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과 거래를 통해 바라본 삶의 지혜!
양탄자처럼 촘촘히 짜인 다양한 이야기들로 경제의 기본 원리를 읽는다

동네 길모퉁이 작은 재래시장부터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국제시장까지, 세상의 모든 시장은 온갖 사람들이 모이고 수많은 흥정과 거래가 일어나는 곳이다. 세상 어느 구석진 곳의 작은 시장이라도 그 속에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만들어 가는 풍부한 얘깃거리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시장을 주요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거래와 협상의 과정을 유대인의 탈무드를 연상시키는 유쾌한 짧은 이야기들 속에 담아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들려주고 있다.
가격 흥정에 서툰 평범한 스위스 인 안나와 오이겐은 해외여행을 하다가 터키의 한 시장에서 양탄자 장수의 기막힌 상술에 넘어가 생각지도 못한 양탄자를 사고 만다. 마치 마술쇼처럼 펼쳐지는 양탄자들에 둘러싸여 주인과 가격 흥정 한번 제대로 못 해 보고 충동구매를 하고 만 두 사람은 가게 문을 나서자마자 후회하지만 사태는 이미 벌어진 후다. 양탄자를 둘러싼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 다른 장소에서도 계속된다. 한편, 안나와 오이겐이 양탄자 장수와 실랑이를 벌이는 곳에서 머나먼 다른 나라 시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갖가지 거래들이 이뤄지고 있다. 칠레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년은 낡아 빠진 축구공 하나를 밑천 삼아 사업구상을 키우는가 하면, 남아프리카의 여인들은 해바라기를 키워 팔아서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짓는 꿈을 꾼다. 또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알프스 산의 가축 상인은 밤을 지새운 길고 끈질긴 협상 끝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거래를 성사시키고, 모로코의 겁 없는 두 소년은 헌옷 장사로 돈을 벌 꿈을 안고 난생처음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향한다. 이렇듯 《내 인생의 양탄자》 속엔 터키의 작은 양탄자 가게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러시아 등 세계 곳곳의 시장 이야기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곳에서 계약이 성사되거나 틀어지고, 때로는 싸우다가 화해하기도 하며 사람들은 서로 공존과 상생을 모색한다.
양탄자의 씨실과 날실처럼, 이 책 속에서는 각양각색의 문화적 특징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만들어 간다. 모든 흥정과 거래에는, 그것이 어두운 암시장 뒷거래이든 국제적 관심사이든, 그 이면에는 언제나 무형의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흥정과 거래에는 언제나 인간적인 얼굴이 있으며,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고, 싸우고 화해하는 삶의 현장인 시장은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어 주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흥정에 서툰 안나와 오이겐이 여행을 거듭하면서 다채로운 시장의 맨 얼굴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서 배워 나가는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세상과 사람을 서로 묶어 주고, 공동의 관심사를 갖게 만드는 바람직한 거래와 협상에 대해 다시 한 번 배우게 될 것이다.
본문 속으로
“저 양탄자 값이 얼마라고 했죠?”
아닌데, 이게 아닌데. 값을 묻다니, 그럼 안 되는데……. ‘만약에’라도 안 되는데……. 아니, ‘만약에’인데 뭐 어때…….
“오늘 사셔야 합니다. 내일이면 가격이 올라가요. 내일부터 성수기로 접어들고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지요!”
“터키 화폐 리라의 인플레이션을 봐요. 수표가 결제될 때쯤이면 그 가치가 반 토막 나 있을걸요.”
맞는 말이다.
“남편분한테 꼭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당신은 유럽 여성이 아닙니까. 유럽 여성들은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옳다.
“신사분은 배짱 한번 두둑해 보이세요. 큰 사업을 하시나 봅니다. 갖고 계신 워크맨을 제게 파시지 않으시겠어요? 양탄자 값의 일부를 그걸로 지불하는 조건으로요.”
이만하면 이 양탄자 장수, 꽤 괜찮은 사람 같았다. 유창한 외국어에 약간 살집이 있었는데, 옛 터키 말에 ‘배 안 나온 남자는 발코니 없는 집’과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이겐과 안나는 꼬박 다섯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리고 양탄자 가게 안에 1천 유로와 워크맨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놓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대가로 두 사람은 지금 다 닳아 빠진(“닳아 빠졌다니요? 이게 바로 앤티크입니다, 앤티크!”) 기도용 동양 양탄자를 들고 깜깜한 밤, 빗속에 서 있었다. -19~20쪽 중에서-
“얼마지요?”
오이겐이 물었다.
가게 주인은 올해 점퍼 가격이 유난히 싸다며, 겨우 250유로밖에 안 된다고 했다.
오이겐은 웃으며 일어섰다.
“너무 비싸서…….”
“얼마를 예상하셨는데요?”
가게 주인이 말했다.
“40유로, 아무리 비싸도 50유로.”
오이겐이 말했다.
“50유로? 에이!”
가게 주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농담도 잘하시네! 그런 가죽점퍼 있으면 내가 사겠소. 50유로는 안 돼요. 230유로, 그 이하는 안 돼요.”
“안 되겠네요.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니, 다음에 사지요, 뭐.”
오이겐이 아직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형님을 밖으로 잡아끌면서 말했다. 그러자 형님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창피하게 왜 그래? 차를 얻어 마셔 가며 이것저것 다 입어 보고 그냥 갈 순 없잖아.”
“어차피 그냥 갈 수 없을 거예요. 자,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고요!”
둘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가죽점퍼 파는 가게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조금 전 가게에서 본 그 점퍼가 다른 가게에도 있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마치 마술을 걸기라도 한 듯 오이겐이 말한 일이 벌어졌다. 아까 그 가게의 어린 점원이 헐레벌떡 두 사람을 뒤를 따라와 불렀다.
“우리 사장님이 잘해 주시겠다고 다시 오시래요.” -98~9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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