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워싱턴 디시의 한국전 메모리얼(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파크에 설치된 참전 미군 베테랑 조형물들. ⓒ KWV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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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은 한국민들에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미명에 일어나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에서 남북한 합하여 222만 명(남북 민간인 160만 명, 남북군인 62만 명, 2017년 6월 10일 CNN 통계)이 전화(戰火)로 죽었다. 그리고 당초 대리전 성격의 내전으로 시작한 한국전은 외세가 직접 개입하여 국제전으로 확대된 가운데 승자와 패자도 없이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막을 내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한국전 참전 주요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는 연일 '말 폭탄'을 쏟아내고 있고, 남북한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한민족에게 '원죄'와도 같은 분단. 그 분단을 극복하고자 북측이 무리하게 감행한 한국전은 우리 민족에게 씻으려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한국전은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천형(天刑)과도 같은 증오와 반목과 질시의 고질병을 남겼고,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성가신 전쟁'에서 '용사(warrior)'가 된 사람들
▲ ▲ 지난 6월 25일 올랜도 에지워터 베테랑스 클럽에서 열린 한국전 67주년 기념행사에서 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한국전 참전 미군 베테랑 기수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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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25일 올랜도 에지워터 베테랑스 클럽에서 열린 한국전 67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전에서 부상당한 미군 베테랑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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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은 한국민들에게만 고통을 안겨 준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대의명분으로 연합군으로 참전한 16개국 참전 군인들에게도 깊은 상흔을 안겨주었다. 특히 한국전에서 5만4000여 명의 사망자(비전투요원 1만7700여 명 포함)와 수많은 부상자를 낸 미국민들에게 안겨준 상처도 매우 컸다.
한국전에 징집되었다가 비행기 사고로 귀환한 유명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증언은 당시 미군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나는 한국전쟁 중에 징집되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2차대전이 끝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는 시기였다. '생각 좀 해보자고. 방금 그것(전쟁)을 치르지 않았나?'라고들 말했다." (I was drafted during the Korean War. None of us wanted to go... It was only a couple of years after World War II had ended. We said, 'Wait a second? Didn't we just get through with that?)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트로츠키의 명언처럼 관심 없는 전쟁에 국가는 '당신'을 다시 원했다. 이미 용사가 된 그들은 한국전에서 다시 '용사(warrior)'가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용사'란 국가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일 수 있다.
기자는 이 글을 쓰면서 이 '용사'들을 '한국전 베테랑(Korean War Veteran)'이라 칭하고자 한다. '베테랑'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어느 한 분야에 오래 일을 하여 익숙하고 노련한 사람. 특히 군대에 오래 복무한 퇴역병, 노병'을 통칭하는 말이다. '베테랑'은 자발적이고 호전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용사'보다는 훨씬 정직한 표현이기도 하고, 미국민들도 좋아하는 일상 용어로 정착된 지 오래다.
한국전 베테랑들은 매년 6월 25일과 7월 27일이 되면 한 곳에 모여 어설픈 발음으로 '아리랑'을 부르고 '김치'와 '잡채'와 '불고기'를 먹고, '오산'과 '군산' '춘천' '의정부' 등을 거론하며 회상에 젖기도 한다. 한인 동포들은 이들을 '참전 영웅'으로 불러주며 감사를 표하지만, 갈수록 쓸쓸하고 씁쓸한 느낌까지 드는 것은 기자만의 감정일까?
미국은 한국전에서 무려 180억 달러의 전비를 투입하면서 572만 명의 군대를 파견했고, 5만4천여 명의 전사자 외에 10만 3천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행방불명이 되어 시신조차 찾지 못한 군인들도 7700여 명에 이른다. 단일 전쟁으로 단기간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으로 알려진 한국전이 잊힌다는 것은 베테랑들에게 매우 억울한 일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려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보통명사가 되었고, 잊혀진 것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된 이유
▲ ▲ 한국전에서 한 미군 병사가 두려움떨고 있는 소년병을 팔로 감싸안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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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일부에서는 미국의 대외 군사정책과 관련하여 결코 '잊힐 수 없는 전쟁'으로 여긴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는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라는 저작으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다.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군사주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것은 한국전이었다고 주장한다. '군사주의'란 국제적인 이슈를 군사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한국전을 계기로 미국은 항구적인 군사주의 국가가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2010년에 출간한 출간한 <한국전쟁>(The Korean War: A History)에서 미국의 방대한 해외 군사기지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패권주의의 원천이 된 결정적 계기는 2차 대전이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전쟁이 미국의 군사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산복합체를 정착시킬 정도로 '공헌'을 했다는 커밍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치와 군사 경제적 역학관계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 리 없었던 미국민들에게 한국전은 여전히 '잊혀진 전쟁'이 되어 왔다.
