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세계 반도체업계가 술렁거렸다.
삼성전자가 4기가D램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의 개발로 삼성전자는 미국의 마이크론, 독일의 인피니언 등 경쟁업체와의 기술격차를 1년 안팎에서 2년으로 벌렸다는 평가를 받게됐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 확보'라는 삼성전자에 대한 평가의 중심에 이윤우(55ㆍ사진) 반도체총괄 대표이사 사장이 있다. 가장 작은 것을 무기로 단일 부품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을 조율하는 이 사장을 기흥공장에서 만났다.
이 사장은 반도체 D램 가격의 폭락에 대해 "상반기까지는 하향 안정세를 보이다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며 "가격 하락이 지속돼도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다 반도체 박사만 300명이 넘는 고급인력, 우수한 마케팅 능력이 있다"며 위기돌파를 자신했다. 특히 이 사장은 "올 하반기부터 월 5,000개 정도의 256메가 D램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경기를 전망하신다면.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반도체 경기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99년에도 2000년 전망을 비관적으로 봤으나 반도체 가격이 50%나 올랐습니다. 올 상반기까지는 악화되다가 PC업체의 재고정리가 끝나고, '펜티엄4'PC의 판매가 시작되면 하반기부터는 회복될 것으로 봅니다.
-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대책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계 최고의 원가경쟁력은 갖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빴던 지난 96ㆍ97년에 모두 적자를 기록했지만 삼성만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또 제품 포트폴리오 비중을 현재의 64메가 D램 20%, 128메가 D램 40%에서 고부가가치 위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쟁력의 요체는 인력입니다. 삼성전자는 박사학위를 받은 반도체 부문 직원만 300명에 달합니다.
또 생산라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마케팅ㆍ영업력에서도 경쟁업체들을 압도하고 있어요.
이 사장은 계속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도 지난 98년처럼 업계가 공동으로 감산에 들어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최대한 원가경쟁력을 높여 버틸 수 밖에 없다는 것.
이는 다른 말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감산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 삼성으로서는 경쟁사가 어려우니 즐거워 하지 않느냐는 소리가 있는데.
▲(웃음)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어려울 때 공격적인 투자를 하면 삼성이 후발업체와 간격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겠지요.
- 올해 반도체 분야의 투자 등 경영계획을 밝혀주시죠.
▲7조7,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지만 투자시기를 유연하게 조정할 계획입니다.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137억불)보다 15% 정도 늘어난 158억 달러로 다소 보수적으로 잡았어요. 올해 계획 가운데 하반기부터 제11라인에 300mm 차세대 웨이퍼 라인을 시범적으로 구축해 월 5,000개의 256메가 D램을 생산할 계획입니다. 2002년 하반기에는 경기 화성의 300mm 웨이퍼 라인을 본격 가동하게 됩니다.
-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투자계획은 어떻습니다.
▲응용 측면과 제품 개발 두 가지로 나눠 투자할 것입니다.먼저 현재 27%를 차지하고 있는 PC비중을 낮추고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2'나 네트워크 장비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응용처를 넓혀나갈 것입니다.
또 삼성을 비롯해 일본의 도시바, NEC만 생산하고 있는 램버스 D램 생산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최근 미국 인텔이 이 제품을 장착한 CPU를 2,200만개 생산하기로 했는데 가격이 개당 20달러로 일반 D램의 3배나 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입니다. 기대가 큽니다.
- 비메모리 사업 부문을 강화하는 계획도 갖고 계실텐데요.
▲올해는 비메모리 분야에서 지난해(18억 달러)보다 40% 늘어난 2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계획입니다. 또 시스템 칩처럼 최첨단 제품을 필요로 하는 시장의 요구에 맞춰 온양에 있는 비메모리 공장을 올해말에 완공, 내년 초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갑니다.
