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4.
본문 : 마태복음 6장 9~ 13절
제목 : 왜 용서해야 하는가?
현대교회의 분열은 각자의 생각과 주장, 욕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다름은 화해와 용서가 어려운 시대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모든 사람의 문제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데니스 린 등 여러 사람이 쓴 책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말라: 용서, 두 손으로 하는 치유>는 두 손으로 용서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손은 감싸 안고, 한 손은 놓아 주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할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며, 하나님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시므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죄사함이 있어야만 천국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율법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법은 이상의 보복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자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당시 왼손은 불결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람을 대할 때는 오른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른손으로 오른뺨을 때릴 때는 손등으로 때림을 말합니다. 누구든 손등으로 때린다는 것은 수치와 모멸감을 함께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동등함을 회복하는 방법이며,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관습으로 옷을 벗은 자보다 그 모습을 보는 자의 명예가 실추되며 굴욕을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속옷을 뺏어가는 악한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주므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똑같은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명예를 회복시킬 때 가능합니다. 십자가의 용서 앞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용서를 가슴 깊이 새겨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