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한이 있어도…" 신앙 고수,스토리로 찾아보는 강원감영-

[안 엘리지오]

"죽는 한이 있어도…" 신앙 고수,스토리로 찾아보는 강원감영-

⑥ 강원감영과 천주교 박해이기원 북원여고 역사교사l

▲ 강원감영 형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영 내아 건물 앞에 있었는데, 최근 행각 왼쪽에 감옥이 만들어지면서 감옥 부근으로 옮겼다. 관찰사가 사법권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시설이다.

강원감영에 가면 곤장을 때리는 형틀이 있다. 이곳에 오면 수년 전 답사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인솔해서 감영 답사를 하던 중이었다. 감영에 곤장 때리는 형틀이 있어야하는 이유와 조선시대 형벌 이야기를 해주자,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형틀위에 올라가 엎드려도 보고 곤장을 들고 때리는 시늉도 하며 셀프 체험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일이 생겼다. 한 여자 아이가 형틀에 올라가 엎드렸는데 옆에 있던 남자 아이가 곤장을 들고 "때린다."고 했다. 장난으로 생각했는지 여자 아이는 "때려봐, 때려봐."라고 대답했다. 남자 아이는 곤장을 들어 엎드린 여자 아이 엉덩이를 철썩 내리쳤다. 난데없는 곤장 세례를 받은 여자 아이는 엉엉 울었다. 미쳐 손쓸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다칠 정도는 아니어서, 친구들이 보듬고 달래주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고 답사를 함께 했다.

감영에 설치된 형틀은 관찰사에게 사법권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관찰사는 관할 지역의 사법 업무를 총괄했다.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거나 관할 지역 내로 유배 온 죄인을 비롯한 수감자들을 관리했다. 직접 사법권을 행사하기도 했고, 수령들이 무고한 형벌을 내려 인명을 상하게 하지 못하도록 감찰했다.

조선시대 형벌은 태, 장, 도, 유, 사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가장 가벼운 형벌이 매질이었고, 장은 곤장을 때리는 형벌, 도는 감옥에 가두는 형벌, 유는 유배(귀양) 보내는 형벌, 사는 가장 무거운 형벌로 목숨을 빼앗는 사형이었다.

수령과 관찰사, 사법권 행사 범위 달라
도내 사법처리는 강원도 관찰사가 주관

▲ 선화당은 강원도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집무 공간이다. 강원지역에서 발생하는 범죄와 소송 등 사법 업무를 총괄하던 관찰사는 선화당에서 앞마당에 부복한 죄인을 심문했다.

관찰사와 수령 등 지방관은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그 범위가 달랐다. 관찰사의 지휘를 받는 수령은 태형까지만 독자적으로 내릴 수 있었고, 장형 이상은 관찰사에게 보고해서 명을 받아야 내릴 수 있었다.

강원감영은 천주교 박해가 일어난 곳이다. 왜 하필 강원감영이었을까. 강원도 내에서 일어나는 사법처리를 강원도 관찰사가 주관했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인물로 최해성과 고모 최비르지타가 있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부론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최해성은 강원감영으로 끌려와 가혹한 고문을 받고 8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떴다.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최해성은 신앙을 버릴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잠시 목숨을 부지하려고 제 영혼을 영원히 죽일 수는 없습니다. 임금과 의를 위해 죽겠다고 결심했던 백성이 배반하면 반역자인데, 하물며 하늘과 땅의 위대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맹세한 제가 어찌 형벌을 두려워하여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최해성의 고모 최비르지타는 감옥에 갇힌 조카를 면회하기 위해 강원감영으로 갔다. 하지만 면회도 못한 채 붙잡혀 천주교 신자임을 추궁 받았다. 천주교 신자임을 인정한 최비르지타 역시 수감되었다. 수감 중에 수시로 끌려나와 모진 고문을 당하며, 천주교 포기를 강요받았다. 하지만 끝내 거부했다. 수감된 지 4개 월 만에 최비르지타 역시 세상을 떴다. 죽기 전 최비르지타가 남긴 말이 전해지고 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천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이기원 북원여고 역사교사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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