하면 내일 다시 들를 수 있다고 하니, 꼭 오란다. 맛있는 저녁요리가 기다려질거라면서~~~.
방으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해온 간단한 우리나라 전통의 고급젓가락셋트중 두 모를 꺼내어 드리면서 감사의 뜻을 다시 전하니 고맙다며 꼭 다시 오라신다. 숙박비를 계산하고 나니, 약속대로 주인아주머니께서 이즈하라항의 여객선터미날까지 승용차로 태워다 주신다. 미망인으로 아들과 함께 살고 계신다는 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우리는 이키섬에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배표를 산다.
[민박집에서의 아침식사의 모습]
[민박집 마을의 어느 집 앞뜰의 정원의 모습]
[이 마을앞 선착장에는 옛 츠시마도주의 전용선착장 유적이 보존되고 있는 데, 그 의미로 사진의 건물벽에 "오후나에노 사토(お船江の里)"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방화벽으로 쌓여진 이 마을 돌담의 모습]
[숙소 맞은편의 "마루와" 마트/마루와는 마루(○) 속의 글자 와(和)자, 즉 마트상표를 풀어쓴것]
]
~~~~~ 다음 이야기는 츠시마*이키섬 역사*문화기행<중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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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저는 놀라고 있습니다. 첫째, 피크닉님의 여행기 작성 스타일이 지난번 무녕왕릉 전승지편과 유사하네요. 완전 다큐멘타리입니다.
둘째, 일반 여행자들이 잘 하지 않는 역사/문화 테마 여행을 하셨군요. 따라서 연구회내에서도 소장가치가 높은 글로 보입니다.
세째, 쓰시마까지 가는 해운편으로 가오리같이 생긴 배편이라는 것이 신기합니다.
후지노미야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일 뿐이기에 그저 추억으로 남깁니다~~~
대마도를 간다 간다 한게 벌써 5년은 지났나보네요....올해 꼭 한번 가봐야 하는데.....
대마도 다녀오는 길은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교통편이 좀 불편해서요. 10여명 이상의 단체나 패키지가 아니면, 렌트카 등 충분한 여행계획을 세우셔야 이곳저곳 충분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보기 드문 역사기행기 형식의 여행기에다가 츠시마라는 여행지로서는 생소한 장소까지 다녀오셨네요. 여행기 잘 봤습니다 ^^
간접체험이나마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