-일본업체들이 전략적 제휴를 가속화하고 있고, 중국도 반도체 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은 정부 주도로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따라붙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스카 컨소시엄'참석 등 일본과 기술교류를 강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중국도 중요한 시장입니다. 중국은 0.25㎛(미크론ㆍ1㎛은 100만의 1m)이하 회로기술은 아직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WTO에 가입하면 한국과 활발한 기술 교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반도체는 '예민한' 사업이다. 삼성의 4기가 메모리반도체는 0.10㎛ 회로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사람 머리카락의 1,000의 1에 해당하는 굵기이다. 6척장신(1백80㎝)의 그가 어쩌다 이 같은 '미세세계'에 매료됐을까.
그는 대학을 다닐 때 미국 주간지 '타임'에서 집적회로(IC)가 처음으로 개발됐다는 기사를 보고 미래 기술혁신의 리더는 반도체라고 직감했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던 이사장은 개인 인터넷 홈페이지(www.leeyoonwoo.pe.kr)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그는 세계 반도체 동향과 기술, 관련 논문은 물론 개인적인 고뇌와 감상까지 털어놓고 있다.
-아직 우리의 경쟁상대는 아니지만 타이완의 반도체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하던데.
▲우리 정부도 장비 국산화 등 후방산업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또 반도체의 다변화를 위해 비메모리 전문회사를 많이 만들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한국은 2개 뿐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대만은 수백 개에 이릅니다.
- 제2의 경제위기를 두고 '반도체 착시' 때문이란 얘기가 있는데요.
▲해외에도 '더치 디지즈(Dutch Diseaseㆍ네덜란드 병이란 뜻)'란 말이 있어요.
한 회사의 호황이 잘못하면 전반적인 경제 현상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현재의 침체는 정책적 잘못이 더 크다고 봐요. 삼성전자 같은 초우량 기업을 10개만 더 만들었다면 우리 경제는 달라졌을 겁니다.
- 삼성전자의 주가가 최고를 기록할 때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는데요.
▲지난해 말 IR팀을 만들었고, 올해는 주가관리를 더 강화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는 목표 주가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에서는 한번 말을 했다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소송감입니다.
-평소 궁금했던게 하나 있어요. 세계적 기업인들의 삼성전자의 위상은 어느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주 낮았어요. 당시 부회장을 맡던 강진구 전 회장께서 IBM의 부장급 직원을 만나려고 해도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지금은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스콧 맥닐리 회장과 상담할 수 있을 정도로 대등한 위치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 반도체의 품질과 가격경쟁력 때문이지요.
이 사장은 "근로자 안전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반도체 공장은 무재해 사업장으로 유명하다. 이 사장은 "매주 한차례씩 안전문제를 회의 안건으로 다루고, 투자도 과감하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고가 나면 종업원의 불행일 뿐 아니라 대형거래선이 회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소신 때문. "앞으로 '안전사고 라운드'가 나올 수도 있다"는게 이 사장의 말이다.
거구에 어울리게 호탕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이 사장은 경북 월성 출신으로 경복고,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68년 삼성NEC(삼성SDI)에 입사했다. 이후 76년 부터 삼성의 반도체 사업과 동고동락해왔다.
이 사장은 회의 석상이나 부하 직원들과 대화를 할때 짧지만 핵심을 짚는 발언기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영 철학도 '단순한 게 최고다(Simple is Best)'. 이 사장은 간부들이 복잡한 기안서류를 들고오면 "핵심만 빼고 불필요한 가지는 모두 치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무리 복합한 문제라도 쉽게 풀린다는 것이다.
'복잡할 수록 단순하게 보는 그의 경영철학은 어쩌면 반도체 산업에 가장 적합한 것인지도 모른다.'이 사장과 인터뷰를 마치면서 가진 생각이다.
/정리=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 사진=신재호기자
첫댓글 3년전 인터뷰... 지나고 보니 맞는 이야기네요. 세월이 지날수록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하는 이야기는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미래 예측 능력이 탁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 시장을 조절하는 능력이 커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반도체가격과 삼전의 주가가 공조화를 보이고 있다면...반도체가격이 최고로 하락할 때가 결국 삼전의 매입시기가 되는 걸까여..ㅎㅎ..
좋은 과거자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