그렇다면, 한국전이 미국 사회에서 '잊혀진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흔히 한국전은 베트남전 또는 2차대전과 비교하여 그 이유가 언급되곤 한다. 한국전 참전 미군 베테랑스협회(KWVA) 사이트와 현지 베테랑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한국전의 성격을 논한 문헌들을 종합해보면 여러 요인들이 연동되어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우선, 한국전 당시에는 라디오와 신문이 정보 제공의 주요 통로가 될 정도로 대중 미디어의 발달이 미진하여 베트남전에 비해 언론의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베트남전이 장기화하면서 반전 평화운동으로 확산하고 미디어의 지속적인 보도가 연동되면서 베트남전 기억을 오래 남도록 했다.
3년 1개월로 멈춘 한국전이 19년 6개월 지속한 베트남전에 비해 기간이 훨씬 짧았던 것도 잊혀진 전쟁이 되기 쉬웠다. 한국전쟁은 미국민들에게 두 번의 대전쟁과 긴 전쟁에 끼인 '막간 전쟁'이었다.
더구나 '정전'이라는 상태로 전쟁이 끝난 것도 한국전을 쉽게 잊게 한 요인이 되었다. 2차대전처럼 승리를 했다거나, 반대로 베트남전처럼 패배했을 경우 미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이에 대한 정치 사회적 성찰이나 논의도 그만큼 길게 이어졌다. 미국이 종전 후 '같은 시기에 큰 전쟁은 한 건만 치른다'는 군사정책으로 전환한 것만 보아도 베트남전 패배에 대한 충격은 크고 오래 갔다.
베트남전은 긴 전쟁 기간에 비해 6만여 명의 미군이 전사하는 것으로 그쳤으나, 네이팜탄 피해자들과 PTSD(전후 외상성스트레스증후군) 등의 부상자들이 많았던데다 그 후유증이 장기간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차대전의 미군 전사자 40만 명에 비해서도 한국전 전사자 수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국전이 두 전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유증'이 적었던 점에서 미국민들의 기억장치에서 쉽게 사라지게 한 요인이 된 것이다.
미국민들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가 애초부터 높지 않았다는 점도 한국전을 쉽게 잊게 한 것으로 보인다. 뭔가 조금은 안다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기껏해야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고, 오랫동안 중국의 주변국가 또는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강대국 덕분에 겨우 독립한 약소국이어서, 한반도에서 벌어진 어떤 역사적 사건을 진하고 강렬하게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한국전 당시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도 미국민들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핵전쟁을 치를지도 모를 북한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미국인들이 대다수일 정도다. (최근 ABC 인기 프로그램 사회자가 길거리에서 만난 10여 명의 미국 시민들에게 세계 지도를 보여주며 '북한이 어디에 있는지를 짚어보라'는 질문에 단 한 사람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국 미디어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 지난 8월 8일 방영된 '지미 킴멜 라이브쇼(Jimmy Kimmel Live Show)'에서 북한이 어디에 있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단 한 사람도 북한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내지 못했다. 이들 가운데는 중동, 유럽, 캐나다, 심지어는 북극이나 남미 아랫쪽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 ABC.com
"노병은 사라질 뿐 죽지 않는다"?
미국민들에게 한국전은 이래저래 기억할 거리가 별로 많지도 크지도 않은 '스쳐 간 전쟁'이었고, 이제는 잊혀진 전쟁이 되고 말았다. 잊혀진 것은 '역사적 사실'로서의 전쟁뿐 아니라, 20세 전후에 머나먼 땅에 지친 몸으로 들어와 몸을 던진 '용사'들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가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이런 경우, 존재가 잊혀진다는 것은 '가치'까지도 잊혀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전을 총지휘하다 트루먼 대통령과 마찰을 빚어 해임당한 더글러스 맥아더가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외형은 없어지지만 존재 가치는 영원히 남게 된다'는 뜻일 터이지만, 한국전 노병들은 사라질 뿐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전 베테랑들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최소한 가장 지치고 힘든 시기에 '국가에 충성했다'는 것과, '자유 진영을 위해 싸웠다'는 결과론적 대의명분이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노구를 이끌고 휠체어를 밀고 매년 한국전 행사에 참가하여 애써 김치와 불고기를 먹는 것조차 존재 가치의 확인을 위한 몸짓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